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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에서 평화로(성령강림후여섯번째주일,2022년7월17일)

하늘기차 | 2022.07.17 13:24 | 조회 368

                        두려움에서 평화로

성령강림후여섯째주일                                                                                      창15:12;32:9-11;50:20-21

     믿음의 조상 야곱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말씀은 형님의 얼굴을 뵙는 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듯하다는 33:10절이 아닌가 십습니다. 이 반전이 얍복강 나루터에서의 하나님과의 한 판 싸움에서 일어납니다. 야곱은 20년의 타향살이를 끝내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많은 가축들, 가족들을 거느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형 에서를 생각하면 두렵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를 만나기 위해 마하나임에 도착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데, 32:11에서 형 에서가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을까 여전히 두려워합니다. 이기적으로, 자기중심적으로 살아 온 사람의 모습이 아닌가 십습니다. 이대로는 축복이 이어질 수 없습니다. 결국 야곱은 하나님 앞에 설 수 밖에 없습니다.

     라쉬밤이라는 유대 랍비는 에서에게 다가서지 못하는 야곱을 요나와 모세에 비유합니다. 요나는 다시스로 가서 회개를 선포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니느웨로 도망치다가 커다란 물고기에게 삼켜졌다가 토해지는데, 더 이상 도망 갈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릅니다. 모세도 타지않는 가시떨기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나 바로에게 가라는 명령을 받지만 자꾸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도망가려 합니다. 야곱 역시도 형 에서에게 가는 것을 두려워하여 주저 합니다. 요나, 모세, 야곱은 무엇을 두려워하나요? 랍비 아쉬람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사명을 감당하기에는 자기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으로부터 오는 두려움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정말 두려운 것은 우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강하고, 빛처럼 빛나는 존재라는 것이 두렵다는 것입니다. 역설입니다. 우리는 내 안의 존귀함이 빛나고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 위대함을 받아들여 나를 자유롭게 하면 다른 사람들도 함께 해방됩니다. 그러나 모세, 요나 같은 위대한 신앙의 조상들도 도망치려 했는데 하물며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이 무엇을 어찌 할 수 있겠는가? 하며 주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 모세, 요나와 그리고 아브라함과도 씨름을 하여 도망하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시대의 우상, 물질 자본의 가치 속에 숨어버리지 말고 신앙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부름받은 택한 백성, 왕 같은 제사장으로 빛으로 우뚝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형식적인 종교 속에 숨어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랍비 아쉬람은 우리 모두는 하나님과 싸워 이긴 야곱의 후손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는 어떤 말씀이 인상깊은가요? 역시 떠나라!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떠나라!는 말이 두 번 나오는데 처음에는 하란에서이고 또 하나는 22:3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신 그 곳으로 길을 떠난다는 말씀입니다. 12:1-3의 떠남에서는 기대감, 희망, 그리고 무언가 축복해주는 축제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데, 22:3은 결연합니다. 비장감이 감돕니다. 어둡습니다. 당연합니다. 축복을 받으며 길을 떠난 이유, 원인, 약속이 사라지는 길을 떠납니다. 100세에 얻은 아들을 바라보며 행복하게 지내는데 이삭을 바치라는 청천벽력 같은 하나님의 명령이 내렸습니다. 22:3다음날 아침에 일찍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그동안 신뢰했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한 순간에 무너지는 참담함을 홀로 가슴에 품고 침묵하며 모리아산으로 향합니다. 모리아산으로 향하는 사흘길이 얼마나 길었을까요? 엘리에셀과 이스마엘을 떠올리며 후회도 했을 것 같습니다. 얼마나 많은 생각과 회한이 담겨 있었을까요? 평생에 우리가 생명을 내려 놓아야 할 때가 한 번은 있을까요? 그러나 내가 평생 붙들고 이기적으로 살았던 그 모습을 내려 놓을 때가 왔는데도 그것을 모른체 하고 지나간다면 그것은 어리석고 참 불쌍하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나중에 하나님 앞에 갔을 때, 무어라 답변을 할 수 있을까요?

     모리아산으로 가던 중 이삭이 아버지!’하며 불과 장작은 여기에 있는데, 번제로 바칠 양은 어디에 있냐고 물었을 때,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한 말은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질 법한 말입니다. 하나님이 손수 마련하여 주실 것이다입니다. 10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묶어 제단위에 올려놓고 칼을 들고 아들을 잡으려 합니다. 한 편 하나님이 준비하실 것이라는 말 속에는 하나님의 약속에대한 신뢰가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눈을 부릅뜨고 칼을 높이들어 이삭의 목에 칼날을 깊이 꽂으려는 자세에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려는 의지가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축복의 언약과 네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 네 생명과 같은 이삭을 내려 놓으라는 명령이 상충합니다. 칼을 높이 든 순간, 하나님이 다급히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하고 부르며 이삭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 합니다. 17:1절의 말씀처럼 한글 개역입니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는 말씀처럼, 말씀 앞에서 세상의 관습과 가치를 뒤로하고 말씀을 살아낸 사람입니다

     이삭은 영적 샘을 파는 사람입니다. 그랄지방에 머물며 물길을 찿을 때 마다 블레셋이 끊임없이 시비를 걸어 왔지만 이삭은 말없이 다른 장소로 옮겨우물을 팠고, 결국 브엘세바에서 판 우물에대해서는 더 이상 시비를 걸지 않았는데, 놀라운 것은 블레셋의 아비멜렉왕과 평화협약을 맺은지 얼마 안되어 26:32에 블레셋이 판 우물에서도 물이 터져나왔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 살며 세상 일에 붙들려 세상과 싸우고 다투며 미워하고 원수를 맺습니다. 영적 샘을 파서 세상을 이롭게 해야하는데, 세상 사람과 똑같이, 아니 더 이기적으로 집착을 합니다. 부끄럽습니다. 깊은 산 속의 맑은 물을 찿아 마셔야 하는데, 산 언저리에서 흐르는 오염된 건수를 마시며 영적 샘이라 하며 자기 좋은 것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몇 십년 신앙 생활을 해도 아무런 영적 변화도 없고, 새로움도 없고, 그대로 세상에 것에 붙들리어 꼼짝을 못합니다. 블레셋왕 아비멜렉이 이삭과 평화 협상을 할 때 우리는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심을 똑똑히 보았다고 합니다. 사소한 이익에 붙들리지 말고 침묵 속에 하나님 안에 머물러 맑은 샘을 퍼올려 함께하는 사람들과 같이 영적샘, 성령의 감동을 나누면 얼마나 좋겠나 싶습니다.

     이삭은 믿음의 조상들 중에 가장 개인적으로 연민이 가는 사람입니다. 리브가는 태몽을 따라 어렴풋 야곱이 상속자가 될 것이라는 것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야곱 보다는 에서를 사랑합니다. 단지 사냥을 잘해서일까요? 늘 집 밖에서 활동하며 생각이 단순한 에서입니다. 장자권을 동생에게 팥죽한 그릇에 팔아 넘긴 감정에 쉽게 휘둘리는 에서, 결혼적령기에 가나안 여인을 좋아하여 원주민과 결혼한 에서, 이삭이 늙어서 더 이상 눈이 어두워 잘 볼 수 없게 되자 에서를 불러 사냥감을 잘 요리해 오면 맛있게 먹고 축복을 해 주겠다고 합니다. 단지 별미가 아니라 에서에대한 진심어린 사랑이 읽혀집니다. 그런데 에서가 자신이 마련한 음식을 들고 아버지에게 가는데 이미 야곱이 축복을 채간 것을 알게 되자 이삭은 충격을 받고 부들부들 떨며 말을 더듬었고, 에서는 통곡을 합니다. 에서가 복을 빌어달라고 하지만 에서가 받은 것은 척박한 땅과 칼, 그리고 종노릇이라는 답 만 돌아옵니다. 이삭은 이방인과 결혼하고, 장자권을 소홀히 여기고, 감정의 선이 쉽게 흔들리는 허우대는 멀쩡하나 실속없는 에서에대해 왜 그토록 애착을 가졌을까요? 이유는 하나 아버지였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이복 형 이스마엘을 내 쫓을 때 아버지와 형 이스마엘이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는지를 알고서 에서에게 그 아픔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자기를 결박하여 희생제물로 드릴 번 했던 충격의 트라우마에서 여전히 벗어나오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는 큰 아들 에서에게 장자권과 상관없이 그런 아픔, 희생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아버지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불과 장작은 있는데 번제물로 바칠 양은 어디에 있느냐고 우직하게 묻는, 또한 샘을 팔 때 마다 물이 솟아오르는 영적 사람으로서 가족의 아픔과 희생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으려는 아버지의 연민이 있었지만 에서를 상속자로 세우려했던 계획이 다 수포로 돌아가는 아픔과 고통을 감래하며 야곱이 하란으로 떠날 때, 믿음의 상속자로 인정하며 축복을 해주는 모습은 화해와 평화의 아이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족장들의 파란만장한 믿음의 순례를 보며, 왕같은 제사장으로 부름받은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에서 믿음의 조상들처럼 두려움이 느껴지나요? 이 두려움을 어떻게 떨칠수가 있을까요? 아브라함이 상속자가 태어나지 않자 혼란스러워하며 언약을 파기하고 엘르에셀을 상속자로 세우려 할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 언약을 갱신하며 아브라함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하늘의 별을 쳐다보게 하며 너의 자손을 이 별과 같이 많게 하겠다는 징표를 보여줍니다. 성도들의 믿음의 순례길에는 이정표가 될 수 있는 3가지가 있습니다. 무엇인가요. 첫 째는 약속입니다. 이 세상을 무로부터 창조하였고, 육신으로 이 땅에 오신 말씀입니다. 이리 가라 하면 이리 가고, 저리 가라 하면 저리 갑니다. 둘 째는 징표입니다. 사사 기드온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 때, 미디안 족속을 대항하여 싸울 능력이 없지만, 만일 그렇다면 징표를 보여달라고 하자, 한 쪽의 양털뭉치에만 새벽 이슬이 맺히는 징표를 보여줍니다. 이 번 이냐시오 영신수련 피정에서도 저에게 몇 번의 징표를 보여주었습니다. 징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어도 여전히 혼란스러운 연약한 하나님의 백성의 순례길에 길잡이가 되어주는 소중한 영적 체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에게 찿아오십니다. 또 하나는 반드시 구해야하며, 맛 보며 누려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위로입니다. 신앙의 여정에서 지치고 힘들 때, 아무도 함께하지 않는 것 같고, 무력해져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때 하나님께 위로를 구해야 합니다. 믿음의 여정 길에 동행하시며 지키기고 인도해 주시고, 예상치 못한 도움으로 새롭게 하시고, 새 힘을 주십니다. 이스라엘의 광야길에 만나와 메추라기, 그리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통해 광야 40년 길을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약속, 말씀 만 가지고는 우리가 연약하여 감당이 안될 때가 있습니다. 믿음의 순례길에서 표징과 위로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 믿음의 자녀로 평화를 맛 보며 나누는 우리서로같이 교회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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