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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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떠나는 아브라함(성령강림후제6주일, 2018년 7월 1일)

하늘기차 | 2018.07.01 16:59 | 조회 972



                    

                         길 떠나는 아브라함

201871(성령강림후제6주일)                                                                      12:1-4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흩어져 사는, 나그네로 부르셨습니다. 땅에, 물질에, 이념과 자기 합리, 편리함, 시대적 흐름에 쉽게 마음이 가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모습인데, 하나님은 우리를 흩어져 나그네로 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산 소망과 썩어 없어지지 않는 유산을 물려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우리 기독인의 정체이며, 방향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오늘 말씀은 내가 보여주는 땅이라고 합니다. 11:31은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갈데아 우르를 떠나 하란에 이르러, 거기에 정착하여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아브라함은 아버지와 함께 하란에 정착하여 살다가 한 번 더 떠난 것입니다. 한 번 더 떠났다는 것은 색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계속 떠나는 것이 신앙입니다. 왜 꼭 가나안 땅일까요? 가나안땅은 지리적으로 비교적 비옥하며, 만년설이 있는 헬몬산에서 흘러내리는 강줄기가 있어 물이 마르지 않고, 동으로는 지중해, 서쪽으로는 요단강과 에브라임 산지가 있고, 남쪽으로는 사막지대여서 방어하기 용이하여 하나의 민족을 택하여 세상 속에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를 세우고 유지하기에 적합한 땅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끊임없이 멈추지말고 계속 떠나야하는 존재로, 산 소망과 썩지않을 유산을 바라며 살아갑니다.

     신약의 시대, 성령의 시대에 가나안땅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세상나라에서 사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생명과 정의와 평화의 나라로 부르셨습니다

     이 세상 피조세계의 생명질서는 약육강식, 적자생존입니다. 처음자리를 보더라도 식물이 한 지역을 장악할 때 보면 경악스럽습니다. 다른 종이 기를 펴지 못할정도로 퍼져나갑니다. 정말 잔인해요. 동물들도 마찬가지지요. 몽골과 같은 초원지대에 사는 야생초식동물들이 번식을 시작하면 초원의 풀이 다 말라버린다고 합니다. 풀이 나서 번식할 틈이 없이 싹쓸이를 한다고 합니다. 이게 육적 생명의 본질입니다. 어떻게 보면 인간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한 나라가 세워지고 사라지고 다시 세워지며 거대한 제국의 영욕이 반복되는 것이 인류의 역사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을 죄외한 생명은 본능에 충실합니다. 인간처럼 끝없이 욕망하지 않습니다. 생태계는 인간이 개입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질서 속에 건강하기 유지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생명에대해 단지 생물학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생명을 하나님과의 관계로 봅니다. 아브라함에게서부터 시작된 믿음의 관계입니다. 오늘 말씀처럼 약속에대한 믿음입니다. 그 약속이 말씀이고, 그리고 그 말씀이 바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생명을 성경은 영생이라고 합니다. 생물학적인 것을 넘어서는 영원한생명인데, 양적인 개념이 아니라 질적인 개념입니다. 부활도 육의 부활이 아니라, 몸의 부활입니다. 17:3

                           “영생은 오직 한 분 이신 참 하나님을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음행하다 잡힌 여자를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이 정죄하자, 죄 없는자가 돌로치라 하며, 나도 정죄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말라 하십니다. 그러면서 요8:15에서

                        “너희는 사람이 정한 기준을 따라 심판한다. 나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심판하면 내 심판은 참되다라고 합니다. 우리 새번역은 참되다인데, 공동번역은 공정하다로 되어있고, 최근 영어성경의 경우도 right, 옳다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무엇이 옳은가요? 무엇이 의로운가요? 10:3, 4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고, 자기 자신들의 의를 세우려고 힘을 씀으로써,

                              하나님의 의에는 복종하지 않게 되었습니다라고 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율법의 열심으로 이 여인을 보니 죄만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여인을 보며 정죄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스스로 참되다고 하는데, 자신의 참됨에대해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대 전제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12살 되는 해 유월절절기를 지키고 돌아오면서 마리아와 요셉이 어린 예수를 잃어버려 허겁지겁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예수를 성전에서 찿는 장면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마리아와 요셉에게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라고 반문을 합니다. 예수님의 언행의 정당성은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의로움입니다. 여러분은 자신 스스로의 의가 있나요? 나의 삶의 당위성을 여러분은 어디서 얻나요? 생명, 정의, 평화의 나라로 길을 떠난 사람들로서, 정의라는 것이 통상 평등의 정의이지만 우선 내 스스로의 의가 세워지지 않는다면 정의는 공중누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정의의 연극이 끝나면 바로 추락해 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마태복음의 첫 시작인 아기 예수의 탄생 이야기에서 천사는 예수를 임마누엘이라고 합니다. 1장의 끝 절인 24입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근데 마태복음의 마지막 장인 28장의 끝절인 20절은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합니다. 마태복음의 처음 장 절 과 끝의 장 절이 마태복음 전체를 (괄호)에 넣습니다. 예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를 향해 길 떠나는 사람에게 자기 정체성이 없다면, 자기의 정당성, 자기의 의로움이 없다면, 그러니까 하나님과 함께하는 의가 없다면 우리는 자기의 의, 자기 열심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40년 광야길의 이스라엘이 그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 만나와 메추라기, 바위를 쪼개어 샘을 내어주는데도, 하나님의 함께함을 공감하지 못합니다. 아니 못한 것이 아니라 만들기 쉽고, 부리기 쉬운, 편리한 우상을 더 가까이 두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실제입니다. 함께해도 그 탁월한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자기의를 누리지 못합니다.

     사도 바울은 롬3:21 이하에서 율법과는 상관없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의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오는데, 모든 사람이 죄인일 수 밖에 없어 하나님의 영광에 못 미친다고 합니다. 그러나 24절은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는 구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는 선고를 받는다는 위대한 선언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의는 은혜의 의입니다. 우리의 죄가 아버지 하나님의 함께하는 사랑을 외면해버리는 모습에 안타까워 이제 아버지 하나님이 아들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시어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 마다 값없이 의롭다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은혜의 의 외에 다른 의는 없습니다. 다른 것은 가짜이구, 거짓이며, 속임수입니다. 모두 자기 열심에 빠지게 합니다. 다윗, 욥은 그러한 자기 열심, 자기 의에서 벗어난 사람들입니다. 삭케오가 그러했고, 우물가의 여인이 그러했습니다.

 제주도에 예멘난민들이 500여명이 머물러 있다고 합니다. 19517월 제네바에서 채택된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Convention Relating to the Status of Refugees)에 따르면 제1인종, 종교, 국적 또는 특정 사회 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그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그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를 난민이라고 합니다. 극우적인 기독교인들이 이슬람이라고 예민한 반응을 보입니다. 거짓 사실에 바탕을 두고 정치적인, 종교적인 표방을 하지만 결국 인종혐오입니다. 나 아닌 다른 피부, 언어, 문화, 종교가 싫은 것입니다.

  2:14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막힌담을 주께서 몸으로 헐어 원수된 것을 없에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평화는 자기 자존감에서부터 오는데, 우리의 자존감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에서 옵니다. 그렇게 나의 의로움, 나의 당위성, 생명의 당위성이 있어야 다른 사람의 당위성, 존재 이유도 보일 것입니다. 평화란 나뿐만 아니라 다른 피조물의 존재를 존중해 주는데서 옵니다. 자존감이 없으면, 자꾸 원치않는 생각과 감정과 행동에 사로잡혀 불안해하며, 가야할 길을 잃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폭력적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예수님이 다락방에 숨어 두려워 떨고있는 제자들에게 찿아가 에이레네, ‘평화가 있을 지어다라고 했던 것처럼 해야합니다. 주님이 에이레네, 공감하란 말을 듣고 제자들은 정신이 버쩍들었습니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돌아보고, 역시 동료들도 돌아보며 평화가 찿아오기 시작하였습니다. 평화는 공감하는 마음입니다. 나를 인정하듯이 다른 존재를 인정해 줄 때 평화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인정해 주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이웃, 피조 세계의 생명들의 하나님이 주신 존재 방식을 인정해 줄 때 평화입니다.

     우리는 길 떠난 세상 속에 흩어져 사는 나그네입니다. 우리의 가나안은 생명, 정의 평화의 나라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나라의 전초 기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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