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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내부고발자(사순절제2주, 2018년2월 25일)

하늘기차 | 2018.02.26 14:11 | 조회 1135


                       예수는 내부고발자

2018225(사순절제2)                                                                     5:1-7;12:1-12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성전을 청소한 사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에게 찿아 와서 무슨 권한을 가지고 그런 일을 하느냐고 묻자, 예수님은 그들에게 포도원 소작인들에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1절 첫마디는 이사야5장의 포도원이야기로서 지금 우리가 들으면 생소하고, 낯이 설지만, 당시의 사람들이 들으면 바로 무슨 뜻인지, 그리고 누구 들으라고 하는지를 다 알았습니다. 당사자들은 예수님이 당시 힘들게 살아가는 소작인들의 이야기를 포도원 노래에 연결하며, 결국 주인의 아들 까지 살해한다는 결론에 이르자 당황했을 것이고, 그래서 붙잡으려 한 것입니다.

     포도원은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특상품 포도를 생산하기 위해 기름진 언덕에 포도원을 가꾸어 좋은 포도를 맺기를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의 트레이드 마크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서도 기다림은 많은 것들을 줍니다. 아마 기다림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온 천지 만물을 숙성시켜 그 창조의 질서를 드러내듯이, 우리 역시도 하나님의 기다림을 배워 몸에 익힐 필요가 절실합니다.

     포도원주인은 잘 준비하여 극상품 포도를 맺기 원했는데, 들포도를 맺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 포도원을 다 헐겠다고 합니다. 왜 하나님은 정성스럽게 가꾸신 포도원을 훼파하려할까요? 7절 말씀을 보면 왜 포도원이 훼파되는지에대해 이야기합니다. 포도원은 이스라엘이며, 포도나무는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그 포도나무 하나, 하나 정말 최고의 품종을 선별하여, 심고 잘 가꾸었는데, 이 말씀의 개정개역을 보면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라 합니다. 지지난 주에 암5:24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흐르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이사야서의 포도원의 노래를 가지고 당시 기득권자들, 특히 예수님에게 찿아온 사람들 중에 장로들에게 그들의 토지를 소작하고 있는 소작인들에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왜 예수님은 소작인들의 이야기로 이사야 5장 말씀을 해석하였을까요? 소작인이야기는 예수님에게 찿아온 사람들의 실제였습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인 기득권이 모인 곳이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로마 총독 지배 아래에서 산헤드린이라는 공회가 이스라엘을 통치하였는데, 사두개인들, 대제사장 가문, 바리새인들, 그리고 소위 신진 엘리트 집단이었던 장로들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대한 법률적인 자문을 율법학자들이 하였고,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장로들은 바로 헤롯을 추종하는 자들로서 백성들의 토지를 담보하여 백성들의 땅을 몰수하는 방법으로 부를 늘려나갔던 사람들입니다. 5:8을 보면

                                       “너희가, 더 차지할 곳이 없을 때까지, 집에 집을 더하고, 밭에 밭을 늘려 나

                                        가, 땅 한가운데서 홀로 살려고 하였다는 말씀 그대로를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백성들이 땅을 점차 잃기 시작한 것은 이스라엘이 로마의 지배를 받으면서 땅을 사고 파는 일들이 발생하기 시작하였고, 농민들은 땅을 담보하여 돈을 빌리고, 돈을 값지 못하면 땅을 포기하여 노동자나, 소작인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악순한이 이어져왔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경제적 기득권을 뒤에서 바쳐준 것이 바로 성전체제입니다. 성전의 대제사장들은 아론에게서부터 이어지는 계통이 무너진지 오래였고, 예수님 당시에는 로마의 총독에의해 임명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대제사장은 정치적 이해관계나 이권에 따라 이용되었습니다. 1년을 채우지 못한 대제사장들이 허다했습니다. 따라서 성직매매는 일상이었습니다. 자연히 전임 대제사장들이 허다했습니다. 예수님 당시 현직 대제사장은 가야바였고, 안나스는 전직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구분하기 위해 현직 대제사장은 그 해의 대제사장’(18:13)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대제사장들이 같은 문중에서 나왔기 때문에 전임 대제사장들 그룹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안나스는 대제사장 직분을 그만둔지 20년이 다 되어감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위인 가야바가 현직 대제사장이기 때문에 여전히 대제사장으로 불리면서 현실 문제에 깊이 개입하였고, 자신의 가문에서 일곱 명이 연속하여 대제사장 직분을 독점함으로써 유대 사회에서 최고의 영화를 누리며 산헤드린의 배후에서 권력을 휘둘렀으며,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내부고발자였습니다. 최근의 법조계, 그리고 연극계, 이전의 대한항공, 더 나아가 폐미니즘, 성소수자, 공무원에 이르기 까지 모두 내부고발자들에의해 진실이 밝혀지고, 그래서 세상이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내부고발자들은 그 체제속에서 살아남지 못합니다. 체제를 유지시키기 위해 매장을 시켜버리니까요? 그나마 me too운동으로 사회의 보호를 받는 것 같기는 한데,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가는 길은 당시의 기득권자들은 물론이고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 그리고 제자들 까지도 어느 누구도 원치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내부고발자였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상석에 앉으려했던 것을 들추어냈고, 52어 기적 후에 무리들이 자신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계획을 무산시켰습니다. 결국 인류의 모든 욕망,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인류의 죄를 내부고발하며 십자가에 달리셨는데, 하나님께서 선으로 값아 부활의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아마도 이제 세월호의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지 않을까 싶고, 어떻게 국가권력이 연약한 시민들의 자녀들에게 언론과 공권력과 학계가 총동원되어 폭력을 행사했는지를, 그리고 배의 침몰과 한명도 구조하지 못한 그 일련의 과정 속에 우리 역시 이 시대를 신자본주의의 욕망에 붙들려 살아온 부끄러움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몇 년 전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는 노래에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천안함폭침도 이기회에 내부고발자가 나와 진실이 규명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내부고발자가 되려고 의도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주님은 빛이어서 가는 곳 마다 어두운 것, 감추어있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났습니다. 우리도 우리 가운데 주님이 오시면 모든 것이 빛으로 드러납니다. 우리의 삶의 어두움은 사라지고, 빛으로 드러나야 생명과 정의, 그리고 평화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5:8-15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어둠이었으나,지금은 주님 안에서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사십시오.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와 진실에 있습니 다.- 주님께서 기뻐하

                         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십시오. 여러분 은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끼여들

                         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폭로하십 시오. 그들이 몰래 하는 일들은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것들입니다. 빛이 폭로하면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드러나는 것

                         은 다 빛입 니다. 그러므로, "잠자는 사람아, 일어나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일 

                         어서라. 그리스도께서 너를 환히 비추어 주실 것이다"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살피십시오. 지혜롭지못한 사람처

                         럼 살지 말고, 지혜로운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오르기 전 공생애를 시작할 즈음에대한 내용이 막2장에 집중적으로 기록되어있는데, 모두 기존의 체제와 갈등을 일으키며 충돌하는 사건이 5번 언급되고 있습니다. 먼저 중풍병자를 죄 용서함으로 고치면서 예루살렘성전에서 대제사장을 중심으로 제사를 통해 죄사함을 받는 속죄의 정통성을 무너뜨립니다. 둘째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합니다. 이 모습은 성령의 역사 이후의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당시의 율법은 이 사건을 죄로판결합니다. 셋째 바벨론포로기 이후 정례화된 매 주 2, 5일에 행하던 금식을, 지금은 결혼잔치와 같이 기쁘고 즐거운 하나님 나라가 도래한 때이니 먹고 마시라 하며 금식규례를 파기해 버립니다. 넷째 당시의 율법학자들의 눈에 결정적으로 벗어난 것은 안식일법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밀 이삭을 발라 먹고, 다섯째 예수님이 친히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손을 회복시키는데, 27에서 예수님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인자는 또한 안식일에도 주인이라고 하시며 모든 논쟁거리들을 일축해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로마제국의 폭력 뿐만아니라 예루살렘을 중심으로하는 정치, 종교, 율법, 그리고 그 기득권을 떠받치는 종교적 기득권을 예루살렘에서 빛으로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은 근원적으로 인간의 죄를 고발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감추고자하는 우리의 죄를 십자가를 통해 이것은 죄다!’ 라고 하자 함께 따르던 제자들 까지도 모두 등을 돌리는 내부고발자였습니다. 잘 알겠지만 일련의 성폭력과 같은 내부 고발은 남자가 여자를 추행하는 단순한 성폭력이 아니라, 성폭력을 묵인하고, 조장하는 기득권의 전체 카르텔에대한, 전체주의적인 폭력이 되어버린 기득권의 고발입니다.

     예수님은 세상나라의 내부고발자에 머물지 않으시고, 하나님나라의 비죤을 제시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포도원 이야기를 시11822, 23절을 인용하면서 마감합니다.

                                    “집짓는 사람들이 내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이것 은

                                     주님께서 하신 일이니, 우리의 눈에는 기이한 일이 아니랴?” 이 말씀은 성전을 사흘 만에 짓겠다는 예수님의 말씀과 오버랩이 됩니다. 이 거대하고 화려한 성전을 사흘 만에 짓겠다니 고개를 갸우뚱할 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를 기초로한 마음의 성전을 지으시겠다는 설계도를 갖고 계십니다. 그러니 당연히 모든 것이 처음부터 전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탁월한 것은 집 짓는 사람이 버린 폐건축 자재로 머릿돌 삼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공동체의 태동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시편의 말씀은 아마도 신약 중에 가장 많이 인용되는 구약 말씀 중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4:11;벧전2:7;9:32,33;2:20에 거듭 이 말씀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신약의 기록자들은 구약의 시편에서 이야기하는 버린돌이 이제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태어나는 새로운 공동체인 것을 본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시대 정황 속에서 이 버린돌을 어떻게 재활용하여 머릿돌이 되게 할 수 있을까요? 오늘 이 시대에 버려진 돌은 어떤 돌일까요? 제가 보기에는 지금 버린돌들이 길바닥에 질펀하게 깔린 것 같은데, 아직도 이 돌들을 보지 못한다면, 그리고 그 돌들 안에 살아있는 하나님의 살아계신 생명력을 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부끄러울 것입니다. 버린돌이 머릿돌되는 이 우주와 역사 속에,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에 감추어져 있는 이 놀라운 하나님의 신비를 볼 수 있는 우리 고기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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