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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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보았다(주현절후제5주,2018년2월4일)

하늘기차 | 2018.02.04 15:14 | 조회 364

 
                      

                      당신들은 보았다.

201824(주현절후제5)                                                                                  11:1-7

  올 해 구역모임은 헤른후트기도서를 읽고 묵상하며 받은 감동을 나누고 있습니다. 지난 1일 금요일 묵상 말씀은 신11장 이었습니다. 그 중 저에게 와 닿았던 말씀은 7절입니다.

당신들은 주님께서 하신 이 위대한 모든 일을 당신들 눈으로 보았다고 합니다. 무엇을 보았는가 하면 이집트에 일으킨 기적과 표징, 쫓아오던 이집트 군대가 어떻게 홍해바다에 휩쓸렸는지, 그리고 광야에서 하신 일들을 보았다고 합니다. 지금 신명기서는 모세를 통해 끊임없이 기억하라, 지키라, 가르치라고 반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지겨울정도로 잊지말라, 지키라, 가르치며, 왜 우상숭배 하지말라,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했는지 이제 조금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우상이 뭐예요. 자기가 깍아서 만든 조형물이잖아요. 그 앞에 무릎꿇고 절하며, 섬기며 자기 자신과, 가족, 그리고 자기 기업을 위해 빌잖아요. 신명기 시대를 보면 하나님을 섬기지 않은 것이 아니에요. 문제는 하나님과 바알을 같이 섬깁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이 어느쪽으로 넘어가겠어요. 당연히 제코가 석자라고 자신의 것을 빌며 바알에게 넘어갑니다. 자기틀 안에 갖혀서 옆을 보지 못합니다. 그저 조금 나아지면 윤리와 도덕의 수준에 머물며, 소위 자기 영성에 빠지거나 자선사업에 머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온 우주와 역사와 생명의 하나님이십니다.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의 구약학전공 김근주 교수는 이것을 사사로움이라 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사유가 '사사로움' 때문이었다고 하면서 교회 세습도 바로 이 '사사로움' 때문에 일어난다고 합니다. 또한 지난 대통령 탄핵 때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결문에 사사로이 했다는 말이 몇 번 나왔다고 하면서 대통령이 탄핵된 것은 공권력을 사적인 일에 유용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나의 유익 추구가 내 이웃들에 해가 되고 내 교회의 유익이 한국 교회 전체에 해로우면 '사사로운' 것입니다. 이 사사로움을 넘는 것이 ''입니다. 공이란 거창한 게 아니라 남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김교수는 공이란 소외되고 연약한 이웃을 생각하는 일이라고 단순 명확하게 이야기해 줍니다. 한국교회는 사도신경에서 거룩한 공교회를 믿는다고 매 주 고백하면서 사사로운 교회가 되어버렸습니다. 김근주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약자 중심이면, 절대 편파적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전부를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김교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전체를 통해 끊임없이 말씀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출애굽의 시작은 바로 이집트에서 고통받는 노예들에대한 하나님의 연민에서 부터입니다. 그래서 모세5경에서 하나님은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을 꼭 기억하라, 나그네를 잊지말라고 끊임없이 반복하여 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가난함을 통해 이스라엘 공동체를 바라본 것입니다. 사도 바울 역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고 건강하게 하는데 있어서 고전12:22에 보면 몸의 지체 가운데서 비교적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들이 오히려 더 요긴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상숭배자들은 오직 풍요를 사유화합니다. 왕권 국가 이후 얼마나 빈부의 격차가 커지나요. 사사로워진 것입니다. 자본과 국가의 권력, 그리고 언론매체와 지식층에, 그리고 오로지 물질가치 하나에 목이메인 국민들의 광기에 희생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나요. 정말 고통받고 가난한사람들인데, 교회가 이들을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보고계신데 말입니다. 사사로워서 그렇습니다. 다음 주에 부산장신대 황홍열목사님이 오셔서 공적신앙에대해 이야기 해줄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사사로워졌습니다.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와 다를바 없읍니다. 물질에 묶여버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예 한 발 더 나아가 가난한자가 복이 있다고 선언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이미 신명기서에서, 모세5경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말씀입니다.

     지난 수요일 성서강해 시간에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이 무엇을 보고 계시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들었습니다. 아무도 여호와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22:16은 여호야김 왕을 핀잔하며 너의 아버지 요시야왕은 하면서

                 “그는 가난한 사람과 억압받는 사람의 사정을 헤아려서 처리해 주면서, 잘 살지 않았느냐?

                   바로 이것이 나를 아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선포합니다. 6:7은      

                나의 눈 앞에 언제나 보이는 것은, 병들고 상처 입은 사람들뿐이라고합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는 것 만 봅니다. 세상이 그렇게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을까요? 지 지난주 골3:10에서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이 새 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따라 끊임없이 새

                        로워져, 참 지식에 이르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그렇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타지않는 가시떨기 나무에서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마리아가 하나님의 형상을 쫓아 예수에게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이끌 메시야인 것을 보았고, 세례자 요한이 예수에게서 세상 짐을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았고, 특히 하박국은 그 혼란스러운 폐망해 가는 북이스라엘에게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을 보았고, 무엇 보다도 사도 바울은 율법의 세상에서 믿음을 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인 당신들은 보았다는 말에서 저는 이스라엘이 보았으면서도 안본 것 처럼 살아가는, 그렇다면 잊어버리고, 지키지 않는 삶을 살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스라엘이 잃어버리고 놓친것은 무엇인가요? 우리도 지금 이 시대를 살며 성도라고 하면서 잊어버리고, 지키지 않으며 살고 있지는 않는지요?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 것은 무엇인가요?

     고후4:4은 세상의 신이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한다고 합니다. 4:6[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합니다. 이 두 말씀 사이에 우리는 끼어있습니다. 모세는 신11:29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에발산에서는 축복을, 그리심산에서는 저주를 선포하라고 하며 이스라엘에게 경각심을 일깨웠습니다. 이제 세상의 신에게서, 바알의 속삭임에서 성령의 감동을 따르는 삶으로, 물질 가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가치로 넘어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도 바울이 간절히 에베소교회를 향해 권면하였듯이 하나님이 누구인지, 하나님이 무엇을 보고 계시는지 알아야합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워집니다. 그런데 신명기서에 느껴지는 이스라엘의 일상은 어떠했을까요?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지요?

     저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성도들이 6일 동안 세상의 가치, 정보, 관계, 그리고 일에 빠져있다가 주일 오전에 예배를 드리고는 그리고 다시 세상에 푹 빠져 있다가 다시 주일이 되면 허겁지겁 시간에 맞추어 예배를 드리러 옵니다. 이 전에 교인들이 30~40 명이었을 때는 20여명 이상의 숫자가 그대로 주일저녁, 수요 예배에 그대로 였습니다. 교회 전체가 그대로 신앙의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성도들의 삶이 어떻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세워져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주 회자된 서검사 성추행에대한 커밍아웃에서 비롯된 온누리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검사의 간증에대한 이야기를 보며, 이것이 한국교회의 단면을 보여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일 오전 한 번으로 과연 세상의 신에게서 자유로울 수 있을 만큼 하나님을 알고,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 뜻에 합한 삶을 살고 있는지요? 주님의 얼굴에 비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을 쬐이며 살고 있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쉽게말해 절대시간이 부족합니다. 한달에 한 번 저녁에 교회 기도 제목을 나누자고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소 닭 보듯 합니다. 이유는 멀고, 피곤하고, 바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바쁘고, 피곤하고,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 쉼과 평화를 주었는데, 주일에도 온전히 쉬지를 못합니다. 성도들의 쉼은 주일 아침 예배로부터 시작해서 저녁에 예배로 마무리를 짓는 쉼이어야할 것 같습니다. 저의 고전적인 안식일지킴의 자세입니다. 요즈음은 오전예배드리고, 식사하고 오후 프로그램으로 3,4시면 주일의 모임을 끝내는데, 저희는 저녁 예배를 고집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루는 저녁에 시작이되어 저녁 모임을 중요히 여깁니다. 실제 아침에 드려지는 예배와 저녁에 드려지는 예배의 기운이 다릅니다. 해가지고서 오는 차분함이 있고, 우리의 번잡했던 생각들을 가라앉히고 하나님께 마음을 모으기에는 해가 떠오르는 아침 보다는 저녁이 최적입니다. 수요일에는 잘 준비된 말씀의 지식과 지혜를 나눕니다. 최근 들려주는 예언서에대한 말씀은 나를 말씀에 집중하게 하고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최소한의 시간이라 생각합니다. 이전에 부목사로 봉사하던 때, 어느 집사님은 애기를 업고 저녁 예배에 참석하여 애기가 울면 애기를 업고 현관 밖으로 나가 문을 빠끔이 열고는 머리를 내밀어 등에 업은 아이를 얼르며 말씀을 경청하던 생각이 납니다. 이제는 이런 간절한 행동은 전설이 되어버린 시대입니다. 훌륭한 설교, 신학, 프로그램을 영상매체들을 접할 수 있지만 그것이 신앙은 아닙니다. 지금은 아이를 업고 달래며 현관문 밖에서 머리만 빠끔이 내밀고 들으려하는 그 간절함이 귀합니다. 아예 저녁예배는 닫아버렸습니다. 주일 오전이면 족하다는 것인데, 사실은 전혀 하나님에대한 지혜, 지식에 닿아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성도들의 삶에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면 신앙의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의 가치와 지식이 범벅이된 대화로 가득차있습니다. 주일 오전 예배를 드리고 예배당 문을 나서며 받은 은혜를 다 벗어놓고 다시 세상으로 향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절대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씀하는 율례와 규례와 예식이라는 것이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일상입니다. 교회가 소박하게 진행하는 하나님을 향한 여러 규례와 의식과 고통받는 현장에서의 모임 등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그 곳에 하나님의 구원의 신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비한 구원의 은혜는 광기와 화려함이 아니라, 무언가 새로운 것이 아니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때 부터, 한국 교회의 먼저 믿은 선배들의 신앙의 신실함에 있지 않나 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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