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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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난 하나님(주현후제3주, 2018년1월21일)

하늘기차 | 2018.01.21 17:35 | 조회 311

 

                     드러난 하나님

2018121(주현후제3)                                                                                  고후4:3-10

     교회는 새벽기도회 때 맥체인 성경읽기표를 따라 구약, 신약을 읽는데, 그대로 4장씩 따라 읽으면 1년에 한 번을 읽을 수 있고, 2장씩 나누어서 읽으면 2년에 읽을 수 있습니다. 교회는 새벽에 2번에 나누어 읽고 있습니다. 어제는 창21장과 사도행전 20장을 읽었는데, 창세기에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이삭이 태어나 젖을 뗄 즈음에 몸종 하갈의 몸에서 태어난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리는 것을 목격하고는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 보내라고 합니다. 이유는 이삭과 이스마엘이 유산을 나누어 가질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실 아브라함과 사라가 관심 갖고있는 땅과 재산은 하나님이 이스마엘에게도 주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삭은 믿음의 상속자로, 이스마엘은 세상의 삶을 살면 되는 것입니다. 한집에서 역할이 다르기 때문에 함께 화해하며 품고 더불어 같이 살아도 되는데, 아브라함도 그렇고 사라도 모두 눈에 보이는 부족후계자계승, 유산 상속에 만 관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에 아직 미치지 못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을 받으십니다. 결국 하갈과 이스마엘은 광야로 쫓겨나는데, 물이 없어 이스마엘이 죽어갑니다. 하갈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아이 우는 소리를 들었으니 무서워하지 말라하며, 21:19에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니 하갈이 샘을 발견하여 가죽부대에 물을 담아 아이에게 먹여 아이를 소생시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는 길은 하나님이 보여주십니다. 그것을 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신봉동에서 살았을때, 광교산을 넘어 교회에 온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겨울이어서 가는 길이 잘 보여 비록 교회로 오는 길이 여러 갈래의 능선을 타고 넘어와야 했지만 무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름에 넘어 온적이 있는데, 나뭇잎이 숲을 이루어 길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엄청 헤메었고, 여러차례 자꾸 곁길로 빠졌던 경험이 있습니다. 길을 가려면 길이 보여야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을 볼 수 없으면 자기가 설정한 자기 방식대로 하나님 앞세워 자기길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헤른후트 기도서는 지난주간에 신명기서 본문이 계속 이어지고있는데, 이스라엘이 가데스바네아 이르러,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제 두려워하지도 말고, 겁내지도 말고 가나안으로 올라가서 그 땅을 차지하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정탐해 보자라는 제안을 모세에게 하고, 모세는 그 제안을 신1:23에 보면 내가 듣기에도 그 말은 옳은 말이라 하면서 각 지파 별로 정탐꾼을 세웁니다. 알아 보자는 말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지피지기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알고도 패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우리는 약하고 부족하며 어리석습니다.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자, 하나님의 뜻, 그 길로 인도하심을 요청해야하는데, 가나안을 자세히 드려다 보자고 합니다. 가서 보니 보이는 것은 자신들을 가로 박는 거대한 성곽, 힘이 쎈 원주민들, 그리고 자신들에게 없는 강력한 무기체계를 보고 왔으니 결국 그들이 눈으로 본 그대로의 현실에 붙들려 두려워하며 겁을내어 28 왜 그 곳으로 가야 한단 말이냐? 무모한 일이라고 까지 합니다. 본 것 만큼 행동합니다. 이에 하나님이 진노하여 그러면 홍해로 가는 길을 따라 광야로 가라고 합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고 하며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올라가 싸우겠다고 합니다. 성경은 그 상황을 41절에 경솔하게 그 산지로 올라갔다고 기록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올라가지도, 싸우지도 말라하며 너희와 함께하지 않아 싸우면 적에게 패할 것이라 하였지만 결국은 올라가서 싸우다가 44아모리 사람이 벌떼 같이 쫓아 와 참패를 당하였다고 기록을 합니다. 자기 편한대로, 자기 주관대로, 세상의 가치를 따라 스스로 자기 체면을 걸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모르는 일을 스스로 하면서 하나님의 일인 것처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잘되는 것이 하나님과 상관없이 자신의 지혜와 남들보다 더 열심을 내고, 스스로의 인맥과 학연을 통해 일들을 번영시킨 것인데 하나님이 함께했다고 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교회와 성도는 엄중하게 물어야 합니다.

     1:1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1:2은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 세상에 벌써 무언가 존재하고 있는데, 그러면 말이 안되지요. 하나님은 이 세상은 어떤 물질로 창조하지 않고 말씀으로 창조하였거든요. 그렇다면 이 말은 창세기를 기록한 사람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였다는 진리를 통해 무언가 또 다른 이야기, 아마도 그것이 사실은 진짜 말하고 싶은 주제인지도 모르는데, 바로 창세기를 기록한 그 시대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창세기가 기록된 시대는 바벨론 포로기와 다윗과 솔로몬 시대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거대한 신전과 마루둑이라는 이방 신 앞에 이스라엘 하나님이 너무나 초라해 보였습니다. 또한 다윗 시대의 국가는 거대한 제국을 이루었지만 국민들은 징용과 징집, 도시 중앙집중으로 인한 소외와 빈부의 격차, 그리고 우상 숭배를 통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무너질 때, 그 혼돈과 공허함과 어두움 속에 하나님을 창조한 분은 바벨론의 마루둑이나 바알, 아스다롯이라는 거짓 신이 아니라 우리 조상을 애굽에서 해방시킨 여호와 하나님인 것을 선언하는 장엄한 서사시이며, 신앙 고백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말씀은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 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자, 제자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당시 제자들에게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너무 큰 충격적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건에 가려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픔과 회한 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러한 제자들을 찾아가 그들의 닫힌 마음을 열어 부활을 보여주었습니다. 세월호가 4년째입니다. 세월호는 유가족에게,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도 큰 사건이요 아픔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가족분들 중에는 하나님 어디 계시냐 하면서 신앙을 놓아버린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시민들이 세월호 가족들 곁에 있어주었고, 힘을 합하고 공감하며 여러 가지 활동들을 통해 세월호의 아픔을 극복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세월호를 침몰시킨 어떠한 권세나 시스템보다 더 크신 분십니다.

     그럼에도 세상은 공허하고, 질서가 없이 혼란스러워 보입니다. 왜그럴까요? 빛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혼돈과 공허와 어두움이 깊은 곳에 빛을 밝히면, 그 동안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것들이 모두 제자리에 충만하게 질서있게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이 공허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 무질서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 어두운 것이 아니라, 빛이 없기 때문입니다 빛이 비추이면 어두움이 어두움이 아니고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속한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성도와 교회가 빛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공허하지도, 무질서하지도, 어둡지도 않습니다. 밝히는 만큼 질서이고, 조화로운 충만입니다. 그런면에서 오늘 말씀 고후4:6은 참 귀한 말씀입니다. 같이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어둠 속에 빛이 비쳐라" 하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

                        속을 비추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다시 풀어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빛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다고 합니다. 어떻게 줄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 4:4을 보면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선포하는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한다고 합니다. 그럼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게 하는, 이 세상의 신과 반대되는 신은 누구일까요?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6절에서 우리 마음을 비추셨다고 합니다. 성도들의 마음, 믿음의 사람들의 마음, 부르심 받ㄷ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누가 비출까요? 고전 2:10,11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이런 일들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

                      니다. 성령은 모든 것을 살피시니, 곧 하나님의 깊은 경륜까지도 살피십니다. 사람 속에

                      있는 그 사람의 영이 아니고서야, 누가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이 아니 고서는, 아무도 하나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 8:27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생각이 어떠한

                     지를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를 대신하여 간

                     구하시기 때문입니다.”라고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비추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반전입니다. 어두운줄 알았는데, 무질서한 줄 알았는데, 공허한 줄 알았는데, 창조의 빛이 한 번 비추이니 공허가 아니라 충만이요, 무질서가 아니라 조화요, 어두움이 아니라 밝음입니다. 왜 공허하고, 무질서하며, 어둡다고 보았을까요? 오늘 말씀 고후4:4 말씀을 보면 우리가 그렇게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은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서 그렇게 어두움과 공허와 혼돈 만 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신이 누구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고 합니까? 믿지 않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다시말하면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빛으로 나아갑니다. 이것은 믿음이 없으면 보지 못한다는 속 좁은 종교적인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 모두에게 하나님의 빛, 이 세상을 처음 창조하실 때의 빛으로 우리 모두를 밝히시는데, 누가 그 빛을 따라 나아가는가 하면, 그 은혜를 받는자들이 밝음과 기쁨, 사랑과 평화, 조화와 연대와 나눔을 봅니다. 은혜를 은혜로 받는 것이 믿음 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신이, 오늘 이 시대로 보면 물질의 맘몬, 자본의 진격이, 자본이 쓰나미처럼 강타하는, 마치 죽지않는 좀비처럼 영원히 우리를 지배할 것 같은 폭력과 살인을 일삼는 이 세상의 신이, 세상의 영이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받지 못하게 합니다.

     교우여러분! 우리가 가진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거저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은혜입은 내용이 무엇인가요? 3절 말씀을 보니 가려있다고 합니다. 무엇이 가려있나요? 세상의 신이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세상의 풍조, 시대흐름에 붙들린 사람들은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빛으로 마음이 밝아진 사람들이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영광은 무엇인가요? 교우여러분!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을 우리가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8절 말씀 처럼 움츠러들지 않고, 낙심하지 않으며, 버림받지 않고,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고전 15장에 보면 부활의 영광에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하늘의 영광이 다르고, 땅의 영광이 다르고, 해와 달과 별, 온갖 피조물들의 영광이 각기 다 다르다고 피조물의 영광도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늘의 영광에 까지 견인하려는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한 질서인데, 결국 피조물의 영광이란 추상적이어서 그 뜻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은데, 사실은 한 마디로 자기 정체성, 자기 존귀함입니다.  세상의 혼돈과 무질서, 어두움, 공허함 때문에 우리의 영광이 가려져 있지만, 이 영광이라는 표현은 사실은 우리의 정체성이며, 온 우주와 역사 속에 하나님 처럼 역시 하나 밖에 없는 나의 자존심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광을 인간들이 다 잃어버렸습니다. 생명의 아름다운 것을 맛 보며, 나누며 살아야 하는데, 오염되고, 썩고, 영적으로는 말할 나위도 없고, 윤리적으로도 더 퇴보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과학문명은 발달하여 조금 편리하고, 깨끗해 졌는지는 모르지만 인류는 진보하지 못하고 물질에 매여, 자본에 매여 소위 생태대에 이르러 멸망으로 갈 것인가?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인가 라는 기로에 서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을 우리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까지 견인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느 악함과 어두움과 공허함과 무질서도 하나님의 선함, 그 영광 앞에 무력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 영광을 보았고, 그래서 하나님의 선하심의 자리에 까지 우리는 이르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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