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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과 회복의 흐름(창조절열세번째주일, 2017년11월26일)

하늘기차 | 2017.11.26 14:13 | 조회 1168


                  개혁과 회복의 흐름

 

20171126(창조절열세번째주일)                                                                       12:1-2

   종교개혁이 일어난 루터의 시대는 경제적으로는 농업경제에서 산업경제로 바뀌고, 신흥 상인들을 필두로 중산층이 등장하고, 지리적으로는 하천 문명에서, 바다로, 그리고 대양으로 나아가 신대륙으로 뻗어가고 있었고, 또 인문과학의 부흥으로 인간중심의 개념에 눈을 뜨기 시작하고, 인쇄술이 발달하여 모든 사람이 원하는 문서를 볼 수 있게 되었고, 정치적으로는 봉건제도에서 왕권국가로 넘어가면서 중앙집권적인 국민의 국가가 세워지고, 교회는 교황이 로마에서 프랑스 아비뇽(1309년부터 1377년까지)으로 쫓겨가는 수모를 당하고, 두 교황이 세워지면서 권위가 추락하고, 십자군전쟁으로 교회가 그 신뢰를 잃어버리고, 도덕적으로 여러 가지 부끄럽고, 추한 일들이 곳곳에서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지는 정황 속에서 독일 마인츠 지방의 대주교직을 탐내는 알버트와 성 베드로 성당 건축 자금을 필요로 하는 교황 레오가 결탁하여 면죄부를 판매 독점하는 지경에 이르자, 루터는 15171030비텐베르크 성당에 카톨릭에대한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내 걸면서 직접적인 불씨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은 교회가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던 카톨릭의 권위로 부터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지만사회, 정치, 경제, 문화, 지리, 종교, 인문학 등 전 분야에서 일어난 변화의 결과입니다. 또한 종교개혁은 단지 루터, 칼빈 등에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100여년 전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체코의 얀 후스(1372~1415)는 루터의 종교개혁 100여년 전 1372년에 보헤미아의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29세에 프라하의 카를 대학총장이 되어 당시 프라하를 중부 유럽의 학문과 문학의 중심도시로 만들어 갑니다. 그러나 후스로하여금 개혁에 눈을 뜨게한 것은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존 위클리프(13301384)의 글을 통해서였습니다. 위클리프는 교황에 대해 교회의 유일한 머리는 인간인 교황이 아니라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교황은 적그리스도다라고 주장하였고, 라틴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한 개혁가였습니다. 후스는 교황권은 성경에서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주장하며 성직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하여 나중에 교황으로부터 설교금지령을 받았지만, 이를 거역하고 거듭 대중들 앞에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합니다. 그러는 중에 십자군 전쟁이 한창일 때, 교황이 전쟁에 참여하는 사람에게 면죄부를 준다는 것에 강력히 비판을 합니다. 교황은 어떤 명분으로도 물리적 힘을 사용할 권한이 없으며, 또 돈을 지불한다고 죄가 용서받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회개하여야 죄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하여 카톨릭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1414년에 콘스탄츠에서 카톨릭종교회의가 열리자, 후스는 이 종교회의에 참석하는데, 즉시 체포되었고, 투옥된 상태에서 그의 모든 주장을 철회하라고 강요 당했지만 콘스탄츠 종교회의가 성경 말씀에 근거해서 그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지적해주지 않는 한 생각을 바꿀 수 없다고 맞섭니다. 독일 황제가 중재에 나섰지만, 결국 14157월 당시 로마교회는 후스를 이단자로 정죄하고 화형에 처합니다.

     지금 우리가 읽고있는 헤른 후트 기도서가 바로 얀 후스를 따르는 모라비아 교도들을 당시 독일 작센의 친첸도르프가 자신의 사유지에 정착하게 하면서 17277월에 만들어지기 시작한 개신교 묵상집입니다. 친첸도르프는 원래는 법학을 공부하였으나 후스의 후손들이 그 당시 정착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남민 문제에 몰입을 하였으며, 나중에 루터교 목사가 되지만, 기존 교회와 사회의 기득권에서 벗어나 후스의 후손들과 함께하면서, 작센 정부의 명령으로 자기 영지에서 추방을 당하여 보헤미안 형제단의 감독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종교 개혁은 여러 지역, 여러 사람들에의해 촉발되고, 이어지며, 사회변화의 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독일의 뮌쳐가 중심이된 농민운동입니다. 루터의 개혁이 불이 붙어 확산되고 있을 즈음에 남부 독일에서 지역 농민들이 뭉쳐서 귀족 영주 지주 계급에 대항하는 운동이 일어 났습니다. 결정적인 동기는 당시 독일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망자세를 내야 했고 이 세금은 그러잖아도 사정이 어려운 과부나 고아들을 더욱 빈곤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거부운동이 일어났고, 또한 산에서 나무를 벨 수 있는 벌목권, 사냥할 수 있는 수렵권, 고기를 잡을 수 있는 어획권을 요구했고 농노제도 철폐 등을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농민들의 요구 사항 중 중요한 내용의 하나가 교회개혁에 관한 것이었는데, 교회에 각기 자체적으로 성직자를 선임하고 해임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요구는 루터가 주장해온 교회개혁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루터가 만인제사장설을 주장할 때는 언제나 농민들을 예로 들었습니다. 그는 성과 속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며,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교황이나 밭을 가는 농부나 모두 같다고 설파했습니다. 루터의 말에 농민들은 자기들도 주장할 권리가 있다는 의식이 싹트기 시작했으며, 루터가 이끄는 교회개혁을 통해 가톨릭 교회가 개혁되는 모습을 목도하면서 사회제도도 변혁될 수 있다는 의식에 눈뜨게 되었습니다. 뮌쳐임박한 종말론, 신비주의에 접하여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사는 하나님의 나라가 속히 임하게 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악한 세력과 무기를 들고 싸워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당시 역사기록을 보면 1년 남짓했던 농민봉기 기간에 중부 독일에서만 300여개의 성과 120개가 넘는 수도원들이 약탈당했다고 합니다. 루터는 폭력적이 되어버린 농민들을 미친 개라고, 또는 악마들이라고 하며 막 말을 쏟아내었습니다. 만일 루터가 농민봉기를 지지하고 선두에서 지휘했더라면 농민운동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았겠나 추측해 봅니다. 그러나 루터는 끝내 이를 반대했고 농민봉기는 처절한 실패로 막을 내립니다. 그 과정에서 독일 농민들은 루터로부터 등을 돌렸고 루터의 교회개혁 운동은 독일 민중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루터가 독일 농민과 민중의 지지는 잃었지만 반면 독일 제후와 귀족들의 확고한 지지를 얻게 되었고, 든든한 후원세력이 되었습니다.

     루터, 칼빈의 종교개혁의 흐름에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또 다른 개혁을 외친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아나뱁티즘이라고도 불리우는 재세례파인데, 동시다발적으로 전 유럽에서 일어난 재세례파 운동에 경종을 울린 두 사건이 있습니다. 하나는 앞 서 말한 토마스 뮨쳐 중심으로 하는 농민운동이며 두 번째로는 신비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천년왕국을 세우려는 운동이었습니다. 네델란드인 쟌 마티스는 스스로를 예언자 에녹이라 자처하고, 뮌스터를 새예루살렘이라 칭하며, 사유 재산을 부정하며, 무기를 들고 저항하여 천년왕국을 세우려다가 결국 루터파와 카톨릭 연합군에의해 함락되고 맙니다. 천년왕국운동의 잿더미 위에 다시 평화적으로 재새례운동을 편 사람이 네델란드의 메노 시몬스로서 이를 따르는 사람들을 메노나이트라고 지칭하였습니다. 재세례파운동은 유럽 곳곳에서 번져나갔습니다.

   제세례파 운동의 정신이 무엇인가요? 미온적인 루터파의 개혁운동에서 벗어나 오직 성서를 바탕으로 내적으로 진실한 신앙고백이 있을 때에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을 주장하며 유아세례를 거부하고, 정부와의 철저한 분리를 주장하는데, 쮜리히 시당국과 갈등이 생기고, 추방, 처형 당하자 근처의 독일과 오스트리아로 흩어져 공동체를 세우고, 또 이단으로 정죄를 당하여 핍박이 오면 저항하지 않고 달아나고 하는 악순환 속에 재세례파 사람들은 가는 곳곳 마다 평화와 자유의 작은 공동체를 세워나가며, 지금의 아미쉬, 부루더호프, 메노나이트들, 퀘이커, 떼제, 우리나라로 치면 개척자들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재세례파가 기록된 문자에 너무 빠지지 않았나, 유아세례에대하여 좀 더 유연성을 가졌다면 그 많은 희생은 면할 수 있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도 하지만, 그 당시 유아세례를 통해 카톡릭이 교세를 유지하려 했던 것을 용납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루터 칼빈이 개혁(Reformation)을 외친다면, 재세례파는 회복(Restoration), 성경의 말씀 그대로, 초대 교회의 공동체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정치, 문화 사회, 경제로부터 절연하는 아미쉬 같은 공동체도 세워졌는데, 저로서는 교회가 물론 세상의 정치에 참여할 이유도 없지만, 교회가 구약의 예언자 정신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결국 성경의 문자에 붙들리는 근본주의와, 자기 만족의 종교공동체로 전락할 수 밖에 없습니다.

     루터, 칼빈의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말씀(Sola Scriptura)개혁운동로마 카톨릭에대한 교리적인 논쟁에 불이 붙은 운동이어서 우리들의 삶 속에서 예수를 따르며,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데 까지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한계가 있지 않나 싶은데, 재세례파의 운동은 물론 세상과 철저히 단절하는 공동체 운동이지만, 오늘에 이르러서 퀘이커나, 때제, 그리고 우리나라의 개척자들 같은 공동체가 평화와 자율의 공동체를 꾸려나가면서도, 이 세상을 예언자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부당하며, 불법적인 일로 망가져가는 세상의 고통스러운 현장에 찿아가 그들과 함께 현장에서 평화를 쫓아 공동체를 세워 나가는 운동은 개혁과 회복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인 것을 확인해 줍니다.

     재세례파운동이 귀한 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과 삶, 초대교회 신앙을 회복하려는 정신도 중요하지만, 결국 그러한 정신도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개혁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그래서 저는 더 중요한 것이 그렇게 기존의 카톨릭과 루터파 교회의 억압에 내 몰려 폭력적인 대응을 거부하고 이 곳 저 곳에서 공동체를 세워나가며 삶 속에서 국가와 상관없이 평화와 그리고 카톨릭의 교권이 아니라 어떤 조직이나, 틀이나, 권위없이 자유로운 신앙을 세워나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저항과 핍박이 교차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생명을 살아내야하는 절박감 속에 드러난 하나님나라의 생명 공동체의 삶이었습니다. 이론이 아니라, 철학이나 교리나, 사상이나 노력이 아니라, 그 시대의 거대한 개혁의 흐름 속에서 하나님의 생명을 살아낸 소중한 보물같은 신앙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소중한 신앙을 변함없이 유지할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의 삶의 자리, 현장이라 생각합니다. 삶의 자리는 늘 우리를 긴장하게 합니다. 소위 현장은 단순히 가난하며, 아픔이며, 소외와 희생의 자리가 아닙니다. 그 자리는 역사와 피조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세워나가는 자리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모습이 그곳에 있어 교회가 그 자리에 조용히 찿아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예수님은 눅9:2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며 병든 사람을 고쳐 주게 하시려고 그들을 내보내시며라고 12제자들을 보내며, 10:1에서도 70인 제자들을 마을현장으로 보내어, 하나님 나라 회복의 기쁨을 맛보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여기가 좋습니다가 아니라 온갖 삶의 현실이 자리한 세상으로 나아가야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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