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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2005년9월18일,성령강림절후열여덟번째주일) 민14:1-10

하늘기차 | 2005.09.18 10:45 | 조회 1993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2005년9월18일(성령강림절후열여덟번째주일) 민14:1-10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광야 40년의 모진 세월을 지나,드디어 가나안으로 들어갈 즈음에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정탐합니다.그래서 12지파에서 한 사람씩을 택하여 가나안 땅으로 보냈는데,민13:27,28에 보면“그 곳은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곳입니다...그렇지만 그 땅에 살고 있는 백성은 강하고,성읍들은 견고한 요새처럼 되어 있고,매우 큽니다.또한 거기에서 우리는 아낙 자손도 보았습니다.”라고 합니다.

갈렙은 “올라갑시다...반드시 그 땅은 점령할 수 있습니다.”고 합니다.그러나 다른 정탐꾼들은“도저희 갈 수 없습니다.그 백성은 우리보다 더 강”하다고 합니다.그리고 33절에 보면“우리는 스스로가 보기에도 메뚜기 같았지만,그들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바로 그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백성들의 반응입니다.아우성,통곡,원망으로 가득찼습니다.여기서 우리를 죽게 하려는가?차라리 이집트로 돌아가겠다는 것입니다.그 때에 갈렙이 옷을 찢으며“우리가 두루 다녀본 땅은 매우 좋은 땅이며,주께서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그리고“주를 거역하지만 말라”고 합니다.

가나안 땅 입구에서 한 걸음도 내 딛지 못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여호수아와 갈렙은 올라가자!반드시 점령할 수 있다고 합니다.그러나 다른 10지파의 정탐꾼들은 도저희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왜 그럴까요?보는 관점이 틀립니다.물 병에 물이 반 정도 들어있는 것을 보고 반 밖에 안 남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반 이나 남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민수기서에서 보면 여호수아와 갈렙은 무조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우선 여호수아와 갈렙은 상황 판단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그들이 강하며,성읍들도 아주 견고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또 거인족들도 살 고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그럼에도 두 사람은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그런데 다른 10 사람은 그 곳에는 거인족들이 살고 있고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다고 하면서,그 사람들 눈에도 우리가 메뚜기로 보였을 것이라고 말합니다.그러니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여기서 우리는 다른 10 사람이 자신들을 메뚜기로 비하시키고 있음을 봅니다.

물론 가나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크고,어떤면에서 이스라엘 보다 강할 수 있습니다.실제로 그렇습니다.그러나 이스라엘이 메뚜기는 아닙니다.그런데 이스라엘은 지금 자신을스스로 메뚜기로 비하하고 있습니다.

아까 보는 관 점이 틀리다고 했는데,다시말해 이것은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언젠가 PSY라는 가수의 노랫 말이 아주 저속하고,자기비하적이며,그리고 모두를 3류인생이라 하면서,3류인생끼리 놀며 즐기자고 퇴폐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최근에는 실황공연 중에 담배를 피우며 노래했다고 해서 또 한 번 시끄럽게 한 적이 있습니다.

부정,부패,퇴락...시대적 상황,흐름,풍조가 그렇게 3류로 흘러갈 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사람 한 사람,한 사람이 결코 다 삼류적이고 퇴폐적이지 않습니다.노래 가사에“너도 3류,나도 3류,우리 모두 3류 인생인데,서로 가식없이 우리 속 마음 까발리고 즐겁게 놀아보자”고 합니다.그러나 우리 인격,우리의 땀흘리는 삶이 어찌 3류일 수 있습니까.세상은 우리 아이를 공부로 평가하지만 우리 아이가 공부를 못한다고 해서 어찌 3류인가요?경제적인 능력이 없어서 단 칸 사글세를 산다고 해서 우리가 어찌 3류인가요?청소부,건축 잡부...자기 소신을 가지고 열심히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을 누가 3류라 할 수 있나요?세상의 흐름,그렇게 평가하는 시대의 흐름,그런 평가를 내리고,그렇게 즐기자는 사람이 3류입니다.

가나안 땅 초입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는 엉거주춤 멈추어 서 있는 이스라엘이 스스로를 메뚜기라고 평가 절하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자신들을 메뚜기라고 하지 않습니다.그러면 여호수아와 갈렙은 자신들을 무엇이라고 하는가요?오늘 읽은 본문 14장 8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그 땅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여기서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공동체적 나눔의 삶을 역동적이며,축제적으로 살아내기 위해서는 늘 정체성에대한 정검을 해 보아야 합니다.예수님도 공생에의 중요한 시기에 제자들에게 정체성에대한 질문을 합니다.닥아올 십자가의 시험이 미쳐 준비되지 않은 제자들에게 너무 힘겨울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사람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그러면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하고 주님이 묻습니다.

시대의 풍조가 자꾸 사람들을 자기 본래의 순전한 모습으로 자기를 보아야 하는데 자기 비하의 방향으로,단지 물질 만족,개인 욕구 성취...그런 물질적 풍요,학벌...권력,인류기업 등을 기준으로 삼게하니,그리고 위로부터 내리 부정,부폐로 일관하니 너도 잘 한 것 없고,나도 잘 한 것 없으니 좋은게,좋은 것이다라고 적당히,대충 살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왕같은 제사장,거룩한 백성,택한 족속”이라고 합니다.그런데 성도들이 자꾸 이것을 잃어버립니다.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안델센 동화 중에“미운 오리 새끼”라는 동화가 있습니다.알에서 깨어났는데,다른 오리들보다 덩치도 크고,우는 소리도 커서 미움받습니다.왕따를 당합니다.늘 멸시당하고 천대를 받습니다.그리고 오리들에게서 쫓겨납니다.그래서 이리저리 헤메다가 호수에서 아름답게 수영하는 백조를 보고 넋을 잃고 처다봅니다.그런데 자기가 바로 그 아름다운 백조라는 것을 알게됩니다.이 동화가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큽니다.이 미운오리새끼는 알고보니 오리가 아니라 백조라는 것입니다.자신이 백조라는 것을 깨달을 때 까지의 삶은 그것은 자기의 삶이 아닌것입니다.오리의 삶은 자기의 삶이 아닌 것입니다.백조가 백조의 삶을 살아야지,오리의 삶을 산다면 그것은 사는 것이 아닙니다.

교우여러분!우리의 정체는 무엇입니까?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자녀,하나님 나라의 백성,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맡은자,왕같은 제사장,거룩한 백성,택한 족속 아닙니까?비록 삶이 힘들어지고,스스로 감당키 어려운 상황에 처할 지라도,우리가 누구인가를 깨달아,우리 스스로 우리의 정체를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호수아와 갈렙이 하나님의 약속의 땅 앞에서 그 땅의 상황을 더도,덜도 아니고 정확히 파악하면서-보는 사람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분명히 갔고 있어야,놓여있는 대상도 정확히 봅니다-크고,강하다고 하면서도 올라가자고 할 수 있었던 자기 정체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오늘 말씀뿐 아니라 신7:8,9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교우여러분!하나님께서 지금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스라엘에게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사랑은 보지 못하고,가나안의 상황만을 보니 자신들이 메뚜기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자신을 추락시키고,3류로 끌어 내렸습니다.그러나 신7;8-9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인도하시고,약속을 지키시고,이집트에서 건져내시고,이끌어 내셨다는 것입니다.하나님은 신실하시며,참 하나님이십니다.그래서 주님을 사랑하고,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천 대 까지 베푸신다고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절규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지키시고,젖과 꿀이 흐르느 땅을 우리에게 줄 것이라는 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하나님에게 겸손하며,온유해야 합니다.말씀을 따르는 겸손과 온유가 있어야 합니다.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거칠었습니다.결국 하나님 사랑,하나님의 긍휼을 받지 못합니다.광야의 거칠음,광야의 세파에 무너지고 맙니다.

모세는 나이 40의 한창 나이에 자기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광야로 네 몰렸습니다.그런데 모세는 자신을 무너뜨리고 자신을 망칠 수도 있었지만 스스로 40년 동안 자기를 지켜 결국 모리아산 중턱 타지 않는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나뵙게 됩니다.제가 모세에 대하여 스스로 지켰다고 했습니다.이 “스스로 지켰다”는 것은 중요합니다.왜냐하면 민13장 33절에 볼 것 같으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의 거인족을 보는 순간 스스로 메뚜기 같다고 했습니다.왜 스스로 메뚜기 같다고 했을까요?왜 자기를 비하시킬 까요?

우리 안에 스스로 존귀한 것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상황이 좋아지면 스스로 좋았다가도,상황이 나빠지면 금세 난리를 치는 것이 우리입니다.그러면 왜 모세에 대하여는 스스로 자기를 지켰다고 했을까요?바로 그것입니다.우리의 존귀함은 하나님에게로부터 오는 것입니다.비록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을 다 잃어버렸지만 자신을 지탱하는 하나님만은 잃지 않은 것입니다.그 기다림의 싸움에서 모세는 승리한 것입니다.40년의 광야생활 속에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나님에대한 열저을 가지고,겸손과 온유함으로 하나님을 기다린 것입니다.결국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그 깊고 넓은 섭리와 경륜을 맛 본 것입니다.“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기독인의 정체성은“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에 있습니다.그 기다림 속에서 하나님은 모세의 내면속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신 것입니다.아무리 정황이 어렵고,살 소망이 끊어지고,절망의 흐름이 노도와 같이흘러 넘칠 지라도,그래서 스스로 삶을 포기할지경 까지 이를 지라도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3류라 하지 않고,자기를 지킬 수 잇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신앙에서부터입니다.

언젠가 한 아줌마가 T.V에 나오는 것을보았는데,이 아줌마가 별난데가 있습니다.왜냐하면 인기가수 조성모의 Pen입니다.20세의 딸까지 있는 나이 49세의 시장 한 구퉁이에서 멸치,해산물,건어물을 파는 아주머니입니다.그런데 그렇게 조성모를 사모하고,그리워하고,장사를 하면서 head phone을 꽂고 조성모의 음악을 계속 들으면서 장사를 한다는 것입니다.집에 가니까 스크랩 사진,잡지 등,조성모에대한 모든 것을 수집 벽에붙여놓고,특히 조성모의 대형 칼라사진도 벽에 걸어 놓았다고 합니다.이것이 입소문이 나가지고,인터넷에서,방송국의 프로듀서에게 까지 알려져서,이 아주머니와 조성모가 만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소감이 어떠냐고 물으니 가슴이 콩당 콩당 뛴다고 합니다.그런데 그 T.V진행자가 하는 이야기가 시장에서 집에서의 모습하고,조성모를 만나고 나서의 모습이 너무 다르다는 것입니다.그 얼굴의 미소하며,환희,그리고 기쁨이 역력하다는 것입니다.조성모 아주머니가 왜 얼굴이 밝아지고,기쁠까요?조성모가 시장 입구에 번듯한 가계라도 하나 차려주었나요?어떤 물질적인 혜택이라도 주었나요?단지 조성모라는 인기 가수가 이 아주머니를 알아주었다는 그 한가지 뿐입니다.

이렇게 단지 인기인의 사랑을 확인 한 것 만으로도 이렇게 자기의 삶이 즐거운데,하물며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는 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것입니다.우리가 그 동안 자신의 존귀함을 잃어버리고,스스로 메뚜기 같이 살지는 않았는지?원치않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며 바쁘게 살지는 않았는지?자기의 정체성을 꼭꼭 묻어두고 자기 고집대로 살지는 않았는지?이제는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이 것 하나로 여러분의 삶의 정체를 회복하고,그로부터 오는 복된 삶을 누리며,나누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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