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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약속 (2006년 3월12일,사순절두번째주일)

하늘기차 | 2006.03.12 16:34 | 조회 1881
믿음의 약속

2006년 3월12일(사순절두번째주일) 창17:1-8

아브라함이 자손 대대로 살아왔던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은 하나님과의 약속 때문이었습니다.하나님께서는 나이 75세의 아브라함을 불러,이제 그만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내가 일러주는 땅으로 가라고 하였습니다.그리하면 1) 큰 민족이 되게하고
2) 네 이름을 크게 떨치게 할 것이며
3)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그러자 아브라함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갈대아 우르를 떠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삶의 터전이요 생명의 근본인 땅을 떠나라고 했을까요?창3:17,18에보면

‘내가 너에게 먹지 말라고 한 그 나무의 열매를 먹었으니,
이제,땅이 너 때문에 저주를 받을 것이다.너는,죽는 날까지
수고를 하여야만,땅에서 나는 것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땅은 너에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다.’고 합니다.

소설,영화,노래 중에 땅을 주제로 하는 것들이 많이 있는데 특히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는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옵니다.그런데 토지는 더 이상 우리에게 어머니의 젖과 같은 생명줄이 아닙니다.오히려 땅은 인류 역사상 피비린내 나는 싸움의 원인 제공자였습니다.지금도 우리는 일본과 독도 때문에 말도 안되는 힘겨루기를 하고 있습니다.땅은 이미 인간의 범죄 이후 창세기 2;8의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땅은 사고 팔며,뺏고 뺏기며,잃기도 하고 얻기도 하는 인생의 애환을 제공합니다.갈등과 분쟁의 여지를 줍니다.교회도 올 해에 편찬할 고기교회사 40년 역사에도 나오겠지만 벌써 근 20년 이 되었는데,이 교회 땅 때문에 얼마나 땅 땅 하면서 이 땅을 지키기 위해 싸웠습니까?부동산 사무실 창에 보면 복주머니가 그려있고 그 복주머니에 복이라고 쓰여있는 것이 아니라 땅이라고 쓰여있는 것을 보았는데,이것은 땅이 복이라는 것이지요 땅이 있으면 땅땅거리며 산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땅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삶의 양상이 전혀 틀립니다.이것은 나쁘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 태생적으로 본래 땅에서 왔기 때문인데,에덴 동산의 범죄 이후 땅은 욕망의 도구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책 소개를 하는 글을 일은 적이있는데,어느분이 아이를 낳자 몇 일 만에 아이를 잃게되고,그리고 얼마지나 또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를 한창 귀여운 돌 지난 때에 잃게 됩니다.그래서 입양을 하는데,그 입양 아이가 심한 장애가 있는 것을 알고 다시 입양원에 돌려보내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 증에 걸려 죽을 수 밖에 없는 지경에 까지 갔는데,그 사람을 생명으로 돌이킨 것은 땅이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흙이었습니다.이 사람은 모든 것을 잃고,포기하고 있다가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짓기 시작하는데 그 흙으로부터 오는 모든 것에서 생명의 기쁨,감사 땀 흘림등 흙에서부터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만끽하며 삶을 회복하였다고 합니다.이 경우는 땅에서부터가 아니라 흙에서부터 오는 생명의 잔치를 맛보며 사는 삶을 누린 것이지요.

그런데 오늘 말씀도 역시 삶의 애환을 땅에 두고 살아가던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입니다.하나님께서 “아브라함아 네가 살고 있는 땅을 떠나라”하셨습니다.더 이상 땅에 연연하는 삶을 살지 말라는 뜻입니다.이제 새로운 삶의 터전,삶의 방식을 보이시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합니다.땅을 버리는 일과 마찬가지로 혈육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은 생존을 위한 근본적인 삶의 관계를 잃는 것이었습니다.고대근동지역의 풍속에 따르면‘혈친보복’의 관습이 있었는데,예를들어 내가 어떤 사람에게 피해를 입으면 나의 가족,친척들이 나를 위해 보복을 해도 그것이 죄가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행이되는 이러한 혈친보복의 관습에따라 사회의 안정과 질서가 이루어지는 사회였습니다.이러한 사회 속에서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난다는 것은 삶의 안녕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향을 버리고 혈육과의 유대관계를 깨뜨리며 가문의 전통을 포기하는 일은 마치 자기인생을 포기하는 일과 다른 것이 없습니다.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하기 어려운 일을 요구했을까요?나이도 이제 75이 되었으니 인생을 그만 포기하라는 뜻일까요?그렇지 않습니다.이것은 인생의 새로운 지평,새로운 차원의 삶을 선언하는 것입니다.그것은 바로 언약의 삶의 시작입니다.믿음의 삶이요,축복의 삶의 선언입니다.
큰 민족을 이루고,이름을 크게 떨치며,복의 근원이 될 것이며,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라는 것은 약속에대한 믿음을 촉구하며,또한 복을 받는자가 되도록 힘써야할 것을 촉구하며,만민,만국과 더불어복을 나눈다는 것입니다.이것은 아브라함이 이 때 것 갈대아 우르에서 살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인 것입니다.

갈대아 우르에서의 삶이란 땅에 국한되어 있는 삶입니다.모든 중심의 삶이 땅에 있습니다.땅 때문에 울고,웃고,살고,죽고합니다.토지라는 문학이 바로 그것아니겠습니까?우리 마을에도 땅을 사고 팔며,속고,속이며,오해하고,땅을 상속하고,받고 하는 땅으로 해서 생기는 많은 이야기를 듣습니다.보면 자기 중심적이며,이기적입니다.드라마 토지에서도 여주인공이 땅을 지키기 위해 일본에 부역하는 장면이 얼핏 나오는 것을 본 기억이 납니다.자고로 농민들 중심의 운동이 좀처럼 결실을 맺기가 어려운 것은 땅을 중심으로해서 살기 때문이라합니다.내가 내 땅 가지고 먹고 사는데 다른 사람 죽든 말든 내 알 바가 아닌 것입니다.모든 가치기준에 우선하는 것이 땅입니다.그리고서 함께 농사짓는 친척,혈육,이웃 사촌과 더불어 서로 함께 상부상조하며 살아갑니다.희로애락이 그 안에 다 있습니다.그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약속의 삶은 믿음의 생활입니다,하나님과의 약속의 삶입니다.지금 내가 위치한 땅이 아니라,앞으로 우리에게 허락할 땅을 바라보는 열려있는 삶인 것입니다.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아브라함이 나이 99세가 되어 믿음이 흔들릴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찿아 오시어 아들을 주실 것을 다시 한 번 약속하는 장면입니다.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나에게 순종하며,흠 없이 살아라.나와 너 사이에 내가 몸소 언약을 세워서,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흠 없이 살아라’는 말은 완전하라는 뜻인데,복된 삶을 위해 노력하라는 것입니다.이 말씀을 우리는 아브라함의 삶에 비추어 받아들여야하겠습니다.우리가 어찌 완전할 수 있겠습니까 만은 이 완전함이 하나님의 뜻에 합한 것일진데,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할 때에도 이것이 윤리적인 의를 이야기 하기 보다는 윤리를 뛰어넘는 믿음의 의인데,여기 이 흠없이 살라하는 것도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흠이 없는 것이 아니라,조금씩 하나님의 뜻의 사람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을 보노라면 그것이 온전히 성령의 감동에 따르는 삶이라는 것입니다.내가 무엇을 하려고 자기 의지를 가지고 하려는 것이 아니라,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삶,즉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여,나의 삶을 주께 내어놓는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성령의 감동에 내 삶을 맡기는 삶인 것입니다.그 삶이 나를 흠 없는,다시 말해 윤리를 뛰어 넘는 하나님 기뻐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복된 삶이란 더 이상 땅에 연연하지 말라는 삶인 것입니다.땅땅거리면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돈돈하며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그러니까 ‘오,주님’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어떻게 가족 친지들,그리고 이웃,직장 상사와 동려와의 관계를 잘 유지할까 하고 연연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친목회,종친회,동창회,고향모임 등등 이런 모임들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세우고,인맥을 돈독히 하는 것에 연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요즘 사회생활 하면서 이런 인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붙들리지 말라는 것이지요.

복된 삶이란 약속의 삶인데 이것은 우선 땅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는 삶입니다.땅 중심일 때는 땅이 있으면 어께에 힘이 들어가는 그런 천박함이 아니라,땅이 없으면 어깨에 힘이 빠지는 그런 열등함이 아니라 있던 없던 상관하지 않는 하나님 중심의 삶인 것입니다.둘째 땅의 소산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그리고 세번째로 그러한 복된 삶은 당연히 물 흐르듯이 나누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복의 근원자로서 모든 이들의 복의 샘원이되는 삶입니다.

아브라함은 땅,가족 친지를 버리고 하나님을 택하였습니다.그동안 자기의 삶의 바탕이요 즐거움이었던 땅과 그리고 그 땅과 관련한 가족,친지를 떠났습니다.수영을 하려면 물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물 밖에서 아무리 수영 이론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있더라도 물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배를 타고 강 건너 강가에 다다를려면 나루터에 배를 묶어놓은 줄을 풀고서 노를 져어야 목적지에 다다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아무리 노를 열심히 저어도 배의 밧줄을 나루터에서 풀지 않으면 힘만들고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좇아 나아가려면 땅에 묶인 나의 발을,이웃과 친지들에 묶여있는 이해관계를 끊어야 하는 것입니다.좋은 관계를 끊으라는 것이 아니라,자기 중심의 이기적인 관계를 끊으라는 것입니다.이 것 때문에 기독인들이 종종 욕을 먹습니다.새로운 삶으로 도약하려면 이렇게 연연하는 것에서 자유로워져야 합니다.그렇지 않으면 늘 그 자리에서 같은 삶을 반복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즈음 도서관 기금을 마련키위해 연고가 있는 교회에 이야기 해서 꽃을 판매하는데 이전 부교역자로 있던 교회의 지금은 장로님이 되신 김장로님과 부인이신 최 권사님을 통해 난을 잘 팔았습니다.교회를 통한 인연이어서 그런지 정말 따뜻하고 반갑게 맞아주시는데,주문 받은 꽃을 일일이 가정 가정 배달 까지 해 주었다고 합니다.감사할 따름입니다.그런데 이 장로님이 마지막 늦깍이 장로가 되었는데,우리가 재 작년에 새벽마다 기도하던 바로 그 장로님이십니다.오늘 보니까 건강이 좋더라구요,하나님께서 이 장로님을 살리셨지요.참 많은 기도를 드렸습니다.그런데 이 장로님이 술 통입니다.안수집사일 때에 술이 거나해서 교회에 한 번 둘러보고 가는데,교회에 청년들이라도 있으면 꼭 데리고 가서 한 잔 하고 하던 분인데 그러니 교회에 덕이 되지 못하지요,누가 개인이 술먹는 것 뭐라하겠습니까,적당하면 좋구요,적당하지 못하니까 문제지요,그래도 이 장로님은 술 먹고 뒤집는 일은 없으니까요.그래도 안수집사인데 늘 그렇게 술을 좋아했습니다.그런데 그만 치료하기 힘든 병이 덜커덕 온 것입니다.병 고치면서 그 술먹는 것 완전히 고쳤다는 것입니다.이 번에 함께 식사하면서 제가 슬쩍 이야기를 건냈지요,‘이제는 그저 조금씩 한 잔 하시지요’했더니 정색을 하면서 술 완전히 끊었다는 것입니다.모르겠습니다.장로가 되서도 여전히 술에 붙들려 있는 모습이 보시기에 않좋았는지 하나님께서는 그 장로님에게 시련을 통해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지금도 여전히 완전한 건강이 좋은 상태는 아닙니다.조기 은퇴를 하셨는데,그 전에 미리 술을 끊었으면 더 좋지 않았겠나 하는 아쉬움이 있는 것입니다.등 떠밀려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기 보다는 능동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 얼마나 좋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그 장로님,권사님 가정은 참 복됩니다.아이들 3도 모두 이제 장가,시집 갈 나이들이 다 되었는데
교회의 신앙 안에 늘 보면 기분 좋은 그런 신앙인입니다.어찌되었던 이렇게 새 삶으로 나아가려면 옛 관행에서 떠나야,자기 좋은 것에서,자기 편한 것에서 자기에게 익숙한 것에서 떠나야 합니다.

창12:4에 보면 아브라함이‘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길을 떠났다’고 합니다.이렇게 떠날 때 새로운 삶,새로운 삶의 방식이 생겨나는 것입니다.아브라함은 그 하나님과의 언약의 삶을 살아간지 25년만에 그 약속의 첫 결실을 맺게 됩니다.그런데 이러한 약속의 삶의 축복이 한 순간에 순탄하게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을 향하여 첫 걸음을 옮기자 마자 시련이 닥쳐옵니다.바로 가나안 땅에 극심한 가뭄이 왔다는 것입니다.가나안 땅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른 것입니다.그러나 아브라함은 이 첫 시험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살기위해 이집트로 내려가 가정이 파탄 될 지경까지 이르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가정을 지켜주십니다.왜냐하면 이집트에서 만일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이집트의 바로에게 빼앗긴다면 하나님의 아브라함을 통한 인류 구원의 계획은 틀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은 스스로 아브라함을 지켜주십니다.

그 외에도 조카 롯과의 갈등,중동 지역의 큰 전쟁,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자식이 없자 아들을 포기하고 종 에벤에셀을 상속자로 삼으려 했던 조급함.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결국 여 종의 몸을 빌어 상속자로 삼고자 해서 태어난 아들 이스마엘,그리고 그로인한 가정파탄,결국 하나님께서 100세에 아들을 허락하는데,그 때는 바로 인간적인 욕심이 다 끊어진 바로 그 때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마지막에는 그 하나님의 축복이요,약속인 이삭을 포기하라는 명령에 까지 나아가게 됩니다.이렇게 시험과 시련은 마치 파도처럼 끊임없이 찿아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40일을 꼬박 금식하며 기도하시고 하나님나라의 활동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정하고 세상으로 나아가려 할 때 바로 시험이 옵니다.그 활동 접고 마귀가 지시하는 방향으로 가야 일이 잘 풀리고 모두에게 잘 대접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예수님은 사탄의 시험을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의 원대한 꿈을 갖고 광야로 나아가지만 광야는 춥고,뜨겁고,배고프며,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전쟁과 질병이 있는 곳입니다.그런데 이러한 정황 때문에 우리가 약속을 놓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이런 주변 상황만을 바라보면 가나안의 비죤은 사라집니다.약속은 보이지 않습니다.이것이 바로 우리 인생인 것입니다.열악한 상황은 우리로하여금 약속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그렇다고 약속을 놓아버린다면 우리는 광야에서 인생을 마감하던지 다시 이집트의 노예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약속의 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바로 끝까지 그 약속을 포기하지 않고 산다는 것입니다.나를 지탱하던 옛 이기적인 자기 중심적인 삶을 떠나도 그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렇게 마음으로 그 말씀을,그 언약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갈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푼 것처럼 만나,메추라기,구름기둥,불기둥,그리고 바위에서 터져 나오는 시원한 샘물 등 하나님의 위로가 있는 것입니다.이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한다는 것인데,만일 약속에대한 신앙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베푸신 위로의 선물 마져도 하찮게 여기며 결국 광야의 이스라엘처럼 원망과 불평과 시비로 광야에서 사라져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그러나 그 약속을 바라며 살아갈 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다른 사람에게 복을 나누어 주는 복의 근원자로 흠없는 자로 서있게 될 것입니다.

교우여러분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스스로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의 위로에 감사하며 지금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나를 복되게 한다는 신앙을 가지고,그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믿음으로 감사와 기쁨의 복된 삶을 사는 교우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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