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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시는 하나님 2(2006년 8월 6일,성령강림절후아홉번째주일)

하늘기차 | 2006.08.06 13:17 | 조회 2250


들으시는 하나님 2

2006년 8월 6일(성령강림절후첫째주일) 창21:8-21

지난 주에 우리의 하나님이 믿음의 조상들의 기도만 들어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소외되고 보잘것 없는, 스스로 별로 내세울 것 없는 사람에게도 찿아오시는 하나님인 것을 보았습니다. 사실 성경은 그러한 주변부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1:27-29에서

“하나님께서는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셨으며,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
들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비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셨으니 곧 잘났다고 하는 것들을 없애시려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택하셨습니다.이리하여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하
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라고 합니다.

마리아, 아모스, 기드온, 사무엘, 다윗, ...예수님의 제자들... 무수히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모습은 세상 사람들의 눈에 비추어 볼 때 지혜있고, 힘 있고, 권력과 가문이 있는 사람 보다는 미천한 사람들입니다.인류 구원을 위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에도, 탄생을 축하한 사람들은 예루살렘의 중심부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주변부의 목자들, 가축들, 그리고 이방사람들인 동방박사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셨는데, 당대 이집트나, 바벨론이나, 아니면 로마와 같은, 그리스와 같은 나라들이 아니라, 이집트의 노예들을 택하여 하나님의 백성이라 하였습니다.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한 모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원히 노예로 붙들리어 종노릇 하다가 죽을 수 밖에 없는 히브리 민족을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구원하였습니다.이것은 죄에 붙들린 우리 인간의 불쌍한 모습, 자유하지 못하게 살아가는 인류를 해방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와 경륜을 보여줍니다.

인류의 역사를 통해 물질 문명은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윤리적으로는 점점 더 퇴락해 갑니다. 철학, 학문, 예술, 문학의 발전, 기계 문명을 통한 생활의 편리함은 우리의 삶을 더 즐겁게, 그리고 더 풍요롭게 합니다만, 마치 목이 마를 때 청량 음료를 마시면, 먹을 그 때 뿐이지 더 목이 마르게 하는 것이 청량 음료이듯이, 오늘 우리를 즐겁고, 그리고 편리하게 해주는 물질과 문명의 풍요가 사실은 우리의 내적 갈증을, 내적 참 자유를 볼모로 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엊 그제, 장로님, 집사님들과 함께 심야 전기 보일러 배관 보온 작업을, 그 뜨거운 햇빛 속에서 했습니다. 우리 이태훈 집사님은 땀을 어찌 그리 많이 흘리시는지, 꼭 물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드라구요, 그런데 잠시 쉴 때 시원한 아이스 케키를 먹는데, 정말 목이 마르고 갈증이 턱에 차니까, 그 포도맛 빙과가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가 않드라구요, 입에서만 맴돌지, 내 몸 전체를 시원하게 해 주는 느낌이 오지 않드라구요, 그런데 큰 방, 냉온수기의 찬 물을 한 컵 드리키니까, 아! 그 시원함은 말로 다 할 수 없드라구요,이 시대를 편리하게 하고, 즐겁게 해 주는 물질과 문명의 풍요도 색소로 맛을 낸 포도맛 아이스 케키처럼 엄밀히 우리의 자유와는 무관한 것 같습니다.

하여간 지난 주에 말씀드렸지만 어찌보면 이 하갈은 보잘것 없는 우리들의 모습의 전형입니다. 하갈은 늘 우리가 기도하며, 성경을 통해서, 설교를 통해서 귀가 닳토록 들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라는 믿음의 조상의 반열에 끼지 못하는 여자이며, 그리고 거기에 또, 종살이 하는 여자였습니다. 한 이스라엘의 이집트 출신의 여 종 이었습니다.

하갈의 모습을 보면 친근감이 듭니다. 그는 자기 삶의 선택권이 없습니다. 이리 하라 하면 이리 하고, 저리 하라 하면 저리 합니다. 또한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를 통해 신분 상승을 꽤하여 일시 성공하는 듯 하지만, 자신의 알량하고도, 얄팍한 인품에 다시 벼랑 끝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그리고는 소망없이 오라는 곳 없는 광야로 내 몰립니다. 그런데 그 곳에 하나님께서 찿아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 체험을 한 하갈에게 세상은 더 이상 공허, 어둠, 혼돈이 아닙니다. 충만, 빛, 질서입니다.세상은 억울함과 적대감, 시비와 분쟁과 질투, 생존경쟁의 처절한 싸움터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살아 숨쉬는 하나님의 손길이 닿아 있는 곳입니다. 창조의 질서가 살아있는, 보기에 좋은 자리입니다.하갈은 하나님 체험 후에 자신이 견딜 수 없어 뛰쳐 나온 아브라함의 집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여전히 여주인 사래와의 갈등 구조는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하갈은 이제 하나님 체험을 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입니다. 더 이상 사래와 분쟁, 시비는 없습니다. 하갈은 아들을 낳았고, 아브라함은 그 아이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지어준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그 때의 아브라함의 나이가 86세입니다. 하갈은 그 이후에 아브라함의 가정 속에서 아브라함의 사랑도 받았을 것이고, 주변의 부러움도 받으면서 문제없이 잘 지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전처럼 자신의 임신, 이스마엘의 출생이 그저 자기의 욕심을 체우는 것 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위기가 닥쳐옵니다. 주인 사라가 아들을 낳은 것입니다. 인생은 이렇게 파도가 밀려오는 것과 같습니다. 행복의 파도가 밀려오기도 하지만 이렇게 모든 것을 뒤 엎을만한 위험의 파도가 높이 쳐 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내 스스로 혼자 힘으로는 감당키 어려운 파도가 몰려 오기도 합니다. 사라가 아들 이삭을 낳자, 이스마엘은 눈의 가시가 됩니다. 그동안 갈등은 있었지만, 나름대로 평화가 유지 되었는데, 이삭의 출생으로 또 위기가 다가온 것입니다.

9절 말씀에 보면 이스마엘이 자꾸 이삭을 놀린다고 합니다. 이것은 이스마엘과 이삭이 자꾸 다투고, 싸운다는 것이겠지요, 아니면 나이 차이가 있으니까, 이스마엘이 그동안 받던 사랑을 빼앗기니까, 시샘을 하느라고 손 찌검도 했으리라 봅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런 일이 다반자이지요, 이럴 경우 어린 아이가 늘 당할 수 밖에 없지요. 부모가 이러한 것을 목격하면, 그것도 자주 보면 속이 뒤집어 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그 아들 이스마엘을 내 쫓으라고 합니다. 이렇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얄팍합니다. 상속자가 없을 때는 몸종을 통해 후계자를 이으려고 하더니, 아이가 생기자 이제는 내어 쫓으려고 합니다. 사라가 조금만 더 너그러운 마음이 있었더라면, 아니 이삭이 아브라함의 상속자라고 하는 확고한 믿음만 있었더라면, 이런 아픈 일을 벌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여간 이제 하갈은 그만 아브라함의 집에서 떠나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하갈이 떠나는 것을 인정합니다. 전에는 떠나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셨는데, 이제는 인정을 합니다. 아브라함도 이 문제로 몹시 괴로워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합니다. “그 아들과 그 어머니인 여 종의 일로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이삭에게서 태어나는 사람이 너의 씨가 될 것이니, 사라가 너에게 말한 대로 다 들어 주어라. 그러나 여 종에게서 난 아들도 너의 씨니, 그 아들은 그 아들대로, 내가 한 민족이 되게 하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먹을 것과 마실 물을 챙겨서 이스마엘과 함께 하갈을 내어보냅니다.

하갈은 정처없이 빈 들을 헤메고 다닙니다. 담아온 물도 다 떨어졌습니다. 사막의 뜨거운 햇빛, 황량함, 밤의 추위, 외로움, 결국 하갈은 탈진하고 맙니다. 15절에 보니까 하갈은 아이를 “덤불 아래 뉘어 놓”았다고 합니다.아들이 서서히 죽어 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 쪽에 아이를 내려 놓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울부짖었습니다. 그러자 17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 아이의 울음 소리를 들으셨다고 합니다. 17,18절 말씀에 하나님께서는

“하갈아, 어찌된 일이냐? 무서워하지 말아라, 아이가 저기에 누워서 우는 저 소리를 하나님이 들으셨다. 아이를 안아 일으키고, 달래어라. 내가 저 아이에게서 큰 민족이 나오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하갈의 눈을 밝히어 샘을 찿게 합니다.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샘물을 보게 한 것입니다. 옆에 있는 샘을 보지 못하여, 이렇게 죽을 지경이 된 것입니다.하여간 하갈은 즉시 샘에서 물을 떠 아이에게 먹여, 의식을 찿게 하고, 살아납니다.그리고 20절에 보면 아이가 잘 자란다고 하며, 하나님께서 늘 함께 계시면서 돌보았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홍해를 건너 광야로 나간지 사흘이 되었을 때, 물이 없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은혜를 입을 때, 아니면 좋은 일이 있을 때에는 얼굴에 웃음이 함박꽃을 피우지만, 당장 시험이 오고, 어려움이 닥치면 그 은혜 어디로 갔는지, 바로 원망과 시비, 그리고 불평이 나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물이 없다고 할 때 물이 없는 것이 아니라 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모두가 풍족히 쓸 수 있는 최상품의 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원망하던 그 자리에서 조금만 가면 엘림이라는 곳이 있는데, 성경 말씀에 샘이 열두 곳이나 있고, 종려 나무가 70주나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너무나 잘 아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구할 것을 구하면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평화를 통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의 기도 보다는 원망과 시비에 익숙해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갈이 광야로 내 몰렸습니다. 이스라엘도 애굽에서 해방되어 광야로 나갔습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금식하고 기도하실 때에 사탄의 유혹을 받았습니다. 모세도 궁중생활을 청산하고 쫓기다 시피 광야로 내 몰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이 보낸 사람들과 대화하는 중에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무엇이냐? 화려한 옷을 입고 호사스럽게 사는 사람은 왕궁에 있다. 그럼 무엇이냐? 너희가 예언자를 보러 나갔더냐? 그렇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광야는 춥고, 배고프며, 맹수들과, 강도들의 위협 때문에 사람이 살 곳이 못됩니다. 사막은 시련이요, 시험입니다. 그런데 그 곳이 또한 인간이 기대고, 희망할 것이 하나도 없는 그 곳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을 사모하는 가장 하나님으로 가득찬 곳이기도 합니다. 지혜와 생명의 샘이 있어, 하나님과 만나는 곳입니다.

어떻게 보면 하갈은 인생의 비참, 고통에 떨어진 사람의 전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갈은 절망과 죽음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체험한 것입니다. 현실을 도피하던 하갈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극복합니다. 오직!하나님께만 부르짖으며, 하나님을 찿을 때, 하나님께서 하갈을 만나주신 것입니다. 하갈은 쫓겨나서, 머리둘 곳 없는 곤고한 인생 살이에 처한 모든 사람들에게 믿음과 희망입니다. 무엇을 망설이겠습니까, 들으시는 하나님께 여러분의 마땅히 구할 것을 구하여 온전한, 그리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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