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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향하여 마음을 열자 (2006년 4월23일,부활후첫번째주일)

하늘기차 | 2006.04.24 22:00 | 조회 1995
부활을 향하여 마음을 열자

2006년 4월23일(부활후첫번째주일) 요20:19-31

부활을 처음 맞이한 사람들의 특징은 첫 째 두려워 떨며 무서워 하였다는 것이고 둘 째는 믿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그러한 제자들과 여인들에게 주께서 나타나셨습니다.그리고 부활을 보여주셨습니다.믿지 않는다고 해서,부인하고,배반해서,기도하지 않아서,교회출석 잘 안한다 해서,신앙생활 한지 얼마 안된다고 해서 따지거나 조건 붙이시지 아니하고 부활을 찿아가 보여주셨습니다.왜냐하면 보여주지 않으면 믿을 수 없는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첫 날 저녁에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데,요20장 말씀은 부활 첫 날 이른 새벽에 있었던 사건과 그 날 저녁에 일어난 사건을 동시에 기록하고 있는데,그런데 부활에대한 전체적인 분위기는 불신입니다.말씀에대한 전체적인 분위기가 말씀이 아닌 것들로 가득 체워져 있습니다.

거짓들 속에 진실,어두움 속에 빛,슬픔 속에 기쁨,분쟁과 분열 속에 평화와 화해 ...이 모든 것들이 부활의 모습이 아닙니까?그런데 부활에대한 성경의 기록은 처음에 불신이었습니다.뿐만아니라 그 불신을 조장하는 기록도 있습니다.

마28장에 보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빌라도에게 찿아가서 예수가 죽기 전에 사흘 뒤에 자기가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면서 혹시 그 제자들이 예수의 시신을 훔쳐가서는 예수가 살아났다고 하면 아주 나쁜 영향을 미칠 테니 경비병을 배치해서 무덤을 단단히 지키도록 하자고 합니다.그런데 바로 그 경비병이 부활의 목격자가 된 것입니다.경비병들이 이 일어난 일들을 모두 대제사장에게 가서 보고하자 대제사장들이 경비병들에게 돈을 주면서“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 시체를 훔쳐갔다”고 거짓을 유포하라고 합니다.그러나 부활은 그러한 정황 속에서도 스스로 그 빛을 발합니다.

오늘 말씀에 제자들은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있었습니다.아마도 마지막으로 함께 식사를 나누었던 곳 같습니다.그 곳에서 마음을 조아리며 떨며 문 꼭 걸어 잠그고 모여 있었습니다.눅 24:36에는“그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이런 이야기가 무엇일까요?바로 부활에대한 이야기입니다.제자들은 회한과 탄식,두려움,후회,그리고 죄책감 등 과거에 묻혀있습니다.그러면서 “부활했다더라”하면서 부활에대해 이야기만 합니다.부활을 믿지 못합니다.문을 꼭 걸어 잠궜다고합니다.마음을 열지 않은 모습입니다.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방 안에 들어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처럼 벽을 뚫고 그 방 안에 들어오셨을까요?그러나 오늘 말씀 어느 곳에도 SF 영화의 주인공처럼 벽을 뚫고 들어왔다는 말씀은 없습니다.오늘 말씀의 핵심은 또 한 번의 기적이 아닙니다.예수님은 도마를 포함해서 제자들이 십자가에대한 아픔과 치욕으로 두려워 할 때 찿아오셔셔 그 십자가를 다시 어루만지게 하셨습니다.십자가의 아픔을 다시 회상시키시며,그 치욕,아픔,떨림,고통,두려움이 부활을 통해 극복된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십자가와 부활이 일주일 동안에 모두 한꺼번에 일어났습니다.제자들 입장에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개선 장군의 퍼레이드 였습니다.그런데 졸지에 십자가라는 극한 처형에 맞닥뜨린 것입니다.제자들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그래서 제자들은 모두 뿔뿔히 흩어졌습니다.그랬다가 그나마 간신히 이전에 모였던 장소에 두려움을 안고 다시 모인 것입니다.그들의 꿈과 희망은 예수의 십자가와 함께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도저희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아무도 십자가 곁에 있지 못했습니다.예수님을 3년 동안 따랐지만 예수님을 끝까지 모시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부활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갑자기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니 도대체 이게 왠 낮 도깨비 같은 이야기이겠습니까?특히 도마는 부활의 사실을 보지 않고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그런데 도마는 요11:6이하에서 볼 것 같으면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내용 중에 예수님이 유다 지역에서 눈 먼 사람을 고치고 나서 유대인들에게 죽임을 당할 뻔 하자 그 곳을 급히 빠져나왔습니다.그런데 바로 그 곳 근처 베다니 마을에 살고 있는 마리아,마르다에게서 오빠를 구원해 달라는 요청이 왔습니다.오빠의 병을 고쳐달라는 것입니다.예수님은 그 소식을 듣고 여전히 먼 곳에 머물러 계셨습니다.이틀 후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리기 위해 베다니 즉 유대로 가자고 했을 때,제자들은 “아니 예수님!얼마 전에도 예수님을 돌로 쳐 죽이려고 했던 곳인데 다시 그리로 가려고 하십니까?”의아해 합니다.바로 그 때 도마가 선뜻 나서서“우리도 그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합니다.도마의 용기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에,도마는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도마는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무엇인가 해 보려고 결단도 내리고,의욕도 보이지만 단지 의식의 수준,결단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을 뿐입니다.십자가와 부활은 인간의 의지와 결단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아마 다른 제자들도 그랬겠지만 아마 도마가 더 큰 실망과 좌절,허탈함과 후회 두려움에 젖어 있었을 것입니다.그런 십자가의 죽음에 매여있는 도마에게 예수님의 부활은 믿을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부활을 믿지 못하는 도마의 의식 속에는 역시 십자가도 믿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삶속에서 도마처럼,아니 제자들 처럼 끊임없이 십자가와 부활이 나타나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그럴 때 우리는 우리의 의식과 주관,경험에 붙들리어 십자가와 부활 사이에 끼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우리들에게 바로 그러한 제자들의 한 복판에 주님께서 부활하시어 나타나셨습니다.“왜?”,“어떻게 해서” 그럴 수가 있는가? 그것도 십자가에 처형을 당하다니이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이것은 너무나 억울한 일이다.등등 이러한 것은 바로 제자들이 아니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는 모습입니다.그러니까 십자가를 ,십자가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그래서 예수님을 따랐던 3년의 공생애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모두 끝이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자 마자 바로 그 십자가의 죽음이 사흘 만에 제자들에게 부활로 찿아 온 것입니다.너무나 큰 충격이었습니다.이번에는 부활은 보이지 않고 십자가만 보입니다.아직 십자가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그래서 문 꼭꼭 걸어 잠그고 모여있었는데,예수님이 그 곳 제자들이 모여있는 한 가운데에 부활로 찿아 오셨습니다.그리고는 손과 발,허리를 보이십니다.왜 보이셨을까요?그리고 만지게 하십니다.왜 만지게 하셨을까요?그것은 아픔이요,슬픔입니다.이제는 십자가를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을텐데,예수님은 그 십자가의 흔적을 어루 만지시며 다시 기억나게 하십니다.그리고는 그 아픔을 그 십자가를 극복하게 하십니다.십자가를 극복하지 않고는,십자가를 인정하지 않고는 부활을 받아들일수,믿을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삶의 여정 속에 자주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궁핍함,겁,두려움,비겁함과 거짓에 사로잡힙니다.그래서 내 스스로에대해 인정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도저히 자신의 약점,부족함이 극복이 안됩니다.그러나 바로 그 아픔,고통 속에 부활의 주님이 오셔서 우리를 어루 만져 주십니다.이 때에 우리는 그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총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그 머무름 속에서 나에게 다가오는 여러 가지 유혹과 시험,그리고 고통을 감당해야 합니다.오래 참고 기다릴 때 주님은 그 십자가와 부활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교우 여러분!여러분의 마음을 문 꼭 닫고 두려워 떠는 제자들이 아니라,마음 문 활짝 열고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맛 보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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