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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2006년4월2일,사순절다섯번째주일)

하늘기차 | 2006.04.03 22:33 | 조회 1834
나는 누구인가?

2006년4월2일(사순절다섯번째주일) 롬7:22-25

함석헌 선생님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삼국시대 이 후로 만도 우리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난 것이 100회 정도이고 다른 민족이 쳐들어 온 것이 5,60회나 된다고 합니다.그나마 고구려가 전쟁을 한 것 몇 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우리나라 땅 안에서 된 것이요,대개 막는 싸움,지는 싸움,땅을 야금 야금 잃어가는 싸움이었다고 합니다.그래서 평화가 있었던 시기도 통일신라,이조 시대의 정조 때 평화가 잠깐이나마 있었고 늘 전쟁에 시달리던 민족이었다고 합니다.그래서 오죽하면 밤새 안녕하셨습니까?평안 하셨는지요?진지드셨나요?가우리의 인사였다고 합니다.요즈음은 그렇지 않지만 저도 전에 이런 인사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나라의 지리적 여건이 역사적으로 우리민족을 늘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했습니다.그런데 함석헌 선생님께서는 우리민족의 역사를 ‘고난의 역사’로 바라보면서,이 고난이 무엇인가?하고 물어봅니다.함석헌 선생님은 하나님의 말씀,하나님의 뜻으로 우리의 고난의 역사를 바라보니,그야말로 뜻이 있고,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우리와 비슷한 나라가 또 하나 있는데,바로 이스라엘입니다.한시도 전쟁이 끊이지 않는나라,지금까지도 전쟁의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는 나라입니다.소위 하나님이 선택한 나라!선택된 백성의 역사를 보니,이거 선민의 역사라 볼 수 없습니다.왜 아름답고 향기가 있어야할 이스라엘의 역사가 온통 찢기고,깨지고,터지는 역사일까요?

창15:13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재계약을 맺으시면서“...너의 자손이 다른 나라에서 나그네 살이를 하다가,마침내 종이 되어서 사백년 동안 괴로움을 받을 것이다.”라고 합니다.그러면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다른 나라의 종살이를 하게 했을까요?이것은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드러내 보이시기 위한 계획이 있었던 것입니다.이스라엘의 애굽 바로치하의 400년 고통은 온 인류 구원을 위한 고통입니다.이집트 바로의 폭력 앞에 이스라엘은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빠집니다.이 아픔,괴로움 속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부르짖고,이 부르짖음 소리를 듣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하나님을 드러내십니다.

이사야 5장의 포도원의 노래를 보면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이를 위해 기름진 언덕에 좋은 포도원을 하나 마련해 주어 좋은 포도를 맺기를 기다렸는데 나쁜 포도를 맺었다고 합니다.왜그럴까요?한가지 물어보겠습니다?에덴 동산에서 범죄하고 추방당한 아담이 두 아들을 낳았는데,그 중에 카인은 좋은 사람일까요?나쁜 사람일까요?당연히 나쁜 나라이지요.자기 동생을 돌로 쳐 죽인 패륜아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창4:1에 보면“아담이 자기 아내 하와와 동침하니,아내가 임신하여,가인을 낳았다.하와가 말하였다.”주님의 도우심으로,내가 남자 아이를 얻었다.“한글 개역 성경에는 ‘주님의 도우심”이“여호와로 말미암아”득남하였다고 합니다.그러니까 카인은 누구의 아들입니까?그렇습니다.육으로는 아담과 하와의 아들이지만 영으로는 아니 이건 분명히 카인이 하나님의 아들,하나님의 자녀임을 뜻하는 것입니다.그렇다면 카인이 어떻해야 하리라는 것은 너무나 확실합니다.그런데 창4:13.14절에 보면
“가인이 주님께 말씀드렸다.’이 형벌은 제가 짊어지기에 너무
무겁습니다.오늘 이 땅에서 저를 쫓아내시니 하나님을 뵙지도
못하고,이 땅위에서 쉬지도 못하고 떠돌아다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저를 만나는 사람 마다 저를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자신이 짊어진 짐에 헐떡이며,휘청거리며 헛되이 떠돌아다니는 삶입니다.비참합니다.왜 그럴까요?4:7절을 보면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너를 지배하려고 한다.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그렇습니다.하나님의 자녀요,백성인 카인은 마땅히 죄를 잘 다스려야 하는데,카인이 그 죄를 이기지 못합니다.하나님의 아들이 죄를 이기지 못합니다.인정하고 십지 않지만,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입니다.

한가지 물어보겠습니다.‘나는 누구인가요?’나의 정체가 무엇이냐라는 것입니다.교우 여러분 나는 누구일까요?가계주인,공무원,농민,가르치는 사람,의사,목수,군인...또 무엇인가요?아닙니다.결코 아닙니다.성도들에게 있어서 나는 죄인입니다.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베드로가 뜻하지 않게 한 낮에 주님과 함께 고기잡으러 갈릴리 바다 가운데로 나아가 그 배 가득 고기를 채웠을 때,베드로는 기뻐 춤추며 흥겨워 한 것이 아니라“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합니다.

이사야가 남쪽 유다가 풍전등화와 같은 나라의 위기 때에 성전앞에 나아와 무릎을 꿇습니다.주의 성전의 천사들이 온 성전을 휘감았는데,그 때 이사야가“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으니 나는 죽었다는 것입니다.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윤리를 가르치시던 선생님께서 한 번은 그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학문에는 도그마 포인트가 있다는 것입니다.그러면서 왜 자기가 학문을 시작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말해주시면서 포인트,출발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 기독교인의 출발점,기독교인으로서의 출발점은 어디입니까?나의 정체의 회복의 첫 자리는 어디인가요?내가 누구인지를 묻는 첫 출발은 어디에서부터 시작이 될까요?‘나는 죄인이로소이다’입니다.이것은 거룩한 만남의 자리이기도 합니다.신발을 벗는 자리입니다.

사도 바울이 롬7:23절 이하에서
“나는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 하나,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며,내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봅니다.아!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주겠습니까?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 자신에대해 깊이 깨달은 것은 인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존재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이 싸움을 일생 동안 하다가 결국 육신이 쇄하여져서 의식 희미해지고 하면 본래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사도바울은 롬7:17,20에서 그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은“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라는 것입니다.우리가 죄인 일 수 밖에 없는 것은 우리 안에 죄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죄가 우리를 바로 서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이 죄가 바로 좋은 포도 맺지 못하고 들포도를 맺게하는 이유인 것입니다.정신병 환자의 가장 확실한 증세는 자신이 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암이나,중풍,당뇨병 같은 환자들은 의사의 진단을 받으면 그것을 인정하는데 정신질환자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고 합니다.알콜 중독 환자도 자신이 알콜중독자라는 것을 인정하려하지 않으려 한다고 합니다.그래서 치료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장 위기인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세상의 풍조,가치관으로부터 오는 위기인데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죄에대한 무감각 말입니다.성적 타락,폭력,부정,왠만한 폭력에,왠만한 부정에 이제는 무감각해 지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또 요가,기치료,선,웰빙,뉴 에이지와 같은 삶의 방편들이 유행하면서 이러한 것들을 통해 인간의 삶의 질이 개선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우 여러분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나는 참 곤고함 존재’라는 것입니다.이것이 우리 인간의 실존이며,본질이기도 한 것입니다.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하지 못 할 때 우리에게 참 자유함은 없을 것입니다.하나님을 떠나면 자유할 것 같지만,결국 우리는 죄의 힘에 붙들려 죄의 노예로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문둥병을 천형이라고 합니다.왜냐하면 살점이 썩어져 들어가는데 감각이 없습니다.무감각입니다.이와 마찬가지로 영적 무감각도 있습니다.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것 말입니다.남들 다 그러니까 나도 그렇다는 것입니다.그러면서 자기 삶을 합리화 합니다.

교우여러분 내일부터 우리 교회는 일주일간을 기도의 주간으로 선포하였습니다.이스라엘이 회복되며,자신의 정체를 회복할 때 보면 자기가 죄인임을 고백할 때입니다.다윗이 아름다운 것은 그의 영웅적인 삶도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죄를 죄로 고백하는 신앙에 따르는 것입니다.믿음의 조상들이 모두 그러했습니다.하나님 앞에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할 때 하나님은 그것을 받으시고 그 사람을 새롭게 하십니다.그의 삶을 회복시켜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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