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View Article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생각해 보아라(2006년12월31일, 성탄절후첫번째주일)

하늘기차 | 2007.01.01 11:40 | 조회 2451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생각해 보아라

2006년12월31일(성탄절후첫번째주일) 전7:13-14

한 해의 마지막 날, 마지막 주일입니다. 연말 정산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받아야 할 돈, 갚지 못한 돈, 찿아가 뵈어야 할 분, 그리고 멀리 있는 분에게 편지도 띄우고 하면서 한 해를 돌이켜 봅니다.

올 한 해 하나님께서는 고기교회에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40 주년 기념 행사를 잘 하였습니다. 좋은 말씀도 주시고, 표어도 주시고, 밤토실 어린이 도서관 개관, 40주년 기념 예배, 2분 장로님 세우고, 2분 권사님 임직, 생태교실과 함께한 추수감사 축제, 작은 음악회, 성탄 행사 등 여러 가지 다양한 행사를 치렀습니다.

그런데 기념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러다 보니 소홀히 한 것들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중 안타까운 것은 교육부서입니다. 그 나이에 알맞은 정서와 프로그램으로 아이들과 함께 해야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중고등부와 청년부서가 좀 더 활성화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가능하다면 젊은 전도사님이 오셔서 우리 교육부서를 담당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램입니다. 구역활동도 예전 이야기 성경공부의 열정과 벧엘의 심도 깊은 말씀 공부도 생각이 납니다. 이 번 봄부터는 벧엘 2편인 생활편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벧엘을 하려면 각오가 있는 것 잘 아시지요, 무슨 일이 있어도 빠지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부부 동참이고, 믿지 않는 분들도 쉽게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올 해는 신앙정진을 위한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직 40주년 행사를 마무리 하지 못하였습니다. 역사 편찬과 신앙집회인데, 역사편찬은 안병우 집사님 말씀처럼 안병우 집사님과 제가 집필을 완료하면 교회 역사 편찬도 잘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 기록 할 것이 많습니다. 교회가 지역 사회와 함께하는 중에 있었던 저유소 설치 반대, 또 2년여 동안 함께 기도하면서 함께했던 연병권님에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연병권님은 아기 예수님께서 이 땅에 내려 오시던 12월 25일 예수님과 자리를 바꾸어 하늘 나라로 올라 가셨습니다. 그 해에는 유난히 장례를 많이 치렀습니다. 그리고 이태의님을 보호시설로 잘 보내드린 일, 또 문재국 할머니를 아랫방에서 교회장으로 치른 일도 생각이 납니다. 생태교실, 도서관, 그리고 89년부터 시작했던 난하우스를 이젠 접어야할 때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지역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우리 벌장투리 마을 분들이 시공사측과 좋은 합의점을 찿아 잘 이사를 했으면 좋은데, 멀리 가지 말구 이 근처로 이사를 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신앙 집회는 강사님이 결정되었습니다. 예수회에 속해있는 유시찬 신부님을 모시고 영성집회를 열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려 황폐해 가는 이 시대의 영성 회복을 위한 시기 적절한 집회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내용 자체가 믿지 않는 성도들에게도 편히 접근할 수 있는 내용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를 막론하고, 그동안 함께했던 고기교회를 사랑하며, 늘 함께 나누었던 사람들과 이 번 집회를 함께 하려고 합니다. 이 집회를 통해서 우리가 회개하고, 각성하고, 새로워져 좀 더 하나님의 풍요로운 은혜를 넘치도록 받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인생을 2가지로 보고 있습니다. 하나는 좋을 때, 즉 형통함이요, 다른 하나는 어려운 때, 즉 곤고할 때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마치 기차가 달려가는 두개의 평행한 철로와 같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기차가 달리는데, 어느 것 하나가 휘거나 끊어져 버리면 그 기차는 탈선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바로 이렇게 형통함과 곤고함, 행복과 고난의 두 수레바퀴를 달고 달리는 마차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올 한 해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즐거움과 고난의 두 수레바퀴를 통해서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였습니다. 전도서 기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좋은 때도 있게 하시고, 나쁜 때도 있게 하신다.”
고 하십니다. 즉 이 두가지를 병행하십니다. 전도서 기자는 인생의 형통한 것 그리고 곤고함을 모두 주께서 주신 것으로 고백합니다. 그러니 형통한 것에대해 스스로 자랑할 것이 못되고 곤고하다고 해서 스스로 포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잘 되고, 못 되는 것, 좋은 것 나쁜 것이 모두 우리에게 교차되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형통함 속에서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마음 이 필요합니다, 곤고함 속에서는 앞 날의 형통함을 기다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나에게 찿아오는 형통함을 구태여 왜소하게 볼 필요도 없고, 확대 해석 하여 자만하지 않으며, 나에게 다가온 어려움도 역시 도저히 감당 못 할 것이라는 식으로 나 자빠질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게 오는 기쁨, 또는 고통을 나에게서 그 원인 결과를 찿지 말자는 것입니다.

기쁠 때는 몰라도, 어려울 때 빠지기 쉬운 것은 바로 자기 연민입니다. 왜 이렇게 못나게 태어낳지 하는 것입니다. 욥도 그랬습니다."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이라고 합니다. 소위 속담에 ‘잘되면 내 탓, 못 되면 조상 탓’이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잘되든 못 되든 그 모두 누구 탓인가요? 하나님 탓입니다.그러니까 인생의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되어지는 모든 일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봅니다. “하나님을 본다”는 말이 맞습니다. 우리들에게 일어난 일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보는 것입니다. ‘기쁠 때는 기쁜 대로, 슬플 때는 슬픈 대로,말입니다. 약5:13에보면

“여러분 가운데 고난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기도 하십시오. 즐거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찬송하십시오.”
라고 합니다. 전도서 기자는 좋은 때에는 기뻐하고, 어려운 때에는 생가하라고 합니다. 무엇을 생각할까요? 이것은 자신을 돌이켜 보고 ‘무엇이 잘못되었나?’, ‘하나님의 뜻이 어디있나?’ 헤아려 보는 것입니다. 건강할 때는 잘 먹고, 잘 움직이면서 그 건강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식욕이 떨어진다. 체중이 준다. 출혈이 있다든지... 하면 내 몸에 무슨 일이 생겼구나 하고, 자기 몸을 다시 살펴봅니다. 마찬가지로 나에게 곤고함이 올 때 나의 인생을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이렇게 기쁨과 고통이 오고 가는 가운데 우리에게는 어떤 마음이 생길까요? 오늘 말씀 그대로입니다. 14절에 보면

“그러기에 사람은 제 앞 일을 알지 못한다.”
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요? 인간의 지혜로는 우리의 삶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어느 소설 이야기인데 어느 여자가 두 남자를 놓고 갈등을 합니다. 한 남자는 돈은 많은데, 바람둥이입니다. 그런데 다른 한 남자는 오직 한 여자 만을 사랑하는 지고 지순한 스타일인데 경제가 따라주지를 못합니다. 여 주인 공의 마음이 오락 가락 합니다. 그래서 사주궁합을 보는 사람에게 찿아갑니다. 어느 쪽을 택해야 좋으냐고 묻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주를 보는 사람이 그럽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걸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찿아왔다고 하니까? “그걸 알면 내가 왜 여기 있겠느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생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정도만큼만 알도록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그런데 교우 여러분 인생은 정말 모르는 것일까요? 모를 수 밖에 없나요? 그렇습니다. 인생은 정말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구 말구요, 인간의 생각과 지혜로는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으로 인생을 보시기 바랍니다. 인생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함석헌 선생님께서 우리 나라 역사를 뜻으로 보닸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면 외세의 힘에 항상 찢기고 깨지고, 이리 붙고, 저리 붙는 사대주의로 점철된 어찌보면 누덕 누덕 걸레와 같은 역사이지만 함석헌 선생님께서 이 한국 역사를 하나님의 뜻으로, 즉 우리나라의 역사를 고난의 역사로 바라보며 희망을 보여주었습니다.

판 유리가 하나 있는데, 이 쪽에서는 저 쪽을 볼 수 없어도, 저 쪽에서는 이 쪽을 볼 수가 없는 유리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이 쪽 인간의 지헤로 인생을 보고 자꾸 따라가다 보면 막혀버리고 맙니다. 그저 한 가지의 기쁨과 슬픔에 오락 가락하다가 인생을 다 소진해 버립니다. 그런데 저 쪽 하나님의 지헤로 인생을 보면 인생이 보입니다.

그렇다면 그 지혜는 바로 믿음의 지혜입니다. 오늘 말씀 전7:13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교우 여러분 이것이 바로 지혜있는 사람의 삶의 모습입니다. 모세는 애굽을 탈출하였지만 홍해가 가로막는 상황에 처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당신들은 가만히 서서, 주님께서 오늘 당신 들을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지켜 보기만 하십시오. 당신들이 오늘 보는 이 이집트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합니다.

인간의 생각과 지혜로는 아무리 해 보아도 가로막는 홍해와 뒤에서 달려오는 바로의 군대 앞에서 구원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행하심으로 홍해와 바로의 군대를 본다면 이스라엘의 구원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렇게 보라고 이스라엘을 권면하였습니다.

교우여러분! 오늘 말씀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의 하는 일을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것들도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나만을 보라는 것입니다.

교우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기쁨과 슬픔 속에 계십니다. 오늘 말씀처럼 좋을 때에 기뻐하고, 슬플 때에 생각하라, 즉 하나님을 바랄 때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곤고한 날이 길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자포 자기하지 말기 바랍니다. 낙심은 금물입니다. 그 속에 정금, 진주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레미야 애가3:32,33은

“주님께서 우리를 근심하게 하셔도,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불쌍 히 여기신다. 우리를 괴롭히거나 근심하게 하는 것은, 그 분의 본심이 아니다.”라고 말씀합니다.
예레미야는 또 19-22에서
“내가 겪은 그 고통, 쓴 쑥과 쓸개즙 같은 그 고난을 잊지 못한다. 잠시도 잊을 수 없으므로, 울적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 곰곰이 생각하며 오히려 희망을 가지는 것이다.”
또 23-24를 보면

“주님의 사랑과 긍휼이 아침마다 새롭고 주님의 신실이 큽니다.나는 늘 말하였다. ‘주님은 내가 가진 모든 것, 주님은 나의 희망’”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날마다 주의 은혜로 새롭게 사물을 보아야 삽니다. 글쎄 산다고 다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살아도 죽은 것이요, 죽어도 산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이 닥치고, 시험이 와서 그 아픔과 고통과 눈물이 내 어깨를 짖누를 때에 그 때가 바로 은혜의 때요, 그동안 나의 것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던 내 마음, 내 심령의 눈이 하나님의 뜻으로 이 세상 바라볼 수 있도록 해 준다는 것입니다. 곤고함이 길어질 때 예레미야는 예레미야 애가 3:26을 통해 “주님께서 구원하여 주시기를 참고 기다리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날마다 만나를 주신 이유가 있습니다. 날마다 떡으로가 아니라 말씀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나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매일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오늘 하루를 바로 설 수가 없습니다. 내 안에서 끊임없이 원망, 분노, 미움, 절망감의 어두움과 혼돈과 공허가 불쑥 불쑥 솟아 오릅니다. 그럼에도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나를 기쁜 일에 한 번 기뻐하고, 슬픈 일에 한 번 고통스러워 하는 삶이 아니라, 그래서 내 삶이 쇄잔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삶으로, 뜻이 있는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우리를 향한 뜻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979개(45/49페이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2016년9월4일) 사진 첨부파일 관리자 14648 2016.09.09 08:30
공지 나는 주의 사람이니(가야금, 대금 동영상) 첨부파일 하늘기차 25976 2007.10.16 12:24
공지 망대에 오르라(창립40주년 기념 예배 설교,유경재 목사) 고기교회 26357 2006.05.31 22:16
공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하늘기차 24950 2005.09.02 16:30
>> [일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생각해 보아라(2006년12월31일, 성탄절후첫번째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452 2007.01.01 11:40
94 [일반] 기뻐함을 입은 사람들(2006년12월24일,대강절네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527 2006.12.24 14:11
93 [일반] 빛을 받아 환히 열린 미래 5(2006년12월17일, 대강절세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314 2006.12.17 14:18
92 [일반] 빛을 받아 환희 열린 미래 4(2006년12월10일,대강절두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945 2006.12.10 16:59
91 [일반] 빛을 받아 환희 열린 미래 3(2006년12월 3일, 대강절 첫번째 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122 2006.12.03 14:38
90 [일반] 빛을 받아 환희 열린 미래 2(2006년11월26일, 성령강림절후스물다섯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125 2006.11.26 15:55
89 [일반] 빛을 받아 환희 열린 미래 1(2006년11월19일, 성령강림절후스물네번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102 2006.11.19 14:24
88 [일반] 예수 이름으로(2006년11월12일,성령강림절후스물세번째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217 2006.11.12 14:01
87 순수한 마음을 일깨우려고(2006년 11월 5일,성령강림절후스물두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299 2006.11.05 15:48
86 [일반] 믿음 으로부터 오는 감사(2006년10월29일,추수감사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958 2006.10.31 12:07
85 [일반] 바람, 들꽃, 평화를 보며(2006년10월22일, 성령강림절후스무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006 2006.10.24 13:52
84 [일반] 안식일, 자유의 근원(2006년10월15일,성령강림절후열아홉번째주일) 첨부파일 고기교회 1913 2006.10.15 14:20
83 [일반] 준비된 믿음의 기념비!(2006년10월8일, 성령강림절후열여덟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435 2006.10.08 15:00
82 [일반] 사랑하자 그리고 돌아서라!(2006년10월1,성령강림절후열일곱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210 2006.10.01 15:14
81 [일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2006년9월24 ,성령강림절후열여섯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169 2006.09.24 18:10
80 [일반] 그대로 두라는 말입니까?(2006년9월17,성령강림절후열다섯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010 2006.09.17 19:30
79 [일반] 생수가 강물처럼 4(2006년9월10 ,성령강림절후열네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1861 2006.09.10 14:17
78 [일반] 생수가 강물처럼 3(2006년9월3일 ,성령강림절후열세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129 2006.09.03 16:07
77 [일반] 생수가 강물처럼 2(2006년8월27, 성령강림절후열두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908 2006.08.27 15:34
76 [일반] 생수가 강물처럼(2006년8월20,성령강림절후열한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322 2006.08.20 17: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