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View Article

빛을 받아 환희 열린 미래 3(2006년12월 3일, 대강절 첫번째 주일)

하늘기차 | 2006.12.03 14:38 | 조회 2121


빛을 받아 환희 열린 미래 3

2006년12월 3일(대강절 첫번째 주일) 시36:1-12

내가 하나님을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는 신앙과 불신앙을 가르는 것일 뿐만아니라, 참 신앙과 거짓 신앙을 가르는 것이기도 합니다. 만일 내가 “주여, 주여”하면서 신앙한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그 신앙 나는 모른다 하면 이것처럼 큰 낭패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항상 신앙에대하여, 하나님에대하여 긴장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몇년 몇월 몇일 구원받았다”랄지, “나는 죄 사함 받았다”라고 못을 밖아버리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오히려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깨달아가는 사마리아 여인이, 물동이를 우물가에 내 던지고, 마을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그 분이 그리스도가 아닐까요?”하며 조심스럽게 자기의 보고 느낀 것을 더도 덜도 없이 잔잔하게 전하는 그 앎, 그 깨달아가는 과정이 참 귀한 시대입니다.

그런데 니고데모가 예수님이 누구인줄 안다고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답하지 않시고, 니고데모에게 “다시 태어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잘 못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다시 태어나라고 했을까요?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것은 영적인 태어남을 뜻하는 것입니다. 영적이라 할 때 우리는 어떤 신비, 환상, 우리와 거리가 먼 이해 할 수 없는, 아니면 어떤 독특한 체험, 그리고 기적의 치유 등을 떠올리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좀 더 세밀하게 영적 태어남에대하여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나를 낳으시고 기르신 아버지, 어머니가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아버지가 한 분 더 있습니다.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의 창조자이시며,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우리가 아버지라 부르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다시 태어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롬8:14,15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또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고 할 때 그것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는 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버지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옵니까? 엄격한, 아니면 무기력한, 아니면 가수 조용남씨는 아버지를 떠 올릴 때 노는 아버지를 떠올립니다. 가수 조용남씨의 부친은 늘 “놀면, 놀면 하라우” 이북 사투리를 하면서 실제 어릴 때 개구질 정도로 그렇게 자신과 잘 놀아주었다고 합니다. 저도 늘 아쉬운 것은 아이들과 잘 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미안한 것이 굴뚝 같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 우리는 자기 아버지를 떠 올릴 수가 있고, 하나님을 그렇게 자기 아버지의 상으로 바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4:6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영을 우리의 마음에 보내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자기 마음대로 아버지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인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신 대표적인 분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불렀습니다. 특히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불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빠, 아버지’라 하면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무어라고 기도했나요? 막14:36을 함께 읽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아빠,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으시니,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여 주십시오”하셨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며 기도하는 이 모습은 우리에게 귀중한 것을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은 곧 십자가에 달리시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예수님은 육신의 안타까움 속에서 한 번 더 아버지의 뜻을 물어보는데, 그 때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릅니다.

이것은 어떤 관계일까요? 앞에서 아버지에대해 엄격함, 아니면 무력한, 아니면 바람기 있는, 아니면 잘 놀아주는 아버지에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데, 교우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요,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하나님을 만나야 할까요? 예수님이 ‘아빠, 아버지’라 부르는 이 부름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아버지에대한 친밀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입니다. 예수님은 한 번 더 아버지 하나님께 물어봅니다. 정말 하나님께 자기 주장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은 선하시며, 옳지만 그래도 인간의 육신을 입고 있는 예수님께서 한 번 더 간곡하게 묻습니다. “이 잔을 거둘 수 있는지”, 내 생각으로는 그렇게 했으면 좋겠는데, ‘아빠, 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의 생각을 한 번 이야기 한 것 뿐입니다.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기 바랍니다.”

이 얼마나 비장한 속에서의 여유, 그리고, 온유,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뢰인가요? 교우 여러분! 아버지 하나님과의 관계는 바로 이것입니다. 신뢰입니다. 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다양한가요? 그러나 정말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찿아야 하고 지켜야 할 것은 친밀함 속에서의 신뢰입니다. 이 신뢰는 생명을 내어놓는 자리에서 보여주신 아버지 하나님에대한 자세인 것입니다.

오늘은 대강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교회력은 오늘부터 시작입니다. 색은 보라색으로 기쁨과 기다림의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빛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 교회에 주신 말씀 시36:9을 한 번 읽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생명의 샘이 주님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빛을 받아 환희 열린 미래를 봅니다.”

쓰레기장 근처에 샘이 두 개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는 오염이 되어 식수불가 판정을 받고 폐기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샘은 여전히 맑고 오염되지 않은 맛있는 물이 계속 솟아나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그 샘의 근원이 깊기 때문입니다. 샘이 깊으니 외적 상황이 이 샘을 오염시키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오염되지 않은 순도 100%의 샘이 있습니다.

시36:9은 생명의 샘이 주님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영적 샘입니다. 지혜의 샘입니다. 이 생명의 샘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도 넘쳐날 수 있을까요? 아버지 하나님에대한 친근한 신뢰입니다. 믿음이지요. 살가운 믿음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나 광야로 나갔을 때, 가장 힘들었던 점이 이 것 이었습니다. 즉 물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원망과 시비, 불평과 불만, 분쟁과 반역이 끊이지 않고 일어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새를 통해 지팡이로 반석을 쳐 샘이 나게 합니다.

광야 길에 샘이 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 샘이 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산다고 하지만 그것은 사는 것이 아닙니다. 참 평화, 참 기쁨, 용서와 화해, 이웃에대한 배려가 없는 폐쇄된 자기만의 삶은 삶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 생명의 샘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욕망이나, 이기심, 또는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자기의 뜻을 하나님에게 관철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육신의 연약함을 가지고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가 ‘아빠, 아버지’하며 아버지의 뜻을 친근한 신뢰를 가지고 물을 때, 이 샘은 여지없이 터져나옵니다. 그럴때 우리는 이 세상을 하나님의 선한 뜻으로 바라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그렇지 않은 것은 모두 가짜입니다. 오염된, 값 싼, 맛 없는 물에 입이 길들여 지면 안됩니다. 참 생수, 마르지 않는 ‘아빠. 아버지’표 생수를 늘 복용하셔서 밝은 미래를 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979개(45/49페이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2016년9월4일) 사진 첨부파일 관리자 14648 2016.09.09 08:30
공지 나는 주의 사람이니(가야금, 대금 동영상) 첨부파일 하늘기차 25976 2007.10.16 12:24
공지 망대에 오르라(창립40주년 기념 예배 설교,유경재 목사) 고기교회 26357 2006.05.31 22:16
공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하늘기차 24950 2005.09.02 16:30
95 [일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생각해 보아라(2006년12월31일, 성탄절후첫번째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451 2007.01.01 11:40
94 [일반] 기뻐함을 입은 사람들(2006년12월24일,대강절네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527 2006.12.24 14:11
93 [일반] 빛을 받아 환히 열린 미래 5(2006년12월17일, 대강절세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314 2006.12.17 14:18
92 [일반] 빛을 받아 환희 열린 미래 4(2006년12월10일,대강절두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945 2006.12.10 16:59
>> [일반] 빛을 받아 환희 열린 미래 3(2006년12월 3일, 대강절 첫번째 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122 2006.12.03 14:38
90 [일반] 빛을 받아 환희 열린 미래 2(2006년11월26일, 성령강림절후스물다섯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125 2006.11.26 15:55
89 [일반] 빛을 받아 환희 열린 미래 1(2006년11월19일, 성령강림절후스물네번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102 2006.11.19 14:24
88 [일반] 예수 이름으로(2006년11월12일,성령강림절후스물세번째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217 2006.11.12 14:01
87 순수한 마음을 일깨우려고(2006년 11월 5일,성령강림절후스물두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299 2006.11.05 15:48
86 [일반] 믿음 으로부터 오는 감사(2006년10월29일,추수감사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958 2006.10.31 12:07
85 [일반] 바람, 들꽃, 평화를 보며(2006년10월22일, 성령강림절후스무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006 2006.10.24 13:52
84 [일반] 안식일, 자유의 근원(2006년10월15일,성령강림절후열아홉번째주일) 첨부파일 고기교회 1913 2006.10.15 14:20
83 [일반] 준비된 믿음의 기념비!(2006년10월8일, 성령강림절후열여덟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435 2006.10.08 15:00
82 [일반] 사랑하자 그리고 돌아서라!(2006년10월1,성령강림절후열일곱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210 2006.10.01 15:14
81 [일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2006년9월24 ,성령강림절후열여섯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169 2006.09.24 18:10
80 [일반] 그대로 두라는 말입니까?(2006년9월17,성령강림절후열다섯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010 2006.09.17 19:30
79 [일반] 생수가 강물처럼 4(2006년9월10 ,성령강림절후열네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1861 2006.09.10 14:17
78 [일반] 생수가 강물처럼 3(2006년9월3일 ,성령강림절후열세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129 2006.09.03 16:07
77 [일반] 생수가 강물처럼 2(2006년8월27, 성령강림절후열두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908 2006.08.27 15:34
76 [일반] 생수가 강물처럼(2006년8월20,성령강림절후열한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322 2006.08.20 17: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