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View Article

빛을 받아 환희 열린 미래 2(2006년11월26일, 성령강림절후스물다섯번째주)

하늘기차 | 2006.11.26 15:55 | 조회 2125


빛을 받아 환희 열린 미래 2

2006년11월26일(성령강림절후스물다섯번째주) 시36:1-12

시편 36편은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하늘에 가득 차 있다고 하면서, 그 사랑이 얼마나 값지냐고 묻습니다. 철을 따라 비가 내립니다. 그런데 이 비가 어느 지역은 예뻐서 알맞게 내리고, 저쪽은 미워서 가물고 하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기상 이변이 많아져서 마치 그렇게라도 내리는 듯 하는데, 통상적으로 비가 내릴 때 골고르 내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농사철 물이 필요할 때 논에 물을 데려면 물꼬를 막아야 논에 물을 데듯이, 말씀드린데로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내릴 때 누가 그 한결같은 사랑을 넘치도록 받을 수가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새순교회에 갈 일이 있어 들렀는데, 예배당에서 어느 청년을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교회의 청년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노숙자였습니다. 정 목사님께서 그 청년을 교회로 인도하여 예배당 유아실을 숙소로 내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날 아침 양치질 하러가는 그 노숙자분을 본 것입니다. 그런데 정 목사님께서 이 청년을 사회로 돌아오게 하려고 취직도 시키고, 말씀공부도 하고 물심양면으로 참 많이 도와주었는데, 모든게 허사라는 것입니다. 직장에 결석, 지각은 다반사고, 일을 맡기면 요리조리 피하고 해서 직장에서 감당을 못해, 결국 그만두었다는 것입니다. 정목사님 왈, 왜 노숙자가 되었는지 알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변화시키려고 햇는데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목사가 변화시키나 하나님이 하셔야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 노숙자가 정목사님이 어떻게 해서든지 사회로 돌아오게 하려는 그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여간 누가 그러한 한결같은 사랑은 받을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 10절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했습니다. 이 주님을 사랑한다는 말씀의 어원은 주님을 아는 이라는 뜻에 더 가깝다고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안다는 것이 그저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전 인격으로 알기위해서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의 풍요로움에대해 오늘 말씀은 주님의 날개 아래 피하여 숨는다, 배불리 먹는다, 또 단물을 마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누리는 은혜 중에 은혜는 바로 9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생명의 샘이 주님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빛을 받아 환희 열린 미래를 봅니다.”

새벽기도를 위해 아침에 신봉리, 송골 쪽으로 차를 타고 넘어옵니다. 그 시간이 되면 기독교 방송에서 책을 읽어주는데, 이 번 주간에는 류시화님이 번역한 인생수업이라는 책을 읽어주었습니다. 어떤 내용인가 하면, 중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대담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 중의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데, 꽤 부자였다가 사업실패로 재산도 건강도 다 잃은 사람과의 대화였는데, 한 가지만 기억이 납니다.

이야기인 즉슨, 한 친구가 파산한 친구에게 묻습니다.
“가난한 맛이 어떤가?”그러자 이 사람이
“재정적으로 파산했지, 난 가난해 지지는 않았네”하더랍니다. 그러면서
“가난은 마음상태인데 난 아직도 가난하지 않고 부요하네”하더랍니다.
물론 물질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생활을 지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물질 보다 더 소중한 것은 바로 내 자신, 나의 가치 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낀 것은 지혜라는 것입니다. 마음이지요, 보통 마음을 그릇이나 샘으로 비유를 하는데, 오늘 말씀 9절은 말씀드렸지만 아버지 하나님의 풍요 중에 가장 귀한 것이 지혜인데 바로 그 생명의 샘이, 생명의 지혜가 주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환히 열린 미래를 보는 마음의 지혜가 어디에서부터 올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성경을 연구하는 성경 박사들이었지만 예수님이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3년 동안 한 솥 밥을 먹으며 함께 지냈지만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지난 주에 요한 복음에서는 ‘안다, 모른다’에대한 주제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요9 장에서도 보면 나면서부터 눈 먼 사람이 눈을 뜨는 장면이 나오는데, 바리새파 사람들이 그가 눈을 뜬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안식일을 범하였으니 그는 죄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과 바리새인 간에 심한 언쟁이 벌어집니다. 그 와중에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하나님을 공경하고 그의 뜻을 행하는 사람의 말은 들어주시는 줄을 우리는 안다고 합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은 그 사람에게 궁색한 말을 한마디 합니다.“네가 완전히 죄 가운데서 태어났다는데도, 우리를 가르치려고 하느냐?”고 합니다.

바리새인은 오직 죄 만을 봅니다. 율법을 가지고 죄가 있나 없나를 봅니다. 그리고 이 율법을 율법되게 하는 것이 바로 모세의 기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에게 집요하게 기적을 보여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들에게 보여줄 기적”은 없다고 합니다. 그나마 있다면 요나의 기적 외에는 없다고 합니다. 요나의 기적이 어떤 기적인가요? 십자가에 달리어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요3에서도 예수님이 니고데모와 대화할 때에, 니고데모도 바리새인들과 같은 관점에서 예수를 봅니다. 그래서 대화의 첫 마디가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면, 선생님께서 행하시는 그런 표징들을, 아무도 행할 수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이야기 하는 것처럼 그저 기적을 행하는 자가 아닙니다. 그러면 무어라고 말씀하십니까?

14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높이 들려야 할 분이십니다. 자신을 내어 놓으시지 않고는 들릴 수가 없습니다. 하늘의 높은 보좌를 버리지 않고는 이 땅에 내려 오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이십니다. 긍휼입니다. 불쌍히 여기심입니다. 온 인류가 이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류의 유일한 환한 미래인 것입니다.

1962년도만 해도 미국이 이렇게 망가지지는 않았을 때인데, 그 당시 미국 하원의원에서 드린 기도문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당신이 잊혀지고 당신의 이름이 불리지 않으며
당신의 법이 조롱받고 당신의 현존이 무시되는
이 소란스럽고 절망적인 세계에서
당신께 올리는 이 기도를 자비로이 들으소서
우리가 당신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에게 평화가 없습니다.“

44년 전 미국 하원의 고백이 우리가 평화가 없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44년 전만해도 미국에 이런 양심이 있었는데, 나에게, 우리 가정에, 이 나라, 이 민족에게, 온 인류에게 평화가 없는 것은 바로 주님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우리 예수님을 깊이 사랑하여 알 수가 있을까요?

니고데모는 예수님께 나아가 “랍비님, 우리는 선생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압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기적현상 만을 보고 예수님을 안다고 하는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무어라 말씀하십니까? 다시 태어나라고 합니다.

주님을 ‘안다, 모른다’하는 것은 출생의 문제인 것입니다. 이 ‘안다.모른다’는 것 때문에 요한 복음 8장에 가면 바리새인들이 격분하여 예수님을 돌로 치려하는 상황 까지 이르게 되는데, 이유는 예수님이
“너희는 너희 아비인 악마에게서 났으며, 또 그 아비의 욕망대로 하 려고 한다”고 하면서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은 “너 희가 하나님에게서 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은 지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영적인 일입니다. 예수님은 요3:6에서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영에서 난 것은 영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으로 태어나지 않고는 아버지를 알 수도 없고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를 맛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태어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가 있겠습니까? 영으로 거듭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 구하고, 하나님 안에서 안식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느 마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겨울이면 마을 뒷 산에 덫을 놓는데, 한 번은 어느 분이 아이와 함께 뒷 산에 오르는 중에 아이의 비명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이가 덫에 걸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마을 분이 그 비명 소리를 듣고, 너 이놈 잘 됐다, 항상 말썽만 피우더니“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아들이 잘 하던 못하던, 속을 썩이든 그 비명 소리에 아버지는 냉큼 달려가 그 아이의 발을 오옭아맨 덫을 풀어주고, 아픈 상처를 치료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런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영으로 태어나야 합니다.

노숙자와 알콜, 마약 중독자를 돌보는 사역을 하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일이 워낙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 집안 일에 등한시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에게는 사춘기의 딸이 하나 있어서, 성장통을 하였는데, 아마 목사님이 이 딸의 일로 늘 마음이 아팠나 봅니다. 어떤 때는 딸이 띠쳐 나가기도 해서, 울기도 많이 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기도 하는 중에 하나님의 감동이 느껴졌는데, 딸의 일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잔소리도 하지 말고 나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기도하라는 감동이 왔습니다. 그 이후로 정말 딸에게 일체 간섭도 하지 않고, 이래라, 저래라 말도 하지 않고 기도만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또 딸이 가출을 하여 돌아오지 않은지 꽤 되어, 늘 근심하던 차에, 하루는 저녁 예배 때에 이 아이의 문제를 교인들에게 이야기 하고 함께 기도해 줄 것을 요청했고, 그래서 교인들이 그 날 저녁 합심하여 딸 아이를 위해 전심으로 기도했다고 합니다. 마치 영적 분만실 같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출근을 위해 면도를 하고 있는데, 딸 아이가 돌아온 것입니다. 집에 발을 들여놓자 마자, 딸은 엄마, 아빠에게 “내가 잘 못 했습니다. 하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내가 많은 실수를 하였습니다.”고 하면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사죄하였다는 것입니다.그런데 그 딸아이가 그 회개하는 중에 한가지 물어 볼 것이 있는데, 지난 저녁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꿈을 꾸었다는 것입니다. 홀로 향량한 곳을 걸어가고 있었데, 두렵고 불안하였고,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걸어가고 있었는데, 자기 앞 쪽에 누가 서 있는데, 보니까 예수님께서 그 앞에 서 계시면서 자기 손을 잡아 쭉 끌어서 그 황량한 길 한 가운데서 벗어나게 했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그 때가 바로 교회의 식구들과 합심하여 딸을 위해 기도하던 바로 그 시간인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목사님과 교회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주님의 한결 같은 사랑을 맛보며,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으로 알며, 주님을 따를 때에 한없는 주님의 사랑으로 넘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979개(45/49페이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2016년9월4일) 사진 첨부파일 관리자 14648 2016.09.09 08:30
공지 나는 주의 사람이니(가야금, 대금 동영상) 첨부파일 하늘기차 25976 2007.10.16 12:24
공지 망대에 오르라(창립40주년 기념 예배 설교,유경재 목사) 고기교회 26357 2006.05.31 22:16
공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하늘기차 24950 2005.09.02 16:30
95 [일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생각해 보아라(2006년12월31일, 성탄절후첫번째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452 2007.01.01 11:40
94 [일반] 기뻐함을 입은 사람들(2006년12월24일,대강절네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527 2006.12.24 14:11
93 [일반] 빛을 받아 환히 열린 미래 5(2006년12월17일, 대강절세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314 2006.12.17 14:18
92 [일반] 빛을 받아 환희 열린 미래 4(2006년12월10일,대강절두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945 2006.12.10 16:59
91 [일반] 빛을 받아 환희 열린 미래 3(2006년12월 3일, 대강절 첫번째 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122 2006.12.03 14:38
>> [일반] 빛을 받아 환희 열린 미래 2(2006년11월26일, 성령강림절후스물다섯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126 2006.11.26 15:55
89 [일반] 빛을 받아 환희 열린 미래 1(2006년11월19일, 성령강림절후스물네번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102 2006.11.19 14:24
88 [일반] 예수 이름으로(2006년11월12일,성령강림절후스물세번째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217 2006.11.12 14:01
87 순수한 마음을 일깨우려고(2006년 11월 5일,성령강림절후스물두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299 2006.11.05 15:48
86 [일반] 믿음 으로부터 오는 감사(2006년10월29일,추수감사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958 2006.10.31 12:07
85 [일반] 바람, 들꽃, 평화를 보며(2006년10월22일, 성령강림절후스무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006 2006.10.24 13:52
84 [일반] 안식일, 자유의 근원(2006년10월15일,성령강림절후열아홉번째주일) 첨부파일 고기교회 1913 2006.10.15 14:20
83 [일반] 준비된 믿음의 기념비!(2006년10월8일, 성령강림절후열여덟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435 2006.10.08 15:00
82 [일반] 사랑하자 그리고 돌아서라!(2006년10월1,성령강림절후열일곱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211 2006.10.01 15:14
81 [일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2006년9월24 ,성령강림절후열여섯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169 2006.09.24 18:10
80 [일반] 그대로 두라는 말입니까?(2006년9월17,성령강림절후열다섯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010 2006.09.17 19:30
79 [일반] 생수가 강물처럼 4(2006년9월10 ,성령강림절후열네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1861 2006.09.10 14:17
78 [일반] 생수가 강물처럼 3(2006년9월3일 ,성령강림절후열세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129 2006.09.03 16:07
77 [일반] 생수가 강물처럼 2(2006년8월27, 성령강림절후열두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908 2006.08.27 15:34
76 [일반] 생수가 강물처럼(2006년8월20,성령강림절후열한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322 2006.08.20 17: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