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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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받아 환희 열린 미래 1(2006년11월19일, 성령강림절후스물네번째주)

하늘기차 | 2006.11.19 14:24 | 조회 2101


빛을 받아 환희 열린 미래

2006년11월19일(성령강림절후스물네번째주) 시36:1-12

올 해는 우리 교회의 40주년 되는 해입니다. 한 해를 돌아보니 여러 가지 행사를 은혜롭게 잘 치루었습니다. 40주년 기념 찬양의 밤을 비롯해서, 연속 기도회, 밤토실 어린이 도서관 개관(박성용님의 잊지 못 할 축시), 40주년 창립기념 예배 및 장로 장립 권사임직(박경장님의 축시도 잊지 못 할 것입니다), 추수감사 생태축제, 작은음악회, 아니 강남 향린교회 사물놀이의 대보름 지신밟기를 통해 교회에 복을 한 껏 빌어준 날의 은혜도 잊지 못합니다. 그리고 아직도 2가지 행사가 더 남아있습니다. 창립 40주년을 기념하는 고기 교회의 역사를 기술하는 작업과 신앙집회가 남아있습니다.

왜 이런 행사를 올 한 해 동안 해 왔을까요?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무엇을 기념하는 것일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와 40년 동안 함께하심을 고백하며 그 은혜를 감사하는 그러한 기념인 것입니다. 성경에도 거듭 이야기되는 것 중의 하나가 기념하라는 것입니다. 성찬을 베풀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념하라 하셨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넌 후에 후손들이 어떻게 요단을 건너 가나안에 이르렀는지를 기념하도록 돌 무더기를 쌓았습니다. 그래서 기념은 기념으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향 후 고기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신앙을 고백해야 할 지에대한 자리 매김이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교회에 하나님께서 주신 40주년을 기념하는 표어 말씀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새로운 은혜이기도 합니다. 함께 읽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생명의 샘이 주님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빛을 받아 환히 열린 미래를 봅니다.”(시36:9)
사실 한글개역은 이런 멋진 표현이 아닙니다. 이렇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라고 되어 있어,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있을 뻔 하였는데, 표준새번역의 멋진 번역이 우리로 하여금 말씀을 새롭게 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 말씀도 그리 쉽게 찿아지지는 않았습니다. 벌써 40주년은 다가왔는데, 아무런 표어도, 방향도 없어서 모두들 시큰둥했습니다. 저도 역시 답답하고, 올 한 해를 어떻게 기념하나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런 중에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주신 귀한 말씀입니다. 특히 오늘 이 시대를 어떻게 바라 보아야 할지에 대해 말씀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

몇 일 전에 신앙에대한 이야길 어느 분 하고 나눈적이 있습니다. 그 분 이야기는 어느 길로 가도 하나님에게 가는 것은 마찬가지 아니냐 하면서 왜 유독 기독교만이 다르다고 하며 배타적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왜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하면서 다르다고 할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인간은 이 세상 창조자이시며, 주관자이신 하나님에게서 떠난 이 후 하나님의 인류를 향하신 선하신 뜻에서 멀어졌고, 죄된 우리로서는 그 선한 것을 구할 수도 없고 누리지도 못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죄사함의 구원의 은혜를 입는다고 하였습니다.

아! 죄문제입니다. 오늘 말씀1-7에서 다윗은 인간의 죄악의 깊은 뿌리에대해 이야기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오는 죄악입니다. 하나님에대해 모르니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일을 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어느 인간도 이 문제를 넘어 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죄에대해 이야기 해도 잘 이해를 못하기에 오늘 환경이 파괴되고, 끊임없는 전쟁이 반복되며, 아프리카와 중동의 아이들을 포함한 힘 없는 아이들이 지금도 AIDS와 같은 질병과 기근 속에 내전 속에 죽어가고 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제서야 죄의 문제를 인정합니다. 어느 누구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한 번은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사가는 것에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사가는 데에는 길일과 흉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결혼식도 마찬가지구요. 그래서 이사가기 좋은 날에는 이사짐 센타가 불이 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른 날, 소위 흉일에는 별로 사람이 이사를 가려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길일도 아니고 흉일도 아닌 날이 있는데 그것이 숫자로 9가 들어가는 날이라던가 하면서,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그런것 생각하기 귀찮아 9자 들어가는 날에 이사를 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사 가기 좋지 않은 날이 이사 비용이 싸니 더 좋지 않냐 하고 웃었는데,

이사 가기 좋은 날이 어디 있고, 안 좋은 날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 좋은 날 아닌가요? 그 분들에게 “어느 날 이사 가도 다 좋은날입니다.”했더니 맞아요 하면서도 그 좋은 날에대해 다시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날이 어찌 사람의 삶을 주관 할 수 있으며, 사주팔자와 관상이 어찌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가 있겟습니까? 풍수지리가 어찌 인물이 나고 안나는 것을 결정할 수가 있겟습니까? 더욱이 오늘 날처럼 개발로 온 나라가 다 파헤쳐 졌는데 말입니다. 다 하나님 떠난 무지함에서 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말씀 36장 10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한글개역에서는 “주를 아는 자”라고 하는데, 그렇습니다. 주를 아는 자에게, 주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찿아온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시18편 1절에서 “나의 힘이신 주님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라고 신앙을 고백합니다. 그리고서 다윗은 주님은 나의 반석, 요새, 건지시는 분, 피할 바위, 방패. 구원의 뿔, 산성이라 합니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습니다. 다윗에게 이렇게 다가오신 여호와 하나님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같은 주님으로 찿아오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에게 찿아오시는 주님의 모습을 우리는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 중에,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하시니 사마리아 여인이 “선생님은 유대 사람인데, 어떻게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라고 답합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요4:10 말씀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알고, 또 너에게 물을 달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았더라면, 도리어 네가 그에게 청하였을 것이고,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가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또한 무엇을 몰랐다고 하십니까? 주실 선물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그 선물을, 그 생수를 청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대화가 죽 진행이 됩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에대해 “선생님, 선생님”합니다. 잠시 후에 예언자라 합니다. 그 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요4:22말씀입니다. “너희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우리가 아는 분을 예배한다”고 합니다. 아!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예배드릴 대상입니다. 주님이시며, 메시야 구세주이십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어 부활하셔서 나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신 영원하신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29절에 보면 어렴풋이 “그분이 그리스도가 아닐까?”합니다. 그리고 42절에서 보면 동네 사람들을 통해 고백되어집니다. 세상의 구주이심을 알았”다고 합니다.

요한 복음을 1장~4장을 보면, 그 이후의 생명의 빵에대한 논쟁에서도 보면 예수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줄 때 유대인들이 집요하게 물어본 것이 너의 정체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를 염두에 두고 집요하게 요한에게 네가 누구냐고 묻지만 요한은 자신이 메시야가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그리고는 요2:26에서 이야기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이가 한 분 서 계시오”합니다. 그러면서 요한은 예수에대해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1:29,36에서 거듭 이야기합니다. 유대인들은 예수가 누군지 모릅니다. 율법에 평생을 바친 바리새인들이 그들이 무시하는 사마리아 여인이 알고 받아들인 메시야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요2:9이하에서도 볼 것 같으면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들 때에도 그 포도주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였으나, 물을 떠 온 일꾼들은 알았다는 것입니다.달란트 비유에서 한 달란트를 받고 땅에 묻은 사람은 주인이 굳은 분이어서 무서워 물러가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었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니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안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수요일의 호세아서 공부를 통해 호세아 예언자가 이스라엘에게 거듭 이야기하는 것은 무엇이었나요? 호4:1에 보면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사랑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다.”
또 6절에서는
“내 백성이 나를 알지 못하여 망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6:3절에서는
“우리가 주님을 알자, 애써 주님을 알자”고 합니다.
또 2:20절에서는
“내가 너에게 성실한 마음으로 너와 결혼하겠다.
그러면 너는 나 주를 바로 알 것이다.”라고 합니다.

호10:13에서 보면 이스라엘은 밭을 갈아서 죄악의 씨를 뿌리고, 반역을 거두어서 거짓의 열매를 먹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무지함,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의 죄된 모습입니다. 자주 말씀드리지만 딤후3장의 말세의 때를 보면 바로 그대로입니다. 밭을 갈아 뿌리는 것이 모두 악합니다. 1절에 어렵다고 하는데, 한글 개혁에는 고통하는 때라고 합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며 이 말씀이 옳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을 선택해도 고통스러워 한다는 것입니다. 아파트를 사도, 좋은 차를 사도, 웰빙을 위해 무공해 식료품을 비싸게 사서 구해 먹어도, 자녀를 좋은 학원에 보내 교육을 시켜 보아도 그 선택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지는 않는지요?

오늘 말씀 시36:1절에서 다윗은 이 죄에대해
“악인의 마음 깊은 곳에는 반역의 충동만 있어,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조금도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모르는 모습에 교회가 책임이 있습니다.호세아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에대해 무지한 것이 제사장의 책임이라고 호3:6에서 단호하게 말씀합니다.오늘 인류가 직면한 이 위기에대해 교회는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대하여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또한 해방 이후의 이 나라의 역사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꼭 물으실 것입니다.

하여간 이러한 어두운 상황 속에서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다시 한 번 우리 교회에 주신 하나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생명의 샘이 주님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빛을 받아 환희 열린 미래를 봅니다.”

오늘 설교 제목처럼 ‘빛을 받아 환희 열린 미래’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할 까요? 그렇습니다. 오늘 10절 말씀처럼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힘써 아는 것입니다.

지난 16일 수능시험이 있었습니다. 매 년 언제 이 입시위주의 교육이 멈추어질 수 있을까? 왜 이렇게 교육이 망가졌을까?라는 질문을 해 봅니다.그런데 17일자 한겨레 신문에 도종환 시인이 입시생들에게 위로의 편지를 써 보냈는데 참 좋았습니다. 이것이 시인의 마음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시대, 이 사회를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살벌한 정글이 아니라 공존 공생해야 살아갈 수 있는 삶의 터전이라고 생각해야’한다고 이야기 해 줍니다. 저 애 보다 더 잘 해야지가 아니라, 지난 번 보다 더 잘해야지 라고 생각을 바꾸어 보라고 하면서 세상 모든 또래들을 적으로 삼기보다 그들도 나와 함께 세상을 살아갈 동반자들이라는 생각을 가져달라 하면서
“우리 인생은 바라는 것을 다 얻어 손에 쥐어야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결핍의 여백이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우리를 밀고 가기도 합니다”라고 따뜻하게 수험생들을 품어 주었습니다. 도종환 시인의 삶의 지혜를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 졌습니다. 편안해 졌습니다.

오늘 왜 도종환 시인의 이야기를 전했는가 하면 도종환 시인이 우리 수험생들을 날개로 품어주는 느낌을 받았는데, 오늘 우리가 읽은 7절 말씀에 도 보면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값지다고 하면서 ‘사람이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하여 숨습니다.’라고 시인은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도종환 시인은 우리 수험생을 따뜻하게 품어주는데, 수험생 보다도 더 힘들고, 이미 생존의 경쟁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 어른 들의 삶에대해 우리는 어떤 위로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났습니다.

그러면서 수험생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우리 어른들에게 역시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이 시대, 이 세상을 바라 볼 때 물론 어둡고, 절망적이지만, 치열한 생존의 현장이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힘써 하나님을 알고자 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며 인도하시는 은혜를 바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빛을 받아 환희 열린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프로그램으로 말고, 천박한 자기 이기주의 말고, 율법, 제사, 그리고 성전과 같은 종교적으로 말고, 사마리아 여인과 같이 자기가 만난 분이 자신들이 그렇게 애타게 찿던 정말 메시야인지 설왕설래 하면서 겸손히, 진정으로 하늘자리 비우고 이 땅에 오신 주님의 마음으로 힘써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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