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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마음을 일깨우려고(2006년 11월 5일,성령강림절후스물두번째주일)

하늘기차 | 2006.11.05 15:48 | 조회 2298


순수한 마음을 일깨우려고

2006년 11월 5일(성령강림절후스물두번째주일) 벧후3:1-3

수요일에 호세아서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호세아는 북 이스라엘이 멸망하기 직전 북 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예언자로서, 정치, 경제,는 물론이요 종교에 이르기 까지 모두 퇴락한 시대입니다. 남쪽 유다도 역시 북 이스라엘이 멸망한 후에 정신을 차려야 했지만 북 이스라엘이 걸어간 길을 그대로 답습합니다. 그나마 남 쪽 유다에서는 히스기야왕이나, 요시야 왕 같은 개혁적인 왕이 등장하여 우상을 제거하고, 제도를 개혁하고, 종교적 틀을 새롭게 바꾸어 보지만, 이미 국운은 쇄하여 결국 B.C 586년에 바벨론에 멸망하고 맙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라가 우상으로, 부정과 부폐로 신음할 때, 예언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나라의 제도, 법, 기구 개혁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변화, 마음을 새롭게 하기를 원합니다. 호세아 예언자도 보면 이미 나라가 멸망으로 기울었으며 하나님의 진노가 임박했다고 하면서 회개하라고 촉구합니다. 희망은 제도나 법을, 기구를 개혁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회개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는 것 외에는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여전히 하나님 보다는 이웃 강대국을 의지하고 진정으로 하나님께 회개하기 보다는 하나님 원치않는 제사, 형식적인 제사를 드립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을 알자고 거듭 촉구합니다. 호6:6에서도 보면
“내가 바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랑이지, 제사가 아니다.
불살라 바치는 제사보다는 너희가
나 하나님을 알기를 더 바란다.“고 외칩니다.또 3:6에서도 보면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 리라 하리라”고 합니다.

몇 일 전에 한겨레 신문에서 권정생 선생님을 인터뷰한 내용의 글이 실려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차를 타고 이곳에 온 게 하나님 뜻인가요?”

이 목사 옆에 다소곳이 앉아 있던 권 선생이 말문을 열었다. 무슨 일을 하든 관성적으로 ‘하느님의 뜻’에 갖다 붙이는 그리스도인들의 ‘습관적인 말’에 대한 일침이었다.

“이라크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사람들에게 그 많은 고통을 주는 것도 하나님의 뜻인가요? 인간이 한 것이지요.”

권 선생은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마을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낙엽만이 침묵의 공간 속을 뒹굴었다. 마침내 여든여덟살 난 마을 할머니 얘기를 꺼냈다.

“할머니가 네살 때 부모가 일본으로 끌려갔다. 그 뒤 아직까지 소식을 모른다. 그는 지금도 ‘아버지 어머니가 나를 버렸을까’ 아니면 ‘어쩔 수 없이 못 오셨을까’만 생각한다. 결혼해 자식 손자까지 다 있는데도 할머니는 아직까 지 네살짜리 아이로 살아가고 있다. 그것도 하느님 뜻인가. 하느님이 일제 36년과 6·25의 고통을 우리에게 주었는가?”

권 선생은 “아니다”라고 자답했다. 그 고통 역시 “인간 때문”이라는 것이다. 얘기 중에도 허공을 응시하는 듯한 눈으로 산과 들과 마을을 바라보던 그가 다시 마을 얘기를 이어갔다.

인간이 저지르고 하느님뜻이라니… 말끝을 흐립니다.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하는 일이 모두 자신의 이기적인, 개인적인, 욕심의 일을 합니다. 이 시대의 신앙을 바라 보며, 이제 좀 하나님의 이름을 감추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 의 성도들이 관행적으로 주님의 은혜다, 주님이 인도하셨다. 주님이 함께하셨다고 합니다.

창세기에서 요셉의 이야기를 보면 다른 믿음의 조상들과는 다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한 번도 말씀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 하나님이 등장하는가 하면 보디발 장군의 입을 통해, 그리고 감옥의 간수를 통해 언급이 된다는 것입니다.

창39:3을 보면
“그 주인은,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며, 요셉이 하는 일마다 잘 되도록 주님께서 돌보신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듯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사람을 통해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한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간수장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하심을 드러냅니다. 또한 요셉 자신의 신앙 고백을 통해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드러냅니다.

출3장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 앞에서 신발을 벗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서 모세는 스스로 신발을 벗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벗으라 해서 벗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비 앞에, 하나님의 비밀 앞에, 타지 않는 가시 떨기 불꽃 앞에서 신발을 벗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신비요,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겸손히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살아가면서 얻은 것, 경험한 것, 계획하는 것, 삶의 틀, 사고, 느낌들 까지도...모두 다 신비 앞에 내려 놓을 때가 있습니다.

타지 않는 가시떨기 불꽃을 보고 왜그런가? 하고 다가서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아!과연 모세로구나, 참 잘 왔다, 어서 와서 보아라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출3:5에서
“이리 가까이 오지 말아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너는 신을 벗으라”고 합니다.

모세는 불 붙는 가시덤불의 현상을 자신의 관점에서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야, 그렇게는 안된다. 신발을 벗어라. 너의 생각에 나를 넣으려 하지 말아라. 너의 이념으로 가시떨기, 하나님의 불꽃을 보지 말아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십자가와 부활, 성령의 역사, 교회를 자신의 생각, 자신의 삶의 틀, 종교의 틀로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으면 어떨까요? 반듯하고 위풍 당당하기 보다는 뒤뚱 뒤뚱 불안정합니다. 하나님의 신비, 비밀 앞에 서는 모습은 당당하기 보다는 겸허한 모습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하면서 이 곳은 거룩한 땅이니 신발을 벗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모세가 지금 서있는 곳은 황량함, 고독함, 승냥이가 들끓는 버려진 사막이요, 버림받아 쫒겨난 곳입니다. 실패하여 물러난 이 곳은 거룩할 수가 없는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가 서 있는 곳이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찿아 나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찿기 위해 거룩한 장소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찿아 오는 곳, 그 곳이 거룩한 곳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모세를 찿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어디에 있든지, 그곳이 참혹한 죽음의 자리, 어두움의 곳, 설사 저주받은 곳이라 할지라도, 그 곳에 하나님이 찿아 오신다면 그 곳은 거룩한 곳입니다.

마치 빛이 어두움을 비추는 것과 같습니다. 냄새나는 외양간에 아기 예수님이 오시자, 그 곳은 축복이요, 기쁨이요, 평화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려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하나님을 만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신발을 벗어야 합니다. 우리 예배당도 신발을 벗고 들어옵니다. 신발을 벗어들고 신발장에 신발을 가지런히 놓고 그리고 통 창 유리문을 열고 사뿐히 걸어 들어 올 때 상쾌함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겸손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주님 오시옵소서!”하는 것입니다.

이 전 까지 모세는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많이 해 드려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고,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 최선을 다 하다가 동족들에게 버림받는 비참함에 이르렀습니다. 이 참담함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였고, 이스라엘 동족을 위해서 였습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잘 못하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러한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와 함께하는 것입니다. 나만 홀로, 아니면 우리들이 무엇을 드리고, 바치며, 위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애쓰고 수고하며, 전심전력하는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은혜입니다. 임마누엘입니다. 구원의 은혜인 것입니다.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빠인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마리아는 오빠의 죽음에 어찌할 쭐을 몰라하며, 오빠의 죽음 앞에서 통곡하며 웁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돌아온 마르다가 마리아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고 합니다. 마리아는 놀랍니다. 이 죽음의 자리에 주께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포도주가 떨어진 혼인잔치에 오셔서 잔치의 흥을 돋우신 분이십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찿아 오셔서 떡을 떼며 함께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은밀히 우리에게 찿아오십니다. 구원이요, 은혜입니다. 찿아오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넘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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