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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 자유의 근원(2006년10월15일,성령강림절후열아홉번째주일)

고기교회 | 2006.10.15 14:20 | 조회 1912


안식일, 자유의 근원

2006년10월15일(성령강림절후열아홉번째주일) 신5:12-15;막2:23-28

오늘 읽은 신명기 말씀은 모세의 십계명중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계명입니다. 이 계명을 접할 때 마다 느끼는 것은 어떻게 교회로서 이 말씀을 잘 지킬 수 있도록 전하며, 가르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왜냐하면 이 말씀이 대략 3,500년 전에 세워진 법인데, 오늘 이 시대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예배당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이 날은 주일입니다. 그러니까 엄밀히 이 주일은 안식일이 아닙니다. 안식일은 금요일 해 질 무렵에서 시작되어 다음 날 토요일 해 질 무렵 까지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과 중동의 이슬람들은 이 안식일을 자신들의 종교의 날로 정하여 지키고 있습니다. 아주 엄격히 지킵니다. 상가, 버스, 모든 일상의 행동을 멈추고, 오직 모세의 율법대로 이 날을 지킵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목격한 여인들에대해 기록할 때 성경은 모두 그 목격한 날에대해 ‘안식 후 첫 날’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주일은 안식일이 지난 바로 다음 날입니다. 이 날 새벽에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바로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 때는 처음에 안식일과 주 일을 다 지켰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 수록 정체성에대한 혼동이 오면서 기독교와 유대교 사이에서 여러 가지 갈등이 생겼습니다. 막2:1-3:6은 바로 그 갈등구조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죄에 대해(2:1-12) 유대인들은 윤리, 율법으로 보지만 예수님은 죄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바라봅니다. 또 2:13-17을 보면 교회론적인 문제가 발생합니다. 유대인들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기를 거부하는데, 예수님은 세리, 창기,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십니다. 금식에대하여, 그리고 안식일에대하여는 2:23-28 그리고 3:1-6에 두 번이나 안식일 때문에 갈등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오늘 말씀은 그 중의 한 본문입니다.

최근 안식일에대한 뜻이 와전되고, 변질되어 안식일이 안식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이 안식일에 대해 우리가 먼저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안식일을 법, 계명, 명령 등 경직된, 화석화 되어버린 계명으로 보지 말자는 것입니다. 실제로 3,500년 전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이 말씀을 받을 때 애굽의 바로 밑에서 노예 생활하던, 스스로 설 수 없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제는 노예로서가 아니라 자유자로서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의 말씀을 통해 그 당시 노예로 살면서 우상에 찌들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참 하나님을 알려주었고, 이리 팔리고, 저리 팔리는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던 그래서 가족의 개념이 없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족 공동체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자기 소유에대한 개념도 희박했을 것입니다. 힘센자가 임자라는 식이었을 텐데, 도둑질하지 말라,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말씀을 통해 상대방의 것을 소중하게 여길 줄도 알게하였습니다. 남녀의 성적 유별이 희박하여 근친상간의 무질서함도 팽배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십계명을 통해 이런 무질서함에 질서를 세워 주셔서 서로 간의 피해를 주지 않으며 자유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자유는 질서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지 않고 나의 것을 최대한 펴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자유를 오래 누린 사회, 국가 일수록 다른 사람의 권익에대한 보다 섬세하고, 자세하게 관심을 가져 주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사회가 보다 성숙해 질수록 좀 더 사화주의 복지 개념으로 국가가 지향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계명이라는 것이 법, 명령, 규칙 등 딱딱한 경직된 방향성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자유를 지향하는데, 자유를 깊이 느끼고, 체험하여 자유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면, 느낄 수록 좀 더 남에게 배려하고, 관용하며, 사려 깊게 행동하게 됩니다. 그럴진데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율법의 본 뜻은 어디있다고 말씀하십니까?그렇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사도 바울도 갈5:13에서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셔서,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자유를 육체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구실로 삼지말고, 사랑으로 서로 섬기”라고 합니다.

율법은 결코 경직되고, 딱딱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사랑이 깃들어 있고, 자유의 축제가 그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실제 글자 그대로 오늘 말씀 신5:12-15을 보면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 하면서, 자신만 쉬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딸린 식구들, 종, 여종, 외국인들, 하물며 가축 까지도 쉬게 하며, 이것이 더 확대되어 논과 밭도 쉬게 합니다. 이 말씀이 선포 되었을 때, 혹사 당하던 노예와 종들은 얼마나 기뻤을까요? 요즈음은 비 정규직 노동자, 특히 외국인 노동자들의 작업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모릅니다. 이 4번째 계명은 법이 아니라, 이 법을 듣는 사람과 그와 함께하는 모든 사람, 가족, 길손, 외국인, 가축 모두가 환희요, 축제의 기쁨을 맛 볼 것입니다.

그러면 이 율법의 자유는 이 율법의 어디로부터 흘러 나올까요? 오늘 말씀 신5:12에 보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합니다. 어떻게 지키는 것이 거룩하게 지키는 것일까요? 약1:27에 보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깨끗하고 흠이 없는 경건은, 고난을 겪고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주며, 자기를 지켜서 세속에 물 들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거룩하고 경건하다는 말 속에는 다른 것들로부터 구별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내가 다른 사람들과 차별의 근거가 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 사랑과 더불어 이웃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게 구별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배타시키는 차별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품는 차별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자기 자신 먹고 살기에 바빠 보다 많은 이익이나, 또는 다른 것들을 얻기 위해 열심히 땀을 흘리는데, 경건한 사람들은 한 숨을 돌이켜 낙오된 사람이 없나, 다친 사람 없나, 주저 앉은 사람 없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사람 없나 살펴 함께 결승점을 향하여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핀잔을 들은 것도 바로 이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의 열심, 바리새인의 경건에 어려움 당하는 이웃에대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바로 규칙, 규례요, 법, 계명이 되지만, 그래서 분리주의가 되지만, 예수님께서 오늘 보면 말씀에서 보듯이, 제자들이 안식일에 벼이삭 따서 먹은 것도 그렇고, 바로 다음에 나오는 안식일에 한 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손을 펴 주는 일에서도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지 않다고 분명히 못 밖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한 안식일이 될 수 있을까요?오늘 본문인 마가복음 28절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인자는 또한 안식일에도 주인이다.”라고 합니다. 아! 그렇구나, 이 안식일 논쟁에는 근원적인 문제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도”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것들은 물론이거니와 안식일도 역시 오너(OWNER), 주권은 아버지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첫 번째 계명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첫 번째 계명이 무엇인가요? 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것은 첫 번째 계명과 관련되어 있으며, 그렇다면 이것은 하나님 섬김의 절대절명의 말씀인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안식, 즉 쉼으로부터 오는 이 자유는 창조주 하나님에대한 섬김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섬김일까요? 이 섬김은 다른 섬김과 구별이 됩니다. 어떻게 구별이 될까요?

마11:28에서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내가 너희를 쉬게하리 라”고 합니다.
그런데 쉬는 것을 잘 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공휴일, 주일, 연휴, 이 번 추석 명절의 거의 10일에 가까운 휴가 기간에 출국하는 항공기 편이 동이 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보면 쉬는 날 더 고생스러운 경우가 십상입니다. 추석명절에 추석증후군 같은 스트레스성 병이 있듯이 쉬는게 쉬는 것이 아닌경우가 흔하다는 것입니다. 명절에 오장육부가 더 힘들어합니다. 고기를 잔뜩 먹고 위에 부담을 주고, 술을 그 날 더 마셔,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가 되어 속을 상하게 합니다. 쉬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그 날 한 번에 날려보내려고 합니다. 힘겨웠던 것들을 쉼을 통해 조용히, 그리고 편하게 풀어야 하는데, 말초적인 즐거움을 따르며 긴장감을 해소하는데 그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다.

창2:3에 보면
“이렛날에 하나님이 창조하시던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으므로, 하나님은 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월에서 토요일 까지 계속되는 것에서 구별하신 것입니다. 빛과 어두움, 시간과 공간, 하늘과 땅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마지막 날 물질로 마무리 하지 않으시고 구별지어 복된 쉼으로, 영으로 마감하였습니다. 하나님 다우신 마침입니다. 하나님 형상으로 만들어진 우리도 마땅히 하나님을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창조의 마지막을 만물의 영장인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은 인간의 창조로 마감하는 것이 아니라, 안식을 정하셨습니다. 창조의 완성, 창조의 화룡정점은 인간이 아니라 안식이요, 거룩에 두었습니다. 쉬었기에 복되고 거룩하십니다. 땀흘려 일하였기에, 그것을 높이고 축복하며, 거룩하다고 한 것이아니라, 창조를 마치고 쉬었기에 복을 베푸시고, 거룩하다 하였습니다.

언젠가 ‘달마야놀자’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습니다. 참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그런데 조폭들이 도피한 절의 스님과 시합이 붙었습니다. 족구도 하고, 여러 가지 경합이 붙었는데,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자 마지막으로 주지스님이 숙제를 냅니다. 여기에 항아리가 있는데, 이 항아리에 물을 먼저 가득 체우는 쪽이 이긴다는 것입니다. 힘께나 쓰는 사람들이, 그리고 서로가 이런 일에는 자기내 쪽에 승산이 있다고 즐거워 하면서, 물을 퍼 넣으려고 하는데 보니까, 말 그대로 밑 빠진 독입니다. 기를 쓰고 물을 체워 넣으려고, 신발에 물을 받기도 하고, 나중에는 깨진 독을 몸이 뚱뚱한 사람인데, 스님인지, 조폭인지 생각이 안나는데 거꾸로 배 위에 올려 놓고, 배로 구멍을 막아 물을 체우는데, 이런 방법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방법으로 항아리에 물을 체운 편이 있습니다.

어떻게 했는가 하면, 밑 깨진 독을, 연못 속에 그대로 빠뜨린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연못 속에 가라앉았지만 밑 빠진 독에 물이 가득차 주지스님이 그 편의 오른 손을 들어주었던 장면이 떠오릅니다.쉼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을 물 속에 빠뜨려 독에 물을 가득체우는 것은 참 편합니다. 가진 수고를 다하여도 항아리에 물을 체우지 못하였는데,독을 물에 빠뜨리므로 한 번에 독에 물을 가득 체웠습니다.

참 안식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안식은 월요일에서 토요일 까지의 날과는 전혀다른, 질적 차이가 있습니다. 앞에서 안식일은 첫 번째 계명과 관련이 있다고 하면서, 그렇다면 이것은 섬김의 문제라고 하였습니다. 호세아서를 공부하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참으로 섬기지도 못한다고 하면서 탄식하시는 것을 보는데, 어떤 섬김일까요, 하나님을 섬기는 다른 것과 어떻게 다를까요?

우리 모두 일곱째날, 바로 오늘로 지키는 이 날, 생명을 고갈시키는 눈에 보이는 일체에서 벗어납시다. 일의 중독, 과욕, 경쟁, 생산력증가, 정보화 시대, 나라를 위해, 교회를 위해, 국가를 위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등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서 영과 육이 쉼을 얻을 수 있도록 멈추어야 합니다. 쉴 수 있는 분은 복이 있으며, 거룩합니다.

나를 붙잡는 모든 것에서 일탈하여, 피하여 정할 때, 나가 아니라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말씀과 이웃이 보입니다. 참 자유와 참 사랑의 섬김입니다. 이 섬김은 땀흘려 봉사하는 섬김이 아니라, 땀을 거두고, 멈추어 하나님의 은혜 속에 푹 잠기는 섬김입니다. 자기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듯을 세우고 하는데에는 열심인데, 모든 것을 멈추고,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 돌리는 섬김에는 좀이 쑤셔 견디지를 못합니다. 마치 핸드폰 중독에 걸린 아이들이 핸드폰이 없어지거나 하면 금단에 걸린 것 같이, 우리도 아무것 하지 않고 편히 하나님의 은혜 속에 마음편히 쉴수 있는 참 귀한, 복 이 있는, 그래서 거룩한 섬김의 쉼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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