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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들의 나라(2006년9월24 ,성령강림절후열여섯번째주일)

하늘기차 | 2006.09.24 18:10 | 조회 2168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

2006년9월24 (성령강림절후열여섯번째주일) 골1:9-20

사도바울은 교회에대하여 권면할 때 꼭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에 충만하라는 말씀이 옥중 서신 에베소, 빌립보, 골로새에서 거듭 나오고 있는 것을 봅니다. 이어서 또 반드시 언급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합당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말씀 골1:10,11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주님께 합당하게 살아감으로써, 모든 일에서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리고 모든 선한 일에서 열매를 맺고, 하나님을 점점 더 알고, 하나님 영광의 권능에서 오는 모든 능력으로 강하게 되어서, 기쁨으로 끝까지 참고 견디기를 바랍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12절입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리하여 성도들이 받을 상속의 몫을 차지할 자격을 여러분에게 주신 아버지께, 여러분이 빛 속에서 감사를 드리게 되기를 우리는 바랍니다.”

한 마디로 우리가 누려야할 좋은 것들을 누리면서 살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내가 구해야할 꼭 필요한 것 말입니다. 나의 욕심이나 또는 스스로 열등감에 사로 잡혀서, 아니면 교만하여서, 아니면 눈에 보이는 것들에 붙들리고, 세상의 풍조나 흐름에 붙들리어, 나의 환경과 삶에 붙들리어, 자기 연민의 정에 빠져서(하나님을 향한, 이웃을 향한 연민이어야 하는데) 참으로 바래야 할 것들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구하지 않아도 될 것이나, ‘그것이 아닌데’하는 것이나, 길이 아닌 곳으로 우리의 삶이 뻗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마땅히 구해야 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해 두신, 계획하신 귀한 것을 누리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합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합당함은 노리적으로, 그리고 윤리적으로가 아니라 복음 앞에,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합당한 삶입니다.


합당하지 못하면 우리의 마음이 왜곡되거나, 무엇엔가에 눌려 있거나,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할 좋은 것을 옆에 두고도 그냥 귀하게 여기지 못하게 됩니다. 또한 기뻐해야 할 것을 기뻐하지 못하고, 감사해야 할 것을 감사해 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살전 2:12에서도 보면 사도 바울은

“우리는 여러분에게 권면하고, 격려하고, 경고하는데, 그것은 여러분을 부르셔서 당신의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하게 살아가게 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성도들이 받을 상속의 몫을 차지하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어 지는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늘 13절 말씀에

“아버지께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셔서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불러주셨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역이민을 한다고 하는데, 최근 까지만 해도, 아니 그래도 여전히 미국에서 살고 있는 가족이나 친지가 미국으로 초청을 하면 사람들은 그 곳에서 살게 됩니다. 처음에는 비자만 가지고 생활하다가, 영주권을 얻고, 그리고 시민권을 얻으면 이제 미국이라는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제3세계의 사람들은 미국 시민권을 얻으면 매우 좋아합니다. 오래 전에 상영되었던 안성기, 장미희 주연의 ‘깊고 푸른 밤’이라는 영화도 그런 이민의 애환을 소재로 한 영화이기도 한데, 야구나 농구, 그리고 골프 같은 운동 선수들도 미국의 스포츠 리그에서 뜀으로 물질과 명예를 얻습니다. 아니 이제는 지구촌이 하나라는, 경제적 개념으로 인하여 영어를 모르면 경제 할동 자체가 어려워지는 시대로 들어가니까, 요즈음은 영어 연수 때문에도 여전히 american dream은 계속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그러나 이 american dream은 9.11 무역센타의 붕괘로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제 미국은 더 이상 꿈의 나라가 아니라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일으키는 폭력을 일삼는 지구 상에 유일하게 전쟁을 일으키는 나라라는 오명을 쓰는 처지로 전락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처럼 우리를 불러주신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는 어떤 나라 일까요? 13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셔서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을 건져 내시어 광야 40년 길을 이끌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그 내용과 일치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한 죄수를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며 단 번에 구원하신 내용과 같습니다.

우리 나라는 대통령 중심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지혜로우면 온나라가 그 지혜를 맛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자비로우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소위 말단 공무원, 이 단위의 작은 마을,더 나아가 작은 섬 마을 오두막 밥상 위에 까지 그 자비가 밥상 위에 올라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왕이 지혜롭지 못하고, 포악하면, 뱀 같이 모사를 부리면 온 나라가 폭력, 부정, 부패, 그리고 도박, 알코홀, 마약 같은 황폐함에 이르기 까지 우리의 식탁의 반찬 한 가지에도 이러한 퇴락의 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현대에 이르는 50 여년 동안 참 안타까운 나라입니다. 경제성장에 올인 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너무 많은 것들을 댓가로 지불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는 어떨까요? 즉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 말입니다. 과연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에서는 어떤 일들이 생겨날까요?

이 시대의 소중한 영성가인 헨리 나우웬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명예와 같은 세상의 가치를 버리고 중증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는 ‘데이 브레이크’라는 장애인 공동체의 자원봉사자로 들어갑니다. 여기서 그는 아담이라는 중증 장애인을 만납니다. 아담은 말도, 듣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장애가 심한 사람인데, 도와주어야 먹고, 입고, 싸고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아담을 처음에 만났을 때에는, 아담을 어떻게 안을지, 욕조 속에 넣어서 씻길지, 머리를 감기다가 비누 거품이 눈에 들어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한 달, 두 달 지내면서 익숙해 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아담을 만나면서 알게된 것은, 함께하기 위해 오면 자기에게 모든 것을 다 맡기고 평안하게 자기를 돕는 손길을 즐거워하며, 기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일정이 급하고, 빡빡하여, 시간에 쫓기어 인격적인 교감없이 서둘러서 짐짝처럼 그를 공동 교육 장소로 옮기려 하자, 벌써 그 급함을 깨닫고는 천천히 할 것을 눈으로 말하면서, 급기야 발작 증세를 보여, 결국 차분하게 인도했다고 합니다.

아담은 자기에게 끊임없이 일깨워 주었습니다. 부드럽고, 급하지 않게, 조용히, 아담을 만나면서 나우웬은 새로운 삶의 질서를 배우며 그 변화에 따랐다고 합니다. 나우웬은 아담에게 맞추기 위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일상적인 일들을 통해서, 예를들어 날씨가 어떤지? 오늘은 어떤 옷을 입을지? 무엇을 먹을 지? 그리고 기도 생활에 이르기 까지 조금씩, 조금씩 아담은 헨리 나우웬의 삶, 아니 존재의 근원에 까지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아담을 통해 나우웬은 참 생명의 근원을 노크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아담과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귀한 시간이 되었고,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일, 즉 남을 가르치고, 설교하고, 세미나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고, 기득권을 얻고 하는 일의 가치 보다는 아담과 함께 있으면서 영적 평안함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과는 느낌이 다릅니다. 헨리 나우웬은 아담을 통해 무엇을 느꼈을까요? 나우웬은 아담을 통해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나우웬은 어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까요? 그렇습니다. 중증장애인 아담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힘 없음을 느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로 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 예수의 무엇을 보고 흡족해 하시며 기뻐하셨을까요?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힘 없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변화를 받은 직후에 들려온 소리도 역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 예수의 무엇을 보고 흡족해 하시며 기뻐하셨을까요? 그렇습니다.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힘 없음입니다.


십자가는 힘 없음입니다. 에이 십자가는 능력이요, 권능인데요, 아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그 능력이 힘 없음의 능력입니다. 에이 그건 말이 안됩니다. 어떻게 힘이 없는데 힘이 있습니까? 간단합니다. 예수는 힘이 없는데 아버지 하나님은 힘이 있으십니다. 에이 그게 그거네, 솔직히 예수님은 능력이라고 이야기 하지! 뭐 예수는 힘 없는데, 하나님은 힘이 있다고, 횡설 수설 합니까? 할지 모르겠으나, 그 하나님의 힘은 바로 사랑의 힘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힘없이 십자가에 매달리셨습니다. 예수님의 힘은 십자가의 힘 없음에서 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함께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능력을 십자가에서 다 버리시고 힘 없이 되셨습니다. 빌2:7,8에서 사도 바울은 이 예수의 모습을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라고 합니다.

아! 그렇습니다. 이제 알겠습니다. 예수의 십자가의 힘 없음은 스스로 약해진 것이거나, 본래 약한 것이 아니라, 순종으로부터 오는 약함입니다. 그런데 이 순종은 어느 정도의 순종인가요? “십자가에 죽기까지”의 순종입니다. 왜 죽기까지 순종해야 할까요?

창세기 3장에서 뱀이 화와를 유혹할 때, 하와가그 열매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합니다.그런제 뱀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에대한 불순종을 죽기로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죽기를 각오하고 사탄의 을 따른 것입니다. 죽기까지 아버지 하나님을 불순종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죽기까지 순종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이런 순종이 어디서부터 올까요? 아버지 하나님에대한 신뢰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예수님이 하나님에대한 신뢰 속에서 자기를 낮추는, 죽기 까지 낮추는, 십자가의 죽음의 그 순종, 그 신뢰를 중증장애인 아담으로부터 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순종을 빌1:5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 마음을 품으라고 합니다. 마음 속에 고이 간직하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오늘 이 세상 속에 악과 싸우기 위해 능력과 힘을 가져야 한다고 합니다. 가끔 교회에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교회가 해야 할 일을 논하다 보면 그래도 교회가 힘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도 성도가 물질이 있어야, 물질 축복을 받아야 남을 도울 수 있다고 합니다. 교우 여러분! “그건 아니잖아입니다.”

그것은 주제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적어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에서는 중심이 될 수 없습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마음, 즉 죽기까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보여주신 힘없음이야 말로 본 받아야할 마음입니다.

접시꽃 당신의 도종환 시인의 시에 “깊은 물”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 물이 깊어야 큰 배가 뜬다.
얕은 물에는 술 잔 하나 뜨지 못한다.
이 저녁 그대 가슴엔 종이배 하나라도 뜨는가
돌아오는 길에도 시간의 물살에 쫓기는 그대는 ...

얕은 물은 잔들만 만나도 소란스러운데
큰 물은 깊어서 소리가 없다.
그대 오늘은 또 얼마나 소리치며 흘러갔는가
굽이 많은 이 세상의 시냇가의 여울은 ... ”

개울엔 종이배가 뜨고, 큰 바다엔 여객선 화물선이 뜹니다. 사람들은 물을 보고 그 물에 뜰 수 있는 배가 어떤 배인지 압니다. 과연 우리 가슴에는 종이배 하나라도 뜰 수 있는지, 깊이와 여유를 지니고 있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마음의 깊이 보다는 자기 생각, 자기의 중심에 사로 잡혀 시냇물은커녕, 매마른 돌 밭이나, 사막이 되어 가고 있지는 않은지요?

종이 배처럼 작고, 가벼운 남의 아픔이나 슬픔, 고민 같은 짓을 조금도 담을 수 있는 마음은 이미 바닥이 드러난 마음입니다. 넓고 깊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만나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바닥이 낮고 낮아서, 그 깊이를 가름할 수 없는 정도로 깊어서 사람들의 상처와 웃음과 눈물이 섞여와도 다 푸근히 감싸서 정화시키고, 담아서 뛰울 수 있는 그러한 마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마음을 닮아가는 우리 모두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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