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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에 맞게 마음 아퍼함(2007년2월11일, 주현절후여섯번째주일)

하늘기차 | 2007.02.11 14:42 | 조회 2808


하나님의 뜻에 맞게 마음 아퍼함

2007년2월11일(주현절후여섯번째주일) 잠18:14;고후7:5-11

오늘 읽은 말씀을 다시 한 번 풀어서 읽어보면 이렇습니다. 정신, 즉 영이 건강하면 육적인 질병이나, 그 외의 고통 속에서도 그 아픔을 견디고, 참으며, 이길 수가 있지만, 그러나 ‘그 영이 병에 걸리면, 그 영을 누가 고칠 수 있겠는가?’라는 것입니다. 육적인 질병은 의술을 통해,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건강한 영으로 극복해 나갈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심령이 상처받고, 병이들면 어떻게 소생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육적인 질병이나, 불구의 고통 속에서도 그 영이 살아있어 온전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가 있습니다. 영이 살아있으니 기쁨, 감사, 그리고 평화가 그 생활 속에 나타납니다. (지선, 송명희)그러나 그 영이 상처를 입고, 병이 들어 죽어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영이 상처를 입고, 병이들게 될까요?

잠15:13에 볼 것 같으면 “근심하는 마음은 너를 상하게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공중의 나는새와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게 만든 세상이 우리를 얽어 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누려야 할 세상의 모든 것들이 오히려 우리들의 마음을 빼앗아가 버리고, 우리를 근심하게 하며, 결국에 가서는 심령에 상처를 입히고, 병들게 합니다.

한 편 어떤 사람은 욕심이 가득하여 세상의 것을 모두 차지하려고 합니다. 재물이고, 명예고, 권력이고, 예를들어 눅12:19에서 어떤 부자가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마음놓고, 먹고 마시고 즐겨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날 밤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데려가셨습니다. 아예 이 사람은 영혼의 기쁨이, 즐거움이 무엇 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향해 있어야 할 영혼이 지금 재물에게 완전히 뺏기어 버렸습니다. 정신이 나가 버렸습니다.

이러한 영적인 병은 좀 처럼 회복되기가 어렵습니다. 병원에서 심장 질환에 걸린 환자가 심장이 멎을 때, 강한 전기로 쇼크를 주어서 깨어나게 하듯이, 세상에 마음이 완전히 빼앗겨 버린 삶의 마음에서 돌아오게 하려면 강한 조치를 취해야 그가 돌아설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도 이렇게 하나님에대한 불감증에 걸려 있었습니다. 시장 거리에 나가 피리를 불어도 아이들이 춤을 추지 않고, 곡을 해도 울지 않는 그러한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무감각, 불신에서 오는 무감각을 깨우치기 위해 많은 이적과 기사를 베풀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볼 것 같으면 “그 정신이 꺽인다면”이라고 합니다. 한글개역에서는 “심령이 상하면”이라고 합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spirit’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정신, 영혼,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성서에서 영, 혼, 마음, 정신 등의 비슷한 말이 혼합되어서 다양한 의미로 여러 문맥 속에서 사용되고 있음을 봅니다. 그런데 그 원전을 볼 것 같으면 의미가 대충 2개로 나늬어 지고 있음을 보는데, 첫 째 혼, 또는 영혼은 네페쉬, 프쉬케, 영어로는 Soul 이라 하고, 둘째로 영은 루아흐, 프뉴마, 영어로 Spirit라 합니다.

그런데 이 히브리어로는 프쉬케, 헬라어로는 네페쉬라고 하는 혼, 또는 영혼은 생기를 부여받은 육체, 생명으로서, 온 신체의 부위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는 생명으로서 아파하고, 갈급해 하고, 기뻐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간구하고, 절망하기도 하는 영으로서 앞에서 말씀한 한 부자가 ‘영혼아! 즐거워 하여라’ 할 때의 그 영혼도 바로 이 네페쉬, 프쉬케입니다. 영어 성경의 경우에는 이 ‘영혼아!’라는 말이 ‘자기 자신’, 또는 ‘사람아!’로 되어 있는데, 바로 영, 또는 혼에대한 말입니다. 신명기서에서 “피는 생명이다”할 때에도 역시 그 생명이라는 말은 네페쉬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네페쉬나, 프쉬케는 주로 영어로는 soul로 번역이 되는데 영혼, 혼이라고 합니다. 마음, 정신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2번째 루아흐로 표현되는 영은 그 의미가 약간 다릅니다. 이 루아흐는 바람, 호흡, 역동성으로 표현되는데, 에스겔이 마른뼈 환상을 보고 “너희 속에 생기를 불어넣어, 너희가 다시 살아나게 하겠다.”고 할 때에 그 생기는 ‘루아흐’입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할 때의 생명의 기운도 바로 루아흐, 영어로는 Spirit인데 영어 성경에 보면 그 말을 그냥 원문 그대로 호흡을 불어 넣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로 인간의 육체나 정신적인 활동과 관련되어서는 주로 프쉬케, 즉 Soul, 우리 말로는 영혼, 또는 혼, 정신, 생각, 마음으로 폭 넓게 사용되는데, 그러나 루아흐, 즉 프뉴마, 영어로 spirit는 우리 말로는 주로 영으로 표현되는데, 성령은 바로 아기온 푸뉴마, 거룩한 영, Holy Spirit입니다.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라 할 때, 이 영은 영혼, 또는 혼이라 하지 않고,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영혼, 또는 그리스도의 혼이라 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영, 하나님의 영, 성령이라 하여 차별해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한글로 번역이 될 때는 서로 혼돈되어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언급되고 있는 정신은 바로 이 루아흐, 즉 호흡, 바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불어넣어주신 영, spirit인데, 바로 이 루아흐로서의 정신이 꺽이면, 즉 병에 걸리면, 이 영이 상처를 입으면 어떻게 고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영과 육은 구분지을 수 없습니다. 헬라 사상이나, 토속종교, 샤머니즘은 영과 육을 자꾸 분리시켜 생각하려 합니다. 필요에 따라서는 육과 영혼, 그리고 영을 따로 셋으로 분리하기도 하는데, 사도 바울도 그렇게 분리하기도 하는데, 그러나 성경은 전체적으로 영과 육을 따로 분리시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영과 육, 하나된 존재로서의 인간의 모습을 몸이라 합니다. 이 인간의 몸은 유기체입니다. 영과 육이 함께 느끼고, 함께 아파하고,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손가락이 바늘에 찔리면 온 몸이 아픕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으면, 위와 장에 벌서 반응이 옵니다.

마찬가지로 나의 영이 하나님에대한 찬양, 사모함을 잊어버릴 때, 기도 와 말씀, 그리고 감사가 뜸해질 때 보면, 벌써 근심과 불안함이, 무관심과 게으름 등, 나의 몸과 가정과 이웃에 온전치 못하고, 합당치 못한 것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영과 육은 나늬어 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차이나는 것이 있습니다. 마음이 답답할 때, 우울할 때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 어느 정도 세상 근심이 싸일 때, 운동을 하고, 노래를 하고, 친구와 대화를 하면 어느정도 풀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영이 답답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호흡해 주신 바람, 생기로 불어주신 영이 답답할 때 산에 가거나, 음악을 듣거나, 술 한잔 한다고 풀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베토벤의 sympony를 아무리 좋은 앰프를 통해 들어도,나의 하나님을 향한 답답함은 덜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때에는 찬양을 해야지요. 입을 크게 벌려, 내 마음을 온전히 주께 향하여 듣고 부를 때, 그 답답함에서 벗어나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니까 분명히 육과 구분되어지는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느끼는 영,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지, 아니면 멀리 있는지를 느끼는 영인 것입니다. 요 4:24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하셨습니다. 바로 영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으니 영적 존재로서 우리가 바로 서지 못 할 때, 영적 갈급함이 있는 것입니다.

잠15:13에 보면 마음의 근심, 상처가 심령을 상하게 한답니다. 인간은 영과 육이 하나입니다. 세상이 나에게 주는 염려가 루아흐인 영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성소인 영을 상하게 한다고 합니다. 영이 상처를 입으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갑니다. 세상을 살아 가면서 늘 주눅이 든 모습, 세상 죄는 홀로 다 진 모습. 예배당에 잔뜩 짐을 지고 와서, 그대로 어깨에 메고 내려놓지 못하는 모습, 찬양을 들어도, 말씀을 들어도 별 감각이 없고, 조금만 싫은 소리를 들어도 발끈하며 싸우려 하는 모습... 이렇게 염려와 근심이 그의 영혼을 짓 눌려 버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분임을 못 믿게 하는 불신앙이 싻틉니다.

살아있기만 하면 능히 질병이라도 참고, 견디고 싸워 이길 수 있는 영이 주눅이 들어, 병든 닭처럼 되어갑니다. 어떻게 하면 이 영이 소생할 수 있을까요? 고후10:7에 이런 말씀이 쓰여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마음 아파하는 것은, 회개를 하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므로, 후
회 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일로 마음 아파하는 것은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교우 여러분에게 한 가지 제의를 하고 싶습니다. 교우 여러분!세상 근심을 하나님을 향한 근심으로 바꿀 수는 없겠씁니까? 바울이 고린도후서를 쓴 것은 3차 전도 여행 때 인데,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발생한 여러 문제들, 즉 성적타락, 우상숭배, 방언문제, 파당짓는일, 먹는 것에대한 문제, 등등 시정을 촉구하는 편지를 썻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혹시나 그들이 그 권면에대해 분노하거나 시험에들지나 않을까, 걱정을 하고 있던 차에, 디도를 통해 고린도인들이 오히려 바울에대해 고무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소식을 들은 후에 바로 고린도 후서를 쓴 것입니다.

고후7:9에 보면 바울 자신이 지금 매우 기쁜데, 그것은 지난 번에 써 보낸 편지를 통해서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근심하게 되었고, 그 근심이 오히려 회개를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0절에서 바울은 세상 근심에 빠져서 죽음의 길로 행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대한 근심으로 회개의 열매를 맺으라고 합니다.

교우 여러분! 너무 세상 일에 빠져들지 말기 바랍니다. 자녀, 남편, 사업, 집, 건강... 밑도 끝도 없는, 마치 깨진 항아리에 물붓는 것 같은 세상일에 연연하지 말고, 세상을 볼 때, 하나님의 뜻으로 보기 바랍니다. 예수님도 공생애 동안 매우 바쁘셨습니다. 거의 식사를 할 시간도 없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분주함과 우리의 분주함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과연 우리는 우리의 일상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지요?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의 근심을 보면, 그 근심이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을 향한 근심으로 바뀔 것입니다. 세상의 일로 나의 영이 상처받는 일이 왜 생길까요? 세상 일이 나를 눌러버렸다는 것 아닙니까?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고 있음에도, 세상만 바라보았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제는 세상만 바라보는 것에서 돌아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만 바라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는 회개가 아니겠습니까? 이 회개야 말로 하나님에게서 떠난 상처 입은 심령, 병든 심령을 소생시켜 줍니다.

베드로가 먹지 못하는 짐승들에대한 환상을 보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는 것을 본 후 예루살렘에 와서 예루살렘 교회에 그 사실을 알릴 때 베드로가 한 말이 있습니다. “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다고 합니다. 이렇게 회개는 우리에게 생명을 줍니다.

고린도 교회가 하나님의 뜻에따라 회개한 후에 맺은 회개의 열매가 있는데, 그것이 고린도후서 7장 11에 언급되고 있음을 봅니다. 열심을 갖게 되고,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알게 되고,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 헌신하는 마음, 악을 징벌하는 이런 모든 일들이 결국 영이 소생하는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런 열매가 우리 모두에게 많이 맺혀 나룰 수 있는 삶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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