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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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 다음, 또 그 다음...(2007년1월14일, 주현절후두번째주일)

하늘기차 | 2007.01.14 13:36 | 조회 2227


처음, 그 다음, 또 그 다음...

2007년1월14일(주현절후두번째주일) 막4:26-29

다니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을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꿈 해몽은 커녕, 꿈 내용 조차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마음이 답답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꿈의 내용을 알아내고, 또 해석을 못하면 그 당시 점성가들을 모두 처형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신하들이 초 죽음입니다. 어찌 할 줄을 모릅니다. 신하들이 꿈을 해석할 수는 있어도, 꿈의 내용을 알기는 도저히 불가능 한 것입니다. 왕이 화가 나서 모두를 처형하라 하는데, 이스라엘에서 끌려온 청년들도 예외일 수는 없었습니다. 다이엘과 다니엘의 세 친구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웁니다.

그런데 단2:14에 보면 다니엘은 왕의 경호대장 아리옥에게 차분하고도 지혜롭게 “임금님이 왜 그리 가혹합니까?”하고 말을 합니다. 그러자 아리옥이 그 상황을 전부 설명합니다. 상황 파악을 한 다니엘은 임금님에게로 가서 꿈을 해석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가 친구들에게 상황을 알려주고 하나님께 함께 기도하자고 합니다. 바로 그 날 다니엘은 환상 가운데서 느브갓네살 왕의 꿈의 내용과 해몽을 알게됩니다.

꿈의 내용은 큰 신상이 서있는데, 순 금으로 된 머리는 바로 바벨론이고, 은으로 된 가슴과 팔은 그 다음 나라인 페르시아이고, 그리고 놋으로 된 배와 넓적다리는 그리이스, 마지막으로 모든 나라를 부수고 으깨는 철과 진흙으로 된 발은 바로 로마를 뜻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주석이구요, 다니엘은 그 신상에서 4개의 커다란 제국을 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나라들이 지나고 나서는 하늘의 하나님이 친히 나라를 세울 것이라는 것입니다. 세상나라는 사람들에의해 세워지지만 이 나라는 하나님이 세웁니다.세상나라는 다음에 오는 나라에게 망하고 맙니다. 흥망성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뒤에 오는 나라에게 정복당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나라는 흥했다가 점점 약해져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점점 커져 온 세상 가득히 영원합니다.

다니엘은 꿈의 내용과 그 해몽을 정확히 하여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자신과 모든 사람들을 구하였을 뿐만아니라, 장차 펼쳐질 하나님의 나라에대한 비죤을 봅니다. 또한 단7장에서 보면 4마리의 짐승이 등장하는데 하나같이 잔인하고, 사나운 짐승인데, 그러나 이 짐승들이 다 지나가고 나서 짐승이 아니라 인자와 같은 이가 등장하는데, 이전부터 계신분으로서 모든 민족과 나라의 경배를 받는다고 하느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대한 환상입니다. 다른 짐승들은 와서 포악하여 물고, 뜯고 하는데, 이 인자는 그렇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바벨론 포로기에 와서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 나라를 다스릴 분에대한 비죤이 보다 명확해 지는데, 이 후 하나님 나라와 그 나라를 다스릴 메시야에대한 비죤은 늘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 속에 깊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 과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모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대해 잘 못 알고 있었고, 잘 못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다니엘이 보았던 짐승, 신상과 같은 강한 물리적인 힘을 가진 나라, 다윗과 같은 영웅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그들의 생각과 전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비유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 통치자에대해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에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여 다시 설명하곤 하였습니다.

구약의 전통에 따르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의로운자 였습니다. 경건한자였습니다. 의롭다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 것가 관련이 있습니다. 경건한자는 성전과 그리고 제사와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당연히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고, 바라며, 활동하는 당시의 엣세네, 쿰란, 열심당 같은 공동체 사람들, 그리고 바리세인들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대해 전혀 다르게 말씀하셨습니다. 산, 들, 바닷가, 포도원, 길 가, 밭, 노동...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는 우리들의 생활 한 가운데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사건이었습니다. 오늘 말씀도 역시 농사를 지을 때 없어서는 안되는 씨앗과 관련한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렸습니다. 자고 일어나니 그 씨에서 싹이 나고 자라 열매를 맺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씨를 심은 사람은 그 씨앗이 어떻게 열매를 맺는지 모른다는 것이고,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추수 때가 왔기 때문에 낫으로 추수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를 보면 씨앗이 땅에 뿌려직면, 싹이 나서 자라 열매를 맺는다고 하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씨앗이 잘 자란다는 낙관론적인 생각을 가지고 윤리, 사랑, 정의 등이 잘 자라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 생각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 비유에대해 열매를 맺어 추수를 하니 종말론적인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땅이 저절로 맺게 한다고 해서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인간의 아무런 노력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강조하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또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에 자연의 확실한 법칙성을 강조하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이 비유에대한 여러 해석들의 가능성을 우리는 모두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혹 오해하기 쉬운 것은 자고 일어나니 싹이 나고 자란다는 말씀에 농부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 농부가 아무 일도 하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얼마나 시절을 따라 준비하고, 열심히 일하고, 병충해를 막기 위해 보살피고, 거름주고, 많은 일을 합니다. 그럼에도 농부가 아무리 애를 써도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씨가 싹이 되고 싹이 자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생명의 본질에 관한 것입니다. 영, 육 간에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생명의 변화의 과정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 자체에 농부는 영향력을 조금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최근 보면 성장 크리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이들 키를 자라게 한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으로 한방성장 크리닉센터를 들어가 보니 많은 시술을 하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성장홀몬 촉진, 성장판에대한 자극, 성장에 도움이 되는 아니면 방해가 되는 음식물에 대한 정보 등 여러 성장 크리닉의 방법들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그 성장 시술의 어느 것도 바로 그 자라는 변화를 이끌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생명은 전 적으로 그 생명을 창조하신 분의 권한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성장, 확장도 인간의 노력과 관계없이 끊임없이 자라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살아있는 생명의 신비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 당시의 혁명주의자들, 즉 로마로부터의 자유를 위해 무력으로 독립투쟁을 하는 열심당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스스로 자라니, 그리 급하게 폭력적으로 투쟁하지 말라는 비유라고도 하는데, 또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말씀한 비유이니 그렇지 않다고도 하는데,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비유 이야기는 들을 귀 있는 자에게, 듣고 관심 갖는 자에게 들려지는 하나님 나라의 소식이라는 것과 또 하나님의 나라가 나의 마음 속에, 아니면 우리 가정, 또 마을, 일 터, 이 나라, 전 인류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땀 흘리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귀중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한겨레에서 홍세화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늘 올 곧은 마음으로 나라 잘 되라는 글을 쓰다 보니, 인터넷의 익명의 댓 글로 홍세화님에게 이 나라 비평만 하지 말고 차라리 싫으면 떠나라는 글 이 종종 올라 오는 모양이라고 합니다.그런데 아내가 그것을 은근히 바라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프랑스에 자녀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싫은 소리 들으며 살 것이 아니라 속 편히 아이들과 오순도순 살았으면 하는 바램이겠지요. 그러면서 한 마디 합니다. 부인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사람 관계가 차갑고 팽팽한 것에, 소유로 삶을 평가하는 물신주의 가치관에 질린 탓’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대부분의 한국사회 구성원이 일생 동안 대학입시와 취직시험 때 두 번만 긴장하는 것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물신주의 가치관에 영합한 결과다. 내면세계를 풍요로우면서 정교하게 하려고 긴장하지 않으며, 사회와도 긴장하지 않는다. 오로지 물질세계에 관심을 두며, 그것으로 다른 사회 구성원과 비교하고 경쟁한다. 핵가족 단위의 가족 사이를 벗어난 사적 인간관계가 차갑고 팽팽한 것은 다른 사회 구성원이 서로 연대하면서 더불어 사는 대상이 아니라 비교·경쟁의 대상으로만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런 관계가 강요하는 긴장에서 자유롭게 해준다고 믿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물질이며 소유다. 이제 돈은 스스로 부끄러워할 줄 아는 대신 유일한 해방자가 되었고 초등학생들이 거침없이 장래 희망을 부자라고 말한다.
청소년들은 사적 이해관계에서 영리함을 넘어 영악하다. 반면에 사회에 대해서는 거의 바보 수준이다. 이 사회를 지배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몰이해는 주체적 삶을 영위할 가능성이 없다는 뜻인데, 그런 문제의식조차 갖고 있지 않다. 내가 겪은 유럽 청년들은 이와 반대다. 사적 인간관계에서는 무척 소박하지만, 사회에 대해서는 비교적 비판적 안목을 가졌다. 그들이 토론을 즐길 수 있는 것도 각자 나름의 생각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교육과정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사회 안전망이 허용한 사회 분위기,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관과도 연관된다.
지난 여름 한 고등학생이 스페인 여행을 떠났다가 병원 신세를 졌다. 수술을 받아야 했고 일주일이나 입원했다. 모든 게 무상이었는데, 의사와 간호사들이 무척 친절했다고 전했다.

무상인 곳에서 사적 인간관계가 따뜻한데, 유상인 곳에서 사적 관계가 따뜻하지 않다.

이 모순 같은 점은 예컨대 어떤 과정을 거쳐 의사가 되는가를 살펴보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한국 의사들은 치열한 경쟁 과정에서 승리하고 오랜 수련 기간에다 많은 돈을 들여야 하므로 그의 의식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특권의식과 보상의식이다. 스페인 의사는 교육과정에서 형성된 연대의식과 함께 스페인 사회의 비용으로 의사가 될 수 있었기에 사회환원 의식을 가질 수 있다. 이처럼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는 서로 맞물려서 사회에 작용한다.
가끔 시(詩)에서나 인간에 대한 예의를 찾을 수 있을 뿐, 대학이나 종교 부문에서도 소인배들이 판치는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합니다. 물신주의 사회의 모습을 찬찬히 보여줍니다. 이 나라, 이 사회에대한 실망스러움을 봅니다.

그런데 이러한 물신중심의 사회 속에서 여전히 하나님 나라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리도 여전히 들려옵니다. ‘고래가 그랬어’라는 어린이 잡지가 있는데, 거기서 권정생 선생님이 인터뷰를 했는데, 아이들에게 “축구 일등하는 것, 부자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하함께 사랑하고 나누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합니다.” 도정환 시인도 수능을 본 수험생들을 향하여 같은 수험생들을 경쟁 대상으로 보지 말고, 함께 힘든 시험을 보아야 하는 격려해줄 동지로 보라고 따뜻하고, 훈훈한 마음을 불어 넣어줍니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의 소리가 미세하게 들려옵니다. 하나님의 소리는 미세하다고 열왕기서는 엘리야를 통해 우리에게 이미 말슴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는 말씀은 무슨 말씀인가 하면, 28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싹을 내고, 그 다음에 는 이삭을 내고, 또 그 다음에는 이삭의 알찬 낟알을 낸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찬찬히 보면 ‘처음에’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라고 합니다. 그리고 ‘또 그 다음에’라고 합니다.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고,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씨 심고 바로 줄기 뽑아 올려 열매 맺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이 과정을 뛰어넘을 수는 없으며, 그래서 조급해 할 필요는 없고,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기다리는 가 하면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의심하지 말고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봄에 씨앗을 뿌린 농부가 추수를 기다리듯이 반드시 하나님의 나라는 온다는 확신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 같지만, 변하지 않는 것 같지만, 전혀 보이지 않더라도 이미 하나님 나라의 운동은 시작이 되었고, 진행되고 있으니 좌절하거나, 실의에 빠지지 말고,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지난 3일에 김의욱집사님 부친의 장례식장에 다녀 왔습니다. 그런데 엊 그제 바로 위로해 준 것에대한 답장이 왔는데, 그 답장을 보니 아마도 4일 장례식때 발표된 조문을 감사의 답글로 보내왔는데, 보니까 이현주 목사님이 조문을 썼습니다. 이런 내용이 실려있습니다.

“...이 세상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는 간곡한 권면을 쫓아
때로는 준엄한 저항의 깃발 앞장서 나부꼈고
때로는 세상의 차가운 외면 등에 지고서
향기로운 똥거름으로, 남몰래 사과나무 뿌리만 껴안고 울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낮에는 밭 갈고 밤에는 글 읽으라는 옛 조상의 가르침 받들어
손바닥은 나무껍질로 갈라졌고
돋보기는 해 마다 두꺼워졌다

새벽 제단 눈물로 지키던 보수 장로가 시위 주동하는 운동권 진보 장로로,
농약 투성이 거짓 투성이 관영 농부가 무농약 무공해 자연 농부로,
환골탈태의 눈부신 길을 걸었지만,
유유한 강물처럼 언제나 고요하고 한결같았다... ” 이 조문 속에서 저는 김영원 장로님의 삶의 변화를 보았습니다. 아! 장로님이 그렇게 거듭 진화, 변화하셨구나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살아있는 것의 아름다움은 바로 변화, 탈바꿈, 그 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모습 아니겠습니까? 왜곡이나 변절이 아니라 자기 자리에서 처음에 씨 앗으로, 다음에 이삭으로 또 다음에는 낟알로, 그리고 그 다음에는 하며... 여기가 좋다고 자기 고집 속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거듭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그 과정을 하나 하나 따르는 모습 속에 하나님 나라의 모습,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봅니다.

이 모습 즉 “처음에는, 그 다음에는, 또 그 다음에는...”하나님의 나라가 이렇게 우리 안에서 우리 마을에서, 우리 나라, 전 인류, 아니 내 마음 속에서 계속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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