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View Article

더 깊은 사랑(2007년9월23일, 성령강림주일후열일곱번째주일)

하늘기차 | 2007.09.23 13:37 | 조회 2703


더 깊은 사랑

2007년9월23일(성령강림주일후열일곱번째주일) 창37:1-11

요셉의 가정은 문제가 많았습니다. 부친 야곱에게 아내가 4이 있었는데, 그 4 아내로부터 12 자녀가 태어나 가정에 바람 잘 날이 없었습니다. 특히 자매 사이이 면서 야곱의 아내이기도 한 레아와 라헬의 갈등은 그 정도가 심했습니다. 자녀들의 이름 속에서도 그 갈등의 면모를 여실이 볼 수가 있습니다. 사실 야곱은 큰 언니인 레아 보다는 라헬을 더 사랑하였습니다. 그래서 레아는 늘 동생에게 남편 사랑을 빼앗기는 것을 견딜 수 없어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언니 레아에게 첫 아들이 태어낳습니다. 그 첫 아들의 이름이 르우벤인데, 그 이름의 뜻이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권고하셨다”입니다. 얼마나 남편에게 섭섭함을 당하고, 멸시를 받았으면 이런 이름을 지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이후에 계속 아들 3을 더 낳습니다. 시므온, 레위, 유다입니다. 야곱의 관심이 레아에게 쏠리자, 아이를 낳지 못하는 라헬은 시기와 질투를 합니다. 그래서 라헬이 야곱에게 찿아가 애기를 낳게 해 달라고 합니다. 바가지를 긁습니다. 그러자 야곱이 화를 냅니다.“내가 하나님이라도 된단 말이오? 당신이 임신할 수 없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말이오?”합니다. 그러자 라헬이 야곱에게 자기의 하녀 ‘빌하’를 야곱과 동침케 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 이름을 ‘단’이라 하는데, 그 이름의 뜻이 “하나님이 나의 호소를 들으시고, 나의 억울함을 풀어 주시려고, 나에게 아들을 주셨구나!”입니다. 또 빌하에게서 아들을 낳았는데 “내가 언니와 크게 겨루어서, 마침내 이겼다" 하면서, 그 아이 이름을 납달리라고 하였습니다.

언니 레아는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못하자 이 번에는 자기의 몸 종 실바를 야곱과 동침시킵니다. 그래서 낳은 아들이 갓, 아셀, 잇사갈입니다.그 각 각의 이름의 뜻이 “내가 복을 받았구나”, “행복하구나, 여인들이 나를 행복하다고 말하리라”, “내가 나의 몸종을 나의 남편에게 준 값을 하나님이 갚아 주셨구나”입니다. 잇사갈의 경우는 하나님이 레아의 태를 다시 열어 낳은 아들입니다. 그리고 한 아들을 더 낳았는데 이름은 스불론이고, 그 이름의 뜻이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좋은 선물을 주셨구나. 내가 아들을 여섯이나 낳았으니, 이제부터는 나의 남편이 나에게 잘해 주겠지”입니다. 그리고는 딸 디나를 더 낳습니다.

경쟁이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창30:21에 보면 하나님께서 라헬을 기억하셨다고 하는데, 그래서 라헬이 낳은 아들이 바로 요셉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나의 부끄러움을 씻으셨다고 하면서, “주께서 나에게 또 다른 아들 하나를 더 주시면 좋겠다”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막내 베냐민을 낳다가 라헬은 죽고맙니다. 요셉은 그나마 유년기 까지는 친모슬하에서 자랐지만 동생 베냐민은 친 엄마를 모르고 자랐습니다. 이렇게 자식을 낳는 과정 속에서 시기, 질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유독 야곱은 요셉을 편애하였는데, 그래서 색동옷을 입은 요셉은 형들의 시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특히 형들이 요셉을 싫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형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아버지에게 고자질하여 아버지의 역정을 듣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 집안이 콩가루 집안인 것은 큰 아들 르우벤이 서모인 배 다른 동생의 어머니인 빌하와 간통한 것이 들통나 온 집안이 시끄러웠고, 그 소문이 지역에 까지 퍼져 나갔다고 합니다. 또 디나는 세겜에서 바람이 나 그 지역의 청년과 놀아나다가 강간을 당하여 온 가정이 멸절 당할 위기를 겪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들이 아버지 야곱에게 까지 거슬러 올라 간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형 에서에게서 팥 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사고는 아버지를 속여 장자의 축복을 받았고, 사실 그러한 음모를 꾸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그의 어머니 리브가였다는 것입니다. 집안의 내력입니다. 아버지 야곱의 이기적인 인생관, 편애, 질투하는 형제들, 욕망의 얼굴들, 야곱을 붙잡기 위해 잔 꾀를 쓰는 외삼촌 라반 ... 이러한 요셉의 가정을 보면 앞 날의 희망이 없습니다. 요셉의 가정은 욕망, 이기심, 시기와 싸움으로 점철되어 만들어진 가문이었습니다. 정말 가문의 영광입니다.

그런데 이런 콩가루 같은 가정이 어떻게 바로 세워질 수 있었을까요? 창37:3에 보면 야곱이 요셉을 더 사랑했다고 합니다. 또 11절에 보면 “그 형들은 요셉을 시기하였지만, 아버지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다.”고 합니다. 이 두 절에서 우리는 비록 야곱이 요셉을 편애한 것이 가정의 질서가 무너지는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또한 야곱의 요셉에대한 깊은 사랑이 이기적인, 욕심어린 그런 사랑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끔 T.V 드라마에서 보면 아들을 유난히 편애하는 그러한 가족의 이야기를 보기도 하고, 우리 명훈이 할머니도 손녀 보다, 손자를 얼마나 편애하느지, 옛 날 분들은 그렇게 아들을 끔찍히 편애하였고, 지금도 여전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 야곱의 요셉 사랑은 팥 죽 한 그릇으로 형으로부터 장자권을 사기쳐서 빼앗은 이기적 행동에서 시작하여 삼촌 라반의 집에서의 도피생활, 결혼, 재산증식의 속임수, 그리고는 결국 하나님께 몰리어 얍뽁강 나루터에서의 하나님과의 싸움, 그래서 결국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축복을 얻음으로 인하여 이기적인, 속물적인 야곱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뀌는, 이스라엘의 요셉에대한 관심인 것입니다.

야곱의 요셉에대한 이 사랑은 구원이요, 은혜인 것입니다. 성경은 야곱이 요셉을 더 깊이 사랑했다고 합니다. 과연 야곱이 요셉의 무엇을 사랑했을까요? 창37:11에 보면 “그 형들은 요셉을 시기하였지만, 아버지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요셉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때문이었습니다. 바로 요셉이 꾼 꿈말입니다. 야곱은 요셉의 꿈의 가치를 알고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식구들, 그 형제들은 인간적인 생각에 모두들 요셉을 죽이려 했지만, 아버지 야곱은 요셉이 받은 꿈, 그 말씀의 뜻을 가슴 깊이 새겼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요셉을 더 그리고 깊이 사랑한 것입니다.

우선 교우 여러분, 이것은 단지 부모의 자식 사랑의 수준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여러분 부모가 자식 사랑할 때에 그저 연민의 사랑으로 사랑하면 안됩니다. 은혜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드라마에서 종종 보는 자식 편애의 사랑은 가정을 파괴하는 이기적 사랑입니다. 그러나 은혜의 사랑은 모든 것을 감싸고, 모두를 살리는 사랑입니다. 지금은 모르나, 나중에는 드러나는, 감추어져 있지만, 드러나고야 마는 사랑입니다.

둘째 야곱이 요셉을 더 깊이 사랑했다고 합니다. 은혜는 더 깊이 사랑합니다. 더 깊이 사랑하는 것은 편애가 아닙니다. 은혜의 속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 양문 곁, 베데스다 못가에 앉아있는 여러 환자들 중에서 특별히 병이 깊은 38년된 앉은벵이를 더 깊이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하며 죽어가는 한 여인을 더 깊이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잡던 베드로를 더 깊이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 고기교회를 더 깊이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교우여러분 이 은혜의 사랑은 사르밧 과부가 받은 은혜요,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이 받은 은혜입니다. 예수님은 유독 사르밧 과부, 그리고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이 왜 더 깊은 은혜를 입었느냐고 유대인들을 힐문하였습니다. 더 깊은 사랑은 모두에게 전부 다 베풀어 지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편협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 은혜는 깨닫지 못하고 듣지 못하면 지나가 버립니다.

이 은혜는 말씀으로부터 옵니다.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그리고 말씀에대해 어떻게 신실한 가에 따라서 옵니다. 이로인해 은혜 안에 속하든지, 은혜 밖에 서 있든지 합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은혜 안에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은혜 밖에 서 있기도 합니다. 더 깊은 은혜를 모릅니다. 더 깊은 사랑은 주는 쪽에서가 아니라, 받는 쪽에서 느끼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고, 그리고 느끼며, 깨달으며, 감격해 한 그 사랑이 깊고 크다고 합니다. 그러나 은혜 밖에 있으면, 그 사랑은 깊지도 않고, 크지도 않고, 가치가 없습니다. 밖에 있으면 빈정대고, 투덜대고, 넉두리 하고, 시기 질투합니다. 싸우고, 죽이기 까지 합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시기, 질투의 대상이었습니다. 형들은 아버지 요셉이 자신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야곱은 요셉의 말씀에대한 신실함을 그리고 그 하나님을 향한 모습을 사랑한 것입니다. 이 모습만이 가정을 살리고, 마을을 살리고, 나라와 민족을 살린다는 것을 야곱은 알았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파란만장한 영욕의 세월 속에서 오직 말씀만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 만이 자신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그 은혜가 요셉에게 있음을 보았고, 그 은혜가 자신들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창37:11에 보면 “그 형들은 요셉을 시기하였지만, 아버지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다.”고 합니다. 결국 요셉은 그 말씀, 그 꿈 때문에 애굽으로 팔리어 가서 감옥에 까지 가게 됩니다. 그리고 급기야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어 형들과 대면하게 되고, 그 자리에서 17살 청소년 때에 꾸었던 꿈, 마음속 깊이 새긴 말씀이 극적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형들이 부모를 모시고 와서 요셉에게 절하게 됩니다. 결국 온 가족이 살게 된 것입니다. 온 가족과 상봉하는 자리에서 요셉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형님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아 넘기긴 하였습니다만, 그것은 하나님이, 형님들보다 앞서서 나를 여기에 보내셔서, 우리의 목숨을 살려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하게 한 것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 더 그리고 깊은 사랑은 바로 요셉과 같은 사람들에게서 드러납니다.

롬8:28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압니다.”요셉은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형들이 자기를 죽이려 했지만, 하나님께서 그 악한 것을 선한 것으로 바꾸었다고 고백합니다. 바로 요셉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였고,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 였습니다.

요셉이 애굽에 팔리어 보디발 장군의 하인으로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므로 그가 형통했을 뿐만아니라, 주인이 그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요셉의 형통케 하심을 보았다고 합니다. 모함을 받고 감옥에 갔을 때에도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여 그의 범사를 형통케 했다고 합니다.

하인 생활하는 것이 무어 그리 좋다고 형통했겠습니까?
감옥살이 하는 것이 무어 그리 좋다고 형통했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어느 곳, 어디서나 형통함을 입었습니다. 노예가 된 것으로 따지면, 감옥에 갖힌 것으로 따지면, 무엇하나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은 것이 없다고 할 수 있겠지만도 요셉은 그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돌립니다.

어떤 분들은 가만히 보면 툭툭 뜻 없이 말을 내 뱉는데, “내가 죽어야지”, “내가 죽어야지” 합니다. “내 인생을 누가 보상해 주나” 합니다. 인생을 억울해 합니다. 뜻 없이 내 뱉는 말이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그것은 몸에 젖어있다는 것입니다. 옛 날 신학교 시절에 영어 강독 선생님이 미국인이었는데 하루는 학생들을 자기 숙소에 초청을 하여 작은 파티를 열었습니다. 그 때 누군가 소파에 앉으면서 “아이고”하면서 앉았는데, 그 미국인 선생님이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자 한국 사람들은 늘 입에 “아이 고”를 달고 다닌다고 하면서, “아이 고”, “유 고”, “노 고”하던 것 이 생각납니다. 죽어야지 하면 죽습니다. 억울해 하면 그 인생은 억울한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모든 인생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그것은 다윗도 마찬가집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그 모든 것을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하나님에게 돌립니다.

요셉은 온 가족이 상봉하는 자리에서 “형님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선하게 바꾸셔서, 오늘과 같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고 말하는데, 그 앞에서 요셉은 요셉의 종이 되겠다고 말하는 형들에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기라도 하겠습니까?”합니다.요셉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인 것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으 만나 좋아했지만 물이 써서 먹을 수 없게 되자, 그 쓴 물을 하나님께서 단 물이 되게 하십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 되게 하십니다.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요셉의 가정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콩가루 집안이었습니다. 아주 열악한 희망이 없는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정 속에는 꿈이 있었습니다.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 가정이 살아납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은 어떠한지요? 요셉의 가정은 세속의 흐름에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더 깊은 사랑의 은혜를 입어 생명의 복된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추석 명절에 가족들을 만나 삶의 애환을 나눌 때에, 좋은 일도 있지만, 안 좋은 일도 있을 터인데, 그 때에 가문을 탓 하고, 어는 어른, 어느 가족의 일원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더 큰 사랑의 장을 열어 가족이 이 번 명절에 하나님의 더 깊은 사랑을 맛보는 한가위, 보름달 같은 추석명절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979개(43/49페이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2016년9월4일) 사진 첨부파일 관리자 14644 2016.09.09 08:30
공지 나는 주의 사람이니(가야금, 대금 동영상) 첨부파일 하늘기차 25974 2007.10.16 12:24
공지 망대에 오르라(창립40주년 기념 예배 설교,유경재 목사) 고기교회 26354 2006.05.31 22:16
공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하늘기차 24946 2005.09.02 16:30
>> [일반] 더 깊은 사랑(2007년9월23일, 성령강림주일후열일곱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704 2007.09.23 13:37
134 [일반] 하늘의 자유 → 사랑의 종노릇(2007년9월16일, 성령강림주일후열여섯번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410 2007.09.16 14:39
133 [일반] 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2007년9월2일, 성령강림주일후열다섯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247 2007.09.09 14:22
132 [일반] 참 성령의 사람( 2007년8월25일, 성령강림주일후열네번째주일) 첨부파일 [1] 하늘기차 2121 2007.09.02 18:26
131 [일반] 마음을 돌이켜 회개하고(2007년8월25일, 성령강림주일후열세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414 2007.08.26 18:57
130 [일반] 돌이켜 예배드리자(2007년8월12일, 성령강림주일후열한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067 2007.08.12 15:35
129 [일반] 시장하셨다(2007년8월 5일, 성령강림주일후열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145 2007.08.05 16:40
128 [일반]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나의 백성( 2007년7월29일, 성령강림주일후아홉번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847 2007.07.29 15:21
127 [일반] 예수님이라면 어디에 사실까?(2007년7월22일,이태후 목사)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237 2007.07.23 16:11
126 [일반] 1907 평양사경회 사진 첨부파일 류민환 2248 2007.07.18 17:41
125 [일반] 그제서야 제 정신이 들어서 Ⅲ(2007년7월 8일, 성령강림주일후여섯번째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129 2007.07.08 16:07
124 답글 [일반] [re] 그제서야 제 정신이 들어서 Ⅲ(2007년7월 8일, 성령강림주일 선물 1578 2007.07.20 09:25
123 [일반] 그제서야 제 정신이 들어서 Ⅱ(2007년7월 1일, 성령강림주일후다섯번째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887 2007.07.01 17:14
122 [일반] 그제서야 제 정신이 들어서 1(2007년6월24일, 성령강림주일후네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108 2007.06.24 15:05
121 [일반] 산 소망(2007년6월17일, 성령강림주일후셋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011 2007.06.17 14:58
120 [일반] 알지 못하는...(2007년6월 3일, 성령강림주일후첫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960 2007.06.03 14:00
119 [일반]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2007년5월27일, 성령강림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091 2007.05.27 13:15
118 [일반] 죽은 개나 다름없는 저(2007년5월20일, 부활절7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321 2007.05.20 14:29
117 [일반] 산 위에서 배 만들기(2007년5월13일, 어버이 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518 2007.05.13 13:55
116 [일반] 주님을 모시고 사는 가정(2007년5월 6일, 어린이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167 2007.05.07 08: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