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View Article

하늘의 자유 → 사랑의 종노릇(2007년9월16일, 성령강림주일후열여섯번째주일)

하늘기차 | 2007.09.16 14:39 | 조회 2410


하늘의 자유 → 사랑의 종노릇

2007년9월16일(성령강림주일후열여섯번째주일) 출32:7-14;갈5:13

갈라디아서 5장에 보면 자유에 대한 말씀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1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셔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라고 합니다. 또한 13절에 보면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셔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자유를 육체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구실로 삼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고, 또한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것도 바로 자유함을 위해 부름을 받아 이 곳에 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자유는 어떤 자유일까요? 오늘 읽은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로 나아간 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무슨일이 벌어졌냐하면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기위해 시내산으로 올라갑니다. 40일을 시내산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는 시간이 오래 걸리자 시내산 아래 있던 사람들이 모세의 형 아론에게 다음과 같이 외칩니다. “일어나서,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어 주십시오. 우리를 이집트땅에서 올라오게 한 모세라는 사람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산 아래 있는 사람들이 금가락지, 귀걸이, 팔찌, 목걸이 등 모든 금부치들을 모아 송아지 형상을 만듭니다. 그리고는 말합니다. “이스라엘아! 이 신이 너희를 이집트땅에서 이끌어 낸 너희의 신이다.” 이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려 하는데, 모세가 하나님께 진노를 이스라엘에 내리지 말라고 간절히 기도를 드립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사건에대해 신명기서는 4:16에서 “스스로 부패하”였다고 합니다.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스스로 부패”하였다는 것입니다. 스스로란 자기 자신, 자진해서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이 자진하여 부패하였다는 것은 자유하다는 것입니다. 자유롭게 부패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4:16을 보면, 남자의 형상이든지, 여자의 형상이든지, 당신들 스스로가 어떤 형상이든 본떠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한글 개혁을 보면 “스스로 부패하여 자기를 위하여 아무 형상대로든지 우상을 새겨 만들”었다고 합니다. 공동번역에서는 이렇게 자기 자신을 위해 우상을 만드는 것을 죄라고 합니다. 그렇게 자기 자신이 만든 자기 자신의 우상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것입니다.

이 전에도 그랬지만 요즈음 청소년들의 우상은 단연 연예인, 운동선수, 프로 게이머 등입니다. 이런 우상을 통해 자신의 바라는 것, 소원하는 것들을 머리 속에 그리고, 자나 깨나 그 대상에 몰입을 합니다. 그러한 과정 속에 특히 자신의 궁핍했던 것들, 열등했던, 사랑받지 못했던, 배우지 못했던, 가난했던, 인정받지 못했던 것, 자기가 미쳐 생각지 못하고 잠재 의식 속에 숨어버린 자신의 상처들... 이런 내적인 것들이 자기 연민으로 나타납니다.

어른들에게 나타나는 중독현상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도박, 술, 마약, 컴퓨터, 집사님에게 들었는데 어느 아는 분이 낚시 매니아인데 이사가는 날, 부인은 임신하고 있는데, 그 날 새벽 몰래 낚시 가방 챙겨 낚시터로 갔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어느 축구 선수가 마약을 하면서 자기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 하면서 마약을 팔뚝에 놓는 참담함을 T.V를 통해 본 기억이 납니다.

사도 바울은 롬8:21에서 이것을 “썩어짐의 종살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중독, 자기 연민, 우상에 붙들려 자유롭지 못한 모습을 한 마디로 잘 표현 한 것 같습니다. 스스로 부패하여 라는 말 속에는 썩을 것에대해 애착하고, 집착한다는 것입니다. 자시 스스로의 관심으로 세상을 봅니다.

애굽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모두 죽고 말았을까요? 광야, 즉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였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붙잡혔다는 것입니다. 광야는 어떠한 곳입니까? 뜨겁게 작렬하는 태양, 해 떨어진 후의 추위, 먹을 것, 입을 것, 갈증, 잠자리, 계속되는 이동, 적들, 광야의 맹수들, 질 병, 무엇보다 미래에대한 불확실...성, 이러한 무수한 것들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빠져버린 것입니다.

가나안을 향한 여정에서 이러한 조건들, 상황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소망 없는, 희망을 잃어버린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결국 스스로 부패하여 자기 집착, 자기 연민을 통해 만들어낸 것들의 결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우리 시대의 삶 속에서도 최근의 동호공업고등학교와 관련한 일들, 강남따라잡기 등, 학위 위조와 같은 사건, 어느 게그맨의 탈세 등 정치, 경제, 사회 속에서 왜곡된 일들이 끊임없이 재생산됩니다.

어제 T.V에서 재개발 아파트 조합의 횡포를 보았는데, 한 집에서 수 십년동안 8 남매 잘키워 시집 장가 다 보내고 여생을 단란하게 살아가는 노 부부에게 재 개발이라는 날 벼락이 떨어진 것입니다. 본인들은 이사가고 십지 않은데, 조합에서 이사가게끔 꼼짝 못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그동안 살었던 정든 집에대한 보상을 다 받아도 그 집터 위에 세워지는 아파트에는 들어가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조합과 시공 업체와의 유착 관계입니다. 물질적인 이득을 위해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는 횡포가 어디 이 곳 뿐인가 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당에서는 대통령 후보자를 뽑기위해 한창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야당에서는 대통령 후보자를 이미 뽑고 대기중입니다. 그런데 보면 모두 여전히 경제 개발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해방 직후에 김구 선생님이 남과 북의 통일을 위해 순회 연설을 할 때에 김구 선생님께서 이제 경제적으로는 어느 정도 넉넉하니 서로 분배하고 나누는 일에 힘을 쓰자는 연설을 한 기억이 납니다. 50년 전 그 어려웠던 시절에 김구 선생님이 청중들을 향하여 한 이야기입니다.

하물며 지금은 정말 경제적으로 전혀 궁핍한 것이 아니라 넘쳐나고 있는데, 정치 지도자들은 여전히 경제 개발을 해야한다고 소리칩니다. 경제 개발이 아니라, 빈부의 격차를 줄이고, 국가가 국민들에게 가진 것을 나누는 정책을 점점 펼쳐나가야 하는데, 아무도 나눔의 경제, 복지에대해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정치인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 백성들이 특히 일부 기득권 층의 아파트 투기, 부동산 투기에 정치지도자들이 휘둘리고 있고, 스스로 그러한 투기에 혹 자신이 뒤로 처질까 국민들이 그 열풍에 함께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금가락지, 금팔찌, 목걸이 등 금부치를 거두어 금 송아지를 만들어 그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은, 오늘로 치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 다 끌어 모아 개발 지역의 아파트, 부동산에 투자 하여 또 다른 부를 불로소득하는 모습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이러한 불로소득에 사람들 눈이 뒤집히고, 모든 정치, 경제, 교육, 문하, 종교에 이르기까지 돈이라는 메카니즘에 붙들려, 어느 국민도 이러한 정황 속에 자유로울 수 없어 스스로 연민의 정에 붙들리어 부패하며, 사회가 점점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 시스템 앞에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바위에서 솟아난 샘물, 구름 기둥과 불 기둥, 그리고 아침 마다 거두는 만나. 이것이 바로 우리를 자유하게 합니다. 하루 하루 살아가며 일어나는 일들에 스스로 쉽게 빠져들기 쉬운 우리가 스스로 부패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유롭게 되는 것은 바위를 쳐서 쏟아져 나오는 물과 매일 매일의 만나, 그리고 구름 기둥과 불 기둥입니다. 우리의 마른 목, 염려, 갈증을 풀어주고, 굶주린 우리의 심령을 풍요롭게 해 줍니다. 그리고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은 우리가 가야할 길을 가게합니다.

롬6:14은 이러한 삶에대하여 “은혜 아래 있”는 삶이라고 합니다. 스스로 부패하여 자기를 위해 아무 형상대로 우상을 만들어 놓고야 마는 이 죄, 이 연민의 정, 집착이 나를 주관치 못하게 하는 것은 바로 내가 스스로 은혜 아래 설 때에 가능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 삼가” 하여 은혜 아래 있어 하나님이 함께 하시어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은혜로부터 오는 자유에 머물기 보다는 “스스로 부패하여” 아무 형상대로 만든 우상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지속적으로 스스로 부패하여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삼가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자유롭게 머물 수 있을까 하는 것인데, 갈5:13은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셔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자유를 육체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구실로 삼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라고 합니다. 스스로 부패하여 썩어지는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랑의 종 노릇”하는 것입니다. 종노릇 하라니까 부담스럽습니다.

그런데 지난 수요일에 시편 142,3편을 통해 은혜를 나누었는데,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어 어느 굴에 숨어들어, 끝없는 나락으로 깊이 떨어지는 것 같은 공포,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는 탄원의 시입니다. 그런데143편 마지막 구절에서 다윗은 “나는 주님의 종입니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이 탄원시는 시140,141,142,143에 까지 이어지는데, 그 마지막 결론이 “나는 주님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이 4편의 시가 모두 탄원의 시인데, 즉 자신의 형편, 다윗은 지금 143편 7절에서 보면 ‘숨이 끊어질 지경’입니다. 3절에도 보면 ‘죽은 지 오래된 사람처럼 흑암 속에서 묻혀 살’았다고 할 정도의 힘든 상황, 142편 7절에서도 ‘영혼이 감옥에 갖혀있다’고 할정도의 상황 속에서 다윗은 충분히 자기 연민에 빠질 수 있지만 스스로 부패하지 않고, 스스로 삼가하여 하나님의 은혜 아래 머뭅니다. 그리고서는 스스로 자기를 “종”이라고 합니다.

종이라는 것은 가장 낮은 자리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지금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낮추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종이라는 것이 말이나 되는 것이겠습니까? 민주시대에 제도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것이고, 있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오늘 다윗은 나는 종입니다 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자발적인 종노릇하겠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것은 바로 섬김인데, 그런데 어찌 섬김이라는 말이 이 시대에 적용 될 수가 있겠습니까? 모르겠습니다. 기업에서 월급을 특별히 많이 주면 그 월급 때문에 상사를 섬길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성경의 섬김은 스스로 삼가 하여 은혜 안에 머무는 섬김인 것입니다. 이러한 섬김은 그 대상에대한 진정한 자기 이해, 자기 낮춤이 없이는 요원합니다.

지난 주일 성경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이 대목이 나왔습니다. 바로 눅14:7-14의 본문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자기를 낮추는 것’을 현실 속에서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라고 하는 질문에 대하여 김영순 장로님께서 “그것은 이해다”하고 명쾌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에 절대적으로 공감을 하였습니다.

자녀들의 문제에대해서도 부모가 아이 입장에 서서 아이를 바라 보아야 합니다. 공부의 관점에서 아이를 보면 안됩니다. 아이의 삶, 아이의 정서에대한 입장에 서야합니다. 모든 관계가 그렇습니다. 상대 입장에 서 보시기 바랍니다. 스스로 낮아질 수 있고, 낮아집니다. 부부 관계에서도 가장 귀한 자세는 이해입니다. 그런데 상대에 대하여 자기를 낮추지 않고 어찌 이해가 가능하겠습니까?

우리 교회에 하늘이, 하원이가 있는데, 어른들이 이 아이들을 보려고 할 때 보면 자기를 낮춥니다. 낮추지 않고는 하원이, 하늘이하고 서로 교감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남을 알기 위해 자기를 낮춥니다. 사랑을 해 보면 압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서로가 자기를 낮추려합니다. 혹 사랑이 식어졌다면 그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바로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죽기 까지 순종하였다고 합니다. 바로 스스로 삼가 하나님의 은혜 아래 머문 것입니다.

다윗이 시143:12에서 마지막에 “나는 주님의 종입니다.”라고 한 이 고백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 자기 낮춤은 이미 다윗에게서 고백되어진 놀라운 은혜의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낮춤의 이 다윗의 고백을 기뻐 받으셔서 그 자손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나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나는 주님의 종입니다.”라는 은혜 안에서의 자기 낮춤을 통해 이스라엘을 중동 사막 지역에 반듯하게 세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다윗의 자기 낮춤의 모습으로 인류를 구원하였습니다.

교우여러분 우리도 스스로 부패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서 삼가 하나님 앞에 스스로를 낮추어 무릎을 꿇으므로 참 자유함, 즉 사랑의 섬김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의 가정, 이웃, 함께하는 사람들 속에 아름다운 선한 일들이 넘쳐날 것입니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979개(43/49페이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2016년9월4일) 사진 첨부파일 관리자 14644 2016.09.09 08:30
공지 나는 주의 사람이니(가야금, 대금 동영상) 첨부파일 하늘기차 25975 2007.10.16 12:24
공지 망대에 오르라(창립40주년 기념 예배 설교,유경재 목사) 고기교회 26354 2006.05.31 22:16
공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하늘기차 24948 2005.09.02 16:30
135 [일반] 더 깊은 사랑(2007년9월23일, 성령강림주일후열일곱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704 2007.09.23 13:37
>> [일반] 하늘의 자유 → 사랑의 종노릇(2007년9월16일, 성령강림주일후열여섯번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411 2007.09.16 14:39
133 [일반] 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2007년9월2일, 성령강림주일후열다섯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247 2007.09.09 14:22
132 [일반] 참 성령의 사람( 2007년8월25일, 성령강림주일후열네번째주일) 첨부파일 [1] 하늘기차 2121 2007.09.02 18:26
131 [일반] 마음을 돌이켜 회개하고(2007년8월25일, 성령강림주일후열세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414 2007.08.26 18:57
130 [일반] 돌이켜 예배드리자(2007년8월12일, 성령강림주일후열한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067 2007.08.12 15:35
129 [일반] 시장하셨다(2007년8월 5일, 성령강림주일후열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145 2007.08.05 16:40
128 [일반]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나의 백성( 2007년7월29일, 성령강림주일후아홉번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847 2007.07.29 15:21
127 [일반] 예수님이라면 어디에 사실까?(2007년7월22일,이태후 목사)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237 2007.07.23 16:11
126 [일반] 1907 평양사경회 사진 첨부파일 류민환 2248 2007.07.18 17:41
125 [일반] 그제서야 제 정신이 들어서 Ⅲ(2007년7월 8일, 성령강림주일후여섯번째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129 2007.07.08 16:07
124 답글 [일반] [re] 그제서야 제 정신이 들어서 Ⅲ(2007년7월 8일, 성령강림주일 선물 1578 2007.07.20 09:25
123 [일반] 그제서야 제 정신이 들어서 Ⅱ(2007년7월 1일, 성령강림주일후다섯번째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887 2007.07.01 17:14
122 [일반] 그제서야 제 정신이 들어서 1(2007년6월24일, 성령강림주일후네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108 2007.06.24 15:05
121 [일반] 산 소망(2007년6월17일, 성령강림주일후셋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011 2007.06.17 14:58
120 [일반] 알지 못하는...(2007년6월 3일, 성령강림주일후첫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961 2007.06.03 14:00
119 [일반]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2007년5월27일, 성령강림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091 2007.05.27 13:15
118 [일반] 죽은 개나 다름없는 저(2007년5월20일, 부활절7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321 2007.05.20 14:29
117 [일반] 산 위에서 배 만들기(2007년5월13일, 어버이 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518 2007.05.13 13:55
116 [일반] 주님을 모시고 사는 가정(2007년5월 6일, 어린이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167 2007.05.07 08: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