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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2007년9월2일, 성령강림주일후열다섯번째주일)

하늘기차 | 2007.09.09 14:22 | 조회 2246


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

2007년9월2일(성령강림주일후열네번째주일) 렘28:5-11

성경에는 두 가지의 큰 흐름이 있습니다. 하나는 예언자 전통이고 또 하나는 제사장 전통입니다. 이 두 가지 흐름이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보완 하기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러 예언자 전통과 제사장 전통이 하나됩니다.

제사장의 역할이란 잘 알고 있지만 사람들을 대신하여, 나라와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지은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구약의 대표적 제사장으로는 모세의 형 아론입니다. 출28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을 만들게 한 후에 그 성막의 일을 감당할 제사장을 택하여 그가 입을 옷을 만들라 하는데 무엇이라고 하냐 하면

“ 너의 형 아론이 입을, 영화롭고 아름답게 보이는 거룩한 예복을 만들어라”고 하면서 3절에 보면 “ 내가 슬기로운 생각으로 가득 채워 준 모든 재주 있는 사람을 불러다가, 나를 섬길 아론이 제사장이 되어서 입을 예복을 만들라고 하여라.”고 합니다.

아마 요즈음 최고급의 옷도 이렇게 만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사장의 역할이 어떠하길레 이렇게 귀하게 옷을 해 입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사장의 옷의 면모를 살펴보면 가슴 받이 와 에봇과 겉옷, 줄무늬 속옷, 관, 그리고 띠인데, 특히 가슴 받이에는 제비를 뽑을 때 사용하는 나무 조각으로 만들어진 우림과 둠밈을 넣어둡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물을 때 이 제비를 던져 하나님의 뜻을 찿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영화롭고 아름다운 제사장의 영원한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구약의 제사장직은 파기되고 이제 주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속할 뿐아니라, 친히 속죄 제물이 되어 피를 흘리며 죽으셨습니다. 또한 그 뿐 아니라 이제는 제사장이라 하는 것이 어느 특별한 개인이 담당하는 역할이 아니라 만인 모두가 누구든지 ‘이 영화롭고도 아름다운 옷’이라 했는데, 이제는 그 옷이 바로 우리 각자가 누릴 모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누리는 그 영광, 존귀를 우리도 함께 누린다는 것입니다. 벧전2:5은
“살아있는 돌과 같은 존재로서 여러분도 집 짓는데 사용되어 신령한 집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십니다.” 또 이어서 9절에서도
“그러나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기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근간은 이미 출애굽기 19:6에서 모세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너희의 나라는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너희는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ㄹ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본래 노예요, 떠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잊지말고 고아와 과부들, 그리고 이방인과 떠돌아다니는 자들을 돌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돌보고, 섬기려면 낮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2:6이하에서 예수님에대하여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여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라고 합니다.
십자가의 죽으심이야 말로 제사장의 모습입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수치요, 치욕이고, 가까이 하기 싫은 굴욕이지만 인류를 불쌍히 여기는 하나님의 눈으로 십자가를 보면 이 십자가는 바로 출28: 15이하의 에봇에 박아넣은 수 많은 보석(홍보석, 황옥, 취옥, 녹주석, 청옥, 백수정, 풍신자석, 마노, 자수정, 녹주석, 얼룩마노, 벽옥)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 모습은 빌2:9의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는 말씀과 일치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또 하나의 모습이 있습니다. 바로 예언자의 모습입니다. 마10:34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예언자 전통에 속함을 볼 수 있습니다.

“너희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려고 왔다.”고 합니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소리에 맞추어 이 땅에 오신 주님께서 평화가 아니라 싸움과 불화를 선포합니다. 이것은 왜 그럴까요? 시85:10은

“사랑과 진실이 만나고, 정의와 평화와 서로 입을 맞춘다.”고 합니다. 정의가 없는 평화, 안보, 안정은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참된 평화가 아닌 것은 정의가 없는 평화나 안보를 하나님은 원치 않으십니다.

오늘 읽은 렘28장의 말씀도 그렇습니다. 28장의 상황은 언제인가 하면 왕하24장에 보면 바벨론왕 느브갓네살이 이스라엘 예루살렘을 3차례나 침공하여 무너뜨리는데, 제1차 공격은 여호야긴 왕 때입니다. 이 때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갔고 아마도 다니엘도 이 때에 끌려 간 것 같은데,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 도구들, 많은 그릇들이 모두 바벨론으로 넘어갔습니다. 바로 그러한 상황 속에서 예언자 하나냐는 이제 곧 하나님께서 바벨론으로 가져간 모든 예루살렘의 기구들 다시 찿아 오게 하실 것이며, 모든 포로들을 다시 이 곳으로 돌려 보낼 것이라는 희망과 평화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10절 말씀에 보면 예레미야가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하기 위해 상징적으로 목에 걸고 다녔던 멍에를 하나냐가 꺽어버립니다. 이젠 평화하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냐의 말에 이스라엘은 왕과 신하, 제사장, 백성 모두가 고무되었고, 희망을 가집니다. 그러나 예언자 예레미야는 하나냐의 말을 듣고, 11절에서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합니다.

아마 예레미야가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직언하였다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생명이 온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언자 하나냐의 말은 백성들의 마음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어서 속히 이 환난에서 벗어나길 바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이제 이스라엘은 나무로 만든 멍에가 아니라, 쇠로 만든 멍에를 메고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15절에서 예레미야는 하나냐에게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지 아니하셨거는 네가 이 백성으로 거짓을 믿게 하는도다.”라고 말합니다. 이 예레미야의 말은 이스라엘을 평화하게 하지 않고 불화하게 하는 말입니다. 하나냐의 말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되게 하고, 이스라엘을 고무시켜 주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정 반대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하나냐는 이스라엘의 멸망과 패망의 원인을 바벨론에 돌립니다. 이스라엘의 내부는 평안합니다. 하나냐는 이스라엘의 소위 기득권, 왕, 종교 지도자, 관료들과 같은 공감대를 가지고 우리가 마음을 향하고, 힘을 모으면 얼마든지 바벨론의 느브갓네살과 싸워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는 2:13에서

“참으로 나의 백성이 두 가지 악을 저질렀다.하나는 생수의 근원인 나를 버린 것이고, 또 하나는, 전혀 물이 고이지 않는, 물이 새는 웅덩이를 파서, 그것을 샘으로 삼은 것이다.” 라고 합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에게 범죄하였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니 싫은 소리하는 예레미야를 좋아할리 없습니다.

한국교회는 이 두 가지 전통을 다 잃은 것 같습니다. 하나는 제사장 전통이요, 또 하나는 예언자 전통입니다. 이 두 가지는 동전의 앞과 뒤입니다. 서로 따로 갈 수가 없습니다.

최근 그나마 인터넷 뉴스나 작은 잡지가 아니었으면 묻혀버릴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동호정보고등학교 문제입니다. 이 학교는 서울 성동구 옥수동에 자리잡고 있는 학교인데 인근에 5000여 가구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아파트 주민들의 아이들의 취학을 위해 초등학교를 설립해 달라는 민원 때문에 하교가 없어질 처지에 놓였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네티즌들의 입소문을 통해 그러한 대처가 부당하다는 외침에 일단 동호고교를 이전하겠다는 계획을 무효화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초등학교를 세워달라고 7년 동안이나 민원을 낸 아파트 단지는 조합 아파트인데 아파트를 처음 설립할 때 당연히 학교 부지를 확보하고 아파트를 지어야 할텐데 한마디로 돈에 눈이 멀어, 아니면 기존의 동호정보고등학교를 쫓아낼 계획을 가지고 학교부지를 확보하지 않은체 아파트를 설립했는지, 끊임없는 민원에 서울시교육청이 동호고교를 이전하고 인문계고등학교와 초등학교를 세우겠다고 결정을 내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포로 이전하여 그 지역의 정보화 고등학교와 합병하려 했는데, 마포의 주민들의 반대로, 즉 공업고등학교는 안된다는 이유로, 주민 왈 특목고나, 과학고는 환영한다는 그런 이유 때문에 이전을 못했다는 것입니다. 주민들도 그렇고, 서울교육청 당사자도 그렇고, 동호고등학교 아이들과 선생님들에게 너무 큰 상처를 준 것 같습니다. 다행히 네티즌들에 의하여 이 위기는 넘겼지만, 이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서이고, 세태입니다. 저는 한 번 물어봅니다. 그 5,000세대 속에 기독교인은 없었는지, 교회는 없었는지, 부당함에대해 이야기 했어야 하지 않았는지 말입니다.

최근 아프카니스탄 피랍, 석방 사건도 우리의 마음을 씁쓸하게 합니다. 한기총에서는 여전히 선교에 문제 없다고 주장을 하고, 일각에서는 기존의 선교정책에 문제 있고, 잘 못을 인정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교계의 원로로 목사님들이 100주년 기념관에서 참회의 기도를 드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교회가 기득권 세력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교육법 재개정 사건을 다시 국회 통과 시키는 것을 보더라도 이미 교회가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서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현 재의 것을 지키려고 기를 쓰는 모습은 추하게 느껴집니다.

기득권이라는 것이 저희 교회로서는 낯 선 말이기도 한데, 그러나 이 권력, 다시말해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한편으로 중요한 것인데, 왜냐하면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역할 때문입니다. 왕은 권력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왕 같은 제사장이란, 왕의 힘, 능력으로 오고 가는 세대의 제사장 역할을 한다는 것인데, 이 왕의 힘, 이 왕은 세상 나라의 왕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다시 말해, 평화의 왕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빌2장에서 보여주는 지극히 낮아지는 왕의 모습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보여지는 힘인 것입니다. 이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능력을 드러내지 못하는 교회, 성도는 이미 하나님 나라, 하나님 백성, 거룩한 백성이기를 포기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 19:6의 말씀을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교계의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야당의 대통령 후보자에대한 이야기가 많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자녀들의 입시를 위해 부정 전입을 했다고 합니다. 또 지난 도시 개발의 과정 속에서 이 분의 재산 축적이 합당하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구설수에 오르고 있습니다. 부정 전입을 했다고 하는 것 자체로도 이미 지도자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는데도, 그럴수도 있지 합니다. 사교육 문제로 모두들 힘들어 하고 있고, 대한민국이 사교육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에, 이 분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위장전입을 하였는데, 왜 백성들이 관대한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니 알 수가 있습니다. 혹 우리나라 경제가 좀 더 잘 풀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 혹 콩고물이라도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허구적인 기대 심리 때문인 것 같습니다. 또 다들 위장전입도 하고, 적 당히 법을 어기며 사는, 너 좋고, 나 좋은 심리에서 온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우리 나라의 국가 윤리의 위험수위가 정말 높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최근 뉴스앤죠이 라는 인터넷 언론 매체를 통해 보았던 답답한 현실은, 세상이야 물질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지만 교회는 그러면 안되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느 전통이 있는 교회의 목사님께서 세상에 약점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라고 하며 하나님의 사람을 거역하면 참혹한 재앙을 불러 올 것이다 라고 합니다. 또 음모론을 제기하면서 “여권의 인사들이 야당 후보를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다고 장담한다면서 이 전술이 먹히지 않을 경우 아예 대통령선거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 어떤 특단의 사태를 조성할 것”이라는 설을 이야기 하기도 하고, “북한 정권이 우리 나라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질 것을 두려워해, 야당 후보를 암살하려 할 것”이라는 설까지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고 하면서 이러한 시도(마치 그런 시도가 정말로 이루어질 것 같은 느낌)는 이 나라에 엄청난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고 강조했다는 것입니다. 최근 또 가장 큰 감리교회의 홈페이지에는 야당 대통령 후보의 공식 홈사이트 배너를 걸어 놓았다고 합니다.

강남의 제자훈련으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교회의 담임 목사는 미국의 어느 신앙 집회에서 장로 대통령을 세워야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나라는 참 좋은 지도자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이전 두 장로 대통령을 뽑은 우리 백성들이 이 번에도 장로 대통령을 뽑아 하나님의 축복받는 나라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민족 역사의 길목에 섬광처럼 빛나는 선각자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었다. 이것이 한국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독특한 은혜였다. 세계 어느 나라 1대 대통령이... 학력을 이야기 해 보겠다. 학사학위는 조지워싱턴대학에서, 석사학위는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는 프린스턴대학에서 받았다.이것은 전 세계 유래 없는...식민지 나라로 독립국가가 된 초대 대통령이 이런 대학에서(학위를) 받았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말로 다 할 수 없는 축복이다...“ 여기서는 학벌지상주의의 입장이 서슴없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도대체 한국교회, 성도들이 구하며 받았다는 축복과 은혜가 어떠한가를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주민등록이 말소되지 않은 사람들은 우리 나라에 들어와 투표 할 수 있으니 한 표라도 포기하지 말고, 우리 나라에 와서 투표하라는 것입니다. 숙소가 없는 사람들은 자기 교회에서 숙소를 제공할 테니 투표를 와서 꼭하라고 주장을 합니다.

최근의 대형 교회의 목회자들의 지지발언의 내용을 보면 비슷합니다. “좀 잘 못 해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장로를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전 두 대통령이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정책을 시행했는지에 대한 아무런 근거도 없습니다. 참 예언자의 전통에 서 있는다는 것과 거짓의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볼 수 있는 발언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워합니다.

특히 이 번 야당 대통령 후보의 경우는 부정과 부패의 재산 축적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면 교계의 지도자들이 그 후보에게 찿아가서 회개하라고, 후보자가 되기 이전에 스스로 하나님 앞에, 그리고 백성들 앞에 겸손히 부끄러움이 없는지 자신을 돌아보라고 권고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소위 남과 북의 하나됨을 뒤로 물리는 사람은 안된다. 정말 작은 자들, 약자들을 품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겠느가, 또 대외적으로 이 나라의 자존감을 최소한 지킬 수 있는 용기있는 자가 지도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자꾸 장로 대통령을 세워야 한다는 것은 이미 스스로 기득권이 있음을 만천하에 알리는 부끄러운 모습인데, 하나님이 어찌 교회 안에만 존재하는 가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온 우주를 이끄시는, 이 세상의 나라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니신가 하는 것입니다. 어찌 하나님이 교회 안에 장로 안에 갇혀 있을 수 있는지 냉철히 볼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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