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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라면 어디에 사실까?(2007년7월22일,이태후 목사)

하늘기차 | 2007.07.23 16:11 | 조회 3236


예수님이라면 어디에 사실까?(이태후 목사)


2007년7월22일(성령강림주일후여덟번째주일) 마25:31-46

만일 예수님께서 1 주일 동안 한국에 오신다면 어디에 찿아 가실까요? 아마도 대형 교회에 이 정보가 들어 간다면 교회의 장로님들을 동원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을 교회로 모시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에 들어 와서 저는 영등포 노숙자들을 섬기고 있는 광야교회를 다녀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달동네가 존재하고 있으며,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 비 정규직 노동자들, 북한에서 온 새터민들... 확신하건데 예수님은 아마도 이러한 사람들과 함께 1주일을 보내실 것입니다.

혹 누가 무얼 근거로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느냐고 할 지 모르겠지만, 복음서를 보면 자연스럽게 그러한 결론에 도달합니다. 살아계신, 참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다면, 어떻게 세상을 구원할까? 이 세상을 어떻게 기독교화 할까라는 질문에 우리들은 당시의 패권을 장악했던 로마 황제의 아들로 온다면 바로 황위에 올라 세상을 구원하실테고 그러면 로마 시대의 그 피의 순교도 없었을 것이고, 아니면 이스라엘의 총독이나 대제사장의 아들로 오셔서 종교, 정치의 기득권으로 세상 구원을 어렵지 않게 이룰 수 있지 않았게나 하는 생각도 해 봄직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와 달라서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당시의 중심이었던 예루살렘에서 활동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이방인의 땅 갈릴리에서 중심부가 아니라 거기서도 주변부에서 생활하시며, 그나마 재력이 있는 자가 아니라, 당시의 사람들이 멀리하던 세리, 창기, 병자들과 어울리셨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이 이 나라에 오신다면 틀림없이 노숙자들과 함께 하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너는 어디에서 사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저는 안홍택 목사님께서 말씀하셨지만 미국 필라델피아에 살고 있습니다. 이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경찰에게 한 흑인이 체포 당하는 사진, 바로 그 현장 뒤의 세 범 째 창이 이태후 목사님의 집, 3년 전 마약 사범 단속할 당시 신문에 난 사진, 137건의 마약 사범을 체포) 저희 동네는 필라델피아에서 가난하기로 2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동네입니다. 종종 집이 비면 경찰들이 제일 먼저 와서 들어가지 못하도록 집을 완전 봉쇄하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집이 비면 우선 모든 것 양변기, 전선 까지도 다 띠어가고, 그리고 그 곳에서 마약 거래, 마약을 하고 매춘을 하는 공간이되고, 겨울이 되면 전기가 없으니까 그 곳에 불을 놓아 잘 못 화재가 나는 그러한 곳입니다.

지역의 수퍼마켓에 취직을 하려면 최소한 고졸 이상이어야 하는데, 25세 이상 고졸자가 32% 정도 밖에 되지 않아 주민들은 무직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93%가 흑인이고, 집이 오래되 저절로 무너지기도 하는데, 옆의 집도 같이 무너져 사람들이 죽기도 하는 그러한 곳입니다. 마치 이락이나, 아프카니스탄의 폭격맞은 지역과 같이 무너져 내린 곳이 여기 저기 있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한인 교회를 잠깐 담임하기도 하였는데, 그래서 이민 1세와 2세의 갈등도 알고 있어 이러한 세대간 그리고 미국이라는 나라와의 문화적 갈등을 풀어낼 수 있는 목회를 해 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중, 마침 미국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친구 목회자로부터 이민 2세 청소년들을 위한 수련회를 “진짜 세상 속에 사는 기독교인”이라는 주제로 열고자 하니 강사로 와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쾌히 승낙을 하고 바로 오늘 본문 말씀을 가지고 설교를 준비하는 중이었는데, 주님으로부터 성령의 감동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태우야! 너는 이 말씀을 삶으로서 살아낼 수 있겠니?”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예수님 저는 얼마 전에도 노동자들에게 음식대접도 하고, 헤비타트를 통해 극빈자들을 위한 집짓기에도 참여하였고, 노숙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에도 한 10번 이상은 참여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전하지 않습니까?”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리구서는 몇 일 조용하길래, 예수님 어디 가셨나 했는데, 예수님께서 또 저에게 감동을 주십니다. “태우야, 난 어제 매우 추웠다. 필라델피아 어느 건물에서 잠을 자는데 무척 추웠는데, 너는 따뜻한 방에서 잘 잤겠구나”. “나는 굶주려 배고푼데, 너는 밥을 잘 먹는구나, 참 좋겠다”. “난 감옥에 있는데, 넌 날 찿아 와 주지도 않는구나”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난 도저히 말씀을 준비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그렇게 살지 못하면서 어떻게 청년들에게 이 말씀을 전할 수 있어, ‘이건 사기야’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이 부르시면 가겠습니다”라는 마음의 결단이 왔습니다. 그 와중에 피라델피아의 교민들 사회에서 가면 안되는 곳으로 소문난 곳에 대하여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습니다. 작년 여름에만 3번의 총격살인이 일어났습니다. 경찰의 싸이렌 소리, 총성이 들리고, 야 밤에 헬리곱터가 뜨면, 그 써치 라이트가 창을 비추는, 항상 쓰레기가 쌓여있는 그러한 곳입니다.

저는 그 동네를 바라보며 두려울 수 밖에 없었지만 마음에 “예수님께서 책임지시겠지!”했습니다. 제3자 입장에서 볼 때 는 너무 쉽게 선택한 것이 아닌가? 또 성경을 너무 극단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닌가? 할지 모르겠지만, 어느면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아주 극단적이며, 그래서 교회가 역사적으로 그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약화시키고, 희석시켜오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인 마25 장 이후에 예수님은 십자가의 수난을 당하십니다. 그리고 24장에서 예수님은 ‘마지막이 언제 오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아버지외에는 그 때와 기한을 아무도 알 수 없다고 하신 다음에, 천국은 마치 이와 같다 하시면서 ‘열처녀의 비유’, 또 ‘달란트의 비유’를 이야기 해 주시고는 ‘마지막 심판’에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때에 양과 염소를 가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심판의 기준을 보면 믿음이 아닙니다. 심판을 말씀하시면서 믿음에대해 한 번도 말씀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심판하는 임금님이 어려운 가운데 믿음을 지켰으니 천국으로 들어오라 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심판의 기준에 대해 4번 반복하는데 그 내용이 내가 배고프고, 헐벗고, 목마르고, 병들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나그네로 있을 때에 어떻게 했느냐는 것입니다.

아니 예수님은, 성경은 분명히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수도 없이 말씀하고 잇는데, 그러면 이것은 막판 뒤집기인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행위로 구원 받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행위와 믿음을 분리시키는 것도 아닙니다. 4번 반복하는 행위에대한 이야기는 믿음이 삶 속에 구체적으로 나타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잘나고, 부유하고, 권력이 있고, 똑똑한 사람들에게 찿아 가신다면, 아마 우리는 지금 여기 고기교회 에배당에 이렇게 함께 모여 있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성경은 창세기에서 계시록에 이르기 까지 줄 곳 일관되게 이야기 하는 것은 과부와 고아, 나그네를 돌보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강한자가 아니라 약한 자, 부한 자가 아니라 가난한 자, 건강한 자가 아니라 병든자, 자유한 자가 아니라, 갇힌자, 중앙이 아니라 변두리를 가까이 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이사야 42:3에 보면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로마서에서는 깨진 그릇을 고쳐 선하게 쓰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합니다. 이런 좋으신 하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한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마음이 가는 곳에 나의 시선과 마음이 따라야 할 것입니다. 헐벗고, 굶주린 자에게 단지 적선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참 성도의 고백적인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이 머리나 잎이 아니라, 다른 사람 기 죽이는 화려하고 거창한 종교적인, 인위적인 신앙 행위가 아니라, 화려한 미사여구가 아니더라도 삶으로 표현된 그 믿음, 때로 손해 볼 수도 있는, 그러나 나의 필요보다는 다른 사람의 필요에 관심하는 그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동네에 처음 이사하면서 사람들과 친해지려 했습니다. 그렇다고 의도적이지 않고, 그저 이웃으로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자연스럽게 친해졌습니다. 처음에 이웃들은 저를 경계했습니다. 애냐하면 외부 사람이 들어와서 이익을 끼친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곳에도 한국인이 운영하는 수퍼마켓이 있는데, 도심에서 1불하는 것, 1불10전에 꼭 더 비싸게 팔지만, 이 곳 주민들은 차가 없어서 할인매장으로 물건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좋은 차 타고 동네에 들어와서는 비싸게 장사해서 돈 벌어 나갑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을 싫어합니다. 나를 장사하는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그 동네에도 흑인들의 교회가 몇 있지만 목사들이 그들과 함께 삶을 살지 않습니다.

동네에 아이들이 많이 있는데, 대부분 편부, 편모이고, 알콜, 마약 중독에 정상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여름 방학이 되면 그나마 학교 다닐 때에는 학교에서 급식을 먹었지만, 방학 때에는 머물 곳이 없습니다. 점심을 굶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동네에서 여름 켐프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한인 교회들에게 요청을 하여 3주간 동안 한 교회가 1 주간을 맡아 하기로 했습니다. 장소는 늘 아이들이 머무는 동네 골목을 여름 캠프 장소로 하였습니다. 마침 필라델피아에는 요청을 하면 교통을 통제하는 규정이 있어서 교통 통제 신청을 하였고, 골목은 3주간 차 없는 아이들의 천국이 되었습니다.

동네에서도 대 환영이었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고, 놀고, 먹이고 하닌 이 이상 더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2주째 되었을 때에 한 아줌마가 찿아와서는 나는 기독교인도 아니고, 복음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이 켐프가 복음이라고 칭찬을 해 주었습니다. 또 덩치가 큰 한 아줌마는 나는 이슬람인데 우리 두 아들이 이 켐프에 나가니 너무 좋다고 하였습니다.

뉴욕, 뉴저지에서 온 자원 봉사자들이 그 땡볕, 35도를 넘나드는 더위 속에서 아이들과 뒹굴고, 먹고, 마시고 하는 것을 보면서 마을 사람들의 마음문이 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 봉사자들을 통해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 줄 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진행되는 중에 동네 사람들도 같이 찬양하고, 같이 도와주고 하게 되었습니다. 흑인은 모계 사회여서 아이들을 주로 엄마, 할머니가 키웁니다. 종종 아이들이 말 안듣고 때를 쓸 때, 봉사자들이 난감해 합니다. 때릴 수도 없고, 그냥 내 버려 둘 수도 없고, 그럴 때 그 땡깡을 부리는 아이를 벽 한 쪽으로 데려가서는 뺨을 사정없이 후려칩니다. 그러면 또 상황이 수습이 되기도 하고 그렇게 서로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통이 차단된 이 골목 모퉁이를 도라 서기만 하면 그 곳에 늘 젊은 흑인이 그 곳에 8-10명이 항상,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밤이나 낮이나 언제나 항상 있는데 그게 무언가 했더니 마약 거래하는 자리 였습니다. 2 째 주가 되었을 때 였습니다. 그 골목에 늘 있던 것으로 생각이 드는 키가 매우 큰 뚱뚱한, 그리고 험상궃은 흑인이 나에게 찿아와 인사를 하며 고맙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4살, 6살 조카가 지금 그 켐프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필요한 것 있으면 부탁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모두 다 그 마약 거래자들의 조카이고 아들일 것입니다. 잠시 후에 이 흑인이 비닐 봉지에 아이스케익을 60개를 사가지고 왔던 기억이 납니다. 조금씩 그들의 이웃이 되어갔습니다.

봉사자들은 처음에 이 동네에 오는 것 자체를 두려워 하였습니다. 그만큼 워낙 열악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 하루 땀을 흘리면서, 동네 사람들과 낯을 익히면서, 그리고 아이들의 바뀌는 모습을 보면서 봉사자들이 오히려 은혜를 입기 시작하였습니다. 아! 그렇구나 우리의 안전은 우리의 힘이나 지혜나 어떤 외적인 도움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안전을 지켜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처음에는 냄새나고, 지저분하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말씀을 따라 섬길 때 우리 가운데 찿아 오신 예수님께서 그 섬김 가운데 우리와 만나 주시고 지켜 주심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 중에 유독 눈에 들어오는 한 아이가 있었는데 ‘타이히’라는 지금은 5살 된 아이가 있었습니다. 자기 마음에 안들면 뒤집어지고, 때리고, 뒹구는 아이였습니다. 이 아이가 한 번 난리를 치면 감당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 위해 많이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아이의 그런 난동이 충분히 이해가 갔습니다. 이 아이는 사랑에 굶주린 아이였습니다. 사랑을 받지도, 사랑을 표현할 지도 모르는 어린 아이였습니다. 3일 굶주린 사람을 뷔페 식당으로 인도하면 아마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먹어델 것이고 결국 탈이 나고 말 것입니다. 이 아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3주 여름켐프가 이 아이에게는 사랑의 뷔페였고, 너무 좋아 뒤집어진 것입니다. 이 아이가 3주를 지내면서 너무 달라졌습니다. 공 한 번 잡으면 누구에게 줄 줄 모르고 혼자 붙들고 있는 아이였습니다.

한 번은 함께 손을 잡고 어디를 가게 되었는데, 그 때 마침 가게 옆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이 아이가 제에게 “아저씨 돈 있어?”합니다. 그래서 “왜 나 돈 없어” 했습니다. 그러니까 또 물어 봅니다. 그래서 또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이 아이가 주머니를 조물랄, 조물락 뒤지더니 20 센트를 꺼내서 나에게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거 10 센트 있으니 나보고 쓰라는 것입니다. 나는 잠시 멍하였습니다. 한 번도 남에게 주는 것을 몰랐던 아이가 내가 없다는 것을 알고, 아마 처음이었을 것입니다. 나에게 자기에게 있는 것을 기꺼이 준 것입니다. 그 아이가 어느 날 길을 쓸고있는 것을 보기도 하였습니다. 이 아이의 변화해 모든 봉사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땅을 팔아서가 아닙니다. 집을 팔아서가 아닙니다. 네가 지금 있는 것 나누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작은 것을 나누었는데 그 곳 아이들은 생명을 맛 보았습니다. 관심과 사랑으로 막혔던 생명의 환희를 맛 보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것을 이용하시어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 내시는 것입니다.

지금 비 정규직 노동자 문제, 외국인 노동자, 새터민, 노숙자들 조선족 동포들 등 우리의 작은 관심을 기다리는 많은 손길 들이 있습니다. 주님은 그 손길을 저버리지 말라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이라 하십니다. 교회가 자꾸 성전 건축하고 교세를 확장하려고 하지 말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다가가서 가진 것 나누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세상은 그것을 보고 감동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그런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거듭 4번이나 되풀이 하신 소외된 이웃에대한 관심, 배려가 여러분들 안에 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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