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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하는...(2007년6월 3일, 성령강림주일후첫째주일)

하늘기차 | 2007.06.03 14:00 | 조회 1960


알지 못하는...

2007년6월 3일(성령강림주일후첫째주일) 신8:1-10
언젠가 친구 목사와 이러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대뜸 은혜가 뭐야 하길레, “은혜가 은혜지 뭐긴 뭐야!”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니!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다고 하면서 여전히 물질과 눈에 보이는 것으로부터 오는 즐거움에 만족한다면 그건 은혜가 아니지 않어”합니다. “겉으로 은혜라고 하는데, 그 내용을 보면 전부 세상의 것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래서 하나님의 평화가 아니라, 부자유하고, 눈이 멀고, 불안해 하고, 억울해 하고, 싸우고 한다면, 그것이 무슨 은혜인가?”하고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아니 육신을 입은 우리가 세상의 물질없이 어떻게 살어?”하였습니다. 당장 공기가 없으면, 물 없으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인데 어찌 의식주, 자녀교육, 그리고 직장에대하여 걱정없이 살아갈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눅17:26 이하에 볼 것 같으면 노아의 시대나 롯의 때에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나무를 심고, 집 짓고 그러다가 홍수가 나고 유황불이 내렸는데 마지막 때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입니다.그런데 나무심고, 집짓고,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하는 것이 무어 잘못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왜 성경은 그러한 일상적인 삶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 보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집착입니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집착합니다.

집짓고, 나무심고, 먹고, 마시고 하는 이러한 소를 사고, 팔고, 일하고 하는 이러한 일상성에 깊이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그게 어떻다는 것인가 하겠지만, 그러한 일상성에서부터 이제 근심, 걱정, 싸움... 무수히 많은 갈래의 어두움, 혼돈, 공허가 찿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일상성을 놓아버리고! 그야말로 하늘에서 오는 은혜를 온전히 입을까요? 그러면 이제 그건 귀신이지요. 그러면 어떻게 참 은혜로운 삶을 누리며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40년길을 지나 가나안 땅이 보이는 요단강 앞에 당도합니다. 그런데 숫3:4에 보면
“너희가 이전에 가 보지 않았던 길을 가기 때문에, 제사장들이 너희가 가는 길을 안내할 것이다”라고 합니다.

또 신8:3에도 보면
“주께서 너희를 낮추시고 굶기시다가, 너희도 알지 못하고 너희의 조상도 알지 못하는 만나를 먹이셨는데”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널 때에도 보면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는 가만히 서서, 주께서 오늘 너희를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지켜 보기만 하여라”고 합니다.

제가 인용한 본문들의 내용을 보면 한마디로 모른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방법으로는 이해할 수도 없고, 만들어 낼 수도 없는 방법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제 3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것도 아니고, 물질이 아닌 것도 아닌 제3의 방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신앙이고, 은혜입니다. 미리 다 알고, 이미 다 공표해 버린 것, 그것은 신앙일 수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에대한 믿음인데, 따라서 믿음이란 제3의 길을 바라는 삶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매우 수동적이고, 무능력하고, 굴종적인 것 같아 보이지만, 그 내면으로 들어가 보면 얼마나 많은 열정과 수고와 기다림, 긴장감 그리고 참평화가 따르고 있는지 모릅니다. 저는 이 신앙의 대표주자로 늘 모세를 추천합니다. 모세의 광야에서의 40년동안의 은둔생활입니다. 술에 쩔어 망가질 수도 있고, 난폭해져 폭력적일 수도 있고, 아니면 우울증에 자신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까지 갈 수 있었을 법 한데 모세는 자기 모습 그대로, 자기의 정체성을 그대로 지켜 40년 후에 결국 만날 분을 만납니다. 바로 야웨 하나님을 타지않는 가시떨기 불꽃에서 만나게 됩니다.

이렇게 ‘이전에 가보지 않았던 길’, ‘알지 못하는...’ 무슨 뜬 구름잡는 이야기인가 하실지 모르겠는데, 그래서 이야기를 하자면 지난 목요일에 밀양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성도로서 꼭 보아야 할 영화가 아닌가 십습니다. 좀 쑥스럽기도 하고, 고개가 끄떡여지기도 하는 감동적인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우선적으로 영화 제목에 친근감이 갔습니다. ‘밀양’, 그러니까 ‘비밀한 볕’인데, 어떤분은 밀(밀)을 ‘빽빽하다’. ‘촘촘하다’로 보고 빈틈없이 들어찬, 여지가 없이 들어찬 볓으로 보는데 저는 그 보다는 영어번역처럼 ‘비밀한 볕’ 즉 'secret sunshin' 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추어 있는, 드러나 있지 않은 햇볕으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볕은 따스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영화 처음 장면에서 밀양 가까이에서 차가 고장나 차 안에서 바라보는 파란 하늘 볕이나, 차에서 내려 뚝방 밑에서 아들과 쪼그리고 앉아 쬐는 볕이 참 따스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 날 때에도 신애의 집 마당 하수물이 흐르는 한 쪽 결코 깨끗지 않은 한 구퉁이 를 내리 쬐는 볕도 따사로웠습니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새로운 희망, 따사로움을 그것도 감추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감추어져 있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특히 보이는 것, 드러내기가 주종을 이루는 시대적 흐름 속에 감추어져 있다는 것은 작다는 의미도 있고, 보이든 보이지 않던 자기 모습 자기 자리에서 지킨다는 그런 자기 정체성 까지도 의미한다는 생각이 들어 - ‘비밀한’, ‘은밀한’ 보다는 - ‘감추인 볕’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을 교통사고로 사별하고, 나중에 밝혀지지만 남편이 바람을 피는 과정 속에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아픔을 미쳐 추수르지 못하고, 남편의 고향에 아들과 함께 내려옵니다. 사실 그러한 여주인공 신애에게 밀양은 “밀양이라고 뭐 다르겠어요? 사람 사는 데가 다 그렇지요.” 하고 송강호를 통해 두 번이나 이야기되는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이 있는 밀양으로 내려옵니다. 그 곳에서 신애는 아들을 잃게됩니다.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신애에게 삶의 희망을 열어준 것은 교회였습니다. 교회를 통해 신애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 신앙을 통해 삶의 새로운 의미를 얻게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교회생활을 통해 믿음을 키워가는 중에 아들을 살해한 사람을 면회가서 그의 죄를 용서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려 합니다. 그런데 정작 면회 장소에 나온 죄수의 표정은 평안하고, 보기에도 말끔한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당신을 용서하러 왔다는 신애에게 이미 자기는 하나님으로부터 죄 용서를 받고 모든 죄에서 자유를 얻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신애는 넋을 잃고맙니다.
“내가 용서하기도 전에, 어떻게 하느님에게 용서받아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가 있다는 거야, 나는 이렇게 고통 속에 괴로워하는데 어떻게 살인범은 그렇게 평온하게 살 수 있는 거야”합니다.
아니 내가 용서해야지 왜 하나님이 용서해, 용서할 사람은 내가 아닌가 하며, 견디지 못해합니다. 살인죄를 쓰고 양심에 고통스러워하며 뉘우쳐도 용서되지 안는, 그래서 피골이 상접해 있는 죄수를 상상하며 아들 유괴범을 만나러 갔는데, 범인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죄 용서를 받고, 그 살해의 죄에서 벗어나 자유하며, 평안해 합니다. 신애는 환한 얼굴을 하고 있는 죄수의 모습에 넋을 잃습니다. 그 때부터 신애는 하나님께 항거하며 스스로를 견디지 못해 자결하기도 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릅니다.

사실 신애의 몸부림은 구원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늘을 향하여 자신의 처지를 온 몸으로 드러내는 신애를 하나님은 어떻게 보고계실까요? 마치 욥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 내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하며 하나님께 부르짖는 욥의 모습과 중첩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실제 욥기에서 하나님은 욥의 죄 없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욥이 고통을 받는 것일까요? 의로운 자의 고통인데, 욥이 보여주는 것은 바로 그 죄 없는 욥의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밀양에서는 이러한 주제로 나아가고 있지는 않지만 하여간 그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신애의 모습에서 욥을 연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 이렇게 아무도 구원할 수 없는 신애 - 실제 신애는 아들을 유괴한 유괴범의 딸을 두 번이나 만나게 되는데 한 번도 그 유괴범의 딸에게 화해나, 용서, 관용의 몸짓을 보이지 않는 자기 폐쇄의 틀에 갖히어 있는 것을 봅니다 - 는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여기서 바로 밀양이라는 영화제목의 무게감을 맛 보게 됩니다. 바로 송강호입니다. 자동차 정비업소 사장 송강호는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신애곁에 항상 있습니다. 일상에서, 위기에서, 즐거움 속에서 마치 밀양과 같이 ...

신애는 누구로부터도 자기의 고통을 해결받지 못하는데, 그 고통스러워 하는 신애 곁에 늘 송강호가 함께 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정신병원에서 나와 머리부터 해야되겠다는 신애가 들어간 미장원에 마침 유괴범의 딸아이가 직원으로 일을합니다. 머리를 맡기고 몇 대화를 하는 과정 속에 그 딸아이의 눈에 눈물이 맺힙니다. 용서와 화해의 자리가 될 성 십던 자리에서 신애는 그 미장원을 박차고 일어나 자기 집으로 향합니다. 결국 용서, 관용, 화해는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 집에 와서 마당에 나와 스스로 거울을 앞에 놓고 머리를 자릅니다. 그 때 그 거울을 송강호가 붙들어줍니다. 그리고 카메라는 마당 수채의 더러운 작은 또랑을 보여줍니다. 그저 일상의 작은 마당 구퉁이, 그 곳을 햍볕이 따사로이(이 것은 나의 느낌인데, 반드시 따사로워야 합니다. ㅋ, ㅋ...) 내려쬐입니다. 그리고 머리를 자르려고 거울을 응시하는 신애의 얼굴이 거울에 비쳐 관객과 눈이 마주칩니다.

“당신 같으면 이 고통을 어떻게 감당할 것 같에? 느낌이 어때”하는 것 같습니다. 고통은 우리 모두의 모습입니다. 어찌 우리가 이 아픔 고통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바로 그 앞에 송강호가 있습니다. 밀양은 바로 송강호입니다. 내 입장에서 밀양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햇살입니다. 그런데 신애는 그것을 전혀 못 느끼면서 이미 송강호의 함께함 안에 있습니다.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 사랑을 알던, 모르던 느끼던, 느끼지 못하던 하나님은 송강호처럼 웃는 모습으로 거울을 붙들어줍니다. 바로 곁에서 밀양처럼 말입니다.

첫 장면에서 밀양으로 향하는 자동차 수리센타 주인 송강호의 정비차에 함께 동승한 신애가 송강호에게 반문합니다. “밀양의 뜻이 한자로 무언지 아세요? 그러자 송강호가 대답합니다. “글쎄예”, 그러자 신애가 비밀 밀(密), 볕 양(陽) ‘비밀의 햇볕’이라고 하자 송강호가 ‘비밀의 햇볕’ 하고는 허허하고 넉넉한 웃음지으며 ‘좋내예’합니다. 짧은 대화이지만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볼 때 결코 놓칠 수 없는 대사인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비밀의 햇볕을 쬐이면서도 무심코 그 고마움을 모르고 사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사입니다. 질문하는 신애도, 그리고 허허하며 사람 좋게 웃는 송강호도 누리면서도 누리는 것을 모르는 그러한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빌라도법정에 섰을 때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진리가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진리이신 예수님에게 진리가 무엇이냐고 묻는 드러나 있지만 감추어져 있는 비밀을 사람들이 모릅니다. 영화 속 대화에서도 신애가 영화 앞 부분에서 거듭 여기 어디 하나님이 있어요, 하나도 안 보이지 않는데 합니다. 그러나 영화 뒷부분으로 가면 신애는 그 안보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이야기 합니다. 봐라, 똑똑히 봐라 하면서 하나님에게 온갖 해꽂이를 합니다.

이 속에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상징하는 것은 바로 송강호입니다. 항상 신애 곁에 있습니다. 그런데 신애는 그 고마움을 깨닫지 못하면서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 도움을 받습니다. 머리를 자르며 새로운 출발을 하는 신애 앞에서 송강호는 거울을 들어줍니다.

교우여러분 드러나 있지만 보이지 않는 그 하나님의 손 길이 지금 우리 가까이에, 아주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항상 오고 있다는 소중함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자신의 처지가 힘들고, 어느 누구도 나를 이해 못해 하실지 모르지만 섬세하고도 세밀하게, 그리고 사물에대해 존귀한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그 분은 항상 나와 함께 하였음을 여러 가지 정황 속에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당면한 문제를 척척 들어주며, 응답해주는 그러한 하나님, 해결사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가장 힘들어 할 때, 하나님은 그 힘든 일에 같이 힘들어하며 함께 하시고 계십니다. 바로 그 하나님을 우리는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아니 그렇게 깨닫지 못하고, 느끼지 못해도 하나님은 지금도 송강호입니다. 바로 밀양입니다. 즉 비밀한 햇볕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마당 한 쪽, 그렇다면 그 마당은 온 우주이지요, 그 마당 한 쪽 별로 깨끗지 않은 무심한, 하수 개천 한 곁을 햇볕은 항상 천연하게, 따사롭게 비추고 있는 것입니다. 은혜입니다. 우리는 이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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