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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위에서 배 만들기(2007년5월13일, 어버이 주일)

하늘기차 | 2007.05.13 13:55 | 조회 2517


산 위에서 배 만들기

2007년5월13일(어버이 주일) 창6:5-9; 엡6:1-4

창4:16에 보면 가인이 “주님 앞을 떠나서”17절에 보면 “도시를 세우고”라고 합니다. 이제 가인은 하나님 없이 살아갑니다. 그리고 익숙해 집니다.·하나님 없이 사는 유일한 방법은 생존을 위한 치열한 싸움입니다. 인구가 증가합니다. 1부1처제가 무너집니다. 성적인 타락이 옵니다. 철과 동으로 강력한 무기를 만듭니다. 패역과 강포가 전염병과 같이 퍼져갑니다. 창4:23에 보면 라멕은 작은 상처를 입고 한 남자와 한 청년 까지 죽였다고 노래합니다. 전쟁의 영웅들이 폭력을 휘두르며 스스로 신임을 자처합니다. 그리고 폭력에 사로잡힌 그들의 자식들이 땅의 여자들과 결혼을 합니다. 하늘과 땅이 뒤섞이어 태초의 혼돈으로 다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살인자 가인에게서 비롯된 패역하고 강포한 문화가 온 도시 에 편만합니다.

이 이야기는 물론 창세기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바로 어제 있었던 일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한화그룹의 김승연 회장은 보복폭행 사건과 관련해서 “상대방을 탓하고 분노하기 이전에, 자식에게 먼저 회초리를 들어 꾸짖지 못했던 제 자신이 너무도 후회스럽기만 하다”고 말했습니다. 또 “누구보다도 사회에 모범을 보여야 할 신분으로서, 처음 사건 발단 시 적법한 절차 에 따라 신중하게 처신하지 못한 제 자신이 너무도 원망스럽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가족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내 아이, 내 식구만 잘 되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양희은의 여성 시대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거기서 한 아이에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인데 아이가 똑똑하여 수학경시대회에 나가서 상도 타고, 또 집에서도 명랑하고, 먹거리도 씩씩하게 잘 먹는 그런 아이인데, 어느날 부터인가 집에 오면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자기방으로 들어가 문을 딱 닫고는 두문불출 하더랍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피자, 햄버거를 사 주어도 시큰둥하고 해서, 그래 우리 아이도 드디어 사춘기에 접어 들었구나 했다고 합니다. 다소 걱정어린 모습으로 바라보았는데, 어느 날인가는 저녁에 아이가 좋아하는 간식거리를 아이 방에 살짝 떠 밀어 넣었는데, 그날 저녁 난리가 났습니다. 아이가 밤새 토하고, 설사하고, 그래서 병원에 갔더니 스트레스성 급성 위장염이라는 것입니다.

아니 내가 비록 남들처럼 아이들에게 최고의 좋은 것은 못 해 주어도 정성껏 아이를 보살폈는데,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았다니 기가막혔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조심스럽게 아이에게 다가가 “너 요즈음 무슨 일이 있니?”하고 물었답니다. 그랬더니만 아이의 입에서 슬슬 이야기가 흘러 나오는데 다름이 아니라 자기 짝이 왕 따를 당한다는 것입니다. 수업시간에도 돌아다니기 일 수이고, 점심 시간에도 밥을 흘리면서 먹어서 아이들의 눈총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 아이가 안타깝다고 하면서, 아이가 왕따를 당하는데, 자기는 그 아이가 급히 화장실을 갈라치면 자기가 데리고 가서 일 처리도 해주고, 밥흘린 것도 닦아주는데, 아이들이 나를 그 아이 딱가리라고 놀린다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아이들 눈치를 보아서 그런지 이 아이를 딱히 배려해 주는 것 같지 않고, 그래서 자기만 그렇게 자기 짝을 돌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럼 짝을 바꾸어 주라고 선생님께 이야기 할까 했더니, 그러면 그 아이 엄마가 또 학교에 찿아오고, 그러면 그 아이 엄마가 너무 마음 아파할 것 이라는 것입니다.

정신 장애아인 자기 짝을 돌보는 이 아이를 보면서 라디오 진행자가 “어른 보다 낫다”고 합니다. 아마 보통의 경우 엄마들은 당장 선생님에게 전화해서 짝을 바꾸어 달라고 했을 것입니다. 아니 학교에 진정을 내서 그 아이를 장애인 학교에 보내라고 난리를 첬을 것입니다. 이것은 폭력입니다.그런데 이렇게 생존을 위해서 싸웁니다. 어떤 사람은 패어 플레이를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반칙을 써 가며 자기 욕망을 징그럽게 체워 나갈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밀어내야 내가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이렇게 생존의 치열한 싸움을 싸워야 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고, 우리의 한계입니다. 인간의 운명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존의 싸움을 비켜가는 삶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일까요? 바로 노아입니다. 아우를 살해한 가인에게서 비롯된 패역하고 강포한 문화와 도시 속에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살고 있는데, 유독 노아만이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타락한 문화를 보시고 가슴이 찢어질듯 아파하셨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것을 후회하셨습니다. 사람을 창조하신 것을 한탄하셨습니다. 그러나 창6:8을 보면 “그러나 노아만은 주님께 은혜를 입었다”고 합니다.

공동번역에서는 은혜를 입었다는 말을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나라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들었습니다. 그 때에 마음을 밭으로 비유하시면서 농부가 밭에 나아가 씨를 뿌렸는데, 돌짝 밭에도 떨어지고, 가시 덤불에도 떨어지고, 길 가에도 떨어지고, 좋은 밭에 뿌려진 씨앗은 100배, 60배, 30배의 열매를 맺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길 가에 떨어진 씨앗은 새가 와서 쪼아 먹는다는 것입니다. 받은 말씀을 빼앗아가는 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사탄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버립니다. 가인이 그렇게 사탄에게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아니 아담과 하와가 그렇게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마음을 빼앗으려는 사탄의 유혹에 잘 견디어 자기 마음을 잘 지켰습니다. 노아는 자기의 마음을 잘 지켰을 뿐만아니라, 가정을 잘 지켰습니다.

그러나 사탄에게 끌리어 스스로의 자존감을 잃어버린 아담은 하와에게, 하와는 뱀에게 스스로의 책임을 전가 시켜 뱀보다 못한 존재로 전락해 버립니다. 사람은 자기 자존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대는 쉽게 자신을 돈의 논리에 맡겨버립니다. 돈이 없어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나의 행복, 가정의 행복을 돈에 핑개합니다. 학원교육, 아파트, 좋은차, 생필품...그래서 돈이 없으면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전세 살다가 아파트 전세금이 오르면 월세로 전락할 수 밖에 없습니다. 병이 생기면 병원에 가서 치료해야 하는데 돈이 없으면 병을 안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실제적인 살림에 돈이 부족하면 어렵고 힘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불행인 것은 아닙니다. 불편하고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참 행복은 그런 논리를 따르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포천에서 그나라 공동체를 이끄시는 윤공부 목사님으로부터 그나라 서신을 매 달 받는데, 올 해 15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15년을 돌아보며 목사님은 이 일을 처음시작 할 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무슨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적 동기입니다. 우리는 이 내적 동기에 충실하고 싶은 것입니다. ‘성공할 것인가?’‘하지 못 할 것인가?’를 묻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이 일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셨는가?’입니다. 그리고 이런 것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 일을 지금 해야 하는가?’하는 시기의 문제입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하여 우리는 가난한 마음으로 우리 자신을 주의 손에 내어놓을 뿐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바는 ‘우리 가운데 계신 성령이시여 당신의 뜻을 이루소서’이렇게 기도하는 서신을 받았습니다.

윤목사님의 글을 보면서 느꼈던 것은 자존감이었습니다. 내적 동기에대해 이야기 하십니다. 그 외의 것에 대해서는 마음을 두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성공할 것인가? 어떤 사람들이 일에 함께 할까? 경제적인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까? 이러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들은 내가 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일을 시작하신 분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윤 목사님이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마음의 내적 동기를 어떻게 끝까지 변하지 않고 지킬 수 있을 것인가 라는 것입니다. 윤 목사님은 그 내적 동기에대해 ‘가난한 마음’이라 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가 받는 축복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라 축복해 주셨습니다. 세상의 나라가 존재하는 것처럼 엄연히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그 나라의 왕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며, 인도하십니다. 세상의 가치나 기준이 감히 접할 수 없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노아는 바로 그러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며, 하늘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리고는 그 말씀을 따라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미친짓이라 할 수 있는 ‘산 위에서 배 만들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산 위에서 배만들기’는 노아 혼자 하지 않았습니다. 추측컨대 온 가족이 합심하여 ‘산 위에 배 만들기’를 시작하였습니다. 가족이 하나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노아의 어떤 면이 가족을 하나되게 할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이 미친 짓인 ‘산 위에서 배 만들기’에 가족이 모두 동참할 수 있었을까요? 결국 노아와 그 가족은 산 꼭대기 위에 지은 배를 탔습니다. 그래서 온 세상을 뒤 덮은 홍수에서 짐승들과 함께 건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노아의 홍수는 단지 인류에대한 하나님의 심판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노아의 홍수의 과정을 보면 하나님의 괴로워하는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멀리에서 도인처럼 멀리에서 정갈하게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들의 악한 생각, 더러움, 강포와 패역을 안타까워 하십니다.사람을 만드시고 후회하셨습니다. 마음 아파하시며 탄식하십니다. 바로 이 인간에대한 사랑의 갈등이 이 홍수 이야기의 중심입니다. 이 하나님의 괴로움과 아픔 그리고 사랑의 갈등을 누가 해결해 줄 수 있을까요?

바로 노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서 새로운 가능성을 찿았습니다. 노아는 은혜를 입은자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든 사람입니다. 그런데 노아의 이름의 뜻은 “위로하다”입니다. 누구를 위로하였을까요? 그렇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을 위로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인간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해 위로를 받았습니다.

얼마 전에 밤토실어린이 도서관에서는 동화 작가 박경률 선생님과의 대담 시간을 가졌는데, 그 때 편하게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고 하였습니다. 과연 작가는 이 세상 살림을 어떻게 꾸려가나 하는 궁굼증도 있고 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으면서 자기 아들이 이제 중학교 1학년이 되었는데, 아이를 어떻게 하면 공부 시키지 않을까 해서 이우 중학교에 보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학 숙제를 내 주었는데, 하루 꼬박 세워도 다 하지 못할 분량이어서 이 학교에 아이를 잘 못 보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처음이어서 아이들의 마음을 모으기 위해 그렇게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심이 되었답니다.

이 분 참 웃기죠, 숙제 적게 내줄 것이라는 것에 안심했다는 것입니다. 공부 안시키기 위해 이우 중학교에 보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존의 성적 순으로 아이를 줄 세우는 교육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원에 아이를 안보내고, 부족한 것은 자기가 도와주고, 그 나이에 꼭 필요한 것을 익히고 맛 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 사는 이야기 하면 결국 아이들 교육, 다시말해 아이 대학보내는 일로 돌아간답니다. 이우 학부모들도 아이들과 학교에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지막 자리에 가면 결국 아이가 어떤 대학교들어가는 가 하는 것에 발목이 묶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인 것입니다. 그래서 가끔 작가와의 만남에 초청을 받으면 이렇게 편하게 아이들 학교 보내는 일에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공부하면 외국어, 수학, 국어 아닙니까? 자기는 그 나이 때에 영어 공부를 주로 암기식으로 했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시골에서 중학교를 다녀서 학원도, 참고서도 변변치 못했다는 것입니다. 자기 집에 놀러 온 어느 친척 형의 권유로 영어책을 외웠는데, 지금 혹 외국에 나가면 발음은 어떨지 몰라도 의사 소통이 충분히 된다는 것입니다.

국어도 논술이다, 독후감이다, 논리다 하는데 그저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잘 아는 어느 여류 문학작가가 있는데 그 분은 세 번을 결혼 하여 아이가 여럿 있는데 아이들의 성이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집에서 아이들을 잘 키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아이가 성공회대학에 수시입학을 했는데, 수시 입학의 대부분이 자기 소개서를 쓰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특별히 열심히 공부 하지 않았지만 자기 소개서를 잘 써서 대학에 입학했다는 것입니다.

박상률님은 한 마디로 1등 할 것 아닌데, 왜 아이를 줄세우냐는 것입니다. 그 분은 지난 겨울 방학 때 아이와 서울에서 고향 진도까지 걸어서 여행을 했다고 합니다. 참 아빠의 아이를 위한 배려였습니다. 얼마나 힘들겠습니까만, 그리고 아이가 가지 않으려고 했겠습니까만, 정말 귀한 공부를 한 것 같습니다.

우리 밤토실 도서관과 함께하는 그리고 고기교회를 사랑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을 보면 아파트, 학원, 좋은 차 없어도 만나는 줄거움, 나누는 즐거움 속에서 여러 가지 어려운 일 속에서 위로 받는 삶, 함께 나누는 기쁨을 원하며 자주 교회를 찿고 만납니다.

그런데 말이죠 콩이 말이죠 그대로 있으면 하나 이지만 나누면 둘이 됩니다. 그 둘을 또 나누면 4이 됩니다. 양은 작아질지 모르겠지만 함께 하는 마음은 거기서 더 늘어나고 더 커집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마음을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6:9에 보면 그러한 모습을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을 나누는 삶말입니다. 자기 열심히 해서 자기것 챙기며, 지키는 열심하는 삶도 중요하지만, 성경은 그것보다도 마음을 나누라고 합니다. 특히 하나님과 마음을 나누라고 합니다.

몇 일 전 이명박 대통령 후보 예비자가 747을 선언하였습니다. 7% 경제 성장, 4만불 시대, 그리고 7대 강국을 뜻합니다. 또 한 번 경제개발에 목숨을 걸겠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이명박 전 시장은 "잃어버린 10년을 넘어 대한민국은 새롭게 도약해야 한다"면서 "세계가 인정하는 국가, 세계의 모범이 되는 국가, 세계 일류국가를 창조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다. 그는 "7% 경제성장, 4만불 소득, 세계 7대 강국, 대한민국 747을 실현해야 한다"며 "한반도 대운하와 국제과학비즈니스도시, 교육개혁 등 국은울 융성시킬 창조적 프로젝트도 성공시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신문보도를 읽고 무척 힘들어 했습니다. 우리가 해방 이후 줄기 차게 해 온 일을 또 하겠다는 발상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 경제, 물질우선 의 가치의 홍수에서 어떻게 자유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어떻게 구원 받을 수 있을까요?

우리 노아처럼 온 가족과 함께 산 위에서 배 만들기를 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산 위에 올라 배를 만듭시다.

“쓱싹 쓱싹, 뚝딱, 뚝딱 해가 쨍쨍 내려 쫴었습니다.
“쓱싹 쓱싹, 뚝딱, 뚝딱 마을 사람들이 비웃었습니다.
“쓱싹 쓱싹, 뚝딱, 뚝딱 그러나 산 속 깊이 배만드는 소리가 메아리 쳤습니다.
“쓱싹 쓱싹, 뚝딱, 뚝딱 이기심을 베어버리고, 이웃사랑을 세우고
“쓱싹 쓱싹, 뚝딱, 뚝딱 거짓과 사이비는 잘라버리고 진리를 세우고
“쓱싹 쓱싹, 뚝딱, 뚝딱 분열은 잘라버리고 하나됨을 세우고
“쓱싹 쓱싹, 뚝딱, 뚝딱 교만은 잘라버리고, 순종과 온유를 세우고
“쓱싹 쓱싹, 뚝딱, 뚝딱 죽음과 어두움은 잘라버리고, 생명과 부활은 세우고

이렇게 우리 노아처럼 산 꼭대기 위에 온 가족이 힘을 합하여 배를 만듭시다. 위로자인 노아를 통해 하나님께서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 나갔듯이 이 고기교회에 속한, 함께하는 모두와 함께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이룩해 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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