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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바로 서자(2008년5월17일, 성령강림주일후 첫번째주일)

하늘기차 | 2008.05.18 15:09 | 조회 2088


믿음으로 바로 서자

2008년5월17일(성령강림주일후 첫번째주일) 롬5:1-6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쪼개어지고, 그리고 아하스가 남쪽 유다의 왕이었을 때 북 이스라엘과 시리아가 연합하여 남쪽 유다를 침략합니다. 곧 남쪽으로 밀고 내려올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자, 사7:2에 볼 것 같으면 ‘왕의 마음과 백성의 마음은 바람에 휩쓸린 수풀처럼 흔들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사야는‘그것은 그렇게 될 수도, 그럴 수도 없는 일, 육십오년 만 지나면 북 이스라엘은 망할 것’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이사야는 흔들림이 없이 이러한 정 반대의 말을 담대하게 할 수가 있었을까요?

이러한 모습은 사도 바울에게도 나타납니다. 바울이 로마 황제에게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향하는 뱃 길에 풍랑을 만납니다. 원래 사도 바울은 로마로 가는 중간 기착지인 크리타섬 남쪽 해안에 있는 미항이라는 곳에 도착하였는데, 그 때가 태풍이 부는 시기라, 겨울을 그 곳에서 보내고 이른 봄에 로마로 향하자고 권면을 하였지만, 선주, 선장, 그리고 선원 모두가 미항 보다는 더 크고 화려한 즐기기 좋은 또 선주 입장에서는 항해를 단축 시킬수 있어서 뵈닉스라는 항구에서 겨울을 나려는 욕심에 출항을 하게 됩니다. 결국 풍랑을 만나 모두 죽게 되었습니다. 여러날이 지나 살 희망이 꺽일 때 사도 바울은 선원들에게 배만 부서질 뿐 사람들은 목숨을 잃지 않을 것이니 음식을 먹으라는 권면을 합니다. 이러한 위기적 상황 속에서 사도 바울, 그리고 이사야는 어떻게 그러한 견디기 힘든 상황을 잘 견딜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의 삶은 일상적이고, 평온할 때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시험이 오고, 위기가 올 때 하나님과 함께 하는 믿음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삶은 다릅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이 멸망할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대하여 “내가 앞으로 하려고 하는 일을 어찌 아브라함에게 숨기랴?”고 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 사실을 알고 소돔성으로 달려가 조카 롯을 구합니다. 그런데 소돔성에 살던 조카 롯이 구원함을 받은 것에 대하여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기억하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을 기억하였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상점에서 필요한 물건이 있어 마침 잘 되었다 하고 그 물건을 사려 하다가 보면 언듯 ‘아! 누구, 누구에게도 하나 사서 줘야지!’하며 다른 사람의 것도 챙겨서 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 기억하여 그 물건을 살 때 참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가까운 사람과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나누고 싶으신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과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시대가 모든 것을 돈으로 사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마음과 마음이 통하기 보다는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이럴 때 일 수록 나에게 있는 좋은 것을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사람들과, 그리고 힘이 되는 한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기억했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나누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함께하는 사람들을 기억하여 있는 것, 좋은 것 나누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목공방에서 나무를 많이 구했습니다. 엄청 많이 구했습니다. 총 3일에 걸쳐 나무를 대략 5톤 차량 분량을 구했습니다. 2톤 정도는 이미 가지고 왔고, 나머지 3톤 분량을 더 가지고 와야 합니다. 왜 이렇게 많이 구했나 할 텐데, 우선 생각나는 것은 나누고 싶어서입니다. 마당이 있는 사람, 또 아파트에 있는 사람들도 이번에 좋은 나무를 많이 구했으니, 공방에서 원하는 것 잘 만들어 사용하는 즐거움을 맛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목공방을 잘 운영하여 돈의 가치가 아닌 창조의 손길, 생 나무의 맛, 만드는 기쁨을 느껴 보았으면 합니다. 공방의 여러 소중한 가치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우리를 허구적인 바쁨에서, 일의 중독에서 우리를 쉬게하는 안식하게 하는 좋은 공방이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여간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기억하셨다는 것을 보면 하나님과 아브라함은 매우 가까웠나 봅니다. 그런데 그렇게 좋은 것 나눌 정도로 가까울 수 있었던 출발점은 어디에서 부터였을까요? 바로 창15:6입니다. 아브라함이 중동의 큰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조카 롯을 구하여 돌아온 뒤, 큰 두려움에 싸입니다. 12절에 보면 깊은 어둠과 공포가 그를 짓눌렀다고 합니다. 1절에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을 보면 아브라함이 꽤 힘들었던 시기인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렇게 힘들었던 이유는 자식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식이 없으니 당시 부족국가로서 나름대로 큰 세력을 이루고 있었지만 아브라함은 늘 불안해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 자신의 후계자로 자식 같은 하인 엘리에셀을 차기 부족장으로 임명하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너에게서 난 아들이어야 후계자가 된다고 못을 박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99살이 되었는데, 그래서 아들에 대한 생각은 거의 접은 상태인데, 하나님께서 다시 나타나셔서 처음에 맺었던 언약을 다시 상기시키신 것입니다. 환장할 노릇이지요. 그런데 그 때 아브라함은 그렇게 다시 말씀하시는 그 약속을 받아들여 흔들리던 마음을 추스립니다. 바로 창15:6의 말씀입니다.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는 아브람의 그런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인정하신 것입니다. 부족하고, 결점이 많고, 아직도 신뢰가 가지 않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겠다는 것을 인정하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 롬5:2절에 보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금 서 있는 이 은혜의 자리에 믿음으로 나아왔’다고 합니다. 한글 개역 성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은혜는 어떤 은혜를 뜻하는 것일까요? 1절에 보면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고 합니다. 바로 이 은혜입니다. 평화를 누리는 은혜입니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으므로 오는 평화입니다.

최근에 박지성 선수가 부상의 공백을 깨고 팀의 주전으로 우뚝 섰습니다. 프리미어 리거로서 유럽챔피언스 컵 결승에서 뛸 수 있 기회를 잡을 것같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에 많은 이야기들이 떠오르는데, 그 중 가장 신뢰가 가는 이야기는 역시 맨체스타 유나이티드의 퍼거슨 감독의 이야기입니다.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에대해 “이번 결승전에 출전할 좋은 기회를 갖고 있다 ”라고 말한 뒤 “그는 정말 환상적인 100% 프로페셔널이다 ”라고 극찬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다른 이야기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감독이 박지성을 이 번 결승에 뛰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왜냐?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개인기도 떨어지고, 공격수로서는 골도 적게 넣고, 체격도 외소하지만 그의 끊임없이 공간을 확보하며 전후방 가리지 않고 뛰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감독에게 꼭 필요한 선수인 것입니다.
 
이렇게 감독에 인정을 받으니 평화입니다. 이영표, 이동국은 감독이 인정을 하지 않으니 평화가 아닙니다. 불안합니다. 언론이 그것을 그냥 놓아두지 않고 드러내니 갈등이 증폭됩니다. 안정환, 고종수 선수도 감독이 인정해 주지 않을 때에는 늘 불안했고, 시끄러웠지만 자기를 감독이 자신을 인정해 주니 평안합니다.

축구에서도 이렇게 감독이 인정해주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데 그렇다면 오늘 1절 말씀처럼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이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오늘 이 시대의 물질과 과학이 만들어 내는 문명을 보면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일들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중동의 전쟁, 민족 간의 갈등, 최근 우리 사회의 문제가 되고 있는 미국소 문제 , 운하 문제, 교육 문제 등, 그리고 유전자 조작하는 것 등...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을 보고 우리를 인정할까요?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고 인정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의 시작은 어디서 부터일까요?

어느 목공소가 있습니다. 목수 아저씨가 여러 나무들 가운데에서, 어느 하나를 택하여 훌륭한 조각품을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한 구석에 잘 놓아 두었습니다. 그런데 도제가 청소를 하면서 쓰고 남은 나무들을 불쏘시개로 난로에 넣으면서 목수가 따로 놓아 두었던 나무도 함께 넣었습니다. 마침 주인이 목공소로 들어와서 보니 난로에서 자기가 남겨놓은 나무가 난로 안에서 불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깜짝 놀라 그 나무를 그 불 속에서 끄집어 냈습니다. 아직도 그 나무에서 연기가 풀풀났습니다. 나무가 불에 많이 그슬러 시커멓게 탓습니다.

그래도 이 나무는 감사했습니다. 그 속에 있었으면 영영 타버렸을텐데, 그러자 얼마 후에 목수는 이 나무를 톱으로 썰고, 끌로 깍고, 대패로 다듬어 나갔습니다. 이 나무는 너무 아팠습니다. 그러나 이 나무는 꼭꼭 참았습니다. 왜냐하면 얼마전에 불구덩이에서 건짐을 받은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 고통을 참을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주인이 자기를 깍고, 닦아 지금 무엇인가 만들고자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저렇게 갈고, 파고, 닦으며 하는 동안에 이 나무는 멋진 작품이 되었습니다. 구원을 받았다는 기쁨은 바로 이러한 기쁨입니다. 아모스 예언자는 암4:11에서 “나 하나님이 옛날에 소돔과 고모라를 뒤엎은 것처럼, 너희의 성읍들을 뒤엎었다. 그 때에 너희는 불 속에서 끄집어낸 나뭇조각처럼 되었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3:10 이하에서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건축가가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금, 은, 풀, 나무, 보석 등으로 집을 짓는데, 그러나 심판 때가 되면 각 자 자기가 한 일이 명백히 드러날 것이며, 심판의 날은 불을 몰고 오겠고 그 불이 우리들이 세운 집을 태울터인데 그 집이 그 불을 견디어 내면 상을 받을 것이고, 타버리면 낭패를 당할 것이라고 하면서, 그러나 그 바울 자신은 불 속에서 살아나오는 사람 같이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마지막 때에 모두 하나님 앞에서 불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우리들의 모습은 불구덩이 속에서 연기가 풀풀 나는채로 건짐을 받은 모습입니다. 그야말로 초라한 모습입니다. 아직 타다남은 숯댕이가 그대로 남아있는 모습입니다. 그 불구덩이 속에서 건져냄을 받은 그 감격, 그 기쁨입니다. 교우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바라 볼 때에는 불타 죽을 수 밖에 없는 부지깽이 같은 것이 건짐을 받아 살았다는 그 감격, 그 기쁨으로 세상을 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시작은 바로 여기서 부터인 것입니다. 사업에 실패한 눈, 성공한 눈, 이기심의 눈, 부자의 눈, 가난한 자의 눈, 자기가 갖고 있는 종교적인 틀, 자신의 사회적 지위, 권력, 자신의 공력, 즉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할 때 말씀했던 것 처럼 금이나, 은이나, 풀, 나무, 보석이 아니라 구속받은 기쁨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것이 바로 보입니다. 인간의 지식으로, 어떤 과학으로도, 어떤 사상과 철학으로도 세상을 바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구속의 기쁨, 구원의 감격으로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겉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의 뒤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살게 된 것은 요셉의 꿈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의 아들 꿈쟁이 요셉은 자신이 꾼 꿈으로 인하여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아갑니다. 형들에게 죽을 뻔 하고, 노예로 팔려가고 감옥에 갖히고, 총리대신이 되고, 그리고 형들과 온 가족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사실 요셉은 처음에 형들을 만났을 때에는 그들을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형들을 계속 시험합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요셉의 마음이 완전히 바뀌어 버리고 소리내어 울음을 터뜨리고 맙니다.

그리고는 결국“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에서 보내셨나이다.”라고 언급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이행하기위해 미리 요셉을 이집트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경륜, 그 섭리를 몰랐습니다. 그 총명하고 지혜로운 ,그래서 총리대신이 된 요셉도 자신이 생각으로는 마지막까지 그 비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고난, 죽을 고비, 보디발 장군의 아내와의 스캔들, 그리고 감옥살이... 형들에 대한 복수심이 형들과의 화해의 눈물과 뒤범벅이 되면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려고 먼저 보낸 것 이다.”라는 신앙고백 한 마디로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 비밀과 하나가 되어버립니다. 과거의 일들이 그 신앙고백으로 영화를 보듯 밝게 조명이 됩니다. 아하, 그렇구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말씀만으로”, “말씀에 의지하여”,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이러한 신앙고백,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고백이 과거의 고난과 앞으로의 푯대를 향한 소망의 이정표가 됩니다. 어쨌든 하나님이 요셉을 택한 것은 바로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구원의 감격이 있는 사람에게 시험과 환난은 더 이상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시험은 인내와 연단을 통해 희망으로 나아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그렇습니다. 그의 인생의 과정을 통해 그는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영광의 자리 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박지성 선수가 맨체스타 팀의 퍼거슨 감독에게 인정을 받은 것 자체가 그것은 영광인 것입니다. 한국의 축구 잘 하는 청년이 세계 최고의 리그의 영국 최고의 팀의 선수로 선발되었다는 것 자체가 영광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불리움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영광인 것입니다. 박지성이 속한 멘체스타는 올 해 리그의 우승을 차지하였고, 챔피언스 리그 결승 에도 나가있는 상태입니다. 박지성 개인에게 영광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에 하나님께서 성도들과 함께 영광을 나누시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미 나를 인정해주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오고 가는 세대에 온전한 모습으로 하루 하루를 감격으로, 생명력 있게, 은혜 입은 자로, 하나님의 평화를 맛보며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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