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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 가정(2008년5월11일, 성령강림주일)

하늘기차 | 2008.05.11 13:39 | 조회 2167


아름다운 우리 가정

2008년5월11일(성령강림주일) 왕하4:1-7;엡6:1-4

오늘 말씀에서 엘리사는 자기에게 찿아온 한 과부의 간절한 호소를 들어주고 있습니다. 이 여인의 남편은 엘리사의 문하에 들어있던 제자였는데, 그만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죽을 때 빚을 많이 지고 죽었습니다. 그래서 빚쟁이가 와서 아들 둘을 데리고 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빚을 얻을 때 그 가족을 빚에 대한 보증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만약 기한 내에 돈을 갚지 못하면 가족이 대신 종살이를 해야 하는 것이 그 당시의 법이었습니다.

이렇게 딱한 처지를 당한 여인은 가만히 있지 않고 하나님의 종 엘리사에게 찿아와서 자신의 딱한 사정을 고한 것입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이 여인에게 묻습니다.“내가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되”겠느냐 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집에 남아있는 것이 무엇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래서 기름 한 병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고 합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이웃에게 가서 빈 그릇들을 빌려오라고 합니다. 되도록 많이 빌려오라고 합니다. 집에 빌려 와서 문을 닫고 그 빌려온 그릇 마다 모두 기름을 부어서 채워지는 대로 옆으로 옮겨 놓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여자는 예언자 엘리사가 시킨 그대로 하였습니다. 그러자 빌려온 그릇에 기름이 전부 채워졌습니다. 그러자 이 여인은 그 사실을 예언자에게 알립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그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생활비에 쓰라고 합니다.

구약의 욥이 가족, 재산, 건강, 아내, 친구를 모두 잃어버렸을 때, 욥에게 있는 것이 있었어요, 바로 하나님 아버지 였습니다. 비록 모든 것을 잃었지만, 아니 눈에 보이는 것을 잃었지만, 바로 그 때 보이지 않는 하나님,우리의 모든 것인 하나님을 참으로 만난 때는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욥은 욥1:21에서“모태에서 빈 손으로 태어났으니, 죽을 때에도 빈손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주신 분도 주님이시오, 가져가신 분도 주님이시니,주님의 이름을 찬양할 뿐입니다.”고 신앙을 고백합니다. 욥에게 진정으로 있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입니다. 그것을 욥이 깨달은 것입니다. 마치 이 엘리사의 문하생의 아내에게 유일하게 남은 기름 한 병이 아닌가 십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기름 한 병이 있는지 묻고싶습니다.

부모의 역할 중에 가장 중요한 역할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자녀의 소질을 잘 개발하여 그것을 잘 키워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아이의 소질을 잘 일깨워 준다고 하면서 잔소리만 늘어논다 거나, 부모의 뜻, 생각을 따라주지 않는다고 해서 윽박지르거나 체벌을 하고 큰 소리를 친다거나 하면, 그러다 보면 다른 일에서 당한 분풀이를 아이들에게 한다거나, 특히 부부 간의 갈등이 아이들에게 표출된다거나, 상황 판단이나, 심리파악 없이 부모의 자의적인 판단에따라 무경우적으로 성급하게 아이들을 다룬다면, 아이들은 치유될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되고 그것이 쌓여 골3:1의 말씀처럼 아이들을 격노케 하여 실망시키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이 그렇게 자라면 비관적인, 그리고 우울한, 또 폭력적인, 폐쇄적인 사람이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그러나 아이가 다소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기대치 만큼 미치지 못하더라도 믿음을 가지고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아 준다면 그 아이는 반드시 귀한 겨자씨 같은 하나님 나라의 겨자나무가 될 것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아니 키우는 일에 있어서 중요한 덕목 중에 하나는 기다리는 것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기다리겨면 신뢰가 있어야합니다. 즉 부모가 자녀를 믿는것입니다. 자식 사랑은 입으로가 아니라 이렇게 신뢰로서 보여져야합니다. 그래 넌 잘 할 수 있어, 그러나 못해도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되지, ‘다음부터는 그렇게 하지 말어!’ 하면서 변치않는 사랑으로 아이를 끝까지 믿어주는 것입니다.

부모는 무엇인가 성취지향적입니다. 무엇인가 이루어 결실한 것이 눈에 보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사춘기 때의 자녀들은 자기 정체성을 찿아가는 때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이 될까? 그래서 친구들을 사귀고, 스스로 독립해 보고 싶어합니다. 부모는 사춘기 자녀가 어리게 보여 여전히 간섭하며 손 안에 두려고 합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갈등을 너무나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때에 부모는 자식이 좀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이고, 부모의 말을 따라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부모는 아이가 바로 설 것이라는 신뢰감을 자녀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결국 부모가 자식에게 끊임없는 신뢰감을 갖고 사랑을 베풀 때, 결국 부모의 사랑을 찿아 반드시 다시 오는 것입니다. 그 기다림이 바로 자식 사랑의 신뢰인 것입니다.

올해에 우리 교회에 여러 가지 꽃 나무를 심었습니다. 산수유, 꽃사과, 산딸나무, 그리고 감나무도 2 그루, 개복숭아도 심고 논에는 연 꽃도 5종류를 심었는데 보니까 연못에서 싹이 나오더라구요, 그런데 아직도 싹이 나오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아니 이미 꽃나무들이 꽃을 다 피우고 열매가 맺히어 자라고 있는데, 아직도 싹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 이거 잘 못 옮겨 심어 죽었나 했습니다. 이렇게 느리게 순이 돋는 나무도 있습니다. 무슨 나무인지 아세요? 그 것을 알면 나무에 대해 꽤 아는 것 아닌가 합니다. 무슨 나무인가 하면 배롱나무입니다. 백일홍이라고 하지요. 이 나무는 한 창 더울 때 빨갛게 꽃을 피우는 아름다운 나무인데, 이 번에 교회 논 건너 경계가 있는 곳에 장로님과 함께 심었는데, 좀처럼 싹을 내지 않는 것입니다.

성가대원인 재석씨 아버님이신 유장로님이 기꺼이 허락하여 분양을 받았는데, 아 싹이 나지를 안는 것입니다. 죽은거아닌가 했습니다. 다른 나무들은 다 싹이 돋았습니다. 회화목인가요, 그냥 나무 막대기를 멀데같이 하나 꽂아 놓았는데도, 그 줄기에서 싹이 돋아납니다. 그런데 아, 글쎄 이 배롱나무에서는 싹이 좀처럼 나지 않았는데, 그래서 얼마나 애가 타는지, 그런데 지난 주 화요일인가에 가서 보니까 조그많게 싹을 내었드라구요, 그 싹이 얼마나 귀엽고, 가상한지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아! 우리 자녀들도 이렇게 빠른 아이도 있고, 늦게 철이드는 아이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아이들에 관한한 기다림은 아름답고, 또 덕스러운 미덕 중에 하나이니 하나님께 마땅히 그 은혜를 꼭 구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엡6:1-4은 부모와 자녀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부모에게 따로, 자녀에게 따로 주는 말씀이 아니라, 부모와 자녀가 상호 간에 이렇게 교감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순종하라” 또“주님의 교양과 훈계”라고 합니다 즉 가르치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는 것에, 그리고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에 주님이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다시 말해 순종하는 일과 가르치는 일이 한가지 이고, 은혜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한 가정을 이루어 남편과 아내가 된 것은 은혜입니다. 그 사이에 태어난 자녀도 은혜입니다. 그래서 이 자녀가 자라면서 가정 안에서 은혜를 맛 보며 자라 어른이 되어 그 받은 은혜를 가정 안에서 나누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가정은 은혜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던 이 엘리사의 제자의 가정에는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기름 한 병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어찌보면 이것이 마치 우리의 척박한 삶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교우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혹시 기름 한 병 마저도 다 없어진 것은 아닌지요?

헨리 나우엔이라는 신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미국의 예일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쳤는데, 어느날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캐나다 토론토의 라르쉬 공동체에 들어가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곳에는 ‘아담’이라는 25세된 중증장애인이 있었느데, 그는 말도 할 수 없고, 걷지도 못하고, 도와주지 않으면 먹을 수도 없고,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단지 가끔 눈 맞춤만 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등과 팔 다리가 뒤틀렸으며, 심한 간질로 고통받고 있었다고 합니다. 과다한 약물을 복용해야 몸을 유지할 수 있고, 가끔씩 발작을 일으키기도 하는, 고통스러움을 제대로 표현할 수도 없는 장애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어떻게 이 사람을 도울 수 있고, 어떻게 의사 소통을 할 수 있을까 하며 전전 긍긍하였는데, 시간이 지나며 아담이라는 청년과 교감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담은 자기의 생각이나 감정을 전혀 바깥으로 표출 할 수 없는 사람이었는데, 그래도 아담과 식사를 하고, 옷을 갈아입히고, 생리를 해결하고, 외출하여 운동도하고, 목욕을 시키는 과정 속에서 생각이나 감정의 영역을 뛰어넘는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서 깊은 곳으로, 영혼이 영혼에게, 마음이 마음에게 서로 간에 지식이나, 감정을 넘어서는 관계가 맺어졌다는 것입니다.

헨리 나우엔은 그동안 늘 자기 가치관과 뜻에 따라 자신의 목적한 바, 학문, 권력, 인기, 명예 등을 성취하고자 앞만 보고 달려왔으며, 그 여정 속에서 스스로 얼마나 거칠어지고, 폭력적이고, 적개심과 경쟁심과 욕망과 강박관념에 그리고 피해의식과 의심, 질투, 시기, 분노 그리고 복수의 순간들로 이어져 왔는가를 돌이켜 볼 때, 지금 아담 앞에서 자신은 자신의 속 안의 것, 즉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너무 소중하여 마음 속 깊숙이 심어놓은 믿음, 소망, 사랑이 아담과 만나며 하나 둘 씩 찿아졌다는 것입니다. 이 전에는 전혀 느낄 수 없던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주고 받음 속에서 무한한 평안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담은 매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담 때문에 누군가 집에 있게 됩니다. 그 집에는 조용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침묵과 고요함, 아담 때문에 늘 애정어린, 친절한, 부드러운 말들이 오고 갑니다. 인내와 오래 참음이 있습니다. 용서와 치유가 있고, 궁극적으로 평안이 있습니다. 여기서 아담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단지 공동체 식구들과 함께 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헨리 나우엔에게도 아담을 위해 할수 있는 것은 함께하는 일입니다. 아담이 원하는 유일한 것, 그것은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함께하는 것이야말로 그것은 구원인 것입니다. 은혜인 것입니다.

마1장에 나오는 예수 탄생의 이야기를 보면, 천사가 나타나 마리아에게 아기를 잉태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해 주는데, 그 때 천사가 아기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라고 합니다. 그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도다.’입니다. 그런데 25절에 보면 요셉이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고 짓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구원자이시다’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이란 함께함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이야 말로 구원인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의 끝절인 마 28:20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언제나 변함없이 함께하십니다. 깨닫지 못해서 그렇지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어떻게 함께 하셨는가 하면 모든 것을 다 내어놓고 십자가에 달리시어 죽기까지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이 함께하심은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함께하심이 아닙니다. 우리는 가정에서도 그렇고, 이웃들과도 단지 우리의 생각, 마음, 그리고 취향에 따라함께하고 나뉘고 합니다. 그러나 헨리 나우엔이 중증장애인인 아담을 만날 때 느꼈던 그 함께함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겠습니다. 아무런 대화나 감정의 교환이 없이도 나우엔과 아담이 만나는 자리에는 늘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함이 있었습니다.

모든 생각과 감정과 움직임을 멈추니 십자가에서부터 흘러 넘치는 평화가 넘쳐납니다. 바로 그런 기름 한 병이 우리에게 있는지 물어 보아야겠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니까 이웃에게 그릇을 빌려 와서는 문을 닫고 기름을 부었다고 합니다. 세상의 모든 가치와 관계와 주고 받음이 침범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문 안에서 오직 하나님의 함께하심 만이 있을 때, 하늘의 신령한 은혜가 그릇 가득 넘쳤다고 합니다. 교우 여러분 바로 이러한 함께함이 여러분들의 가정과 관계 속에 넘치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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