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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되게 깨달은 그 날 부터(2008년4월27일, 부활여섯번째주일)

하늘기차 | 2008.04.27 21:19 | 조회 1913


참되게 깨달은 그 날 부터

2008년4월27일(부활여섯번째주일) 골1:1-8

골로새 교회는 에바브라를 통해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런데 골로새 교회 교인들은 대부분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들에게 전해졌을 때에, 이방종교와 사상으로 혼합된 이단과 거짓 교사들과, 잘못 된 교리들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이 점차 퇴색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접한 에바브라는 도저히 혼자서는 교회를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감옥에 갇혀있는 바울을 찿아간 것입니다.

에바브라는 바울에게 거짓 교사들이 일으킨 파문에 대하여 자초지종을 다 설명합니다. 거짓교사들이 골로새 교회에 찿아 와서 철학과 율법주의와 금욕주의, 그리고 신비주의로 신도들을 현혹시키고 있다고 모든 사실을 이야기 했습니다. 자초지종을 다 들은 바울은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골로새 교회에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러한 혼란스러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골2:18, 19를 보면 사도 바울은 그런 자들은 환상에 도취되어 있는 자들이며, 육신의 생각으로 터무니 없이 교만을 부리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마치 꽤 신앙의 깊은 자리에 있고, 많은 것을 깨닫고 알고 있다는 듯한 태도를 보입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결정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 사람은 머리에 붙어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자기 스스로 머리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율법주의나, 초승달 축제나, 천사숭배와 같은 또는 금식을 해야만 한다는 것 같은 것이 교회를 혼란케하지는 않습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정체성이 크게 흔들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지난 심방 중에 재혁씨네 집을 심방하였습니다. 그런데 재혁씨 아버님이 서울의 잘 알려진 교회의 장로님이신데, 예배를 마치면서 저에게 정장이 잘 된 책자를 하나 보여주시면서 자랑을 하십니다. 그 책은 그 교회가 성령의 공동체를 세우는 40일 기도라는 주제로 새롭게 새벽기도회를 시작하면서 출판한 두꺼운 단행본 책이었습니다. 장로님 하시는 말씀이 이 기도회가 새로운 기도회인데 우리 교회가 한국교회의 표본이지 않습니까? 하면서 이름만 되면 금방 알 수 있는 000 교회, 000 교회,.,등과 함께 그런데 우리 교회가 이번에 미국 새들백교회와 같이 열린교회의 모습을 추구하면서 지금 40일 기도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마디 했죠! “장로님 지금 장로님 교회에서 새로 시작했다는 그 40일 기도회라는 것이 새로운 것이가요? 아니면 이름만 바꾼 것인가요?”하고 물으면서 윌로우 크릭 교회가 낸 보고서인 에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윌로우 크릭교회, 새들백교회도 마찬가지지요, 윌로우 크릭교회에서 연구 발표한 보고서 내용의 핵심은 그동안 32년 동안 윌로우 크릭 교회가 추구했던 것이 잘 못이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교회에 수많은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교인들로 하여금 영적인 활동을 하도록 이끌었지만, 그것이 영적인 성숙함을 보장해주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 교회는 지금까지 교인들의 영적 성숙을 위해서 예배, 성경공부, 소그룹, 자원봉사, 전도 등 엄청나게 많은 프로그램을 돌렸고, 거기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리고 교인들은 프로그램에 열심히 참여했고, 교회는 날로 부흥했습니다. 하지만 교인들이 하나님과 이웃을 ‘정말로’ 사랑하고 있는가? 내적으로 제대로 여물어가고 있는가? 라는 물음에 자신 있게 ‘예스’라고 대답할 수 없다는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장로님께 장로님도 잘 아시잖습니까? 했습니다.

그제서야 장로님은 장로님 교회에서 만들어낸 책자를 슬그머니 접으시면서 그 말이 맞다는 것입니다. 장로님이 한 숨을 쉬시면서 하는 말이 교회가 한 해에 몇 십억을 사용하는데, 여기서 저는 기업이 이윤을 창출하기위해 자본을 투자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하여튼 아무런 결과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전도가 안된다는 것이지요. 몇 년 동안 전혀 성장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 엄청난 예산을 사용하는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장로님이 갖고 있는 마인드 자체가 성장인 것입니다. 이미 성장에대해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기 때문에 한국교회가 이 성장주의를 멈추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장을 해야하는데 왜 안되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1년 예산이 아깝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골로새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에바브라의 고민은 바로 우리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러한 혼돈 속에서 신앙의 정체성, 교회의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19절에 보면
“...온 몸은 머리에 붙어서 마디와 힘줄로 영양을 공급받고, 서로 연결되어서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는 대로 자라나는 것입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골1:23은
“믿음에 튼튼히 터를 잡아서, 굳건히 서 있어야 하고, 여러분이 들은 복음의 소망에서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합니다.

복음의 소망에서 떠나지 말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복음의 소망이란 무엇인가요?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미 그 소망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1:5에 보면 이미 처음에 복음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 이미 그 소망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장로님께 말씀드린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미 들은 말씀이요 은혜입니다. 그런데 마치 새로운 것인 것처럼 합니다. 예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인 것입니다. 한 마디로 자기 생명 내어놓고 다시 얻은 은혜인 것인데, 어디 우리가 나를, 나의생명을 내어놓을 수 있나요? 못하지요, 안됩니다. 성령께서 하시지 않으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게 안되니까 자꾸 다른 것 하며 옷을 바꾸어 입습니다. 차라리 못하면 못하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데 자꾸 무엇을 만들어 행사와 프로그램과 이벤트를 만듭니다. 그런데 열매가 없습니다.

성경이 항상 이야기 하는 것 중의 하나는 열매입니다. 예수님이 무화과 나무의 열매가 없으신 것을 보고 그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신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 무화과 나무는 예루살렘 성전이 대표하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것이 아닙니까? 포도나무 비유, 야고보서의 행함이 없는 믿음, 요한 사도께서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고 한 사랑의 열매, 이사야가 들포도가 아니라 참포도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하는 것, 또 갈라디아서의 성령의 아홉까지 열매에 이르기 까지, 성경은 자라지 않은 것에대해서는 관대하지만 열매가 없는 것에대해서는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에는 열매가 열립니다. 그런데 지금 골로새 교회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10절에서도 선한 열매를 맺으라고 합니다. 교회가 프로그램에 집착하는 것은 욕심때문입니다. 커지려는 욕심입니다. 성장하려고만 하기 때문입니다. 골2:18 처럼 육신의 생각으로 터무니 없이 교만하기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예산을 얼마를 집행했는데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 하나님은 한 영혼을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도 내어 놓으셨는데 무엇이 아깝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은혜 아닌 것을 은혜로 착각하고 돌이킬 수 없는 길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참 신앙의 자리, 온전한 신앙의 정체성을 찿을 수 있을까요? 1:6을 읽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복음은 온 세상에 전해진 것과 같이 여러분에게 전해졌고,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를 듣고서 참되게 깨달은 그 날부터, 여러분 가운데서와 같이, 온 세상에서 열매를 맺으며 자라고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아! 그렇습니다. 은혜입니다. 은혜를 듣고 참되게 깨달은 그 날부터 복음이 열매를 맺으며 자랍니다.

창6에 보면 죄악이 세상에 가득차고,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언제나 악하다고 합니다. 세상이 썩었고, 무법천지가 되어 살과 피를 지니고 땅 위에서 사는 모든 사람들의 삶이 속속들이 썩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8절에 보면 노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고 합니다. 은혜를 입었다는 것이 바로 은혜를 듣고서 참되게 깨달았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인류 구원의 실마리를 연 것은 바로 은혜였습니다. 노아가 그 은혜를 깨달은 것입니다.

최근 글쎄다의 모임에서 ‘파우스트’를 읽었습니다.‘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며,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는 구원받는다’는 화두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함께 토론을 나누었던 사람들 중에 교인들은 대부분 이말에 대해 인정할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끊임없이 노력해도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말 자체로는 참 아름답고, 그 최선을 다한다는 것에 아련한 마음까지도 들며, 한 표를 던지고 싶지만 지금 우리가 땅을 딛고 살아가는 현실은 아주 냉험하다는 것입니다. 상투적이라 할지 모르겠지만 중동, 아프카니스탄, 아프리카의 내전... 최근의 식량, 물부족...등은 우리를 생존의 냉험한 현실 앞에 모두를 떨게합니다. 지구 온난화의 환경위기를 포함해서 그것은 마치 습지에 빠져 헤어 나오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점점 더 구덩이로 빠질 수 밖에 없는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지금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어두운 사건들을 보면 모두 그 원인이 죄된 인간에 의해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최근 정부가 내어놓는 정책들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힘이드는지 모릅니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적지않은 사람들이 힘들어합니다. 0교시 수업, 우열반, 방과후 수업의 학원화, 또 국민들이 광우병에 노출될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미국소를 전면 개방한 외교, 뉴타운 이야기, 비례대표자의 돈거래, 또 청와대의 부동산 투기자들 등, 아직도 운하는 계속 흐른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의 숨막힘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아마 노아 때나 지금이나 세상의 흐름은 같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노아가 은혜를 입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해가 창공에 높이 떠 이글거리며 온 땅을 뜨겁게 달굴 때에 노아는 묵묵히 배를 만들었습니다. 배를 만드는 모습을 보며 바다가 모래 밭이 아니라 산 꼭대기에서 배를 만든다고 사람들이 비웃을 때에 노아는 묵묵히 하나님께서 말씀한 그대로 산 꼭대기 위에다가 배를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이 빌라도 앞에 섰을 때에도 묵묵히 서 있었습니다. 십자가를 지실 때에도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과 같이 묵묵히 말이 없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을 들었을 때에 말없이 그 일을 쫓았습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성령으로 잉태할 것이라고 했을 때 “당신의 말씀이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모두는 은혜를 깨달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여러 가지 거짓된 것들에 흔들리고 있는 골로새 교회의 교인들에게 이미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을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 말씀의 은혜를 깨달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의 풍조가 우리의 삶의 가치를 혼돈시키고, 허무와 허구의 힘, 돈의 힘이 모든 것을 굴복시키고 있지만 이미 우리가 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세속의 가치에 연연하지 않고 온 세상에서 열매를 맺으며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이런 삶의 변화는 은혜를 깨달은 때 부터인 것입니다.

동시대의 뛰어난 영적 저술가 중에 한 사람인 헨리 나우웬이 교통 사고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비장 파열되어 병원에 후송되었는데, 테이블 위에 사지가 단단히 묶이어 응급 수술을 받게되었는데, 잘 모르는 의술 팀에 둘러싸인 채 완전한 의존 상태를 경험했다고 합니다. 그 위급한 수술대에 묶이어 아련히 깨달은 것은 나의 가장 깊은 존재는 의존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확신이 생겼는데 그것은 수술 후에 살게 되건 그렇지 못하건 간에 나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품에 안전하게 안겨서 살게 되리라는 확신이었다고 합니다.
나우웬은 이 색다른 사건 덕분에 자신은 힘없는 젖먹이 아기로서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유아기로 돌아갔으며,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어떤 거대한 느낌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이 경험은 아주 생생하고 근본적이면서도 파급력이 커서 자기의 자의식을 뿌리째 바꾸어 놓았으며 자신의 의식 상태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역설을 이야기 합니다. 그것은 사람에 대한 의존은 때때로 우리를 노예 상태로 이끌지만, 하나님에 대한 의존은 자유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하나님이 우리를 안전하게 붙들고 계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우리는 그 무엇도, 그 어떤 사람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하나님을 가장 친밀하게 의존하는 것을 저주의 결과가 아니라 은혜의 선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자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은혜를 깨달은 자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은혜를 깨달으면 어떻게 될까요? 오늘 6절 말씀에 무어라 하나요? 그렇습니다. 복음이 은혜를 깨달은 사람에게서 열매를 맺으며 자란다는 것입니다. 24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분의 몸 곧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워가고”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처량하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한데, 이제 그만 쉴만도 한데 아직도 고난을 받겠다고 하는 말을 입으로 시인하는, 이 바울은 누구인가요? 그렇습니다. 복음을 듣고 은혜를 깨달은 바울입니다. 참으로 복음을 듣고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열매를, 아니 바울이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바울을 통해서 열매를 맺는데, 이 복음의 소망이 열매 맺기를 중단하지 않고 계속하니 바울이 남은 고난을 체운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사탄의 일을 합니다. 죄는 죄의 힘으로 죄의 일을 합니다. 교회의 정체성을 흔들고 사람들을 세상을 바라보면서 낙심케 하고, 다 그렇구 그런거지 하게 합니다. 어쩌겠습니까? 요즈음 신문, t.v, 그리고 인터넷을 볼라치면 그야말로 숨이 콱 막히는 느낌입니다. 그러니 그 세상의 일에 너무 목메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세상거리들은 세상거리대로 놓아두고 우리는 좋은 소식에 귀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기쁜 소식, 바로 이미 우리가 들은 복음을 듣고 성령을 구합시다. 지혜를 구합시다. 그래서 복음으로 복음의 일을 하게 합시다.

그리고 또 하나는 부름 받은 형제 자매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에게 위로를 주고, 서로에게서 그리스도를 발견해야합니다. 뜻을 모아 함께 이해하며, 관용하며 용기를 북돋우어야 합니다. 바로 공동체입니다. 물질 지상주의의 세상 속에 연약한 우리가 서로를 부등켜 안고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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