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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주시는 멍에(2008년4월20일, 부활다섯번째주일)

하늘기차 | 2008.04.20 14:21 | 조회 2452


주님이 주시는 멍에

2008년4월20일(부활다섯번째주일) 신8:1-6;마11:28-30

이스라엘이 40년 동안 죽도록 고생하며 광야에서 생활을 한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낮추시고, 시험하여 과연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따르는지를 보고자 함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결정을 하였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 가까이 가데스 바네아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 당신들 조상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올라가서 차지하십시오. 두려워하지도 말고, 겁내지도 마십시오”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람을 보내 정탐하여 어느 길로 올라갈 것과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먼저 알아보자”합니다. 그 때 모세가 무어라고 답을 하는가 하면 신1:23절에 보면“내가 듣기에도 그 말은 옳은 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각 지파별로 한 사람씩 12명의 정탐꾼을 보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오게 합니다.

그 중 10명의 정탐꾼은 가나안 족속이 자신들 보다 훨씬 힘이 세고, 키가 크며, 성읍은 하늘에 닿을 듯이 높아 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땅은 좋지만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언약대로 우리가 들어갈 수 있으니 올라가자고 합니다. 그러나 다수결에 의하여 결국 가나안을 눈 앞에 두고 돌아설 수 밖에 없었는데, 하나님은 그래서 진노하시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나와 맹세한 땅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이스라엘이 죽을 것이라고 염려했던 광야에서 난 자녀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이제 너희들은 왔던 길로 다시 돌아 홍해 길로 해서 광야로 나가라 합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다시 가나안으로 올라가려 하지만, 아모리 족속과의 싸움에서 대패를 당합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정탐 40일의 1일을 1년으로 계산하여 40일 그러니까 40년의 광야생활을 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 신8:2은 “하나님이 당신들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기억하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광야에 머물게 한 것은 이스라엘을 단련시키고 시험하셔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지 안지키는지 알아보려고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무슨 하나님이 시험을 하나 하겠는데, 그러나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다 왔을 때 모세를 통해 이제 가나안 땅에 올라가서 그 땅을 얻으라! 두려워 말라! 주저하지 말라! 하였지만 이스라엘은 그 말씀을 듣지 않고, 멈추어 정탐하려고 한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입 맛에 달면 삼키고, 쓰면 뱉겠다는 것입니다. 모세도 그러한 이스라엘의 말에 동조를 합니다. 모세는 신1:23에서 “내가 듣기에도 그 말은 옳다”고 합니다. 주어가 ‘하나님’이 아니라 ‘나’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아직 가나안 땅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셔서 광야 40년 길로 이스라엘을 내어 모신 것입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으로 들어갔으면 2년 내에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전히 노예근성과 우상숭배에 젖어 있어 받은 은혜 모르고, 원망과 불평 하며 감사할 줄 모르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할 수 없이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하기 위해 먼저 이스라엘의 말씀에대한 교만을 꺾어 낮추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광야 40년의 고생과 시험의 길에 들어섰던 것입니다. 이것도 역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며, 은혜 베풀고자 하시는 방법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신8:3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렇게 시험하면서 만나를 먹게 하셨다고 합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광야 40년 동안 낮추시고 시험하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만나를 주신 것입니다. 또한 4절에 볼 것 같으면 이 40년 동안 옷이 해어진 일이 없고 발이 부르튼 일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을 낮추시고 시험하시는 동안 팔장끼고 구경하신 것이 아니라 만나와 메추라기, 그리고 구름 기둥과 불 기둥, 그리고 목 마를 때 바위에서 샘 물을 내셔서 이스라엘을 먹이시고, 입히시고, 지켜시며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40년이 우리 인간의 인생 40년과 같다고 본다면 이 40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이 먹고 마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시험을 주시는데, 그 이유는 오늘 말씀 8:3에서와 같이 “주님께서 당신들을 낮추시고, 굶기시다가, 당신들도 알지 못하고 당신들의 조상도 알지 못하는 만나를 먹이셨는데, 이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당신들에게” 알게 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오늘 마11:28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인생 40년의 광야 길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져야하는 길입니다. 쉴만한 틈이 없습니다. 신1:19의 말씀을 보면 그 광야에대해 크고 두려운 광야라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민21:4에 보면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였다고 합니다. 출 17:3에도 보면 물 때문에 이스라엘이 모세와 하나님께 원망하였다고 합니다. 인생의 길 자체가 바로 원망을 내며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용할 양식을 위해 바쁘게 살아갑니다. 1년 4개절 열심히 땀을 흘립니다. 그런데 그 삶의 여정에서 우리는 마음이 상하기도 하고, 원망과 시비가 붙기도 합니다. 어깨를 누르는 삶의 짐이 녹녹치 않습니다.왜냐하면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길을 가다 지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하십니다. 그런데 그 쉬는 방법이 있습니다. 29,30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기로 하겠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고 하십니다.

전설에의하면 예수님은 목수였는데, 예수님의 공방에서 만드는 멍에가 아주 인기가 최고였다는 것입니다. 주문하는 사람의 그 멍에를 그 소에 딱 맞게 아주 잘 만들어 최고의 멍에를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그건 그렇고 어떻게 해야 마음에 쉼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까? ‘멍에를 메고’라고 합니다. 누구의 멍에입니까? ‘주님의 멍에’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멍에를 메면 쉼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멍에를 메고 배우라고 합니다. 그래야 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멍에는 어떤 멍에일까요?

동화작가 이상권님과의 대화시간이 얼마 전에 밤토실에서 있었습니다. 이상권님의 글의 소제는 자연, 생태, 시골의 농사짓는 생활입니다. ‘싸움소’라는 동화 한 권을 단숨에 읽었는데, 달 밝은 밤에 태어났다고 달소라 이름합니다. 이 소가 크면서 처음 멍에를 멥니다. 멍에를 안 메려고 거품을 물고 거부하다가, 결국은 멍에를 메고 밭을 갑니다. 첫 날 멍에를 메고 나니 등 목 멍에를 멘 곳 살이 벗겨져 피가 납니다. 그래서 그 집 아들 민구가 연고를 발라줍니다. 그리고 멍에에다 붕대를 감아줍니다. 그렇게해서 이제 멍에를 메는데 익숙해 지면서 이웃집 밭도 갈아줍니다. 이제 달소는 밭 가는것에 익숙해 집니다. 멍에를 메었던 목, 등에 군 살이 베깁니다. 그런데 이 달소가 집안 사정의 어려움 때문에 지역 소싸움 대회에 나가는데, 상대 소가 뿔을 들이데며 목 부위를 공격하는데, 멍에를 메어 목덜미에 굳은살이 베겨 치명타를 입지않습니다. 또 멍에를 메고 밭을 갈아서인지 지구력과 다리에 힘이 있어 끈질긴 달소가 결국 우승을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40년 동안에 주님이 이스라엘을 먹이시고, 입히시고 하면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말씀이 바로 멍에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을 깨닫는 시험이 바로 멍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40년 동안 먹이고, 입히셨는데, 그러나 한 가지 감당할 시험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말씀으로 산다는 깨달음입니다.

오늘 우리 인생 40년에 수고하며 무거운 세상짐 지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감당해야할 멍에가 바로 떡이 아니라 말씀으로 산다고 하는 멍에입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40년이 바로 우리 인생 40년인 것입니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철들고 짝을 만나 결혼하여 아이 낳고 키울 때 쯤 되면 나이 40인 것입니다. 인생은 그 때부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한 40년 살면 이제 인생 살 만큼 산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인생 40년을 살아갈 우리들을 부르시며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 하십니다. 그런데 그냥 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멍에를 메라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배우라고 합니다. 그러면 쉼을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멍에란 무엇입니까? 소 등에 씌워 짐을 끌게도 하고 밭을 갈게도 하는 장신구 아닙니까? 멍에를 메야 짐을 잘 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주시는 멍에는 어떨까요? 세상의 일들을 잘 끌고 갈수 있겠지요. 그러니까 멍에는 처음 멍에를 메울 때 그것을 뿌리치는 소처럼 구속이고, 속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멍에를 안 메고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멍에를 메지 않고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잘 살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느 누구도 인생의 짐을 메지 않고는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산에 갈 때, 등에 짐이 없으면 몸이 풀어지기가 쉽습니다. 내려올 때 특히 몸이 퍼져서 균형감을 잃고 다리를 헛 집기도 하는 경험을 종종 합니다.그러나 적당한 짐을 메면 몸에 긴장감도 유지해 주고, 오히려 산을 오르 내릴 때, 몸에 힘을 유지시켜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의 멍에를 잘 메지 못했습니다. 고기 먹구 십다구, 물이 없다구, 길이 나쁘다구, 그래서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겠다구 하면서 원망과 시비의 멍에를 메었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보니 멍에를 메는 방법이 있습니다. 29절에 “나는 마음이 온순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우라”고 하십니다.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해야 멍에를 멘다고 했습니다. 민12:3에 보면 모세가 땅위에서 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겸손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온유한자가 땅을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주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온유하였습니다. 그래서 빌라도 앞에서 침묵하셨던 것입니다. 이사야서는 이 모습을 예언하기를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집트에서 나와 광야 40년을 지낸 사람들 중에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 2 사람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신1:36에 보면 갈렙에대하여 “그가 정성을 다 기울여 나 주를 따랐으므로”합니다. 한글개역에는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를 순종하였”다고 합니다.온유하다는 것입니다. 실제 수14:6 이하에 볼 것 같으면 가나안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갈렙은 나이 85이 되었는데에도 모세가 나를 정탐꾼으로 보낼 때와 같이 나는 오늘도 여전히 건강하며, 그 때와 같이 지금도 힘이 넘쳐서 전쟁하러 나가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다고 하면서 갈렙 족속에게 주어진 헤브론 땅을 차지합니다.

갈렙 뿐만아니라 여호수아도 그냥 모세의 후계자로서 가나안을 정복한 것은 아닙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광야 40년 동안 항상 모세 옆에서 모세를 도와 일을 하였습니다. 아말렉과의 전쟁 때에도 그랬고, 모세가 하나님과 회막에서 대화할 때에도 보면 늘 모세와 동행하였습니다. 모세가 회막에서 나와 진영으로 돌아갔을 때에도 여호수아는 홀로 회막을 지키기도 하였습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모세 곁에 있으면서 어떻게 말씀에 순종하는 지를 보고 배우고 따랐습니다.

딤전3:13에 보면 “집사의 직무를 잘 수행한 사람들은 좋은 지위를 얻게 되고,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에 큰 확신을 얻게 됩니다.”고 합니다. 집사의 직무를 잘 수행한다는 것은 어떤 특별한 일을 잘하기 보다는 늘 자기 자리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 마땅히 해야 하고 지켜야 할 것을 잘 지켜내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러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얻어야할 지위, 나이에 걸 맞는 존경이죠, 일의 역할이 적지 않다는 것이지요, 함께하는 사람이 그를 신뢰한다는 것이지요, 그 뿐만아니라 믿음의 용기를 바로 여호수아나 갈렙 같이 자기 자리에서 자기 역할 변함없이 해 내는 사람에게 베푼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말씀에대한 용기있는 확신이 없었다면 다른 10명의 정탐꾼과 무슨 차이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러한 변함없는 자기 자리에서의 자기 역할을 꾸준히 하는 사람은, 즉 집사의 직분을 잘 감당하는 사람에게는 그러한 축복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보스턴의 한 보호소에 앤(Ann)이란 소녀가 있었습니다.앤의 엄마는 죽었고 아빠는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아빠로 인한 마음의 상처에다, 보호소에 함께 온 동생마저 죽자 앤은 그 충격으로 미쳤고 실명까지 했습니다. 수시로 자살을 시도하고 괴성을 지르기도 했습니다. 결국 앤은 회복불능 판정을 받고 정신병동 지하 독방에 수용되었습니다. 모두 치료를 포기했을 때, 노간호사인 로라(Laura)가 앤을 돌보겠다고 자청했습니다.

로라는 정신과치료보다는 그냥 친구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과자를 들고 가서 책을 읽어주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한결같이 사랑을 쏟았지만 앤은 담벼락처럼 아무 말도 없었고, 앤을 위해 가져다 준 특별한 음식도 먹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로라는 앤 앞에 놓아준 초콜릿 접시에서 초콜릿이 하나 없어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용기를 얻고 로라는 계속 책을 읽어주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앤은 독방 창살을 통해 조금씩 반응을 보이며 가끔 정신이 돌아온 사람처럼 얘기했고 그 얘기의 빈도수도 많아졌습니다. 마침내 2년만에 앤은 정상인 판정을 받아 파킨스 시각장애아 학교에 입학했고 밝은 웃음을 찾았습니다. 그후, 로라가 죽는 시련도 겪었지만 앤은 로라가 남겨준 희망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으로 시련을 이겨내고학교를 최우등생으로 졸업했고, 한 신문사의 도움으로 개안 수술에도 성공했습니다. 수술후 어느 날, 앤은 신문기사를 봤습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아이를 돌볼 사람 구함!" 앤은 그 아이에게 자신이 받은 사랑을 돌려주기로 결심했습니다.

사람들은 못 가르친다고 했지만 앤은 말했습니다. "저는 하느님의 사랑을 확신해요."결국 사랑으로 그 아이를 20세기 대기적의 주인공으로 키워냈습니다. 그 아이가 "헬렌 켈러" 이고, 그 선생님이 앤 셜리번(Ann Sullivan)입니다. 로라는 앤과 함께 있어주고, 앤의 고통을 공감하면서 앤을 정상인으로 만들어냈고, 앤도 헬렌과 48년동안 함께 있어주었습니다. 헬렌이 하버드 대학에 다닐 때는 헬렌과 모든 수업에 함께하면서 그녀의 손에 강의내용을 적어주었습니다.

빛의 천사 헬렌 켈러는 3중 불구자이면서도 절망하지도 않고 삶을 포기하지도 않았습니다. 왕성한 의욕과 꿋꿋한 의지를 가지고 새로운 삶의 길을 찾아 스스로 피눈물나는 노력을 계속했습니다. 하버드대학을 졸업하던 날, 헬렌은 브릭스 총장으로부터 졸업장을 받고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설리번 선생님도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식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헬렌의 뛰어난 천재성설리번 선생님의 훌륭한 교육을 일제히 찬양하였습니다.

"항상 사랑과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준 앤 설리번 선생님이 없었으면 저도 없었을 것입니다." 헬렌 켈라가 있기 까지에는 앤 셜리반 선생을 자기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잘 감당한 로라라고 하는 신실한 선생님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잘 감당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지위와 믿음의 용기를 얻는 것입니다.

인생 40 녕 길에 기꺼이 멍에를 메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갈5:1에 보면 “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멍에를 메지 않으면 세상 멍에를 질 수 밖에 없고 우리는 결국 인생 40년을 허비하며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멍에를 메고 자유하는 삶을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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