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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수 있는 은혜 Ⅰ(2008년 12월 7일, 대강절두번째주일)

하늘기차 | 2008.12.07 16:38 | 조회 1783


볼 수 있는 은혜

2008년 12월 7일(대강절두번째주일) 막1:1-8

얼마전에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났습니다. ‘ Yes, We Can ’을 부르짖은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흑인대통령의 출현은 그동안 억압받던 소수인종, 민족들이 정치의 전면에 섰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요 미국역사를 새롭게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이 번 선거는 단순히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된 것이 아니라 미국 사회가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가치, 새로운 사회로 가기를 갈망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오바마의 당선이 눈물을 흘릴만큼 감격스러운지는 의문스럽습니다!! 왜냐하면 혁명적으로 미국의 정치가 변화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바마는 단지 시대의 흐름을 따라 뽑혔듯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정치는 또 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혹자들은 대한민국에도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어 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지만 오바마가 한반도의 이익을 대변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여간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정치는 보면 항상 사람들의 기대치에 못 미칩니다. 노무현 정권 때도 그랬고, 이 번 이명박 정권이 만들어질 때의 그 열기는 어떠했습니까? 전 국민의 열망으로 모든 불미스러움과 의혹이 있음에도 경제대통령으로 세우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그 기대감은 벌써 이렇게 모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전세계 정부가 서민들의 세금을 감면하고, 소위 부자들의 세금을 가중시키는 정책을 펴는데 이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겨우 남북의 대화의 물꼬를 터서 이제 겨우 경제협력의 차원으로 어렵게 통일의 한 발을 디뎠는데 그 불 씨 마저 다 꺼버리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시대를 불문하고 항상 이렇게 정치적 메시아 소망합니다. 이스라엘도 메시아를 대망하였지만 바로 이런 세상의 메시아상을 꿈꾸어 왔던 것입니다. 힘 있는 그래서 경제를 살리고 민족의 자존심을 세울 수 있는 메시아가 오길 바랍니다. 그러나 그러한 힘 있는 메시아는 없습니다.

누가 복음을 보면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도 얼마나 메시야를 기다렸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스라엘은 막상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을 때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을까요? 잘 못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아기 예수 탄생을 기억하며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기간입니다. 그래서 정말 잘 기다려서 잘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모세가 타지 않는 가시 떨기 불꽃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가시떨기가 타는 광경을 목격하고 모세는 하나님의 신비에 눈을 뜹니다. 그 가시 떨기는 얼마나 약합니까? 힘주어 부수면 푸스럭 하면서 부서져 버릴, 그런데 거기에 하나님의 불이 붙었습니다. 그 가시 떨기는 바로 모세입니다. 휙 하고 부는 바람에 부스러져 날려가 버릴 정도로 힘없고 연약한 모습이 이제 노년에 접어든 모세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가시떨기에 불이 붙었는데, 타서 없어져 버리지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비의 불입니다.

그 가시떨기가 하나님의 신비에 싸여 사그러들지 않고 타오릅니다. 바로 모세입니다. 이제 인생 황혼에 접어든 모세가 사그러들 법도 한데 하나님의 신비를 보고 하나님의 비밀에 이끌려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갑니다. 이것은 모세가 활활 타오르고 있지만 타지않는 가시떨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신비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마치 그것은 죽지만 죽지 않는 십자가의 신비와 같은 것입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광야에서 양을 치는 동안 기다림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신비가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왕궁에서 생활하던 모세는 본래의 모세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가시떨기 불꽃 앞에서 어찌할 줄 모르는 바로 그 모습이 모세의 참 모습인 것입니다.

모세는 타지않는 가시떨기불꽃을 통해 하나님의 신비를 본 후로는 무엇을 하거나 무엇을 하기 보다는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기다려 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이끌고 이집트를 급히 빠져나와 가나안 땅으로 나아가다가 그만 홍해 앞에 당도합니다. 그 때 모세가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출14:13,14입니다. 여기서 모세는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는 가만히 서서, 주께서 오늘 너희를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지켜 보기만 하여라. 너희가 오늘 보는 이 이집트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주께서 너희를 구하여 주시려고 싸우실 것이니, 너희는 진정하여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라는 것입니다. 이제 모세는 계획하고 사람을 모으고 일을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몇 일전 성경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 귀신들린 사람이 무덤가를 서성이며 발가벗고 수치를 모른체 엄청난 힘을 가지고 오고 가는 사람을 괴롭힌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냅니다. 그 때 나눈 이야기가 벌거벗어도 부끄러운 것을 모르는 귀신들린 사람의 모습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라는 것에 공감을 하였습니다. 자신들의 언행에 부끄러워 할 줄을 모릅니다. 오늘 이 시대가 어두움의 힘, 거짓과 살인, 미혹하는 영에게 붙들리어 물질가치만이 최고의 가치요, 힘이라는 틀 속에 갖히어 의사소통 불능인체로 장님같이 살아가는 마치 자폐증 집단처럼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입었다. 은혜를 받아았다는 말을 늘 사용합니다. 그렇습니다. 은혜는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지 않으면 우리는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미 우리는 받아야 할 것 다 받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이현주 목사님이 삶의 단편을 묶어 ‘오늘 하루’라는 책을 내 놓았는데, 그 글 중에 공감이 가는 말을 하였는데, 즉 태어날 때 이미 모든 것을 다 받았으니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도로 내어드리는 것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의 빛 안에 들어와 있는데 더 받을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은혜를 맛 본 자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나 기다리면서, 보면서 깨달으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요7:25-31에 보면 예수님 앞에서 메시야인지 아닌지 설왕설레 하는 모습을 봅니다. 이 내용을 보면 사람들이 메시야를 메시야로 보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그럴까?
“예루살렘 사람 가운데서 몇 사람이 말하였다. 그들이 죽이려고 하는 이가 바로 이 사람이 아닙니까? 보십시오, 그가 드러내 놓고 말하는데도, 사람들이 그에게 아무 말도 못합니다. 지도자들은 정말로 이 사람을 그리스도로 알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오실 때에는, 어디에서 오시는지, 아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성전 안에서 가르치실 때에, 큰소리로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내 마음대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시다.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분을 안다. 나는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은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예수를 잡으려고 하였으나, 아무도 그에게 손을 대는 사람이 없었다. 그것은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 메시야를 기다리지 않으니 오셔도 모르는, 앞에서 계셔도 보지 못하는 이스라엘입니다.

12월 3일자 경향신문에 난 임의진 목사의 단상입니다.
“분명 해외 토픽감일, 성탄트리 꼭대기 십자가 장식을 나도 길 지나다 보았다. 이 땅이 언제부터 개신교 세상인가. 아래로부터의 각별한 포복은 실소를 넘어 슬프기까지 하다. 십자가가 로마판 국가보안법의 서슬 퍼런 사형기구임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어두운 시대를 밝히며 일어나선 샛별로 대표되는, 세계 모든 나라들의 성탄장식과는 달리 한국교회다운 공격적인 선교방식과 배타적인 오만불손이 한껏 들여다보이는 구석이다. 저들 십자가는, 보태기자, 덧셈의 공식에 부합하여 어쩌면 저렇게 눈에 확 도드라지는지.

딱 잘라 말해 미안하지만, 평화와 통일을 위해 일하다 박해받을 결심과 낮은 사람들에 대한 연대를 다짐하는 예수의 십자가가 아니라 탐욕스러운 보태기이자, 덧셈의 상징물로, 제국의 호령에 아첨하며 신자유주의 침략의 깃발 노릇하는 십자가는 당장 내려져야 한다.우리 동네엔 다행하게도 생뚱맞은 교회당 건물이 없다. 전직 목사인 내가 살지만, 나는 예배를 따로 드리지 않는다. 그냥 마을에 이웃하여 살면서 나지막이 이름을 담아 기도를 바치고, 농민, 노동자들 뵈면 고개 숙여 지극정성 인사하는 것이 예배의 전부다. 밤하늘의 별이 성탄 장식이요, 밤에는 달빛으로 빛나는 나무들이 성탄트리. 가끔 찾아오는 이웃사촌 손주들이 으아앙 울면 마구간의 아기예수를 기억한다. 성탄 대망…. 캄캄 세월에 그 선한 아기와 잃어버린 별을 생각하려니 갑자기 눈물이 날 거 같다.“고 합니다.

아기 예수를 볼 수 있었던 사람들은 누구였을까요? 최근 대우자동차에 근무하는 노동자 분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습니다. 같은 공장에 같은 유니폼을 입고 일을 하지만 2부류로 차별화 되 있다는 것입니다. 소위 전규직과 비정규직 말입니다. 같이 보이지만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같은 일을 하면서 차별화 되는 것이 그렇게 서러워 모두 얼굴표정이 굳은 모습으로 공장에서 일을 한다고 합니다.

이 분이 비정규직에서 천신만고 끝에 정규직이 된 후배에게 비정규직에 대한 지금의 견해를 물어보았더니 웃으면서 “인간과 짐승의 차이를 말씀하시네요”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한 때 나라의 근간이라 떠 받쳐졌던 분들의 쓰라림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도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싸운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들려오곤 합니다. 열정만 가득한 줄 알았던 어느 정규직 지부집행부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정면으로 걸었다는 것입니다. 법원에서 불법파견이라는 판정도 받았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투쟁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본 정규직 조합에서 버림받고, 지부조합원들로부터 불신임 당하고, 해고되고 구속되었다고 합니다. 권력이나 자본에게 탄압받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불신임 사유가 정규직의 이해를 대변하지 않는 것이라니 어찌 노동조합주의의 극치가 아니겠는가? 하는 안타까움 속에서 서로 같은 노동자라는 마음으로 비정규직의 아픔을 함께 끌어 안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은 가히 아름답고, 바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수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보이는 것입니다.

이 땅에 가장 어려운 사람들 중에 하나는 새터민들입니다. 소위 탈북자들입니다. 왜 새터민인 줄 아나요? 2005년 1월 9일 대한민국 통일부가 한국거주 탈북자를 순화해서 붙인 용어입니다. 별로 정감이 가지 안는언어인데 구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제 북한 이탈자 분들은 1만명이 넘어섰습니다. 많은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청소년 문제는 더욱 심각합니다. 그런데 얼마전에는 새터민 중에 한 분이 자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이찬우(57세)라는 분인데 1992년 러시아 벌목공으로 있다가 2001년 남한에 입국하였는데, 건설자재업체인 향대강건이라는 회사 사장에게 3,000만원사기를 당하고 결국 모든 것 다 잃어버리고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 안해 본 일이 없고, 결혼상담소 에 문의해 결혼도 해 보려 해 보았지만 여의치 않아Tw다고 합니다. 그런데 결국 이 남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이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아름다운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 곳 이천경찰서 보안과의 이성철형사라는 분이 계시는데 직업을 떠나서 그렇게 새터민들을 살피는데, 이 번 죽음의 모든 장례 절차를 이 형사님께서 치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의 일들이 이 곳 저곳에서 피어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이 대강절에 어려운 사람들 중에 하나가 바로 노숙자들입니다. 경제가 어려워 지면서 노숙자들은 더 늘어날 텐데, 잘 아시겠지만 성공회 서울 교구에서 언제 부터인가 노숙자들을 위한 인문 사회 강좌를 개설해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우리 박경장님도 지금 그 노숙자 대학에 글쓰기 학과를 담당하고 계시는데 그 노숙자들의 삶이 참 안타깝다는 것입니다. 이 분들의 곁에 함께 하는 것, 이렇게 노숙자 대학을 열어 그들의 삶의 가치, 정신을 일깨워 주는 일이야 말로 하나님 나라의 일, 메시야 대망의 사역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의 거짓되고 허황된 메시야를 기다리며 속았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참 메시야는 이미 이 땅에 오셔서 당신 나라의 일을 이루고 계시며, 마음을 열면 그 훈훈하고 따뜻한 일들이 보입니다.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갖힌 후에 세례 요한 에수님의 활동에대한 소식을 듣고는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이 분이 우리가 기다리던 그 메시야인가 합니다. 그래서 요한 제자들을 예수님에게 보내 우리가 기다리던 그 분이 당신이십니까 하고 묻는 장면이 눅7:18이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그렇다’, ‘아니다’라고 대답한 것이 아니라

“질병과 고통과 악령으로 시달리는 사람을 많이 고쳐 주시고, 또 눈먼 많은 사람을 볼 수 있게 해주셨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려라. 눈먼 사람이 보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걷고, 나병 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먹은 사람이 듣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 ”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치유되고 고쳐지고 복음이 전파되는 사건이 구체적으로 일어나는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이고, 메시야 대망의 나라인 것입니다. 메시야는 이미 이 땅에 오셔서 당신 나라의 일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도 그 나라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 마치 모세가 타지않는 가시 떨기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의 신비를 보았듯이 우리도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일들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아름답게 꽃 피어나는 그런 비밀의 메시야 대망을 기다리며 선하고도 아름다운 삶을 살아갑시다

예수님 당시 아기 예수를 볼 수 있었던 사람들은 누구였나요? 임의진 목사님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성탄절을 보내며, 땅의 사람들 모두가 하늘의 별을 바라보았으면 바랐다. 땅바닥에 고개를 떨구고서 먹고사는 일에 찌들어 살며,‘람다움’,‘인간성’을 잃어버린 세대를 같이 아파한다. 저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사람다움을 찿아나선 동방박사를 생각하게 된다. 모두가 제국과 자본에 경배하며 살 때, 그들은 마구간에 누운 아기 예수를 찿아다녔다. 하나씩의 별들을 만나러 다녔다. ”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목자들이었고, 양, 염소, 말 등 가축들이었고, 평생 메시야를 기다리던 시므온과 안나였습니다. 이제는 받는 은혜도 은혜이지만 볼 수 있는 은혜를 구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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