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View Article

빈들에서(2008년 11월30일, 대강절첫번째주일)

하늘기차 | 2008.11.30 16:52 | 조회 1992


빈들에서

2008년 11월30일(대강절첫번째주일) 막1:1-8

요한이 나타나자 유다는 온통 소란합니다. 도대체 저 사람이 누군가? 모두 궁굼해 하였습니다. 낙타의 가죽으로 만든 옷, 음식이라고는 메뚜기와, 바위 틈에서 나는 꿀, 그 와중에 금식, 요단강에서의 세례, 독설에 가까운 정치적 발언, 그 어느 하난 궁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급기야 유대인들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요한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오라고 합니다. ‘네가 누구냐? 그리스도가 아니냐?’ 그러면 누구냐? 엘리아냐?고 묻습니다. ‘아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또 묻습니다. 그럼 네가 그 선지자냐?고 묻습니다. ‘아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그럼 네가 네 자신을 볼 때, 스스로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요한이 말합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합니다. 그러자 또 묻습니다. 그러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데 왜 세례를 주느냐? 합니다. 그러자 요한이 대답합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성령으로 세례를 줄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종교 지도자들이 그러면 ‘왜 세례를 주느냐?’고 질문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본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어느 성경에도 이스라엘이 세례를 받는다는 내용을 찿아 볼 수도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세례를 받는 것이 아니라, 할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를 다른 이방 사람들이 유대교로 들어올 때 깨끗이 씻는 그런 의식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어서 세례를 받을 이유도,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한이 요단강에서 온 유대에 모든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으니 이것은 유대가 발칵 뒤집히기에 충분한 사건이었습니다.

세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겔36:25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맑은 물을 뿌려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며”라고 합니다. 또 슥13:1에도 보면
“그 날이 오면, 샘 하나가 터져서, 다윗 집안과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의 죄와 더러움을 씻어 줄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요한의 세례를 주는 행위는 바로 구약에서 말하는 메시야 대망, 하나님의 날의 도래에 앞 서서 행해질 의식인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지도자들이 요한에게 물어 본 것입니다.

네가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닌데 어찌 세례를 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지금 내용은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인데 우리는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이 요한에게 그 정체를 집요하게ㅜㅡ물어보고 있는 것을 봅니다. 네가 그리스도냐? 엘리야냐? 그 선지자냐? 그러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 무엇이냐?고 합니다. 이 때 요한은 요한복음 1:18-17에 죽 보면 거듭 ‘아니오!’라고 말합니다. 3번이나 ‘아니오!’라고 합니다. 이 거듭되는 ‘아니오’라는 부정 속에서 저는 그 당시 종교적 분위기, 종교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얼핏 헤아려 봅니다.

이 요한의 ‘아니오!’라는 부정 속에는 기존의 예루살렘을 중심으로하는 율법, 성전, 제사를 중심으로 하는 예루살렘 종교는 끝났다는 것입니다. 대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관점을 가지고 요한에게 그 정체성을 물어보지만 그러한 종교적 기준으로는 요한의 사명, 요한의 사역, 요한의 증거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아마 요한이 엘리야나, 아니면 선지자라고 했으면 이들은 틀립없이 기적을 보여달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그러한 종교지도자들이 바라보는 엘리야도, 그 선지자도, 메시야도 아닙니다.

요한은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입니다. ‘죄 사함을 얻게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요한이 ‘아니오!’는 당시의 종교적 허구를 모두 부수어 뜨리는 ‘아니오!’였습니다. 교우여러분 조용히 귀를 기울여보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아니오!’, ‘그것은 아니오!’하는 세례 요한의 음성을 들을 때 입니다. 이 대강절 첫 번째 주일에 세례 요한의 광야의 소리를 듣는 기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광야입니다. 빈 들입니다. 왜 빈들이었을까요? 세례 요한은 사실 제사장 가문에 속해 있는 사람이어서 가만히만 있어도 당시의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장 역할을 하며 자기 기득권을 확실하게 챙기며 지낼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광야로 나온 것입니다. 왜 광야로 나아갔을까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세례요한에대해 이야기 할 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라고 합니다. 요한은 예루살렘으로 향할 수 있었지만 광야를 택하였습니다. 요한은 광야에서 생활하면서 사40:3-5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한 소리가 외친다. 광야에 주께서 오실 길을 닦아라. 사막에 우리의 하나님께서 오실 큰길을 곧게 내어라” 그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 성경 속에서 하나님이 원하는 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였습니다. 정치, 종교, 경제의 모든 희망이 사라진 그 때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광야로 내 모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40:3-5의 말씀이 세례 요한의 가슴을 때렸습니다. 특히 3절은 자신에게 주는 말씀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시대에 빈 들이야말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이 함께 할 곳이라는 것을 요한은 느꼈습니다.

눅3:2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지 안으면 그것은 사이비요, 거짓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인간의 말이요, 인간의 뜻입니다. 요한의 때에 400년 동안 인간의 말과 인간의 생각들과 인간의 종교만 있던 그 시대에 요한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것입니다. 요한의 위대함이란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했다는 것입니다. 성서에 보면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기드온, 다윗, 아브라함, 노아,,, 그런데 그 당시 요한은 어디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나요?

오늘 말씀 막1:4에 보면 ‘광야’라고 합니다. 빈들입니다. 그렇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곳입니다. 예수님이 시험을 받은 곳입니다. 이 곳에서 요한은 혼자, 홀로 세상의 많은 것들과 단절된 채로 맹수와 추위와 굶주림, 사탄의 시험이 있는 곳, 그러나 자신을 철저히 혼자 일 수 있게 하는 곳, 바로 빈들에 요한은 있었고, 그 곳에서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것입니다.


오늘은 메시야를 기다리는 대강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하나님의 뜻을 들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 말씀처럼 부드러운 옷을 보려면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가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을 보려고, 무엇을 듣고자 이 자리에 나왔습니까? 세례 요한은 400년 동안 끊긴 하나님의 말씀을 빈들에서 들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교우여러분 일용할 양식을 위한 생각, 계획, 땀방울, 다툼... 삶의 풍요로움에대한 애착, 그리고 이기적인 욕심, 신앙의 묵은 관행, 거칠어진 마음, 교만함, 무관심...이러한 삶의 움직임에서 조금만 방향을 이동하면 우리는 조용한 들판에 설 수가 있습니다. 영의 양식, 영의 풍요로움이 있는 곳에 설 수가 있습니다. 언젠가 한 번은 설교준비하면서 신문 전체를 쭉 훓어 보았습니다. 먹고(음식점), 입고(옷가게, 패숀), 자고)아파트), 타고, 보고, 듣고, 일하고, 가르치고(아들 서울대 보내려는 마음으로), 치료하고(부모 효도를 빌미로 약광고 무슨~보일러 광고도 있고), 어느 컴퓨터 회사에서는 ‘정직을 배달합니다.’라는 선전 문구도 거침없이 내 세우는 때입니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는 생명, 자동차, 교육,,, 보험광고에 이르기 까지 이렇게 온갖 그림과 사진과 문구와 선정성에 이르기 까지 온갖 세상 즐거움을 다 주겠다는 것입니다. 재미있게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삶의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는 것입니다. 사는 재미가 이것이 전부일까요? 먹고, 자고, 입고, 타고, 보고, 듣고... 어느 목사님 말씀에 공감을 합니다. 요즈음 사람들이 즐거움만 찿는다는 것입니다. 기쁨이 없다는 것입니다. 안전하고 편한 것만을 찿는데 평화는 없다는 것입니다. 집은 있는데 가정은 없습니다.

진정으로 이 세기 말에 고통하는 때에 누가 우리에게 기쁨과 평화, 생명, 나눔의 감격을 줄 수 있을까요? 교우여러분 우리 이제 여러분 각자의 빈들로 나아갑시다.그리고 거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읍시다.

눅1:17에 보면
“그는 또한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지고 주의 선구자로 먼저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아오게 하고, 거역하는 자들을 의인의 지혜의 길로 돌아서게 해서, 백성으로 하여금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 라고 합니다. 또 1:76절 이하에 볼 것 같으면 사가랴를 통해 요한이 어떠한 일을 할지에대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아기야, 너는 가장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릴 것이니, 주님보다 먼저 가서 그의 길을 예비하고, 죄 사함을 받아서 구원을 얻는 지식을 그의 백성에게 가르쳐 줄 것이다. 이것은 우리 하나님의 자비로운 심정에서 오는 것이다. 그분은 해를 하늘 높이 뜨게 하셔서, 어둠 속과 죽음의 그늘 아래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게 하시고,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돌아서라고 합니다.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아오게 하고’는 구약성경의 마지막 말씀인 말라기서의 마지막 장, 마지막 구절의 말씀입니다. 말라기 4:6에 보면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고, 자녀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이킬 것이다. 돌이키지 아니하면, 내가 가서 이 땅에 저주를 내리겠다.”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만 돌이키라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아버지는 믿음의 조상입니다. 조상들의 믿음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인류의 문제의 근원은 하나님에게 등을 돌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자신들의 생각과 계획, 의도를 따라 자기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자식이 자기 고집 부릴 때 부모는 어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부모 이길 자식이 없습니다. 오늘 인류도 부모를 떠나 자기 좋은 일을 마음 껏 하는 것 같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자기 좋을대로 할 때 그냥 놓을 수 밖에 없습니다. 로마서에는 버려두었다고 합니다. 지금 인류의 모습은 바로 하나님께서 인류를 버려둔 형국입니다.

노아의 홍수 때에 홍수가 날 때 까지도 사람들은 자기 좋은 일을 했습니다. 결국 비가 왔고 방주의 문은 닫혔습니다. 지금도 인류학자나, 환경학자들은 거듭 전 지구적 생태위기에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인류는 전 지구적으로 하나님께 돌아설 때입니다. 요한은 우리에게 돌아서라고 합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합니다. 헬라어로 죄란 과녁이 빚나갔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류가 과녁에서 많이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참 회개를 해야합니다. 헬라어로 회개는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돌아서야할 것입니다. 우리도 마땅히 지켜야 할 것 지키며, 따라야 할 것을 따라야 합니다. 자기맘대로 신앙은 안됩니다. 자기 생각대로의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교회의 가르침을 따라 신앙의 고백을 해야합니다. 말라기서에 보면 당시의 하나님 신앙이 얼마나 혼탁하고, 거짓되며, 방자한지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지금도 교회가 교회의 모습을 잃어가면서 비웃음과 조롱을 당합니다. 그러나 말3:16은
“그 때에 주께서는, 주를 경외한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똑똑히 들으셨다. 그 가운데서도 주를 경외하며, 주의 이름을 존중하는 사람들을 당신 앞에 있는 비망록에 기록하셨다.”고 합니다.

교우여러분 아무리 세상이 방자하고 오만한 그리고 퇴락한 일들을 끝없이 재생산 해 낸다고 하더라도 이 말라기서의 말씀에 귀기울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세속의 가치로 활활 타오르는 세상 속에서 주를 경외한 사람들이 주고 받는 말을 똑똑히 듣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였듯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때에 세상의 역사를 멈추고 선한 뜻을 완성하실 때가 올 것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우리는 하나님 심판대 앞에 서게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설 수 있겠는지 스스로 돌아보아야 겠습니다.

지난 주에 말씀하셨듯이 요4:20-24에서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할 때에 예수님께서 생명을 살리는 영적 깊은 이야기를 사마리아여인에게 하자 그 말씀을 피해가려고 할 때에 잡은 핑계거리가 무엇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예배에대한 핑계였습니다.
“우리 조상은 이 산 위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선생님네 사람들은 예배드려야 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요즈음으로 말하면 이 쪽에서도 예배드리고, 저 쪽에서도 예배를 드리는데 그러면 어디에서 예배를 드릴까요 하며 비아냥 거립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이 여인의 신앙에대한 허구적인 마음을, 비아냥 거리는 자조적이며 폐배적인 마음을 잠재운 것은 바로 예배에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여자여, 나의 말을 믿어라. 너희가 이 산 위에서도 아니고 예루살렘에서도 아닌 데서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올 것이다. 너희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우리가 아는 분을 예배한다. 구원은 유대 사람에게서 나기 때문이다. 참되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 때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찾으신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주일이면 오늘처럼 이렇게 온 나라가 예배를 드리려고 들썩이는데, 하나님께서는 어찌 예배를 드리는 사람을 찿으신다는 것일까요? 이렇게 예배드리는 사람이 많은데 말입니다. 교우여러분 이제 우리 하나님께 돌아섭시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읍시다.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립시다. 세례 요한의 음성을 듣고 돌아서는 대강절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979개(40/49페이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2016년9월4일) 사진 첨부파일 관리자 14565 2016.09.09 08:30
공지 나는 주의 사람이니(가야금, 대금 동영상) 첨부파일 하늘기차 25915 2007.10.16 12:24
공지 망대에 오르라(창립40주년 기념 예배 설교,유경재 목사) 고기교회 26290 2006.05.31 22:16
공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하늘기차 24878 2005.09.02 16:30
195 [일반] 볼 수 있는 은혜 Ⅳ(2008년 12월28일, 성탄절후첫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915 2008.12.28 15:17
194 [일반] 볼 수 있는 은혜 Ⅲ(2008년 12월21일, 대강절네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778 2008.12.21 15:25
193 [일반] 볼 수 있는 은혜 Ⅱ(2008년 12월14일, 대강절세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1798 2008.12.14 14:09
192 [일반] 볼 수 있는 은혜 Ⅰ(2008년 12월 7일, 대강절두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782 2008.12.07 16:38
>> [일반] 빈들에서(2008년 11월30일, 대강절첫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1993 2008.11.30 16:52
190 [일반] 하나님을 바라라(2008년 11월23일, 성령강림주일후스물여덟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1901 2008.11.23 14:12
189 [일반]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2008년 11월16일,성령강림주일후스물일곱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886 2008.11.16 14:24
188 [일반] 소망을 품고 즐거워합니다( 2008년 11월 9일, 성령강림주일후스물여섯 첨부파일 하늘기차 1968 2008.11.09 16:21
187 [일반] 지금은 감사할 때(2008년 11월 2일, 추수감사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061 2008.11.04 09:21
186 [일반] 신령한 것을 사모하라( 2008년 10월19일, 성령강림절후스물세번째주 첨부파일 하늘기차 2714 2008.10.19 15:56
185 [일반] 하나님의 열심(2008년 10월 5일, 성령강림절후스물두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127 2008.10.12 14:19
184 [일반] 끝까지 견디는 사람(2008.10월 5일, 성령강림절후스물한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081 2008.10.05 16:16
183 [일반] 꼴찌들의 행복(2008년9월28일, 성령강림주일후스무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074 2008.09.29 21:01
182 [일반] 시대를 분별하는 종말의 신앙(2008년9월21일, 성령강림주일후열아홉번째 첨부파일 하늘기차 2179 2008.09.21 17:10
181 [일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지혜(2008년9월14일, 성령강림주일후열여섯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186 2008.09.14 15:25
180 [일반] 은혜의 잔치에 참여케 하는 믿음(2008년9월 7일, 성령강림주일후열일곱 첨부파일 하늘기차 1894 2008.09.07 14:08
179 [일반]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2008년8월31일, 성령강림주일후열여섯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1913 2008.08.31 18:38
178 [일반]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2008년8월24일, 성령강림주일후열다섯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291 2008.08.24 18:07
177 [일반] 씨뿌리는 농부가 아니라 사람(2008년8월17일, 성령강림주일후열네번째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640 2008.08.17 17:59
176 [일반] 어린 소녀 하나(2008년8월10일, 성령강림주일후열세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183 2008.08.11 1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