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View Article

하나님을 바라라(2008년 11월23일, 성령강림주일후스물여덟번째주일)

하늘기차 | 2008.11.23 14:12 | 조회 1902


하나님을 바라라

2008년 11월23일(성령강림주일후스물여덟번째주일) 시42:1-5

오늘 말씀의 4절을 보면 이 글을 쓴 사람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인도하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삶은 늘 기쁨과 감사로 충만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사람은
‘밤낮으로 흘리는 눈물이 나의 음식이 되었’다구 고통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분이 왜 이렇게 힘들어 할 까요? 2절에 보니까
‘내가 언제 하나님께로 나아가 그 얼굴을 뵐 수 있을까?’라고 합니다. 그리고 3절에서
‘ 사람들은 날이면 날마다 나를 보고 “너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하고 비웃’는 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지금 자기가 하나님의 사람들과 함께 예배드리던 곳에서 멀리 떠나 있습니다. 아마 추측컨대 적에게 쫓기고 있거나, 붙잡혀 포로생활을 하는 것 같습니다. 포로 생활은 고통스럽습니다. 생명이 보장될 수 없습니다. 식량부족과 중노동, 질병...등 이 모든 상황들이 괴로움이며, 고통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음식이 부족하거나, 노동이 너무 힘들거나, 병으로 힘들어 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가 힘들어 하는 것은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것’, 즉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 예배 드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힘든 것은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지 못하는 중에 자신을 억압하는 자들로부터 조롱을 당하는 것입니다.

5절에서 이 사람은 스스로 자기 영혼과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느냐! 괴로워 하느냐!’라고 합니다. 이 사람은 낙심하여 괴로워 하였고 밤낮을 눈물로 지세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울음, 아 그 괴로움이, 그 방황이 자신의 영혼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세상에 되어지는 일로 괴롭고, 고통스럽고, 불안할 때 우리는 친구를 만나고, 여행을 하기도 하고, 술에 취하기도 하고, 하여간 그 아픔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 고통은 점점 더 가중될 뿐입니다. 고후 7:10은 그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슬픔은, 회개하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므로, 후회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슬픔은 죽음을 가져 옵니다” 사도 바울의 이 말씀이 맞습니다. 몇 일 전에 최진실 씨의 49제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 때 가장 절친했던 코메디언인 이영자씨가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이토록 큰 사랑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친구를 지켜주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도와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느 누구도 진정한 도움을 줄 수는 없습니다.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나를 창조하시고 인도하시고,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오셔서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교우여러분 세상 일로 고통스러울 때, 힘이 들 때, 낙심이 될 때 세상을 바라보지 말기 바랍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을 바라라’고 하십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김장을 했습니다. 김장을 넉넉히 했습니다. 나눌 사람과 함께 나누려고 넉넉히 했습니다. 저도 마늘 까고, 쪽 파 다듬고 했습니다. 그리고 큰 방에서 무채 썰다가 김태춘 집사님에게 쫓겨났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아리도 씻고, 배추도 항아리로 나르고 했습니다. 즐거운 잔치였습니다. 그래서 여러사람에게 김치 필요한 사람은 김치통을 가지고 오라고 해서 1,2 통 씩 나누었습니다. 그랜데 김치통 가지고 오는 사람 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2통 가지고 오는데 어떤 사람은 자그마한 통을 가지고 옵니다. 어떤 분은 그냥 김치 통 없이 점심 한 끼 같이 하였습니다.

김치 통 가지고 오는 사람은 아주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평소에 서로 주고 받는 사이입니다. 허물이 없는 것이지요. 그러니 받으며 감사합니다. 기꺼이 받습니다. 그런데 아직은 낯 설고, 별로 주고받고, 나눈적이 없으면 미안해 합니다. 감사하면서 미안해 합니다. 그러나 늘 서로 나누는 관계면 기꺼이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소망하며 바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사람은 하나님께 부르짖고, 어찌보면 하나님께 강짜를 놓아보기도 하는데, 마치 그 모습이 자식이 부모에게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익숙치 않은 사람은 미안해 하기부터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감사하는 것을 바랍니다.

보통 자식들은 부모에게 억지 떼거지를 쓰기도 합니다. 장남 보다는 막내가 더 때를 쓰고 막무가내일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로 다가오는 사람은 하나님께 어리광도 부리고 때를 쓰기도 하고 그럽니다. 그러나 어떤 신앙인은 당신, 높으신 하나님,,,좀처럼 아버지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교우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이십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의 바라는 것을 주시듯이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구하며 원하는 것을 응답해 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어떻게 바랄까요? 역대하14:1,2에 보면 아사가 다스리던 십 년 동안 나라가 조용했다고 합니다. 그게 뭐 어때서 할 지 모르지만 이 말은 평안하다는 것입니다. 나라가, 아니 우리 가정이, 내 자신이 평안한 적이 얼마나 되는지요? 성경에서도 이렇게 평안하였다는 말이 기록되는 경우는 손에 꼽습니다. 그럼 어떻게 평안할 수가 있었을까요?

3,4절에 보면 이스라엘 곳곳의 모든 제단과 산당, 석상과 목상을 다 깨뜨리고 부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상들의 하나님의 뜻을 찿고, 하나님의 율법과 명령을 실천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평안할 수 있었던 것의 출발점은 우상 제거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상이 제거되지 않으면 하나님을 찿을 수가 없습니다. 교우여러분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율법과 명령을 실천하면서 평안을 얻은 것입니다.

6절에서는 무어라 말씀하고 있습니까?
“주께서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으므로 나라가 조용하였고, 여러 해 동안 아무도 그에게 싸움을 걸어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7절 말씀에도 보니까 거듭 우리가 주 하나님을 찿았으므로, 주님께서 사방으로 우리에게 평안을 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읍들을 세우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교우여러분 그래서 그들은 성읍을 세우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어떻게 성읍을 세울 수가 있었을까요? 아무도 그에게 싸움을 걸어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싸움이 없는 평안이 어디에서부터 왔다구요? 우상이 제거되고 하나님의 뜻을 찿았다는 것입니다. 우상이 제거되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 생각, 자기 뜻, 자기 편의대로, 자기 경험, 습관과 관행이 나를 이끌어 갑니다. 허구적인 정보와 세속의 가치와 흐름이 나를 주관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읍을 세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6절과 7절 끝에서 거듭 성읍을 세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교우여러분! 여러분이 가정에서, 혹은 일터에서, 또는 여러분 자신에게서 세우고자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뜻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우상을 제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찿으시기 바랍니다.


한 달에 두 번 화요일 오전에 성경읽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있습니다. 저는 성경 공부가 아니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라 하는데, 자꾸 성경공부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난 번 이야기는 씨뿌리는 자의 이야기였습니다. 그 때 마음밭에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때 밭을 가꾸지 않으면 밭이 온갖 잡초로 뒤 덮이는 것 처럼 마음 밭도 역시 가꾸지 않으면 온각 잡다하고 더럽기도한 거짓되고 공허한, 바람직하지 못한 것들과 생각들, 정보들로 가득 덮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동어반복일지 모르지만 마음을 깨끗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히4:12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양날칼보다도 날카로워서, 사람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 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놓기까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향을 가려 냅니다. ”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성결케 합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셨듯이 마음이 깨끗해야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깨끗해야, 우상에서 벗어나 진실되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됩니다.

늘 저녁 예배에 참석하는 분은 늘 그만 그만 하지만 간혹 수요 저녁 예배나, 주일 저녁 예배에 참석하는 분들은 예배에 참석 한 후에 그 저녁 예배가 좋았다고 합니다. 교우여러분 좋으면 망설이지 말고 행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읽은 역대기하 14: 2절에 보면 아사는 주 그의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일, 올바른 일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의 교회가 많은 프로그램과 행사, 그리고 선교적 비죤을 내세우며 교인을 훈련시키고, 가르쳐 성장해 나갑니다. 또 적지않게 성도들로 하여금 편하게 예수 믿게하는 편의주의로 사람들을 붙듭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신앙의 내용이 어떠한지는 집고 넘어가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훈련과 가르침, 그에따른 성장은 있는데 헌신, 그러니까 진실하고, 성실한 헌신이 있는가 라는 것입니다. 마치 백화점이나, 동사무소의 문화센타에서 개설한 프로그램을 통해 문화를 향유하는 것 처럼, 교회가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개설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어느 과정이라도 속하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괜찮은 것인지? 그래서 세상의 여러 문화 프로그램과 다를 바 없는 과정 이수를 통해 스스로의 종교심을 만족시키는 것은 아닌지? 하나님을 만족케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성도들의 잔치로 넘쳐나는 것은 아닌지, 이 또한 우상은 아닌지? 오히려 하나님께 나아가는, 하나님께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잃게하는 것은 아닌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도 그 많은 프로그램 중에 하나입니다. 최근 주일저녁 예배가 없어진지 오래입니다. 오후에 공동체 식사 후에 성경공부 하는 것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이제 교회에 오는 거리가 멀어져서 그럴 수 있다고는 하지만, 저는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진실됨과 성실함이 살아나야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동안 줄 곳 특별한 프로그램 없이 그동안 주일 오전, 주일 저녁, 그리고 수요일 저녁 세 번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는 동안 많은 교회들은 심리치료다, 제자훈련이다, 영성훈련이다, 알파 코스다, 셀이다 하면서 많은 신앙의 프로그램들을 진행합니다. 사람들은 좋다고 합니다. 그리고 실제 이 시대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얻습니다. 그러나 백화점 같은, 시장 같은 들뜸과 열기는 있는지 모르지만 홀로 조용히 예배 시작 전에 주님 전에 먼저 나아와 하나님께 무릎꿇고 마음으로 기도하는 살떨리는 경외, 긴장감, 하나님을 바라는 중에 얻어지는 내적 평화와 기쁨이 있는가 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예배 공동체였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모세가 그랬고, 노아 등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마 이 시편 기자도 그 예배가 그리워 눈물을 흘렸던 것 같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키려 했을 때, 바로 앞에서 내세운 명분이 무엇이었습니까? 예배였습니다. 바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가는것을 끝끝내 반대하며, 방해하다가 첫 번째 태어난 것이 모두 죽음을 당하는 시험을 당하였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와 화해한 후에 세겜에 도착했을 때, 야곱이 원했던 모든 것이 이루어져 이제 여한이 없을 때 일어난 사건이 바로 딸 디나가 당한 성폭행 사건이었습니다. 성격이 급하고 거칠은 아들 시므온과 레위가 세셈 성읍의 남자들을 몰살하자 온 세겜의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야곱의 가족이 몰살당할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이 죽음의 위기를 극복한 것이 어디에서부터 였습니까? 벧엘로 올라가 하나님께 예배드리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야곱이 온 가족들 식솔들, 종들에게 내린 명령이 무엇이었습니까? 이방의 우상을 다 버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우상을 버리면 하나님을 찿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하나님을 찿습니다. 살 떨리는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옵니다.

예수님께서 수가성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야기가 영적인 생명의 이야기로 갑자기 바뀌어집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여인이 조금씩 조금씩 다가오는 예수님의 날카로운 영생의 질문을 피하기 위해 예수님에게 마지막으로 던진 질문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배에대한 것이었습니다. 이 여자는 예수님의 영적 생명의 말씀을 마지막으로 피해보려고
“우리 조상은 이 산 위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선생님네 사람들은 예배드려야 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합니다" 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여기서도 예배를 드리고, 저기서도 예배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오늘날로 치면 여기도 교회, 저기도 교회 라는 것입니다. 높은 빌딩 5층에도 교회 7층에도 교뢰가 많다며, 비아냥 거리는 것입니다.

교우여러분! 우리는 이러한 비아냥에 참여하면 안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생명의 은혜를 옆으로 비껴가는 비아냥입니다. 그러한 언행을 단호히 거절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생명의 은혜에 머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질문하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참되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 때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찾으신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 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우여러분! 오늘 이 시대가 헌신의 예배를 잃어버렸습니다. 지 지난 주일 저녁 성경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에 여호수아서를 함께 읽었습니다. 그 때 수24:14 이하의 말씀을 함께 읽었는데 수24장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다 정복하고 이제 마지막으로 죽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 모아 행한 마지막 유언의 말씀이었습니다. 이 본문을 통해 저의 마음에 와 닿았던 말씀은 ‘이제 주님을 경외하면서, 그를 성실하고 진실하게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섬긴다는 말을 집중적으로 7곱 번이나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본문을 읽고 이야기를 하면서 과연 ‘나는 하나님을 진실되고 성실하게 섬기고 있나?’라는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사마리아여인의 비아냥에 예수님은 참되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올 것이며, 지금이 바로 그 때라는 것입니다. 망설일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이 시간이 바로 그 시간인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심을 내며, 좋아하는 것에 예배가 묻혀버렸습니다.

교우여러분! 이제 내 마음에 가득찬 온갖 우상의 가치체계를 뒤로 물리칩시다. 롯의 아내가 소돔과 고모라에 놓아둔 온갖 물질이 아쉬워 뒤 돌아 보는 순간 소금기둥이 되었는데, 우리는 우리가 뒤로한 우상체계에 미련을 두지 맙시다. 오직 성결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며 성실과 진실로 헌신의 예배를 드립시다. 헌신, 즉 몸을 드리는 예배를 드립시다. 그렇지 않고는 평안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우리가 무엇을 세울 수가 없습니다. 아무쪼록 우리 몸에 일부가 된 우상의 가치체계를 뒤로하고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979개(40/49페이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2016년9월4일) 사진 첨부파일 관리자 14567 2016.09.09 08:30
공지 나는 주의 사람이니(가야금, 대금 동영상) 첨부파일 하늘기차 25918 2007.10.16 12:24
공지 망대에 오르라(창립40주년 기념 예배 설교,유경재 목사) 고기교회 26292 2006.05.31 22:16
공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하늘기차 24883 2005.09.02 16:30
195 [일반] 볼 수 있는 은혜 Ⅳ(2008년 12월28일, 성탄절후첫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916 2008.12.28 15:17
194 [일반] 볼 수 있는 은혜 Ⅲ(2008년 12월21일, 대강절네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779 2008.12.21 15:25
193 [일반] 볼 수 있는 은혜 Ⅱ(2008년 12월14일, 대강절세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1798 2008.12.14 14:09
192 [일반] 볼 수 있는 은혜 Ⅰ(2008년 12월 7일, 대강절두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785 2008.12.07 16:38
191 [일반] 빈들에서(2008년 11월30일, 대강절첫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1993 2008.11.30 16:52
>> [일반] 하나님을 바라라(2008년 11월23일, 성령강림주일후스물여덟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1903 2008.11.23 14:12
189 [일반]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2008년 11월16일,성령강림주일후스물일곱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886 2008.11.16 14:24
188 [일반] 소망을 품고 즐거워합니다( 2008년 11월 9일, 성령강림주일후스물여섯 첨부파일 하늘기차 1969 2008.11.09 16:21
187 [일반] 지금은 감사할 때(2008년 11월 2일, 추수감사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061 2008.11.04 09:21
186 [일반] 신령한 것을 사모하라( 2008년 10월19일, 성령강림절후스물세번째주 첨부파일 하늘기차 2714 2008.10.19 15:56
185 [일반] 하나님의 열심(2008년 10월 5일, 성령강림절후스물두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127 2008.10.12 14:19
184 [일반] 끝까지 견디는 사람(2008.10월 5일, 성령강림절후스물한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082 2008.10.05 16:16
183 [일반] 꼴찌들의 행복(2008년9월28일, 성령강림주일후스무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075 2008.09.29 21:01
182 [일반] 시대를 분별하는 종말의 신앙(2008년9월21일, 성령강림주일후열아홉번째 첨부파일 하늘기차 2180 2008.09.21 17:10
181 [일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지혜(2008년9월14일, 성령강림주일후열여섯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187 2008.09.14 15:25
180 [일반] 은혜의 잔치에 참여케 하는 믿음(2008년9월 7일, 성령강림주일후열일곱 첨부파일 하늘기차 1895 2008.09.07 14:08
179 [일반]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2008년8월31일, 성령강림주일후열여섯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1914 2008.08.31 18:38
178 [일반]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2008년8월24일, 성령강림주일후열다섯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293 2008.08.24 18:07
177 [일반] 씨뿌리는 농부가 아니라 사람(2008년8월17일, 성령강림주일후열네번째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641 2008.08.17 17:59
176 [일반] 어린 소녀 하나(2008년8월10일, 성령강림주일후열세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184 2008.08.11 1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