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View Article

참 소망은 상속이다(세계성만찬주일, 2022년10월2일)

하늘기차 | 2022.10.02 10:49 | 조회 352

                 
                               

                              참 소망은 상속이다

세계성만찬주일                                                                                                      시16:5,6;고전2:9-16

  오늘 말씀은 성령께서는 어떤 분이시고, 어떤 일을 하시며 어떤 사람이 성령의 사람인지를 말씀합니다. 성령은 우선 하나님의 깊은 섭리와 경륜을 살핍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게 하십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로하여금 베푸신 은혜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삶 속에서 세상의 논리나, 가치, 방법을 따르지 않고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 말과 행동으로 받은 선물, 은혜를 드러냅니다. 받은 것도 신령하지만 그 받은 것을 드러내는 것도 성령님의 감동을 따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교통하며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전하고 깨우치며, 우리의 사정과 생각을 하나님께 전합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성령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움직이고 멈춤에 따라 진을 치거나 이동하였습니다. 광야생활은 기다림의 삶이었습니다. 62:5내 영혼아, 잠잠히 기다려라, 내 희망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다고 합니다. 이 기다림을 성령께서 주관합니다. 사실 쉽지 않습니다. 평화와 위로, 소망의 기다림이어야 하는데, 불안과 초조, 근심의 기다림이기 십상입니다.

 사울왕은 처음 왕으로 세움받을 때는 침략해 오는 이방의 적을 누구 보다도 담대히 이스라엘의 용기를 붇돋우며 물리치고, 영적 감동을 따르며, 겸손하여 모두가 좋아하였습니다. 그런데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블레셋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략해 오자, 백성들은 바위 틈이나 웅덩이, 굴에 숨어버렸고,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두려워 떨며 흩어지기 시작합니다. 조급해진 사울이 하나님께 번제를 먼저 드리고 싸움에 임하라고 한 사무엘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자기 스스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립니다. 기다리지 못한 것입니다. 제사를 드리자 마자, 바로 사무엘이 길갈에 도착합니다. 사무엘이 왜 기다리지 못하고 제사를 드렸냐고 꾸짖자, 사울은 블레셋 사람들이 길갈로 내려와 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생각이 든 것입니다. 실제로 침공하지는 않았습니다. 생각이 드는 순간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어버립니다. 영이 살아있어야 하나님의 말씀이 세워지고 드러나는데, 영이 죽으니 말씀이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저 명맥만 유지합니다. 그런데 생각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생각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주요 특성입니다. 이성이나 생각은 가치중립적입니다. 거룩한 영을 따를 수도 있고, 어두운 영에 붙들려 세상 가치에 몰입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 14절을 보면 자연인으로서의 인간은 생각에 사로 잡힐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에 속한 일들을 받아들이지 안습니다. 성령의 역사, 성령의 일이 어리석어 보이고, 아니 성령의 감동과 역사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영적 분별력이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성도들 역시 교회도 성령이 아니라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은 아닌지요?

 예수님은 노아의 때 사람들이 홍수가 나서 사람들을 다 휩쓸어 갈 때 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갔다며, 주님이 다시 오실 마지막 때에도 그럴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시집가고 장가 가고, 먹고 마시는 것이 나쁜가요? 우리의 일상입니다. 일상은 복되고 즐거운 것입니다. 그런데 그 먹고 마시고 집을 사고, 밭을 사는 일에 매 몰 되니까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가짜 행복에 쉽게 현혹됩니다. 영적 식별이 없으면 세상의 가치에 그대로 휩쓸릴 수 밖에 없습니다. 소망이 아니라 욕망에 붙들립니다. “미래의 꿈이 있습니다. 희망의 규모가 틀립니다. 60조의 자금 SS 생명!”, 엔진 오일 광고 중에 “2000CC이상 차에만 꼭 사용하십시오!” 그 말에는 2000CC 이상 중대형 차를 타야 행복하다는 욕망을 부추기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아파트광고도 이 집이야말로 정말 세상 모든 것을 얻는 기쁨을 맛 볼 것이라는 부동산 복음을 전합니다. 이 약을 먹으면 불노장생 합니다. 세상은 사람들이 참으로 원해야 할 것을 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지 않아도 될 것을 사람들에게 듣게하여 뇌리에 박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생각이 주님 뜻에서 벗어나 소망하는 삶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어린 사무엘이 엘리 곁에서 주님을 섬기고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도 드물고, 환상도 자주 나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 말씀이 끊어졌고, 꿈과 이상이, 참 소망이 사라졌을까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못 듣고, 못 보는 것이 아닌가요? 눈에 보이는 것에 사로잡혀 보이지 않는 소중한 존재감,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 안에 머물러 있는 그 자체 만으로 더할나위 없이 감사한 존재감이 사라진 것은 아닌가요? 사울이 블레셋과의 마지막 싸움에서 패하며 죽게되었을 때 자살을 합니다. 자살의 이유는 이방의 개 같은 블레셋의 칼에 죽임을 당 할 수 없다는 자존감입니다. 그런데 이미 사울은 욕망에 사로잡혀 본능적으로 살지 않았나요? 지난 수요일에 그래서 발톱에 때 만도 못 한 자존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존재감을 맛 보며 살자고 하였습니다.

 성령이 아니면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지금 가는 길이 하나님의 뜻에 합한 것인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4:6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들의 영을 우리 가운데 보내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붙들려 종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상속자로 부름받았습니다. 교우여러분! 우리는 종으로 살고 있나요? 자녀로 살고있나요? 하나님의 부름받은 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물려 받습니다. 아브라함이 아직 부족을 이끌 후계자를 세우지 못하여 근심하며 조급한 생각에 기다리지 못하고 상속자로 종 엘리에셀을 세우려 하고, 이스마엘을 상속자로 세우려 하자, 하나님께서는 사라에게서 난 아들이 영원한 상속자가 될 것이라 합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이 전혀 다릅니다.

 내가 생각하고 바라고 기대하는 것이 나의 참 소망이 아닙니다. 참 소망은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낡아 없어질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엡1:18에서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밝혀, 부르심으로부터 오는 소망이 무엇이며, 우리가 받은 영광스러운 상속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기 원한다고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 깨우침이 없으면 평생 우리는 선하고 좋은 것, 하나님이 친히 주신 소중한 유산을 썩히며, 엉뚱한 것에 목말라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 생각에 사로잡히기 때문입니다. 생각은 세상가치에 더 친근합니다. 성령에 감동을 따라야 자유하며 하나님 나라의 참 가치, 소망을 봅니다.

 참 소망은 무엇일까요? 성경은 이 소망을 유산, 상속이라고 못 밖습니다. 예레미야는 렘3:24에서 주님은 내가 가진 모든 것, 주님은 나의 희망!”이라 선포합니다. 18:20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합니다. 가나안을 앞에두고 모세는아론에게 레위 지파는 다른 12지파와 더불어 나눌 몫이 없다. “네가 받은 몫, 네가 차지할 유산은 바로 나라고 합니다. 이것은 내가 너 찜했다는 것입니다. 찜하면 어떻게 됩니까? 다른 관계는 다 끊어집니다. 찜한 사람과 찜 당한 사람 만 남습니다. 네가 차지할 몫이 ”, 하나님이 내 것이라는 말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소유할 수 있나요? 오늘 말씀 시16:5절에서 다윗은 , 주님, 주님이야말로 내가 받을 유산의 몫입니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필요한 모든 복을 내려주십니다. 나의 미래는 주님이 책임지십니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상속이며 하나님이 미래의 소망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부름받은 사람은 사슴이 시냇물 찿듯이, 파숫군이 새벽을 기다리듯이 사모합니다.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열심으로 일하시는 것을 보며 소망하는 삶을 상속 받았습니다. 소망하며 바라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성도의 복된 삶입니다. 모세가 바로의 추격과 이스라엘을 가로막는 홍해를 앞에 놓고 주님께서 오늘 당신들을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지켜 보기만 하라고 합니다. 무엇을 하려는 삶이 아니라 성령의 내적 감동을 통해 헤세드, 하나님과의 신뢰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는 참 소망, 기쁨, 평화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서로같이 교회이기를 침묵으로 기도합니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979개(4/49페이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2016년9월4일) 사진 첨부파일 관리자 14489 2016.09.09 08:30
공지 나는 주의 사람이니(가야금, 대금 동영상) 첨부파일 하늘기차 25857 2007.10.16 12:24
공지 망대에 오르라(창립40주년 기념 예배 설교,유경재 목사) 고기교회 26217 2006.05.31 22:16
공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하늘기차 24809 2005.09.02 16:30
915 아브라함의 신앙과 성숙해지는 신앙 (평신도 강단: 장기혁 집사, 27일 첨부파일 김현식 465 2022.11.28 16:56
914 라오디게아교회의 현상(대강절첫째주, 2022년11월27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93 2022.11.27 13:31
913 하나님 나라:영적 샘파기(창조절12주일, 2022년11월20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521 2022.11.20 14:03
912 하나님 기도를 찿아 볼 수 있나?(창조절11주일, 2022년11월13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631 2022.11.13 11:06
911 마실 수 있겠느냐?(평신도강단교류,2022년11월6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바람 421 2022.11.07 11:09
910 우리의 개혁(창조절 아홉째주일, 2022년10월30일) 사진 첨부파일 김현식 475 2022.10.30 17:02
909 우리서로같이감사(추수감사주일, 2022년10월23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18 2022.10.23 16:07
908 나를 더 사랑하느냐?(창조절일곱번쨰주일, 2022년10월16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11 2022.10.16 10:02
907 교회의 일꾼(창조절여섯번째주일, 2022년10월 9일) 사진 첨부파일 stephensh 324 2022.10.09 16:34
>> 참 소망은 상속이다(세계성만찬주일, 2022년10월2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53 2022.10.02 10:49
905 아무것도 아닌 것의 하나님(창조절네번째주일,2022년9월25일) 사진 첨부파일 만지다 357 2022.09.26 16:00
904 강물처럼 흐르는 정의(창조절세번째주일,2022년9월18일) 사진 첨부파일 김현식 320 2022.09.19 17:06
903 좁쌀 • 하나(창조절두번째주일,2022년9월11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35 2022.09.09 16:59
902 내가 택한 내 그릇(창조절첫번째주일,2022년9월4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08 2022.09.04 13:39
901 내가 하나님을 만나는 방식(8월 28일 저녁예배 평신도 강단: 심현모 성 사진 첨부파일 만지다 483 2022.08.29 20:13
900 그리스도 안에 넘치는 은혜(성령강림후열두번째주일,2022년8월28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01 2022.08.28 10:21
899 그리고 그 분이 부르셨다(성령강림후열한번째주일,2022년8월21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52 2022.08.21 10:46
898 한 달란트(성령강림후열번째주일,2022년8월14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96 2022.08.14 11:00
897 두 렙돈 같은 헌금(성령강림후아홉번째주일,2022년8월7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428 2022.08.07 11:05
896 모여서 지키며 가르쳐 나누는 교회(성령강림후여덟번째주일,2022년7월31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19 2022.07.31 1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