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View Article

아무것도 아닌 것의 하나님(창조절네번째주일,2022년9월25일)

만지다 | 2022.09.26 16:00 | 조회 357




아무것도 아닌 것의 하나님


고린도전서 126-31
26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을 때에, 그 처지가 어떠하였는지 생각하여 보십시오. 육신의 기준으로 보아서, 지혜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권력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가문이 훌륭한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27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셨으며,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28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비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셨으니 곧 잘났다고 하는 것들을 없애시려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29 이리하여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30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가 되시며, 의와 거룩함과 구원이 되셨습니다.
31 그것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바 "누구든지 자랑하려거든 주님을 자랑하라" 한 대로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어느 한 신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신학생은, 한국교회의 보수적인 신앙 환경 속에서 자라왔고, 청소년 시절에 교회에서의 생활을 즐기며, 교회에 헌신하다보니, 얼떨결에 덜컥 신학교에 들어가며, 목회자가 되는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얼떨결에 신학생이 되었지만, 그래도 이왕 신학생이 되었기에, 그는 부푼 꿈 한 가지를 품었습니다.

한경직 목사처럼, 김삼환 목사처럼, 조용기 목사처럼, 어느 잘 나가고 유명한 목사님들처럼, 큰 교회를 세우고, 많은 성도를 이끄는, 성공한 목사가 되어야지!’

, 그는 욕심 덩어리의 신학생이었습니다. 큰 규모의 예배당,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화려한 언변의 설교, 매주매주 성도 수가 늘어나는 교회, 그에 따라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성공한 목사에게 어울리는 좋은 옷, 자동차, ... 그러한 것들을 바라고 소망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성공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했었고, 그것이 예수님이 말한 복음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성공, 성공, 성공...!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그러한 성공의 길로 이끌어주실 거라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성공한 자신을 본다면 그렇게 잘 되서 부유해지고, 높아진 자신을 본다면, 사람들이 그런 자기처럼 되고 싶어서라도, ‘하나님을 믿지 않을까?’, ‘예수님이 나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복음에 관심을 갖지 않을까?’, ‘그게 예수님을 전하는 선한 영향력일거야!’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성공한 목사가 되고자 했습니다.

이쯤에서 밝히자면, 어느 정도 눈치채셨을 것 같습니다만, 이 신학생의 이야기는 바로 저의 이야기입니다. 그저 누구보다도 크고 높아지려는 욕심으로 가득했고, 어떤 대단한 것이 되기를 바랬으며, 부유해지기를 소망했고, 앞서의 세속적인 성공을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했던 저였습니다.

 


그래도 아주 다행스럽게도,” 그러한 목사가 되겠다는 그 부푼 꿈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신학을 공부하면서 이전까지 교회에서 듣기만 했던 이야기 너머의 하나님을 알아갔고, 참된 하나님 모습을 하나씩 하나씩 발견하며 고민하고 생각함으로, 점차 그런 세속적인 성공이 결코 하나님의 뜻이 될 수 없음을 깨달을 수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게 그런 깨달음을 주었던 가장 큰 요인은 도시빈민선교회 암하아레츠라는 동아리 활동이었습니다.

어느 날,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의 손에 이끌려 갔던 그 동아리의 활동을 통해서 저는 이전까지 알지 못했고, 관심을 가질 수 없었던 삶과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영등포역의 노숙인들과 쪽방촌 사람들, 위기 청소년 공부방 아이들, 구룡마을 선주민들, 재능학습지 노동자, 쌍용자동차를 비롯한 수많은 부당해고 노동자들...

화려하고 복잡한 도시의 풍경에 가려져 도시가 만들어 낸 구조적 가난과 폭력 속에 방치된 사람들을 만났고, 그동안 제가 몸담았던 교회들에서는 한 번도 말해주지 않았던 그런 사람들의 삶과 현장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곳에서 그들을 주목하시며 그들과 함께 하시는 참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만 계시는 줄 알았던 하나님은 교회 밖, 거리에서, 도시로부터 버림받은 이들을 위로하는 자리에도 계셨습니다. 통성과 방언으로 드리는 기도만 들으시는 줄 알았던 하나님은 탄식하며 호소하고, 정의를 외치는 거칠고 서투른 기도까지도 듣는 분이셨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세상이 어리석다 말하는 것들, 약한 것들, 비천하고 멸시받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 곁에, 하나님이 함께 계셨고, 비로소 참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교회 안에서 만난 하나님보다 그러한 도시 빈민의 삶과 현장에서 만난 하나님이 더 분명하고 구체적이게 구원과 은혜, 사랑, 축복이 무엇인지를 저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을 만난 후로, 크고 넓은 교회당을 가지고도 빈민의 출입을 막으며 자리를 내어주지 않고 문을 걸어 잠그는 곳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간증에는 마이크를 넘겨주면서, 탄식하는 말과 정의를 외치는 말은 외면하는 곳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부푼 꿈을 가지고 있던 성공한 목회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 하나님을 알고 나니 그 꿈은 부끄러운 것이 되었고, 공허하고 무의한 것이 되었습니다. ‘성공한 목사에서의 성공한을 가차없이 빼버렸습니다.

더 이상 성공한 목사를 꿈꾸지 않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목사라는 부르심에 참 의미를 알며, 비천하고 멸시받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 곁에, 하나님이 세우시는 목회자가 되기를 바라고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아무런 문제가 없어보이는 참 의미로의 목사가 되겠다는 순수한 소망마저도

하나님 앞에서는 욕심이었던 것일까요?

지금의 저는 매일매일 과연 나는 목사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5년 전에 제가 다닌 신학교의 채플에서 암하아레츠 친구들과

성소수자를 향한 환대와 사랑을 표현한 무지개 옷을 입고 예배를 드렸다는 이유로 학교로부터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대한예수교 장로회 통합 교단에서 동성애를 옹호하는 위험한 요주의 인물이 되어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목사 안수를 받기 위해선 교단이 주관하는 목사 고시를 봐야 하고 또 그 안에는 면접이 진행되는데 블랙리스트에 오른 저는 십중팔구 아무리 시험을 잘 본다 한들 목사가 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미 저와 함께 징계를 받았던 한 친구는 목사고시 시험에 합격하고도 합격자 발표 전날에,

따로 혼자만 한번 더 면접을 보는 과정을 거쳐서 결국 동성애를 옹호하는 인물이라는 이유로 합격이 번복되고 최종 탈락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저희가 징계받을 당시에 저희의 편에 서서 성명서를 내고 이름을 올렸던 학생들도 블랙리스트에 올라가서, 매년 그 학생들이 목사고시에서 탈락하거나 합격 보류를 통보를 받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분명, 저라고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사실 징계 이후에도 차별과 혐오 속에서 탄식하며 호소하는 성소수자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성소수자의 담론을 표현한 저였기에 아마도 이전의 사례들보다 심하면 더 심했지, 덜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또한 얼마 전에 있었던 올해 우리 교단 총회에서 다음 회기 총회장으로 당선되신 목사님께서,

"동성애, 차별금지법, ... (교회) 주변의 공격을 온몸으로 막고 죽도록 충성을 다하겠다" 라고 당선 소감을 발표하셨는데, 죽도록 온 몸으로 막으시겠다는 분을 한낱 전도사에 불과한 제가 도저히 뚫어낼 수 있을 것 같진 않습니다.

내년 목사고시는 응시해보긴 하겠지만, 사실,,, 뻔한 결말이 너무나도 눈에 선해서 많이 두렵고 떨립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저의 기도는, “하나님, 저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가 아닌, “하나님,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싶습니다.”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오늘 본문 말씀인 고린도전서 128절에 나온 표현을 빌린 것인데요. 지금의 저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의 어리석은 것이 되기를 원하며, ‘세상의 약한 것이 되고자 합니다. ‘비천하고 멸시받는 것’, 그런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싶습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저를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도록 이끄셨던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 4년 전의 제가 만일, 징계를 피하고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당시에 차별과 혐오 속에서 탄식하고 호소하는 성소수자들의 외침을 외면하고 무시했다면, 과연, 제가 되고자 했던 참된 의미의 목사가 될 수 있었을까요? 그렇게 해서 된 목사 라는 타이틀이 과연 저의 자랑이 될 수 있었을까요?

아니요. 만일 그랬더라면, 저는 정말로 진짜 아무것도 아닌그 어떤 것조차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참된 의미의 목사가 되고자 했던 저에게 있어서 선택지는 오직 단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성소수자들을 차별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이기에, 환대와 사랑의 무지개 옷을 입는 것. 조금도 고민하거나 망설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저는 기꺼이 무지개 옷을 입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곁에 서려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게 하는 것”,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어떤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잠시 성경의 몇몇 인물들을 떠올려보면,

아브라함은 미래가 보장된 자신의 가족을 떠나, 하나님이 약속하신 낯선 땅으로 감으로써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이집트의 왕자였다가, 미디안으로 도망치며 하루아침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고. 다윗 역시, 왕이 되기 전까지 계속해서 사울에게 이리저리 쫓기는 신세로의,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들의 이어지는 다음의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그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부터, 그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하나님의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고,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게 하셨으며, 다윗을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그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 그들을 절대로 저버리거나 외면하지 않으셨고, 그들의 곁에, 그들과 가까이 함께 계셨습니다.

사실, 앞서의 인물이 속한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보더라도, 그들은 그 자체로 아무것도 아닌 민족이었습니다. 작고 연약한, 하찮고 별로 대단치 않았던 민족이었으나, 하나님은 그런 아무것도 아닌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셔서, 그들과 늘 함께 하셨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민족에게서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 예수님도 역시 생각해보면 수많은 아무것도 아닌 모습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참 하나님이시나 이 땅 가운데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입니다. 그것도 누일 곳이 없어서 말구유에 태어난, 어느 한 목수의 아들, 제국의 지배를 받는 연약한 나라의 어느 평범한 30대 청년. 그렇게 예수님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셨고, 심지어, 십자가 위에 초라하게 매달려 죽으심으로 더욱 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셨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하나님과 함께 가까이 하셨고, 예수님은 이 세상을, 아무것도 아닌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 사람들을 택하셔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냥 함께 계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당신의 계획과 당신의 뜻 가운데 사용하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그 사실이 오늘 말씀에서도 분명히 나타나고 있는데요. 세상이 어리석다 말하는 사람들, 약한 사람들, 비천하고 멸시 받는 사람들, 그렇게 아무 것도 아닌 사람들 역시나, 하나님은 선택하여 부르시고, 그들로 하여금 맨 처음의 교회, 초대교회를 세우고, 이루어 가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하나님입니다.

목사가 되고싶어요라고 기도하던 저는 잘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저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 곁에 있으면 되는 줄만 알았지,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하나님이 정말로 원하시는 것이,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는 아닌 척하지만, 곁에 있는 사람들과 난 달라하며 저를 구분짓고 속으로는 무시하고 깔보는 그런 위선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저를 아시고, 저를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게 제가 아무것도 아닌 것임을 인정하게끔 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오늘의 본문을 그전에도 많이 마주했었지만 그때에는 별다른 감흥 없이 읽혔던 말씀이었던 것 같은데, 요즘 목사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 있는 저에게 이 말씀이 큰 위로와 용기를 주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시간, 아무것도 아닌 것의 상황이나 과정 속에 계신 분들에게 오늘의 말씀이 큰 위로와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하나님이 사용하실 계획을 품고 계십니다.

이제 저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일에 소망이 있습니다. 물론, 이 말은 제가 목사가 되기를 완전히 포기했다’, ‘그만하겠다라는 말은 아닙니다. 목사가 되지 못한 저나, 목사가 된 저, 이제는 둘 다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되고 안되고는 이제 정말로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으며 다만, 아무것도 아닌 저는 아무것 아닌 것들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저 주님이 세우신 그 자리에서 온전히 최선을 다하면 그뿐 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맥락 안에서 끝으로, 잠시 우리 고기교회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고기교회는 아무래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의 교회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억지로 무언가가 되려하지 않고, 무언가를 욕심으로 하지 않으며, 남들에게 자랑하듯 내세우지 않는,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교회 공동체입니다.

그런 고기교회를 하나님이 택하셨습니다. 고기교회가 아무것도 아닌 것의 모습으로, 세상이 어리석다 하고, 약하고, 비천하며 멸시받는, 아무것도 아닌 이들에게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마을의 크고 작은 일에 협동하게 하시고 세월호 가족에게 보내시고 부당한 처우를 당한 노동자들에게 힘을 보태게 하시고 갈 곳 없는 난민을 찾아가게 하시며 생태, 기후정의와 탈핵에 목소리를 내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1) 지역 속에서 지역과 소통하는 교회로 2) 예언자적 시선으로 세상을 보며, 역사 현실에 참여하는 교회로, 3) 자연 생태 지향적인 교회로, 4) 종말론적인 가치 공동체로, 그런 당신의 계획과 뜻에 합당하게 사용하고 계십니다.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것의 교회의 모습입니다.

우리 고기교회가 계속해서 그런 지향을 잃지 않고 이어나가는, 우리 서로 함께 고기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979개(4/49페이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2016년9월4일) 사진 첨부파일 관리자 14490 2016.09.09 08:30
공지 나는 주의 사람이니(가야금, 대금 동영상) 첨부파일 하늘기차 25859 2007.10.16 12:24
공지 망대에 오르라(창립40주년 기념 예배 설교,유경재 목사) 고기교회 26218 2006.05.31 22:16
공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하늘기차 24809 2005.09.02 16:30
915 아브라함의 신앙과 성숙해지는 신앙 (평신도 강단: 장기혁 집사, 27일 첨부파일 김현식 466 2022.11.28 16:56
914 라오디게아교회의 현상(대강절첫째주, 2022년11월27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93 2022.11.27 13:31
913 하나님 나라:영적 샘파기(창조절12주일, 2022년11월20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521 2022.11.20 14:03
912 하나님 기도를 찿아 볼 수 있나?(창조절11주일, 2022년11월13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631 2022.11.13 11:06
911 마실 수 있겠느냐?(평신도강단교류,2022년11월6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바람 421 2022.11.07 11:09
910 우리의 개혁(창조절 아홉째주일, 2022년10월30일) 사진 첨부파일 김현식 475 2022.10.30 17:02
909 우리서로같이감사(추수감사주일, 2022년10월23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18 2022.10.23 16:07
908 나를 더 사랑하느냐?(창조절일곱번쨰주일, 2022년10월16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12 2022.10.16 10:02
907 교회의 일꾼(창조절여섯번째주일, 2022년10월 9일) 사진 첨부파일 stephensh 324 2022.10.09 16:34
906 참 소망은 상속이다(세계성만찬주일, 2022년10월2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53 2022.10.02 10:49
>> 아무것도 아닌 것의 하나님(창조절네번째주일,2022년9월25일) 사진 첨부파일 만지다 358 2022.09.26 16:00
904 강물처럼 흐르는 정의(창조절세번째주일,2022년9월18일) 사진 첨부파일 김현식 321 2022.09.19 17:06
903 좁쌀 • 하나(창조절두번째주일,2022년9월11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35 2022.09.09 16:59
902 내가 택한 내 그릇(창조절첫번째주일,2022년9월4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09 2022.09.04 13:39
901 내가 하나님을 만나는 방식(8월 28일 저녁예배 평신도 강단: 심현모 성 사진 첨부파일 만지다 483 2022.08.29 20:13
900 그리스도 안에 넘치는 은혜(성령강림후열두번째주일,2022년8월28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01 2022.08.28 10:21
899 그리고 그 분이 부르셨다(성령강림후열한번째주일,2022년8월21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52 2022.08.21 10:46
898 한 달란트(성령강림후열번째주일,2022년8월14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96 2022.08.14 11:00
897 두 렙돈 같은 헌금(성령강림후아홉번째주일,2022년8월7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428 2022.08.07 11:05
896 모여서 지키며 가르쳐 나누는 교회(성령강림후여덟번째주일,2022년7월31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19 2022.07.31 1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