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View Article

강물처럼 흐르는 정의(창조절세번째주일,2022년9월18일)

김현식 | 2022.09.19 17:06 | 조회 319
 


강물처럼 흐르는 정의


창조절세번째주일                                               아모스 5:21-24


말씀을 전하는 것은 감사하고도 부담되는 일입니다. 개인적으로 말씀을 전할 때 가장 시간이 들어가는 부분은 본문을 정하는 것입니다. 어느 본문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메시지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구절의 범위를 어디까지 정하느냐도 중요한데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은 앞 뒤 문단을 추가해서 읽어보는 것이 이해에 좋을 것같습니다. 18절부터 27절을 번갈아서 교독하고 마지막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어떤 내용인 것 같습니끼? 하나님이 기분이 좋으신 것 같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왜 이렇게 화가 나셨을까요.

 

아모스서는 아모스 선지자의 예언입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11절에 자신의 출신과 언제 말씀을 전했는지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가 말씀을 전했던 시기는 이스라엘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나라가 나뉜 시기, 그중에서도 북이스라엘의 왕이 여로보암 2세때입니다. 이 당시의 북이스라엘은 잘나갔던 때입니다. 경쟁 국가였던 시리아가 그 옆에 있는 앗시리아와 싸우다가 약해진 틈을 타 요단강 건너편 영토를 수복했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의 기록을 보면 여름궁과 겨울궁으로 표현되는 왕의 별장이 별도로 존재할 정도로고 국력이 강하고 부귀영화가 넘쳤습니다. 이 시기를 기록하고 있는 열왕기하 14:25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의 국경을 하맛 어귀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회복하였다. 이것은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그의 종인 가드헤벨 사람 아밋대의 아들 요나 예언자에게 말씀하신 그대로였다.”

 

여기서 나온 요나 예언자는 우리가 아는 그 요나입니다. 하맛 어귀는 이스라엘의 최북단 지역, 아라바 바다는 사해지역입니다. 이것은 북이스라엘이 가장 영토를 확장한때이며, 하나님이 가나안땅을 주실 때 정해주셨던 곳을 회복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모스서의 내용은 대부분이 심판입니다. 아모스서의 초반은 서너가지 죄때문에 여러 나라들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다마스커스(시리아)로 시작해서 모압까지 남북왕국의 주변국가 6개를 언급하시고 마지막에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을 심판을 말씀하십니다. 그중에 이스라엘의 분량이 가장 많습니다.

 

그리고 3-6장은 구체적으로 북이스라엘 심판받아야 할 이유와 어떻게 심판하실지를 언급하십니다. 같이 읽었던 5장에서 심판의 이유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정의와 공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판하시겠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선지자는 이것을 안타까워 합니다.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아모스에게 5가지 환상을 보여주시며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마지막에는 온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것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북이스라엘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걸까요? 여로보암 2세때는 나라는 강해졌지만 그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옳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사치, 빈부격차, 특히 가난한 자에 대한 억압과 짓밟음이 심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고고학적인 발굴 결과도 이 부분을 뒷받침하는데, 이전에는 비슷한 규모의 집들이 발견되지만 이 시기에 이르면 규모가 큰 집이 모여있거나 작은집들이 밀집된 형태를 보여줍니다. 빈부의 격차가 벌어지고 끼리끼리 모여서 살게 된것입니다. 아모스는 이점을 강력하게 지적합니다. 그리고 아모스 이후의 선지자들은 가난한 자를 짓밟는 현실이야말로 하나님을 떠난 결정적 증거로 봅니다.

그래서인지 여로보암 2세때의 북이스라엘을 대상으로 활동한 또 다른 선지자가 있으니 그가 호세아입니다. 한마디로 가장 부강한 시기의 북이스라엘은 선지자 두명으로부터 잘못하고 있다는 말씀을 받는 상황인 것 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예배를 받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특히 24절의 정의와 공의가 흐르게 하라는 문자은 유명해서 어디선가 한번은 들어보셨을수도 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물처럼 흐르게 하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11절을 보면 아모스 선지자는 자신을 목자 출신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모스서에는 농사를 해본 사람이 사용할법한 표현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이 표현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정의와 공의가 비가 오는 우기에만, 특별한 때에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흐르게 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당시의 예배에 대한 비판이기도 합니다.


21-23절에서 하나님은 예배를 받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당시의 예배는 짐승을 죽여서 바칩니다. 짐승을 죽여서 바쳐 고기와 가죽은 생업을 위해 일하지 않고 예배 관련된 일만 전담하는 레위인과 제사장이 양식으로 가져가고,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은 기름과 피입니다. 기름을 태워 하나님께 올리고, 피는 제단에 뿌리게 되어있습니다. 본문을 보니 사람들이 예배는 잘 드린 것 같습니다. 절기 행사도 드리고 성회로 모이고 번제도 곡식제물도 잘 바칩니다. 그러면 당연히 많은 예배가 드려질 것이고 제단에 뿌려지는 피도 많을 것 입니다. 그렇게 뿌려진 피가 제단에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공의가 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계속해서 말씀하시는 정의와 공의는 뭘까요? 단어만 놓고 보면 정의는 개인적인 것이고 공의는 공동체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성경에서 정의로 번역된 단어는 미슈파트라는 개념인데 이것은 사법적 정의, 공정한 재판을 말합니다. 레위기 19장을 보면


재판할 때에는 공정하지 못한 재판을 해서는 안 된다. 가난한 사람이라고 하여 두둔하거나, 세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여 편들어서는 안 된다. 이웃을 재판할 때에는 오로지 공정하게 하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공의로 번역되는 것은 체다카라는 단어인데 무죄함, 의로움, 영어로는 righteousness 인데, 성경에서는 바른 관계의 의미로 사용되는 개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도 포함합니다. 이 두가지 개념은 구약에서 자주 등장하는 중요한 개념인데, 하나님께서 사람과 언약을 맺으시며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라고 하실 때 그 하나님의 백성이 해야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8:19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개역개정본으로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이유가 그를 통해서 세상에 정의와 공의가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라는 말입니다또한 이 개념은 선악을 판별하는 기준으로 삼으시기도 합니다. 에스겔 33:19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 정의와 공의대로 행하면 그가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실 메시아가 세상을 통치하시는 방식을 보여주시는 이사야 32:1에도 등장합니다.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우리가 보는 새번역 성경은 개념을 풀어서 설명해서 번역했기에 개역개정본으로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인애, 자비로 번역되는 헤세드의 개념이 추가되기도 합니다. 이 세가지 개념은 같이, 따로 묶이기도 하면서 쓰이는데,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 를 이야기할 때 대표적으로 사용되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앞구절인 18절 단락을 보니까 주님의 날은 좋지 않은 날이라고 합니다. 왜 사모하느냐? 그날은 어둠인데, 주님의 날을 왜 어둠이라고 말할까요주님의 날은 예언서에서 종종 등장하는 개념입니다.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지 않으니 돌이켜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으라는 경고를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서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들입니다그런데 그들의 예언은 언제나 반복됩니다. 많은 예언서들의 내용이 이러한 경고입니다. 반복되고 심판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예언을 전하는 당대에도, 그 이후에도.

선지자 입장에서는 애매해집니다. 왜 안 이루어지나? 그렇다고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것도 아닙니다. 여전히 악인들이 성공하는 현실입니다그래서 예언자에게는 질문이 발생합니다. 하나님 무엇을 하시나요? 하나님 살아계십니까? 라는 질문이 필연적으로 제기됩니다. 하박국의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답이 주님의 날, 여호와의 날입니다. 그 날이 오면 나의 섭리가 이루어질 것이니 희망을 가져라. 그렇다면 주님의 날은 좋은 날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니. 그런데 왜 캄캄한 날이라고 설명하고 있는것일까요?

 

하나님의 섭리가 실현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과 맺으신 언약을 성취하러 오신다는 이야기입니다. 구약의 중요한 주제중 하나는 하나님이 사람과 언약을 맺으셔서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사람들이 지켜야 할 것은 정의와 공의인데, 그것을 지키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이 오시면 심판할 수밖에 없습니다. 언약한 대로 심판을 해야 합니다. 구약의 주제중 하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면 복이 오고 그렇지 않으면 저주가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으니 저주가 옵니다. 너희가 지금 하나님 뜻을 잘 따른다고 생각해서 주님의 날을 기다린다고 말한다. 절기 예배도 잘 드리고 성회도 드리고 있지만 너희에게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정의와 공의가 없다. 그러니 주님의 날은 기쁨이 아니라 심판의 날일 것이다. 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25절부터 하나님은 광야생활을 날카롭게 비판하십니다. 너희가 40년동안 나에게 제물을 바친적이 있느냐? 다 신상들에게 바친 것이 아니냐? 그러니 더 이상 봐줄 이유가 없다. 잡혀가게 하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선지자의 말씀은 늘 경고입니다. 대부분 미루어집니다. 그래서 문제가 멀리 있는것처럼 느껴집니다. 경고의 목적은 심판이 아니라 돌이킴입니다. 교통 표지판이 있는 이유는 앞에 이런게 있으니까 주의해서 당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고도 똑같습니다. 이대로 가면 내가 너희를 이렇게 심판할 수밖에 없으니 돌이켜서 방향을 틀어라. 돌이킬 때까지 심판의 메시지는 미뤄집니다. 그래서 듣는 사람들은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아니라 저들에게 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기후정의 주일입니다. 왜 기후 위기가 아니라 정의인가요? 기후위기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원인과 결과가 따로 논다는 것이 문제이다. 원인은 산업화로 발달한 서구사회인데, 그들은 상대적으로 피해를 최소화하고 회복할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약소국들은 자연환경에 크게 영향받는 1차 산업이 위주인데다 상대적으로 피해를 복구할 힘이 약합니다. 그렇기에 정의가 필요합니다. 원인이 된 주체가 약자를 지원하고 불평등을 해결해야 합니다. 그것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아모스 524은 정의와 공의가 흘러야 한다고 말합니다. 흐르는 물은 한군데 고여있지 않고 구석구석을 채웁니다. 즉 모든 분야에 흘러야 한다는 말입니다. 기후, 사회,정치, 세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 올바른 재판과 바른 관계가 서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기후위기는 예전부터 심각하다 했지만 우리의 피부에 닿지 않았기에 실감하지 못하다가 문제가 느껴지니 그제서야 공감합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국가나 개인의 이익이 연관되면 발걸음을 늦추게 됩니다.

타국의 전쟁을 기회로 무기를 수출해 국가의 부가 늘어나면, 좋게 바라봐야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낮은 자를 돌아봐야 한다고 말하지만 우리 집값이 떨어지게 된다면 멈칫하게 됩니다.

그리고 때로 이 모든 것이 의미가 없이 느껴져서 힘이 빠질 때도 있습니다. 가끔 배달음식을 시켜먹은 후 분리수거를 하겠다고 플라스틱 그릇을 씻고 있다가 내가 이래봤자 분리수거도 안한다는 미국이나 인도사람들 때문에 아무런 소용 없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삶의 모든 부분에 정의와 공의를 위해 뛰쳐나가는 투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람에 따라 하나님께서 조금 더 예민하게 느끼는 부분을 다르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여서 공동체를, 교회를 이룹니다. 서로의 다름을 보고, 서로의 안에 있는 하나님의 다른 모습을 배워갑니다. 다만, 우리가 향하는 방향이 , 우리의 정의가 때로 고여있는 것이 아닌가 돌아보자는 이야기이다.

 

오늘 말씀 22절에서 화목제물도 받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번제와 소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평소에 바치는 제물입니다. 화목제는 특이하게 제사장과 레위인뿐 아니라 제물을 바치는 사람도 고기를 가져가는 제물입니다. 화목제는 싸우고 난 사람과 그 고기를 나눠먹어야 할 의무가 있는 제물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당시에도 자기들 끼리는 잘 지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너희끼리만 하하호호하고 있고 너희의 피부에 닿지 않는 가난한 자들은 짓밟히고 있다. 그러니 하나님은 그런 제물을 받지 않으신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면서 주의해야 할 것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정죄하는 것이다. 하나님 뜻이 이것이 확실한데, 저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저들은 왜 아닌가?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하지만 내 안에서는 이미 정죄를 끝났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약자와 가난한 자뿐만 아니라 부자와 강한 자에게도 열려있습니다. 그렇기에 레위기에서 재판을 이야기할 때 세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여 편들어서는 안 된다할 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이라고 하여 두둔하지 말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은 우리의 생각과 이해를 뛰어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모스 선지자는 정의와 공의를 흘러야 한다고 표현했습니다. 어느 한곳에 모인 것이, 고인 것이 아니라 모든 부분, 구석구석을 채워서 흘러야 한다고 말입니다. 정의는 흘러야 합니다. 그리되지 않으면 주님의 날은 통곡의 날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979개(4/49페이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2016년9월4일) 사진 첨부파일 관리자 14488 2016.09.09 08:30
공지 나는 주의 사람이니(가야금, 대금 동영상) 첨부파일 하늘기차 25855 2007.10.16 12:24
공지 망대에 오르라(창립40주년 기념 예배 설교,유경재 목사) 고기교회 26215 2006.05.31 22:16
공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하늘기차 24808 2005.09.02 16:30
915 아브라함의 신앙과 성숙해지는 신앙 (평신도 강단: 장기혁 집사, 27일 첨부파일 김현식 465 2022.11.28 16:56
914 라오디게아교회의 현상(대강절첫째주, 2022년11월27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93 2022.11.27 13:31
913 하나님 나라:영적 샘파기(창조절12주일, 2022년11월20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521 2022.11.20 14:03
912 하나님 기도를 찿아 볼 수 있나?(창조절11주일, 2022년11월13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630 2022.11.13 11:06
911 마실 수 있겠느냐?(평신도강단교류,2022년11월6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바람 420 2022.11.07 11:09
910 우리의 개혁(창조절 아홉째주일, 2022년10월30일) 사진 첨부파일 김현식 475 2022.10.30 17:02
909 우리서로같이감사(추수감사주일, 2022년10월23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17 2022.10.23 16:07
908 나를 더 사랑하느냐?(창조절일곱번쨰주일, 2022년10월16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11 2022.10.16 10:02
907 교회의 일꾼(창조절여섯번째주일, 2022년10월 9일) 사진 첨부파일 stephensh 323 2022.10.09 16:34
906 참 소망은 상속이다(세계성만찬주일, 2022년10월2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52 2022.10.02 10:49
905 아무것도 아닌 것의 하나님(창조절네번째주일,2022년9월25일) 사진 첨부파일 만지다 357 2022.09.26 16:00
>> 강물처럼 흐르는 정의(창조절세번째주일,2022년9월18일) 사진 첨부파일 김현식 320 2022.09.19 17:06
903 좁쌀 • 하나(창조절두번째주일,2022년9월11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34 2022.09.09 16:59
902 내가 택한 내 그릇(창조절첫번째주일,2022년9월4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08 2022.09.04 13:39
901 내가 하나님을 만나는 방식(8월 28일 저녁예배 평신도 강단: 심현모 성 사진 첨부파일 만지다 483 2022.08.29 20:13
900 그리스도 안에 넘치는 은혜(성령강림후열두번째주일,2022년8월28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00 2022.08.28 10:21
899 그리고 그 분이 부르셨다(성령강림후열한번째주일,2022년8월21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52 2022.08.21 10:46
898 한 달란트(성령강림후열번째주일,2022년8월14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95 2022.08.14 11:00
897 두 렙돈 같은 헌금(성령강림후아홉번째주일,2022년8월7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427 2022.08.07 11:05
896 모여서 지키며 가르쳐 나누는 교회(성령강림후여덟번째주일,2022년7월31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19 2022.07.31 1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