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View Article

내가 택한 내 그릇(창조절첫번째주일,2022년9월4일)

하늘기차 | 2022.09.04 13:39 | 조회 308
 

                               내가 택한 내 그릇

성령강림후열세번째주일                                                                                                 9:1-20;3:7-9

 교우여러분은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나요? 어떻게 예수가 나의 주인이요, 나의 구원자이심을 고백하게 되었나요? 하나님은 각 사람에 따라, 각 처에서, 적절한 때에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거스를 수 없는 압도적인 은혜. 은혜는 압도적입니다. 무력으로, 힘으로가 아니라 영적 감동으로 우리에게 찿아와 니를 무장해제시킵니다. 그런데 거북하거나, 억압이 아니라 이 전에 없던 평화가 찿아옵니다. 구원의 신비입니다. 그래서 나를 있게 한 모든 것에서 자연스럽게 돌아서게 합니다. 오늘 말씀에 사도 바울은 로마 황제가 아니라 예수를 주로 믿는 사람들을 체포하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의외의 장소에서 의외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땀을 식히는 시원한 바람을 받으며 헬몬산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다메섹으로 가는 중에 갑자기 하늘에서 환한 빛이 사울을 둘러 비추었습니다. 사울이 벼르던 다메섹의 예수쟁이들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믿고 따르는 부활하신 예수가 나타난 것입니다. 도를 따른다고 기록한 것을 보면 아직 종교의 틀을 미쳐 갖추지 못한, 소박한, 실생활적인, 가족공동체로 모이는, 예수님이 말씀하셨듯이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말씀한 것처럼 예수가 걸었던 길을 따르는 사람들을 체포하러 가던 길이었습니다.

 1절에 살기를 띠고 있었다는 것을 보면 당시 기독교의 전파가 유대교를 적지 않게 위협할 정도로 신속하게 퍼져나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예수를 신이라 고백하는 이단이 빠르게 전파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열성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당시 다메섹은 동서 교통의 요지요. 동서문물이 교차되고 만나는 곳이어서 복음이 퍼져나가기에는 매우 적절한 곳이었을 것이고, 유대교 입장에서는 다메섹은 매우 위험한 기독교의 도가 확산되기에 아주 용이한 진원지가 될 소지가 다분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다메섹 까지는 224Km정도이니 걸어서는 꼬박 1주일 이상 걸리는 거리엿을텐데, 다메섹으로가려면 헤르몬 산을 넘어야하는, 그리고 그 정상을 넘어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다메섹은 하얀 건물들로 넘쳐 나는 활력이 넘치는 도시였습니다,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렀다는 것을 보면, 다메섹의 아름다운 거리가 눈에 들어오며 헬몬의 내리막길을 땀을 식히며 걸음을 제촉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환한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습니다. 이 빛을 환상이나, 허상으로, 또는 바울의 불안한 심리상태를 나타낸다고 합리적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고, 당연히 초자연적인 실재적 상황인데, 중요한 것은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지금 체포 구속하려는 사람들이 따르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이 주님, 누구십니까?”라고 묻습니다. 여기서 !”라고 합니다. 글자그대로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사울이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이 전에 율법과 성전에서 만난 하나님과 전혀 다른 하나님입니다. 이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요? 모세가 타지않는 가시 떨기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난 것 같습니다. 이 놀라움, 충격은 너무 크고, 생생해서 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로마의 천부장 앞에서, 그리고 아그립바 왕 앞에서 반복하여 자신이 외 유대교에서 전환하여 부활한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지에대해 말할 때 거듭 증언을 할 정도로 그 충격은 지울 수 없는 체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울에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하며 교회와 동일시 합니다. 우리의 아픔은 주님의 아픔이며, 우리의 기쁨은 주님의 기쁨입니다. “일어나서, 성 안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할 일을 일러 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지금까지 사울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 자기가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기 뜻을 따라 행동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무엇을 해야할지를 들어야 합니다. 기독인이란 자기가 하기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을 멈추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하는 것을 하기 시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환한 빛에 사울은 앞으로 고꾸라졌다가 일어났는데, 고꾸라졌다는 것은 그동안 자신을 지지하고 바쳐주었던 모든 생의 기초가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또 눈은 떴으나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습니다. 이것은 그동안 사울의 삶이 눈 뜬 장님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울법의 체계로 세상을 바라보던 시선으로는 앞으로 다가 올 복음의 세상을 전혀 볼 수 없으며, 사울이 가야할 길로는 그동안의 삶의 모습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습니다. 사울은 예수의 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체포하러 갔다가, 역으로 사울이 예수에게 포로가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경험에대해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등 서신의 곳곳에서 증언을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그동안 나에게 이로웠던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누구 때문인가요?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최소한 기독인이라고 한다면 이런 일 한 가지 정도는 회고되지 않을까요? 예수 믿고, 웅켜잡았던 것 내려놓은 것 있나요? 없나요? 아직도 부등켜 안고 있나요? 무거워서 천국여행 할 수 있겠나요?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여,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오히려 오물로 여겼다고 합니다. 왜그럴까요? 전환!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 같은 전환. 전 존재의 밑 바탕으로부터 흔들리는 전환. 차곡 차곡 쌓아 온 모든 것들이 무너지는 전환. 사울은 율법으로부터 생기는 나 스스로의 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으로부터 인정 받는 의를 얻고자 합니다.

 다마스쿠스에는 아나니아라는 제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름의 뜻이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입니다. 하나님은 아나니아를 환상 가운데 부르셨습니다. ‘곧은 길이라는 거리의 유다의 집에 가서 사울이라는 다소 사람을 찿으라고 말씀합니다. 그러자 아나니아는 사울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우리 성도들에게 해를 끼쳤는지를 익히 들어 알고 있고, 대제사장으로부터 체포영장을 받아서 다마스쿠스에 와 있다고 하자, 주님은 가라!”하십니다. 아나니아는 당연히 의심스러운 눈길로 정말 하기 싫은 마지 못해 할 수 밖에 없는 발걸음으로 사울을 찿아갈 법 한데, 17절을 보면 형제 사울이여!”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최고의 환대인가요.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신앙의 모습입니다. 아나니아는 주님의 가라는 말씀에 호리도 주저함이 없이 사울에게 찿아가 머리에손을 얹고 기도하여 시력을 회복시키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하였습니다.

 사울 역시 다메섹에서 며칠을 제자들과 함께 지낸 후에 회당에 들어가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선포합니다. 사울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모두들 숨어서 비밀리에 복음을 듣고 전하였는데, 사울은 공개적으로 예수가 그리스도인 것을 전합니다. 그것도 유대인들의 성지인 회당에서 말입니다. 이 무모할정도의 대담함은 성령의 감동, 복음에 눈을 뜬 부활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습입니다. 이 사실은 곧 바로 유대인들에게 알려졌고, 사울을 죽이려고 모의가 이루어졌고, 밤새 성문을 지키고 있어 성도들이 밤에 성 밖으로 광주리에 담아 내보냅니다.

 주님은 인류를 위한 복음화의 초석을 놓고계십니다. 그 초석을 다소의 사울과 다마스커스의 아나니아를 통해 세우려고 하십니다. 주님은 아나니아에게 내 이름을 이방 사람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자손들 앞에 가지고 갈 내가 택한 내 그릇이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실 때에 하나님의 사람 하나를 부르십니다. 곳 곳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 일꾼을 감추어 두십니다. 하나님은 하나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택한 내 그릇이라 합니다. 무엇을 담아도 소담하게 담을 그릇입니다. 그러나 찌그러지거나, 안에 무엇이 가득 차 있거나, 깨끗하지 않거나 하면 주인은 그릇에 담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릇은 담기 위한 것인데 이미 가득 차 있으니 하나님이 어떻게 은혜를 소담하게 담으시겠습니까? 오염되어있는 그릇에 어떻게 담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이 사용할 그릇을 택할 때에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논의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내적 감동으로 찿아오십니다. 말로하지 않으십니다. 일어나, 가라! 명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에 압도당한적이 있나요? 저는 저의 신앙여정에 그렇게 몇 번 압도당한 경험이 있습니다. 전환점의 고비 때 마다 하나님은 영적 감동으로 나를 불러 가라! 하셨습니다. 대학에 진학할 때, 신학을 하기로 마음을 정할 때, 그리고 고기 교회에 부임할 때 그렇게 압도적인 주님의 부르심의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부르심에는 평화가 반드시 따라옵니다.

 삶의 여정에서, 신앙의 여정에서 무엇인가 선택해야할 경우, 그 때 스스로 다 알고, 경험하고, 계획되어지는 방향으로가는 것은 그것은 100이면 100 그것은 자기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생각하지 못한, 전혀 다른 방향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내 계획에 없는 방향에서 나를 인도하시는데, 일어나! 가라가 맞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택한 그릇을 주님이 사용하시기 위해서는 주님의 방법으로 부르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시고, 그리고 돕는 사람을 붙여주시고, 체워주십니다. 여기서 내 의견 개진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냥 압도적입니다. 근데 중압감을 느끼거나 거북한게 아니라 평화입니다. 구원의 신비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우리는 마5:37에서 주님이 말씀하셨듯이 예면 예고 아니면 아닙니다. 신앙의 여정에서 까지 계획하고, 논의 구조를 만들고 머리싸메고 하지 말고 깊은 기도중에 주님 안에 머물러 주님의 선택한 그릇에 주님이 체우시는 그 감동이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979개(4/49페이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2016년9월4일) 사진 첨부파일 관리자 14490 2016.09.09 08:30
공지 나는 주의 사람이니(가야금, 대금 동영상) 첨부파일 하늘기차 25859 2007.10.16 12:24
공지 망대에 오르라(창립40주년 기념 예배 설교,유경재 목사) 고기교회 26218 2006.05.31 22:16
공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하늘기차 24809 2005.09.02 16:30
915 아브라함의 신앙과 성숙해지는 신앙 (평신도 강단: 장기혁 집사, 27일 첨부파일 김현식 466 2022.11.28 16:56
914 라오디게아교회의 현상(대강절첫째주, 2022년11월27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93 2022.11.27 13:31
913 하나님 나라:영적 샘파기(창조절12주일, 2022년11월20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521 2022.11.20 14:03
912 하나님 기도를 찿아 볼 수 있나?(창조절11주일, 2022년11월13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631 2022.11.13 11:06
911 마실 수 있겠느냐?(평신도강단교류,2022년11월6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바람 421 2022.11.07 11:09
910 우리의 개혁(창조절 아홉째주일, 2022년10월30일) 사진 첨부파일 김현식 475 2022.10.30 17:02
909 우리서로같이감사(추수감사주일, 2022년10월23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18 2022.10.23 16:07
908 나를 더 사랑하느냐?(창조절일곱번쨰주일, 2022년10월16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12 2022.10.16 10:02
907 교회의 일꾼(창조절여섯번째주일, 2022년10월 9일) 사진 첨부파일 stephensh 324 2022.10.09 16:34
906 참 소망은 상속이다(세계성만찬주일, 2022년10월2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53 2022.10.02 10:49
905 아무것도 아닌 것의 하나님(창조절네번째주일,2022년9월25일) 사진 첨부파일 만지다 357 2022.09.26 16:00
904 강물처럼 흐르는 정의(창조절세번째주일,2022년9월18일) 사진 첨부파일 김현식 321 2022.09.19 17:06
903 좁쌀 • 하나(창조절두번째주일,2022년9월11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35 2022.09.09 16:59
>> 내가 택한 내 그릇(창조절첫번째주일,2022년9월4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09 2022.09.04 13:39
901 내가 하나님을 만나는 방식(8월 28일 저녁예배 평신도 강단: 심현모 성 사진 첨부파일 만지다 483 2022.08.29 20:13
900 그리스도 안에 넘치는 은혜(성령강림후열두번째주일,2022년8월28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01 2022.08.28 10:21
899 그리고 그 분이 부르셨다(성령강림후열한번째주일,2022년8월21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52 2022.08.21 10:46
898 한 달란트(성령강림후열번째주일,2022년8월14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96 2022.08.14 11:00
897 두 렙돈 같은 헌금(성령강림후아홉번째주일,2022년8월7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428 2022.08.07 11:05
896 모여서 지키며 가르쳐 나누는 교회(성령강림후여덟번째주일,2022년7월31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19 2022.07.31 1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