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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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란트(성령강림후열번째주일,2022년8월14일)

하늘기차 | 2022.08.14 11:00 | 조회 295

                                        한 달란트

성령강림후열번째주일                                                                                                      마25:14-30

    눅 19장에서는 오늘 본문 말씀이 어떤 사람이 아니라 어느 귀족이 왕위를 받으러 길을 떠납니다.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의 왕 헤롯이 B.C.4년에 죽자, 이스라엘은 3지역으로 나뉘였고, 그 중 유대 지역의 왕위를 아켈라오가 차지하려고 로마 황제 아우구스도에게 왕권을 승인받기 위해 로마로 떠납니다. 유대인들은 그가 왕이되는 것을 원치 않아 사절을 보내지만 아켈라오는 왕위를 승인받고, 유대의 왕으로 군림하는데, 자신을 반대했던 자들을 무참히 살해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절인 눅1927절은 왕이되는 것을 원하지 않은 원수들을 끌어내어 죽이라는 이야기로 마무리 됩니다. 사람들은 이런 동시대의 역사적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1므나 이야기를 아주 실감나게 들었습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은 조금 차이가 납니다. 예수님은 달란트이야기를 통해 하나님나라에대해 말씀하시는데, 하나님 나라는 우리 인간이 세우는 나라가 아니어서 눈으로 보고, 느끼고, 만지는 나라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는 속하여 있을 뿐이지, 우리의 말이나 지식, 지혜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무엇을 해서 이루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와 있습니다. 믿음의 나라입니다. 믿음으로 볼 수 있는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종말의 나라입니다. 모든 세상의 가치를 0으로 보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진행준인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 따로 세상 따로는 아니지만, 그나마 교회가 하나님 나라에 근접해 있지 않나 싶은데, 교회는 말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종종 말이 빨라, 그러니까 생각이 빠른 것이지요. 개인의 의지가 앞서면 낭패합니다. 자기나라 세우기 싶상입니다. 말 보다는 말씀과 기도와 성령의 감동을 통해 사랑의 띠를 띠우는 관계 속에서 자신을 낮추며, 상대에게 귀를 기울이며 세워져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씨뿌리는 자, 씨앗, , 들꽃, 그물, 포도원 등. . . 자연의 이치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지혜를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능력에 따라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각 기 맡기는데, 1달란트는 노동자의 15년 품삯이라 하니, 돈이 적지 않습니다. 5달란트, 2달란트 맡은 사람은 열심히 장사하여 배나 더 벌었습니다. 주인은 두 사람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겠다고 하며 함께 기쁨을 누리자고 합니다. 그런데 1달란트 맡은 사람이 받은 1달란트를 땅 속에 묻어두었다고 하자 주인이 책망을 합니다. 차라리 돈으로 이자를 받았으면 나았을 것이라고 하며 뺏어서 10달란트 받은 사람에게 주며, 쓸모없는 종이라 하며 바깥에 내 쫓겨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라 합니다.

     1달란트 받은 사람은 자기가 받은 것을 그대로 땅에 묻어 두었을까요? 1달란트 받은 사람은 주인에대해 오해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주인을 무서운 분, 굳은 분으로 생각합니다. 혹 다른 사람들에게는 5달란트, 2달란트를 주는데, 자기는 1달란트 밖에 주지 안아서 마음이 상해 하나님이 불공평한 하나님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닌지? 성도여러분은 우리 하나님에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계시나요? 하나님은 은혜를 한 없이 베푸시는 분이라서 원하는대로, 구하는대로, 찿는대로, 두드리는 대로 베푸십니다. 그런데 내가 준비한 그릇은 간장 종지 만한 것을 들고 하나님 앞에 초라하게 줄서있는 것은 아닌지요. 늘 힘들어하고, 어둡고, 불안하고, 지금 상황을 감당 못하면서도, 여전히 은혜를 받고자 들고 있는 마음의 그릇을 보면 간장 종지 만한 것이거나, 아니면 금이가고 구멍이 뚫려 여기저기 세서 받은 은혜를 다 잃어버리거나, 아니면 1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그대로 묻어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1달란트 받은 사람이 왜 1달란트를 그대로 묻어두었을까요? 하나님에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모릅니다. 은혜가 교회를 통해 넘치고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기도도, 성경공부도, 예배도, 마치 구멍 뚫린 그릇 처럼 은혜가 세어나가는 것이 보입니다. 본인은 보이지 않나 봅니다. 1달란트 받은 사람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모르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도 모릅니다. 주인은 1달란트 받은 사람에게 게으르다고 합니다. 왜 게으를까요? 아이들이 학교에 지각을 합니다. 왜 늦잠을 자고, 이 핑계 저 핑계 되며 주저주저하나요? 학교 가기 싫은 것입니다. 직장이 사랑스러우면, 열심을 냅니다. 그러나 오너와의 관계에서 신뢰가 깨지면 흥이 사라지고 게을러집니다. 그냥 다니는 둥, 마는 둥 합니다. 하나님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마음이 문제입니다. 1달란트 받은 사람은 주인의 마음이 굳다고 생각했을까요? 그래서 두려워 받은 것을 그대로 묻어둡니다. 우리 하나님은 두려운 하나님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롬8:15에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았다고 합니다. 당연히 기쁨의 영이겠지요. 우리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지 알면, 오늘 말씀에서도 적은 것이라 하였듯이, 성도는 작은 은혜 하나라도 더 받으려고,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으니 하나님을 향하여 사모하며, 사슴이 시냇물 찿듯이 갈급해 합니다. 14610,11

       “주님은 힘센 준마를 좋아하지 않으시고, 빨리 달리는 힘센 다리를 가 진 사람도 반기지 아니하신다.

        주님은 오직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과 당신의 한결 같은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을 좋아하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은 우리와 같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세우십니다. 이사야는 주님의 열심이 원하시는 것을 반드시 이루신다고 고백을 합니다. 우리는 보조자입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오늘 말씀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에서처럼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는 것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는 1달란트 받은 사람은 당시의 바리새인, 서기관들로서, 주인으로부터 쓸모없는 종이라 책망을 받았습니다. 1달란트를 맡긴 그대로 땅 속에 묻어두었다가 다시 주인에게 돌려주는데, 이들 서기관들과 바리세인은 조상으로부터 받은 율법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데 그 의무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격언에 율법 둘레에 담을 둘러 쌓으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렇게 내가 받은 것을 가만히 사용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놓아둡니다. 지킨다고 생각하겠지요.

     예전에 피리를 배운적이 있습니다. 3개월 배운 것 같아요. 운지법이라고 하나요, 제대로 피리의 지공에 손가락 대는 법부터 시작하여 간신히 소리도 내고, 그래서 아리랑부터, 몇 곡을 배웠는데, 지금은 제 책장에 피리 만 놓여있고, 언듯 피리를 입에대면 소리도 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배운 것을 사용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니까 결국 없어집니다.

     출애굽을 공부하며 우리 하나님은 움직이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시편 전체 주제인 시1편의 1절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걷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고 합니다. 신앙의 길이 매우 역동적입니다. 그런데 우상은 걷지도, 서지도, 움직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않습니다. 3:7, 8에서 하나님은 나의 백성이 고통받는 것을 똑똑히보았고, ‘억압 때문에 괴로워서 부르짖는 소리를들었고, ‘그래서 나는 그들의 고난을 분명히 안다. 이제 내가 내려가서, ‘이집트 손아귀에서 그들을구하여, 이집트로부터 가나안 따으로 데려가려고 한다. 우리 하나님은 얼마나 역동적이고 생명력이 넘치는 하나님인지 모릅니다. 우상을 만들고 의지하는 사람은 그렇게 우상처럼 됩니다. 생명없는 것을 위해 살면 우리도 생명을 잃게 됩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주여! 주여!하는 사람에게 주님은 우상입니다. 자기 생각과 의지대로 움직인다면 자기가 우상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로 나아갈 때 성막, 회막, 장막은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서, 구름기둥이 성막에서 이동하여 진 밖으로 나아가 갈 방향을 지시하면, 그 때 이스라엘은 움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먼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머물지 않고 계속 이동하며 산다는 것은 지금을 하나님을 따라 영원히 산다는 것, 이 세상의 삶이 일시적이라는 것으로 매 순간 가치있으며, 새로워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백성의 삶이요, 하나님 닮은 영원한 삶의 모습입니다. 매 순간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래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일희일비 하지 않습니다.

     지난 월요일에 DMZ국제평화대행진의 일부 구간에 참여하기 위해 철원 도창리로부터 승일교 까지 12Km를 걸었습니다. 이 번 걷기에 저는 빚진자로서 걷기에 참석하였습니다. 남과 북이 갈라진지 70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서로 오고 가지 못하고 이데올로기로 민족이 나뉘어 있는 세계 유일의 나라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께서 이방인과 유대인사이를 가르는 담을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된 것을 없애셨다고 하며,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해시키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이방과 유대가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되었다고 선언합니다. 우리 역시 남과 북이 한 하나님 안에서 통일되어 서로 오고 가기를 원한지 70년인데, 여전히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한반도, 극동아시아의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우리 자체적으로 통일하고자 하면 반대세력에의해 통일의 기운이 꺽이고, 꺽이고 하는 것이 너무 안타깝고, 속상하며 무기력합니다. 하나님의 부름받은 백성으로서 부끄럽고, 통일을 위해 무엇을 한게 하나도 없습니다. 부끄러울뿐입니다. 걷기대회 소식이 있어, 완주는 못할망정 남북통일의 빚진자의 마음으로 참여하였습니다.

     부름받은 교인은 빚진자로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은 누군가 나 대신 희생하고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생명을 호흡하고 있는 것에대해, 값없이 받은 은혜에대해 감사하며 빚진자로 사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달란트를 묻어두지말고 기꺼이 감사하며 살아가는 우리서로같이 교회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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