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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렙돈 같은 헌금(성령강림후아홉번째주일,2022년8월7일)

하늘기차 | 2022.08.07 11:05 | 조회 427


                             두 렙돈 같은 헌금

성령강림후아홉번째주일                                                                                                      막12:41-44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둘째 날, 성전의 뜰에서는 멀리서 찿아 온 순례객들에게 필요한 물건들, 성전제사에 필요한 향과 물건들, 비둘기 등을 사고 팔며 흥정하며, 또 돈을 바꾸는 일들로 번잡하였을 것입니다. 또 바쁘게 먼지 풀풀 날리며 성전의 이 쪽에서 성전의 저 쪽을 급히 가로질러 가는 모습들, 그야말로 시장바닥이었습니다. 사실 신14:24 이하는 멀리서 오는 사람들을 위해서 성전에서 사고파는 것을 허락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로마의 총독에 의해 임명된 정통성이 없는 대제사장 안나스와 그 가족들이 모든 이권을 가지고 이방인의 뜰에서 이루어지는 상행위를 독점하여 상납과 부당 이득과, 불평등한 검열을 통해 상상을 초월하는 성전의 부를 챙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의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그의 유대 고대사라는 책에서 안나스의 장터라는 말을 쓰고 있을 정도입니다. 대제사장 안나스 가문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밖은 사위 가야바를 위시해서 거의 40여년 동안 예루살렘 성전과 제사를 지배해 왔는데, 그 기간 동안에 스데반 집사, 예수님의 제자인 요한의 형제 야고보,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도 모두 안나스 가문의 대제사장들에게 처형당하였습니다. 또 헤롯은 그 당시 자신의 모호한 정통성을 인정받으려고 로마 황제에게 헌정하기 위해 도시, 항만, 도로 건설등을 통해 백성로부터 노동과 세금을 착취하던 때였습니다. 이 모든 기득권들이 로마의 총독과의 밀접한 관계를 통해 유지되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전 장사치들의 의자를 뒤 엎어 그들의 부정한 행위를 드러내 심판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예수님은 다시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갔는데 어제 있었던 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졌고, 꼬투리를 잡으려고 성전 세금에대해, 율법에대해 예수님에게 계속 질문을 던집니다. 백성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였지만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언제나 고깝게 여겼습니다. 그러던 중에 가난한 과부가 성전에 자기가 가진 재산 전부인 두렙돈을 드리는 것을 본 것입니다. 그동안 종교기득권자들이 성전을 농락하며, 자신을 압박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는데, 이 여인의 드리는 모습에 모든 것이 눈 녹듯 녹아버렸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흘렀을 것입니다.

     13, 무교절절기에 대해, 11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께서 조상들과 약속한 땅을 얻게 되면 처음 나온 모든 것을 주께 바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혹 너희 자손들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하는 가?’ 라고 묻거든, 주님께서 강한 팔로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우리를 이끌어 내실 때, 바로가 고집을 부려, 사람을 막론하고 그 땅의 처음 난 것을 모두 죽이셨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도착을 하면 처음 난 것을 주님께 바쳐 맏 아들을 대속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서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나에게 생명입니다. 이 의미는 지금도 변함없이 계속 이어집니다. 첫째로 헌금은 10개 중에 하나를 드리는 십일조는, 내가 지금 호흡하고, 먹고, 마시고, 일하며 활동하는 모든 것의 대속입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것은 내가 먹어야 하고, 누군가 나를 위해 대신 죽음을 죽는 것입니다. 둘째로 십일조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의 순환입니다. 10개 중에 하나를 드림으로 이런 생명의 순환 속에 내가 죽음이 아니라 생명의 삶을 살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해 왔습니다. 어머니께서 교회에 갈 때면 꼭 헌금을 따로 챙겨서 교회에 보내신 기억이 납니다. 직장에 다니며 첫 월급을 받을 때, 어머니의 말씀대로 온전히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왕상 17, 극심한 가믐으로 모든 것들이 죽어가던 아합 왕 때, 하나님은 선지자 엘리야에게 사르밧으로 가라고 합니다. 성문으로 들어서며 땔감을 줏는 한 여인을 만나 물을 좀 달라 합니다. 내친김에 먹을 것도 좀 달라구 하는데, 이 여인이 자기는 아들과 함께 땔감을 구해 마지막으로 남은 밀가루 한줌과 기름 몇 방울로 음식을 해 먹고 죽으려 한다고 합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천연덕스럽게 먹고 죽겠다는 과부에게 우선 나에게 먼저 가지고 온 다음에 아들과 음식을 해 먹으라고 합니다. 아니 자기에게 주면 끝인데 사르밧 과부가 진짜루 엘리야가 말한 그대로 합니다. 이건 101이 아니라 10 전부입니다. 엘리야도 그렇구, 사르밧 과부도 그렇구, 하나님은 더 그렇습니다. 놀랍게도 과부의 집에 밀가루와 기름이 가믐이 끝날 때 까지 떨어지지 않았고, 죽어가던 아들도 살아납니다. 생명을 내어놓는 이 한 줌 음식은 역사의 현장으로 이어집니다. 사르밧 과부가 준 음식으로 기운을 회복한 엘리야는 아합왕에게 가서 950명의 거짓 우상숭배자들과 싸웁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 과부의 딱한 사정을 알고 계셨겠지만, 이 과부만 죽어가나요? 지금 이스라엘이 모두 가믐으로 죽어가는 근본 이유가 어디에 있나요? 물질우상숭배 이지요? 엘리야는 지금 그 싸움을 싸워야하는데, 다른 이스라엘과 똑같이 먹지를 못해 싸울 에너지가 없는데, 하나님께서 사르밧 과부의 그 헌신을 받아 엘리야를 살려 우상숭배자들과 싸워 이겨, 비가 오게 하여서 가믐을 해소 시키시고, 온 이스라엘을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일하실 때, 하나의 신앙, 하나의 헌신, 하나의 드림을 기억하십니다. 보리떡5개와 물고기 2마리, 더 나아가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드린 아브라함처럼, 값 없이 외아들 주시는 하나님 신앙에까지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신앙은 우리에게 속해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속해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온전히 드릴 때, 그 사람에게서 믿음이 드러납니다

     이 전에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작가 이타루는 모든 물질은 시간이 지나면 부패하는데, 일반가게에서 썩지않게 하려고 인공적으로 배양된 이스트를 넣은 밀가루, 그리고 영향강화제, 색소 등 인공 식품 가공물들을 첨가해서 만든 빵을 판매하는데, 이것은 소비자들의 건강을 헤치며, 또 먹거리를 만드는 사람에에게 있어야 할 기술과 존엄을 빼앗아 버린다고 합니다. 이타루는 모든 피조물들이 시간이 흐르면 자동으로 부패하는데, 자본이야말로 부패하기는 커녕 끊임없이 돈을 확대하며 불려 나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타루는 먹거리를 만드는 노동자의 존엄성과 소비자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자본의 논리와 반대되는 거꾸로 빵만들기를 시작 합니다. 그는 자본이 지배하는 세계의 밖으로 탈출을 시도하여, 어느 조용한 시골의 방앗간을 임대하여 천연의 균들이 만들어내는 기분좋은 빵 만들기를 합니다. 이러한 빵집경제를 이타루는 부패하는 경제라고 부르면서 그 핵심은 발효, 순환, 이윤남기지 않기, 빵과 사람 키우기 라고 합니다. 그 빵집에서는 빵을 30가지 종류를 만든다고 합니다. 이타루의 모습은 101이 아니라 1010이 아닌가요?

     자본이 우리의 삶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것이 어디 빵집 만이 겠습니까? 핵발전소, GMO식품, 기후온난화, 제주도의 구렁비가 어떻게 무지막지하게 파괴되었는지, 사드, 세월호, 살악산 케이블카 등. . .얼마 전 대우조선해양 노동자의 생명을 건 농성 등, 이런 세상의 폭력구조 속에서 창조주 하나님에대한 온전한 자기 고백 없이는 생명의 삶을 산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바침은 생명이신 하나님과의 연결 고리입니다. 그냥 늘 소비적 삶에 지쳐 욕망을 분출하는 일에 매여 살다가, 헌금은, 101은 나를 생명의 사람으로 우뚝 세웁니다. 즉 생명 정의, 생명 평화에 머물러 있게 합니다. 101은 금융자본주의 시대 속에서 나는 자본에 휘들리지 않는다라는 자기 고백입니다. 하나님 만이 자본우상을 극복케 한다는 것이 말로만이 아니라, 자본으로 자본을 거부합니다. 구제하는 연보 하고는 차원이 다릅니다. 종종 교회 헌금은 연보로 족하다 라고도 하는데,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헌금은 생명입니다. 헌금은, 특히 나에게 허락한 10개 중에 하나를 다시 하나님께 드리는 구별된 드림은, 물질 우상의, 도시가 만들어 놓은 욕망의 소비지향적 삶에서 나를 멈추게 할 수 있는, 유일하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명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눈에 보이는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아름답고, 선한 장치입니다. 세상에서는 돈이 돈을 낳지만, 교회에서는 돈이 돈을 낳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낳습니다. 돈의 세속적인 가치가 멈추어버리고, 무력화되며, 생명으로 전환되는 신비입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본가치 시대에 나를 자본에서 탈출시키는 또 다른 장치는 안식일입니다. 십계명 중에 안식일을 지키라는 4번째 계명은 첫 번째 계명과 열 번째 계명을 잇는 중간 역할을 합니다. 첫 번째 계명이 무엇이지요? ‘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그러면 열 번째 계명은 무엇인가요?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제4계명은 하나님과 탐욕 사이에서 어디로 갈 것인가를 보여주는 이정표 같습니다. 여러분 어느 길로 가면 좋을 것 같습니까? 남에 것 탐내지 말라 했으니, 나는 여태 껏 한 번도 남의 것 탐한적 없어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몸담아 살고 있는 신자본주의 체제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수도 없이 남의 것을 탐하며 살게 하고 있습니다. 안식일 지킴의 숨고르기, 지금 여기 거룩한 주일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께 온전히 101을 드리는 십자가와 부활의 예배는 하나님이 우리를 탐욕의 자리에서 건져내어 생명으로 다시 회복시키는 자리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기득권 카르텔과 온몸으로 저항하며 힘겨워할 때, 두렙돈 드리는 여인의 모습을 보고 기뻐하셨습니다. 우리도 과부의 두렙돈 같은 헌금으로 우리서로같이 주님을 미소짓게 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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