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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여서 지키며 가르쳐 나누는 교회(성령강림후여덟번째주일,2022년7월31일)

하늘기차 | 2022.07.31 10:53 | 조회 319


                   모여서 지키며 가르쳐 나누는 교회

성령강림후여덟번째주일                                                                                요6:2,26;2:41-47;16:12

     오늘 요한 복음 말씀 중에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니 2절에 큰 무리가 예수를 따른 것은 예수님이 병자들을 고치신 표징들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26절에는 빵을 먹고 배불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내용상 시간적으로 2절의 사람들과 26절의 사람들이 같은 시간대에 예수님과 함께 움직였던 사람들로 추정이 되는데 예수님은 두 무리를 다르게 보십니다. 예수님의 52어의 나눔은 그동안의 병고치는 기적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기적이었습니다. 실제 4 복음서에 모두 기록된 기적은 52어가 유일할 것입니다. 제자들은 물론이고 예수님을 따르던 모든 사람에게는 놀랍고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기적을 맛 본, 빵에 배부른 사람들이 억지로 왕으로 모시려 하자 피하여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52어의 기적은 병고치는 기적과는 다르게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에게는 사회적, 정치적 의미로 받아들여진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과 달리 갈릴리의 백성들은 굶주림과 핍박, 그리고 수탈에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는데, 한 개인이 기적을 체험한 것과는 달리 5천명이나 되는 남자들이 그리고 늘 굶주려있던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이 기적을 체험하였으니 얼마나 충격적이었을까요? 로마와 종교지도자들, 헤롯 등 압제의 틀을 단 번에 무너뜨리고 우리 모두를 배부르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을 암암리에 공유하지 않았나 십습니다.

     공관복음에서는 기적 사건이 곳곳에 언급되고 있지만, 요한 복음에서는 절제되어 7번 기록되어 있는데, 기적 다음에는 그 기적의 의미, 이 후 변화된 모습, 더 나아가 기존의 종교기득권과의 갈등 까지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적은 자연법칙이 깨어지는 놀라움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그 사건을 통해 죄와 병,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인생의 질곡에서 해방되는 기쁨을 베푸는 은혜, 자비를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이 모두 은혜 아닌 것이 없음을 볼 수 있어야 하는데, 너무 그 구원의 은총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그 많은 체험과 그리고 홍해를 건너는 놀라운, 하나님이 직접 관여하여 400년 노예 생활에서 건져내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은혜를 맛 보았음에도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너 광야로 나가자 마자, 그 은혜 다 잊어버리고 빵이 없다, 고기가 없다, 덥다, 물이 없다 하며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얼마 전에 그 끔찍한 노예의 고통에서 벗어났는데, 어떤 사람들은 고기가마가 생각난다고 하며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선동을 합니다.

     저는 52어의 기적을 이야기할 때 52어의 풍요로운 나눔이 아니라, 52어의 나눔의 풍요라고 합니다. 이 기적은 큰 것을 나누어 가진 것이 아니라, 작은 것, 정말 하찮아 보이는 것을 나누었는데, 남자만 5천명이 먹고 12광주리나 남은 큰 기적이었습니다. 한 어린 아이의 나눔이었습니다. 지역의 대형 할인점에 가면 다양한 상품이 넘쳐납니다. 그러나 돈도 있고, 물건도 풍성하지만 나눔은 없습니다. 그냥..가게는 자본은 없지만 나눔이 있습니다. 그냥..가게는 보잘 것 없지만 마음이 머무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이렇게 늘 하찮아 보이는 것에서 드러납니다. 지금 시대는 전 세계가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한 시장 구조가 되었습니다. 이 자본의 바벨탑은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집이 돌아가면서 빵을 떼며, 순전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이렇게 호감을 샀고,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가진 것을 내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나누니 주님께서는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습니다. 교회는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로 부름받은 사람들의 회입니다. 아브라함이, 노아가, 모세가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 삭개오도 그렇게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다른 회, 모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불러서 모이는 것입니다. 야구나 조기 축구회나 다 모집 광고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국회의원이 되고, 지자체 단체장이되고, 군인이 되고,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것도 다 부름에 응해서 그 회의 회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는 어떤 부름인가요? 무엇이 다른가요? 필립 얀시의 기도라는 책에 어느 한 여자가 어머니에의해 4살 되던 해에 사창가에 팔아 넘겨집니다.기가막힙니다. 다른 아이들이 학교에 갈 때 몸을 팔아야했고, 평생 자신이 추하고 더럽다는 생각에 일찌감치 술과 마약에 의존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었었습니다. 10대 때에 벌써 두 아이를 낳았지만 어머니가 너는 아이를 키울 자격이 없다고 하여 아이를 뺏어 갔고, 그래서 악착같이 돈을 벌어 아이들에게 보내 그나마 아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시키는 대로 따르지 않는다고 야구방망이로 내려치는 바람에 머리뼈가 깨지는 중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하면서 몇 번이나 자살을 기도했지만 다시 살아나게 되면서, 마침내 이 여자는 침대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몸을 파는 일을 그만하고 아이들의 엄마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라합 재단을 찿아가라!’는 글자를 외국어 같기도 한데, 어렴풋이 보아서, 라합이 누구인지 몰라, 병원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전화 번호를 알아 그리로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고 합니다. ‘하나님, 정말 살아계시면 누군가 전화를 받게 해 주세요그런데 그 전화를 마를리아나라는 여성이 받았다고 합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바로 라합 재단의 대표였다고 합니다. 사실 그 날은 쉬는 날이었는데, 서류를 가지러 잠간 들렀다가 전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도와주세요’, 이 것 저 것 가릴 처지가 못되어 죽어가고 있다고 하자, 전화를 받은 여자분이 주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절대 혼자 버려두지 않으시고, 그 사창가에서 탈출해서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하는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찿아 와, 집에 데리고 가서 자기를 꼭 껴안으며 여기는 안전하다고 하면서 라합은 성경에 나오는 기생이며 이스라엘의 영웅인 다윗의 조상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려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그렇게 구원을 받고 아이의 엄마가 되기 위해 새로운 직업을 구하게 되었고, 엄마가 되는 법을 배우며 라합 재단의 시설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가 부름 받은 은혜도 이 여인이 구원 받은 것과 똑 같은 감격의 은혜가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이스라엘이 400년 참혹한 노예 생활에서 장자의 죽음을 통해 생명을 얻은 은혜와도 이어져 있습니다.

     스탈린 시대의 한 의사가 스탈린을 모독했다는 죄로 강제수용소에 갖힙니다. 그의 역할은 죄수들이 병원에서 죽지않고 일터에서 죽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웬만하면 모두 건강하다는 판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치료는 기계적이고, 형식적일 수 밖에 없었고, 점차 의사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갈등으로 힘들어하며, 스스로 무너지는 것을 느끼고 있을 때, 한 동료 죄수에게 전도를 받았습니다. 그는 절망의 바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 죄를 고백하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놀라웠던 것은 그 수용소 안에 지하교회 공동체가 있어 그 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자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그 기도가 응답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날부터 자신이 복음의 빚진 자임을 깨닫고 환자들을 정성을 다해 치료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수인들을 몹시도 괴롭히던 간수 하나가 의무실에 왔는데 순간적으로 그는 약물주사로 그를 죽일까 하는 유혹을 받지만 이내 기도한 후 마음을 돌이키고 그를 살립니다. 그는 당국으로부터 거듭 의료품을 낭비하지 말라, 환자들에 친절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습니다. 만일 다시 한번 죽을 사람을 살리면 당신이 죽을 것이라는 통고를 받습니다. 한 번은 장암에 걸린 남자를 만나 그를 치료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또 한번 수용소의 경고를 무시하고 그를 살립니다. 그의 소생이 확실해진 어느날 치료받던 환자가 이렇게 하면 당신의 생명이 위험한데 왜 이런일을 하느냐고 묻자 의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괜찮아요. 당신과 나를 살리기 위해 이미 죽으신 분이 있으니까요”, “그가 누구냐고 묻는 환자의 귀에 그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속삭입니다. 이 의사는 이 사람을 살린 것이 알려지면서 공개 처형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던 그 순간 그에게 살림을 받은 환자는 의사가 전해준 복음의 소식을 상기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도를 드리면서 흐느끼며 고백합니다. “이제는 내 차례입니다. 이제는 내가 그 사랑을 그 생명을 전하겠습니다.” 그의 이름은 알렉산더 솔제니친(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이었습니다.

     몇 일 전 오전에 CBS음악방송의 아나운서가 첫 시작 멘트를 선물로 받은 하루를 음악으로 시작한다고 하는 것에 신선함을 느꼈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건강이, 가정이, 직장이 모두 하나님에게 선물로 거져 받은 것이 아닌가? 너무 쉽게 잊고 사는 것 아닌가? 이에 상응하는 언행이 보여져야 하는데 어떤가요?

     어느 교회에 한 청년이 있었는데, 잘 나오든 교회를 등한시 하였습니다. 예배도 딱히와 닿는 것도 없고, 그래서 이 핑계, 저 핑계로 모임에 잘 빠졌습니다. 어느 해 겨울 저녁, 목사님은 그 청년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두 사람은 벽난로 앞에 앉아 많은 대화를 나누었으나 교회 출석 문제를 화제에 올리는 것은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었습니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 목사님이 벽난로 속에 타고 있던 석탄 덩어리 하나를 꺼내어 난로 밖에 따로 내어 놓았습니다. 그러자 그 석탄은 이내 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벽난로 속에 있는 석탄들은 여전히 붉은 빛을 내며 활활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청년은 그제야 깨닫고 "목사님, 이번주일 부터 교회에 잘 나가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꺼내놓은 석탄은 금새 꺼지지만 난로 속에 있는 석탄은 난로라는 보호막과 주위의 불씨들로 인해 계속해서 타오를 수 있습니다. 교회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면 아무리 좋은 신앙인이라 할 지라도 꺼내 놓은 석탄이 되기 쉽습니다. 우리서로같이 받은 은혜 지켜 가르치며 나누는 교회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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