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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받음 : 믿음에대한 소문의 시작( 성령강림후제15주일, 2018년 9월 2일)

하늘기차 | 2018.09.02 10:28 | 조회 1088



            본받음 : 믿음에대한 소문의 시작    

201892(성령강림후제15주일)                                                                     살전1:1-10

     데살로니가는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소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방향전환하여 빌립보에 이어 두 번째로 향한 도시입니다. 데살로니가에서는 유대인들이 불량배들을 동원하여 바울을 습격하고, 관할시청에 까지 찿아가 바울일행에대해 다른 왕을 섬기며, 가이사의 명령을 거역하였다는 거짓 고발로 체포되었지만, 바울일행을 숨겨주었던 야손이 보석금을 내고 꺼내주어, 그 날 저녁 바로 베뢰아로 향하는데,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이 그 곳에 까지 쫓아 와서 소란을 피움으로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를 베뢰아에 머물게 하고, 아데네로 쫓겨갑니다. 그러니까 데살로니가에는 겨우 3주 정도 밖에 머물지 못한 것입니다. 아테네에 있는 동안 바울은 여러번 데살로니가로 가려고 하였지만 여의치 않아, 베뢰아에 머물고 있던 디모데를 매우 힘든 상황에 처해있는 데살로니가로 보냅니다. 어찌 보면 낳은지 얼마 안된 자식과 생 이별을 한 것과 같고, 그래서 가려고 했지만 가지 못한 안타까움 속에 고린도 까지 내려와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교회가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든든히 세워져 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으니 얼마나 기뻐했을까 상상을 해 봅니다. 살전3:7, 8에서 사도 바울은 너희 믿음으로 우리가 위로를 받았을 뿐만아니라, 너희가 주 안에서 굳게 서 있다고 하니 이제 우리는 살았다고 할 정도입니다. 데살로니가교회를 향한 연민이 뚝뚝 떨어집니다. 2:8에서

                      “. . . 여러분을 사모하여,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나누어 줄

                       뿐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도 기쁘게 내줄 생각이었 . . .”다고

합니다. 허튼 소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러한 연민, 사랑의 행위의 동기, 실마리는 어디에서부터 일까요? 1:6절입니다.

                        “여러분은 많은 환난을 당하면서도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말씀

                         을 받아들여서, 우리와 주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 목숨까지도 기쁘게 내줄 생각이었다고 한 애뜻함은 바로 말씀을 향한 성도들의 간절한 모습을 바울이 본 것입니다. 보통 말씀을 듣고 은혜받았습니다라고 하지만 본을 받는 단계 까지 나아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는 말씀을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받았을 뿐 아니라, 주님과 전하여준 사람들의 신앙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4절에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형제자매 여러분이라고 부르며,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택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으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이 사랑을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다 보여주셨습니다. 혹자는 누구는 택하고, 누구는 택하지 않는 하나님이 불공평하다고 하는데, 하나님이 택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나요? 근데 자기가 이미 택함을 받은 줄도 모르고, 받았어도 그로부터 오는 세상과 다른 십자가의 사랑을 외면하고는 세상의 것, 자기 좋아하는 것 쫓으며, 자기 일 하며 일희일비합니다. 성도여러분! 택함받음의 사랑을 느끼고 맛보며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이 번 아시안 축구의 스타는 단연 황의조 선수입니다. 김학범 감독이 무명의 황의조를 전형적인 타겟 맨으로 선택하여 세웠습니다. 자기 사람 심었다는, 검증되지 않았다는 많은 비난을 뒤로 하고 황의조 선수는 김학범 감독이 자기를 택하여준 은혜를 실력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렇게 선택받음을 누려야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를 칭찬하는 사랑의 수고, 믿음의 행위, 소망의 인내는 하나님의 택하심, 그리고 그 택함의 사랑에서 온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데살로니가 교회가 당하는 환난 역시 하나님의 택하심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이렇게 택함 받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성도들, 특히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주신 은혜는 6절 말씀처럼 말씀을 기쁨으로 받는 은혜였습니다. 그런데 이 기쁨이 어디서부터 오는가 하면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이 어디서부터 올까요? 5절 말씀에

                    “우리는 여러분에게 복음을 말로만 전한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

                     과 큰 확신으로 전하였다고 합니다. 그렇구나! 이제 알겠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능력과 성령과 확신으로 전하고, 받는 사람들이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받은것입니다. 말씀은 어딘가, 누구에의해서 전해지는데, 말씀이 말씀되게 하는 것은 바로 성령께서 전하고 받을 때 감동을 주셔서 말씀이 말씀되게 합니다.

     복음을 능력으로 전했다고 합니다. 능력이라 했습니다. 이 능력은 말씀의 능력입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 역시 말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입니다. 여러분 말씀은 그 자체로 능력입니다. 말씀은 살아있습니다. ‘너희는 소금과 빛이다라는 말씀을 어두움이 창궐하는 세상에서 말씀으로 받으면, 내 안에서, 교회 안에서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하면 권력과 물질이 우선하는 세상 속에 가난을 축복하는 말씀을 말씀으로 받는 사람에게 말씀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55:8 이하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에대해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다고 하면서 10절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 땅을 적셔서 싹이 돋아 열매를 맺게 하고, 씨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사람에게 먹거리를 주고 나서야, 그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11절 나의 입에서 나가는 말도,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고 나서야, 내가 하라고 보낸 일을 성취하고 나서야, 나에게로 돌아올 것이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골수와 관절을 찔러 쪼개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이 말씀을 그렇게 받았습니다. 2:13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하는 것은, 여러분이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때에,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실 제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 의 말씀은 또한, 신도 여러분 가운데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고 합니다.

     확신을 가지고 전했다고 합니다. 저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확신합니다. 지난 달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를 베드로와 요한이 일으키는 사건에대한 말씀을 준비하며, 사람들이 일어난 것을 기이히 여기며, 52어로 5천명을 먹인 것을 놀라와 하지만, 더 중요한 그 징표, 그 기적의 의미에대해서는 무관심하다고 하면서, 저는 그 기적을 일으키는 하나님의 선하심에대해 집중하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빵을, 생선을 달라하는데,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에 좋은 것을 주신다고 하였고, 그 좋은 것 주시는 하나님과 예수님은 하나이며, 그렇게 너희도 나처럼 하나님에게 속하여 머물러 있으면 하나님의 선하심이 우리 안에 넘쳐날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들의 연약함과 유한함과 부족함으로 인하여 자격지심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지 못하고 질투한다고 하였습니다. 죄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인류 문명이 하나님의 선함을 내치고 자기 좋은 것을 쫓은 것이 오늘 이 세상의 모습이며, 우리 역시 하나님의 선함 보다는 자격지심에서 비롯된 자기 좋은 것, 자기 뜻을 합리화 하여 하나님 안에 머물기 보다는 하나님 주변을 서성이며, 마치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에 머물지 못하고 장사치들이 머무는 이방인의 뜰을 기웃거리는 형국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이 선하심을 믿으라, 믿음대로 된다고 아주 단순 명료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단연코 말씀 드리건데 하나님의 선함을 확신합니다.

     그런데 6절에서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것에대해서는 감동으로 다가오는데, 저는 우리와 주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씀이 걸립니다. 말씀을 들은 사람이 말씀을 전한 당사자들과 주님을 본받았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저의 입장에서는 가장 부담이 되는 말씀입니다. 본받으라는 말씀을 어떻게 받을까요? 받지 못하면 말씀은 내 안에서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자꾸 윤리와 도덕으로 바라봅니다. 저도 그렇고 우리 모두는 유교적인 관습에 매입니다. 그런데 본 받으라는 말은 윤리가 아닙니다. 생명의 말씀이며, 믿음에대한, 성령에대한 것입니다. 그러니 성도여러분! 주님과 고기교회를 본 받으시기 바랍니다. 고기교회에대한 신뢰를 가지십시오. 고기교회를 사랑의 띠로 자라게 합시다. 그렇게 서로서로 본이 되기 바랍니다. 시시콜콜하게 자기 좋은 것에 매이지말고 벗어나기 바랍니다. 주님 안에서 자유하시기 바랍니다. 자유는 주님 안에서, 주님에 속해야 자유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짜입니다. 여러분 저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선함에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저는 성령을 힘입어 담대하게 말합니다. 저의 이 확실한 믿음을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선하심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할 것입니다. 이 확신은 말씀과 성령을 통해 저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그래서 6절로 다시 돌아가면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여서, 우리와 주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7절에서는 모범이 되었다고 합니다. 근데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8절에서는 주님의 말씀이 여러분으로부터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만 울려 퍼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의 믿음에 대한 소문이 각처에 두루 퍼졌다고 합니다. 이 소문의 처음은 본받음에서 부터였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과 주님을 본받은 것입니다. 이러한 데살로니가교회에대해 사도 바울은 9절에서 1)바울 일행을 어떻게 환대했는지 2)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으며, 3)살아계시며, 참되신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는지, 그리고 4)주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기다림에대해 무어라고 하나요? 데살로니가교회 사람들이 아니라, 데살로니가교회와 만나고, 접하고, 나눈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이 내용이 전하여진 것입니다.

     오늘 한국교회, 그리고 성도들, 아니 한국사회, 아니 전세계가 자본이라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모양세입니다. 내릴 수도 없고, 마냥 실려갈 수도 없고, 그런데 호랑이 등에 올라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우리가 비록 자본이라는 거칠고 사나운 무지막지한 이빨 날카로운 호랑이 등에 올라 탓지만,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다시 말해 하나님의 영적 확신, 영적 감동으로 그 날뛰는 호랑이의 행동거지를 살펴 따라잡으면 자본이라는 멋진 스테이크를 나누어 먹지 않겠나 싶습니다. 믿음으로 이 호랑이를 잘 다스리며 세상의 빛으로 소금이기를, 택함에서 오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며 즐거워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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