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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끊는 하나님(부활절일곱째주일, 2018년5월13일)

mungge | 2018.05.15 17:01 | 조회 1607



본문: 이사야 546~10

제목: 애끊는 하나님

 

지난 3개월동안 구약의 예언자들을 공부하였습니다. 예언자의 전형을 보여준 모세부터 시작해서 문서이전의 예언자 엘리야, 엘리사를 만났습니다. 성서에 문서를 남긴 예언자들은 시기별로 나누어서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기 직전 주전 8세기말에 활동했던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미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고대근동지역에서 앗시리아와 이집트를 물리치고 패권을 차지한 바벨론 제국 앞에서 풍전등화 처럼 떨고 있는 7세기말의 남유다 왕국에서 활동한 하박국과 예레미야를 만났죠. 남유다가 망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포로기 시대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새출애굽의 희망을 전해준 에스겔, 2이사야를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제국으로 등장한 페르시아가 바벨론 제국을 멸망시키고 포로로 잡혀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귀환시키고, 2성전을 세우는 주전6세기말, 5세기에 활동했던 제3이사야, 학개, 스가랴를 보았습니다.

전체 성경 안에서 20%가량의 분량을 차지하는 예언서는 모세5경만큼이나 구약성서 안에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예언서를 통해 이 땅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놓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순종과 이기심에 가득 찬 인간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고 하나님을 등질 때에 가슴 아파하시며 예언자들을 통해 심판과 구원의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모습을 각 시대의 예언자들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예언서를 통해 본 하나님은 자신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포기하지 않은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르게 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불경한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이 인간에게 너무 쩔쩔맵니다.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그 절대 권력의 반지를 잠시 떨어트리고 잃어버린 것 마냥 인간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듯 엉거주춤한 모습입니다. 예언자를 통해 선포되었던 불호령 같은 심판의 말씀이 어느 순간 슬그머니 없던 말처럼 딴청을 피우시니 말입니다.

예언서에 나오는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과 구원의 말씀 사이에서 특별한 인과 관계를 발견할 수 없어서 더욱 그렇게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고 돌아섰다는 본문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15:6)‘네가 바로 나를 버린 자다. 나 주의 말이다. 너는 늘 나에게 등을 돌리고 떠나갔다. 나는 이제 너를 불쌍히 여기기에도 지쳤다. 너를 멸망시키려고 내가 손을 들었다’ (32:37)‘똑똑히 들어라. 내가 분노와 노여움과 울화 때문에 그들을 여러 나라로 내쫓아 버렸다. 그러나 이제 내가 그들을 이 모든 나라에서 모아다가, 이곳으로 데려와서 안전하게 살게 하겠다.’ 위 두 말씀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스가랴8:13~15을 함께 읽겠습니다.

13. 유다 집과 이스라엘 집은 들어라. 이전에는 너희가 모든 민족에게서 저주받는 사람의 표본이었다. 그러나 이제 내가 너희를 구원할 것이니, 너희는 복 받는 사람의 표본이 될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힘을 내어라! 14.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너희 조상들이 나를 노하게 하였을 때에, 나는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작정하고, 또 그 뜻을 돌이키지도 않았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15. 그러나 이제는, 내가 다시 예루살렘과 유다 백성에게 복을 내려 주기로 작정하였으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아라.

위 말씀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재앙 내리기로 작정한 마음을 바꾸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마음을 바꾸어서 복을 내려주신다고 합니다.

너희는 너희 조상을 본받지 말아라. 일찍이 예언자들이,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고 하면서, 너희의 조상에게, 악한 길과 악한 행동을 모두 버리고 어서 돌이키라고 외쳤다. 그러나 너희 조상은 나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나의 말에 귀도 기울이지 않았다. 나 주의 말이다.(1:4)

이스라엘이 회개했기 때문이거나, 그들의 공적에 의해 하나님이 마음을 돌이키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을 향한 마음을 바꾸셨을까요?

오늘 읽은 본문 7~8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다시 불러들이겠다. 분노가 북받쳐서 나의 얼굴을 너에게서 잠시 가렸으나 나의 영원한 사랑으로 너에게 긍휼을 베풀겠다. 너의 속량자인 나 주의 말이다.”

 

한 단어가 눈에 들어옵니다. ‘긍휼이라는 단어입니다. 우리말 사전의 뜻을 보면 불쌍하고 가엾게 여겨서 도와준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전적 정의로만 이 단어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본문에서 너에게 긍휼을 베풀겠다라는 말에 대한 히브리 동사는 라함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었습니다. 그래서 구약 곳곳에서 긍휼을 베풀다. 불쌍히 여기다, 자비를 베풀다라고 번역되고 있는 단어에 라함이라는 낱말의 뜻이 숨어 있습니다. ‘라함자궁혹은 내장’, ‘내 안의 장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히브리어는 신약에 와서 헬라어로 스플랑코 니조마이라는 단어로 번역됩니다. ‘스플랑크논창자를 의미하고 스플랑코 니조마이창자가/내장이 끊어지는 듯한 아픔으로 불쌍히 여기다.’는 뜻입니다.

원어 라함스플랑코 니조마이의 뜻을 통해 긍휼의 의미를 좀더 분명히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향한 긍휼은 가진 자가 없는 자에게 여유 부리며 재산의 일부를 자선 베풀 듯이 하는 정도의 행위가 아닙니다. 불쌍히 여기는 정도가 안타깝고 아쉬워서 애끓는’ ‘애간장을 태우는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슬픔과 안타까움으로 불쌍히 여기는 애끊는마음입니다. ‘창자의 옛말입니다. 애끊는 마음은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아픔을 이야기합니다. ‘애끊는 마음을 느껴보신적이 있나요? 극도의 슬픔과 아픔으로 온 몸에 통증을 느끼며 사지가 떨려오는 슬픔아마도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이 땅에서 이별할 때 그 마음이겠지요. 그리고 수학여행을 떠난 사랑하는 자녀가 진도 앞바다에서 죽음을 맞이한 세월호 희생자 부모님들의 마음이야말로 애끊는 마음일 것입니다. 애끊는 마음이 긍휼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는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애끊는 마음에서 옵니다.

질문을 하나 더 해보겠습니다. 제대로 된 회개 한번 하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을 70년 포로생활에서 다시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신 하나님의 긍휼’ ‘하나님의 애끊는 마음은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이 성서의 본문이 그 질문에 답해줍니다.

14:17 "너는 이제 그들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내 눈에서 밤낮,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 내릴 것이다. 처녀 딸, 내 사랑스러운 백성이, 참혹하게 얻어맞아 죽을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63:9 주님께서는, 그들이 고난을 받을 때에 주님께서도 친히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천사를 보내셔서 그들을 구하게 하시지 않고 주님께서 친히 그들을 구해 주셨습니다. 사랑과 긍휼로 그들을 구하여 주시고, 옛적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을 치켜들고 안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열방들의 죄 때문에 예언자를 통해 분노하셨지만, 동시에 고통 받는 이스라엘이 되어 스스로 희생자가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고통과 상처 때문에 눈물 흘릴 때에 옆에서 함께 울어 주십니다. “나의 눈앞에 언제나 보이는 것은 병들고 상처 입은 사람들뿐이다.”(6:7b)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열정은 우리 때문에 하나님이 친히 고통을 당하시고 위로 받아야 하는 자리에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통 받는 자리에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울부짖는 순간 외면하지 않으시고, 함께 눈물을 훔쳐 주십니다. 우리와의 관계에서 하나님이 친히 당하신 고통의 가장 극적인 사건은 십자가에 달리신 아들 예수의 죽음입니다. 우리 때문에 겪는 하나님의 고통은 스스로를 죽음으로까지 몰아가신 것입니다.

남모를 고통과 아픔 속에서 살아가는 성도여러분, 힘을 내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들의 곁에서 함께 울어주고 계십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이렇게 죄에 크게 분노하시지만, 긍휼의 마음을 한결같이 보여주시는 하나님을 인식하고 만났습니다.

(5:28~29) 그들은 피둥피둥 살이 찌고, 살에서 윤기가 돈다. 악한 짓은 어느 것 하나 못하는 것이 없고, 자기들의 잇속만 채운다. 고아의 억울한 사정을 올바르게 재판하지도 않고,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지켜 주는 공정한 판결도 하지 않는다. 이런 일들을 내가 벌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나 주의 말이다. 이러한 백성에게 내가 보복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예언자들은 이러한 심판의 말씀과 함께 긍휼의 마음으로 이스라엘을 보듬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스라엘의 처지에서 함께 울어주었습니다.

(8:18~19) 나의 기쁨이 사라졌다. 나의 슬픔은 나을 길이 없고, 이 가슴은 멍들었다. 저 소리, 가련한 나의 백성, 나의 딸이 울부짖는 저 소리가, 먼 이국 땅에서 들려 온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예언자의 영성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긍휼함을 따라 우리의 긍휼을 요구하십니다. 이 땅에서 슬피 우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열정을 꿰뚫어보고 우는 이들 곁에서 함께 공감하고 울어주는 우리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언자 신앙의 전통이 예수에게서 다시 부활했음을 알고 있는 바울도 이렇게 말합니다.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십시오.”(12:15)

우리 민족의 지나온 역사를 돌아봅니다. 유독 주변 강대국들의 침탈과 착취를 많이 당해야 했던 우리 민족, 근현대사를 거치며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흘려야만 했던 수많은 민중들과 민주 열사들의 피눈물. 우리 하나님은 그 모든 피울음의 현장에서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동학농민전쟁에서, 제주43항쟁에서, 남북전쟁에서, 419혁명에서, 518광주민주화항쟁에서...그리고 지금, 현재 우리 주위에서 고통 받고 눈물짓는 이들과 함께 하고 계십니다. 탐욕스런 건설자본의 배를 불리기 위한 재개발로 인해 삶의 터전에서, 공동체의 예배처소에서 끌려나오고 쫓겨난 장위7구역과 강남향린교회에서 하나님은 애끊는 마음으로 함께 울고 계십니다.

 

극단적인 자기욕망의 충족과 이기심으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능력을 상실한 이 소비경쟁사회에서 하나님의 애끊는 마음과 공감의 감수성을 회복하십시오. 지금 곁에 있는 이들의 소리 없는 울음에 귀 기울여 주고 함께 울어 주십시오. 우리 곁에서 하나님이 함께 울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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