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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사람이다(부활절여섯번째주일, 2018년5월 6일)

하늘기차 | 2018.05.06 11:10 | 조회 1083


                        바로 이 사람이다.

201856(부활절여섯번째주일)                                                                     삼상16:6-13

     미켈란젤로가 큰 흰색 화폭에 검은 점을 찍어 놓고 친구들한테 무엇이 보이냐고 하니 이구동성 전부 검은점을 예기하더랍니다. 그러자 미켈란젤로는 나는 흰색을 보고있다고 하였답니다. 아름다운 상상력을 가지고 흰 여백을 본 것입니다. 자녀들이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사람들은 상대방의 여러가지 것들 중에 작은 티를 크게 보기가 십상인데, 75:6,7

                         “높이 세우는 그 일은 동쪽에서나 서쪽에서 말미암지 않고, 남쪽에

                          서 말미암지도 않는다.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만이, 이 사람을 낮

                          추기도 하시고, 저 사람을 높이기도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시는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이 처음의 말장신구 뒤에 숨는 겸손함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 보다는 사람들 의식하고, 자기 연민에 빠지며, 교만해져 하나님에게서 멀어지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새로운 지도자를 이새의 가정에 찿아가서 뽑습니다. 사무엘은 이전에 사울을 뽑을 때처럼 여전히 외모를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새의 아들들 중에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양떼를 치러 나가 지금 그 자리에도 없는 막내 아들을 데리고 오라고 합니다. 이 때만해도 이름이 불리워지지 않습니다. 형들은 엘리압, 아비나답, 삼마 등 이름이 불리워지는데, 막내는 이름이 불리워지지 않습니다. 바로 다윗입니다.

     6절 말씀에서 사무엘은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시려는 사람이 정말 주님 앞에 나와 섰구나라고 하는데, 하나님은 너는 그의 준수한 겉모습과 큰 키만을 보아서는 안 된다. 그는 내가 세운 사람이 아니다. 나는 사람이 판단하는 것처럼 그렇게 판단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주는 중심을 본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막내가 사무엘 앞에 오자, 오늘 말씀 12절은 주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며바로 이 사람이다. 어서 그에게 기름을 부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다윗에대하여 그는 눈이 아름답고 외모도 준수한 홍안의 소년이었다고 합니다. ! 이거 무언가 이상합니다.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다윗에대하여 바로 외모도 준수하다고 하여서 헷갈립니다. 하나님이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것인가 의문이 가는데, 아니면 영적 모습을 그렇게 표현한건가 싶은데, 그 아래13절 말씀을 보면, 의혹이 조금은 가십니다.

                              “사무엘이 기름이 담긴 뿔병을 들고, 그의 형들이 둘러선 가운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주님의 영이 그 날부터 계속 다윗

                               을 감동시켰다고 합니다. 그리고 바로 14절에서 사울에게서는 주님의 영이 떠났고, 그 대신에 주님께서 보내신 악한 영이 사울을 괴롭혔다.’고 합니다. 중심을 본 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림 짐작이 갑니다. 그래서 신하들이 악한 영에게서 벗어나게 하려고 음악을 잘 하는 다윗을 궁으로 데려오는데, 그 때 다윗에대하여 18절에 보면 수금을 잘 탈 뿐만 아니라, 용사이며, 용감한 군인이며, 말도 잘하고, 외모도 좋은 사람인데다가,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신다고 합니다. 가만히 본문을 보면 하나님도 외모를 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궂이 부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육신을 입고 있는 사람이 어찌 외적인 것에 무관하며 살 수 있겠습니까 만은, 아니 내적이고, 외적이고 간에, 피조물이 피조물의 모습으로 이 세상의 수 많은 관계 속에서 나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물어보며, 방향성을 잡으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아가는데, 기독인으로서 그 삶 속에 중요한 것은 18절 마지막 사울의 신하들이 한 말입니다. 마지막에 한 마디 툭 치고 지나가는데 그 말이 무엇인가 하면 외모도 좋은 사람인데다가하면서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부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외모를 보고 계셔요, 우리의 됨됨이를 본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사람이 사람냄새내며 살아가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먹고 마시며 어울리며 살아가는데, 사람들이 그 사람에대해 주님이 그와함께 계신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 믿음이 좋은 사람! 하며 종교냄새만 나는, 그런거 말구요. 기형아처럼 종교만 한 쪽으로 커지는 것 말구요. 요즈음은 너무 찌그러들어서 걱정입니다만, 함께 이웃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저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이야 하구 여러 삶의 모습들 중에 하나로 우연히 툭 바람이 스치듯이 한 마디 던집니다. 신앙을 흉내만 내는 것이 아니라, 또 신앙이 종교적인, 자기 중심적인,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진짜로 우리의 일상 속에 하나님이 함께하는 삶을 사는 사람 말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말씀에 바로 이 사람이다하였습니다. 그럼 바로 이 사람이다고 한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에케 호모, Ecce Home. 이 말은 요19:5에서 빌라도가 예수를 유대인들 앞에 세울 때 보시오, 이 사람이오라고 한 말입니다. 이것이 세례 요한에게서는 예수님을 처음 대면할 때에 보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합니다. 저는 앞에서 하나님도 외모를 보시네 라고 했는데, 그럼에도 하나님이 다윗에게서 끝까지 보고 계시는 것은, 죽임 당하는 어린양의 모습이라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한 면에서 세례 요한도 어렴풋이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다윗에게서 본 것을 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예수님을 골고다 십자가에 못 박은 로마의 백부장이 참으로, 이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고 한 말로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다윗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모습을 보셨다는 확신이 듭니다. 하나님은 이 사람, 즉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마1:17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8:28절은 이 사람,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에대해,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주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안다고 합니다. 이게 하나님의 신비로움입니다. 사람들이 이 사람이 하나님이 함께하는지 아닌지를 압니다. 여러분! 세상 속에 살면서 사람들은 말은 하지 않지만 이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인지, 아닌지 압니다. 기회가 있을 때, 우연히 툭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흩어지고, 나뉘고, 깨지어 상처가 된 것을 다 주워서 모아서 조화롭게 하는데,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29절은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사람들을 택하셔서, 자기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으니, , ,”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일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정한 것을 바꾸어 놓는 사람이 있습니다. 카인이 그렇게 했지요. 가롯 유다가, 그러나 노아는 그 하나님의 정한 길을 따라 갔으며, 예수님이 바로 이 사람입니다. Ecce Home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며 사랑합니다. 30절로 이어지면서

                      “정하신 사람들을 부르시고, 또한 부르신 사람들을 의롭게 하시고,

                       의롭게 하신 사람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누는 자리 까지 나아갑니다.

     믿음의 조상들 중에 이삭이 아비멜렉과 갈등이 생겨, 아비멜렉 쪽에서 요셉과 평화조약을 맺자고 할 때, 아비멜렉이 당신은 분명히 주님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라고 합니다. 요셉은 어떻습니까? 요셉이 형들에의해 이집트로 팔려가 경호대장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살아갈 때에도 창39:3요셉이 하는 일 마다 잘 되도록 주님께서 돌보신다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압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인지? 자본이 함께하는 사람인지

     지난 주에 홍주민 박사를 통해 디아코니아의 규준과 방향설정에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앞으로 눅10:1, 27; 22:27이 우리 교회의 정체성이요, 방향성이라고 거듭 말씀을 드립니다. 이 때 22:27 말씀입니다.

                         “누가 더 높으냐? 밥상에 앉은 사람이냐, 시중드는 사람이냐? 밥상

                           에 앉은 사람이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

                           데 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바로 섬기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섬긴다는 것은 일이 아닙니다. 마음입니다. 마음이 먼저 가야합니다. 그렇지않으면 섬김의 기쁨이 사라집니다.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 때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내가 너희에게 한 것과 같이, 너희도 이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일하는게 아닙니다. 감사와 감격과 사랑입니다. 바로 이 사람이 그런 사람입니다. 저는 습3:17말씀이 좋고 복음찬송 중에 특히 이 노래는 좋아합니다. 함께 불러보겠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신다. 구원을 베푸실 전능하신 하나

                             님이시다. 너를 보고서 기뻐하고 반기시고, 너를 사랑으로 새롭게

                             해주시고 너를 보고서 노래하며 기뻐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다윗을 보고 이 사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다윗에게서 무엇보다도 기다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봅니다. 들판에서 양을 치다 불려와서 얼떨결에 기름부음을 받고, 온갖 핍박을 받으면서 15년이 지나서야 그것도 사울이 죽었는데도 바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따라 헤브론에서 76개월 왕 노릇 하다가, 그 후에 가서야 모든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 받아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사울이 죽고 바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면 다른 11지파의 호응을 얻지 못하여, 도중 하차 할 수도 있었을텐데, 다윗은 타협하지 않으며,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받은 종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끝까지 믿음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기다리며 하나님을 따라 나아갑니다. 다윗은 일평생 하나님이 나를 택하였다는, 그래서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능력주시며, 지혜를 베푸신다는 것을 맛 보며 평생을 하나님의 자녀로 살았습니다. 5월은 가정의달인데, 아이들 교육 어떻게 하지 하며 고민하기보다는 하나님이 정한 삶을 우리의 일상 속에 살아간다면, 각 가정 마다 하나님께서 아이들에게 주신 소중한, 보석 같은 재능 들이 하나님 나라의 여정 속에 꽃피어 나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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