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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뗀 아이(2009년 5월 3일, 어린이주일)

하늘기차 | 2009.05.06 18:37 | 조회 2305


젖뗀 아이

2009년 5월 3일(어린이주일) 시131:1-3

오늘 말씀 2절에 “오히려 내 마음은 고요하고 평온하다”라고 합니다. 왜 “ 오히려”라고 했을까요? 평안한 모습에대한 비유나 상징이 많이 있는데, 오늘 말씀은 그 평안함이 젖뗀 아이가 엄마 품에 안겨 있는 것 같다고 합니다.젖뗀 아이면 한 몇 살 정도나 될까요? 4,5살 까지도 엄마 젖을 빨기도 하는데, 젖뗀 아이 라는 것은 더 이상 젖을 달라고 보채며, 울지 않고, 그저 엄마 품에 안기는 것 자체로 만족해 하는, 엄마와 함께 있어 평안히 쎄근 쎄근 잠을 자는 아기의 모습을 표현한 것 같습니다. 이 모습은 하나님 안에서의 평안함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고 얻어서 만족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있는 것 자체로 만족하여 평안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햇볕같은 이야기’라는 싸이 홈피를 운영하는 최용우 전도사님이 기도에대한 글을 썼는데 마음에 와 닿아 여러분에게 이야기 해 봅니다. 최용우 전도사님은 기도에 3 종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첫 째는 입으로 하는 기도, 둘 째는 머리로 하는 기도, 셋째는 코로, 즉 숨으로 하는 기도라고 합니다.

첫 째로 입으로 하는 기도인데,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은 땅에서 나는 것들이기에 땅의 기운을 먹는 것이며, 그래서 입으로 소리를 내서 하는 기도는 뱃심으로 하는 기도여서 땅의 소욕을 구하는 기도가 많은데, 통성으로 하는 기도의 경우 적지 않게 그런 욕구를 기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둘 째 머리로 하는 기도입니다. 합리적이고, 무조건 달라고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세 번째 기도는 숨으로 하는 기도라고 하는데, 사람이 숨을 쉬지 않으면 당장 살 수 없듯이, 가슴, 숨으로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생기를 코에 불어 넣으셨다고 하는데, 바로 그 생기, 숨, 바람, 호흡인데, 하나님의 영으로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구해서가 아니라, 마치 숨을 쉬는 것 처럼 하나님과 의식함없이 자연스럽게 하나님과 하나되는 모습입니다.그거 어디 어려워서 되겠나 할 수 있겠습니다 만은 중요한 것은 말씀드렸지만 ‘평온한가’라는 것입니다. 젖뗀 아이의 평온함이 나에게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수족관에서 노는 물고기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길에서나, 지하철 역 같은데서 수족관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를 않습니다.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멈추어집니다. 그 물고기 노는 것이 보기에 좋습니다. 어떤 때는 참 신비롭기 까지 합니다. 사실 옛날에 장로님하고 우리 습지 논 한 베미에 수족관을 만들자고 한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논 아래쪽으로 큰 유리 판을 만들어서 우리 토종 물고기들을 볼 수 있게 하자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큰 새들도 날아오고, 겨울의 추위 , 그게 쉽지가 않더라구요, 피라미, 돌고기, 민물세우, 미꾸리, 납자루, 그전에 살던 빙어...그런데 그 수족간 않에 물고기를 보노라면 어떤 물고기는 이리 저리 수족관을 휘젖고 다니고, 어떤 놈 끼리는 끊임없이 서로 뽀뽀하고, 그리고 어떤 놈들은 죽자 사자 싸움질만하고, 어떤 물고기는 꼼짝하지 않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물고기들이 수족관 안에서 놀던지 만약 그 물고기들이 물 바깥으로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요? 죽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단지 불편하거나, 거북스러운 삶이 아니라 죽음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들에게도 영적 호흡이 없다면 하나님과의 내적인 깊은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는 죽은 것과 다를바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일반 동물과는 달리 하나님께서 직접 생기를 불어 넣은 존재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피조물입니다. 창2:7은 “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삶된 것은 하나님의 생기를 받아서입니다. 하나님의 생기를 받은 사람의 삶의 모습은 어떨까요? 마치 물고기가 물에서 자유롭듯이 자유로운 삶을 살지 않을까요? 하나님의 생기를 받고, 하나님의 영적 호흡을 하며. 영적 감동에따라 사는 삶 말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엡4:17,18에서 에베소 교회에 권면을 하고 있는데
“ 이제부터 여러분은 이방 사람들이 허망한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과 같이 살아가지 마십시오. 그들은 그들 속에 있는 무지와 그들의 마음의 완고함 때문에 지각이 어두워지고,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습니다.”라고 간곡히 부탁을 드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사람들이 완고함과 무지함으로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니까 ‘오히려’라고 합니다. ‘오히려 평온하다’라고 합니다. 왜 ‘오히려’라고 했을까요? 이 시편 기자의 모습을 보니까 이전에 교만함, 오만함에 빠진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분에 넘치는 어떤 특별한 것을 구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뭐 구태여 무엇을 구하려 하지 않습니다. 구하는 것이 잘 못이 아니라 잘 못 구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전히 욕망과 이기심으로 구합니다. 그런데 오늘 시편은 아무것도 구하지 않아도 평안하다는 것입니다. 젖뗀 아이처럼 말입니다. 젖을 달라고 하며 보체는 것이 아니라 엄마 품의 푸근한 평온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엡4:18 말씀처럼 생명에서 떠나 있으면 다시 말하여 죽은 자의 모습 말입니다. 성경은 죽음에대해 말 할 때 영적 죽음에대해 이야기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에게서, 창조주 하나님 은혜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에베소서는 생명에서 떠나있는 죽은 삶에대해 무지, 완고하며, 어둡고, 수치심이 없고, 방탕, 탐욕, 더러운 일을 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마치 부패한 고기와 같습니다.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썩어갑니다. 마찬가지로 죽은 영혼은 마찬가지로 그렇게 냄새를 풍깁니다. 문제는 자기가 그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었기 때문입니다.

지구가 지금처럼 이렇게 요동치는 것은 인류가 바로 하나님 떠나 자기 욕망대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과학과 자기라는 우상과, 부가 결합하여 괴물과 같은 힘, 폭력을 휘두르며 인류를 위협하는 형상입니다. 인류가 구원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마치 젖뗀 아이처럼 하나님 품에 평안을 얻는 것입니다.

바다에 바람이 불면 파도가 일렁이기 시작합니다. 큰 바람일 수록 큰 파도가 쳐서 집체만한 파도가 밀려옵니다. 그런데 그렇게 요동치며 모든 것을 집어 삼킬 것 같은 파도도 그 아래, 그 깊은 바다 속의 고요함을 깨우지는 못합니다. 오늘 2절 말씀 오히려 내 마음은 고요하고 평온하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도 오히려 이제는 마음이 평온해야 하겠습니다.

제7의 봉인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의 배경은 중세 십자군 원정이 실패로 돌아가고, 그 전쟁에 참가했던 한 장군이 전쟁에서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 속에 죽음의 사신이 긴 낫을 들고 이 장군에게 찿아와 생명을 걸고 장기를 두는 장면이 나오는데, 다른 것 다 접어두고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 영화에서 한 광대 부부와 아기가 등장하는데 당시를 휩쓸고 간 십자군 원정의 패배로부터 오는 황폐함, 설상가상으로 전 유럽을 휩쓰는 패스트 창궐하는 상황에서, 그러한 시대적 참담함 속에서도 이 광대부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삶을 감사하며 기쁨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역사를 고민하고, 죽음과 구원에대한 질문과 종교와 영웅과 그 외의 것들이 영화에서 스쳐 지나가지만 이 부부의 평화는 참으로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지 모릅니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돼지 인푸르엔자 전염병이 돈다고 합니다. 새로운 변이종들이 인류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합니다. 1900년도 초에 스페인에서 시작한 독감이 전세계를 긴장시킨 것 이상의, 중세 때의 패스트 보다 더 무서운 전염병이 어떻게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아무도 모르는 시대입니다. 또한 전세계가 경제적 위기감에 빠져있습니다. 하나의 지구, 하나의 힘 등 자꾸 연합하여 이기적 욕망을 불태우는 한, 이 거친 욕망의 파도는 잔잔해 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 때에 오늘 말씀은 오히려 젖뗀 아이처럼 평온하다고 합니다. 이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넘치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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