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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주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느냐?(2009년 4월26일, 부활절후세째주일)

하늘기차 | 2009.04.26 15:21 | 조회 2118


나 주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느냐?

2009년 4월26일(부활절후세째주일) 창18:8-14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난지도 꽤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의 나이는 100세가 되었고, 그 아내 사라는 90세가 되었습니다. 25년의 세월이 한 점 같기도 하지만 그리 만만치 않은 세월이었습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나자 마자 중동 지역에 극심한 가믐이 들어 먹을 것을 찿아 이집트로 내려 가서 바로에게 아내를 빼앗길 뻔 했던 일. 또 큰 전쟁이 일어나 그 소용돌이에 휘말려 조카 롯이 죽을 뻔 했던 일. 조카 롯과 헤어질 수 밖에 없었던 아쉬운 일.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등 여러 사건들을 겪으며 살아왔습니다.

정말 25년 전 모든 것, 가족, 친척, 친지, 땅을 버리고 하나님의 약속 만을 바라고 정처없이 떠난 나그네 인생 길이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축복해 주셔서 건강과 물 등, 그 모든 것들을 풍성하게 누리게 해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빠진 것이 있습니다. 사실은 그 약속 때문에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인데, 즉 상속자에대한 축복은 없었습니다. “큰 민족이 될 것이다.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라는 약속이 물 건너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과 답답함이 있었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삶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질, 문명의 풍요는 있는데 약속에대한 소망이 없습니다. 풍요로움과 편리함 등 그야말로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말씀에대한 믿음이 없습니다. 과연 이 시대에 아브라함의 믿음을 상속받을 자가 몇이나 될른지요? 예수님께서 기도에대해 가르치면서 나쁜 재판관에게 자신의 사정을 호소하는 한 과부에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마지막 때에 믿음을 볼 수 있겠나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믿음 아닌 것이 흥하며, 욕망이 소망 행세를 합니다. 참 믿음, 참 소망을 보기 힘든 때 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 상속자를 정하였습니다. 그래서 2 번이나 하나님께 자신의 뜻을 피력했지만 하나님에게서 돌아오는 말씀은 ‘아니다’였습니다. 바로 충실한 종 ‘엘리에셀’과 하갈에게서 나은 아들 ‘이스마엘’을 상속자로 삼으려 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너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이 너의 상속자라고 단언을 하십니다. 그 때 아브라함이 하나님에게 무어라 항의를 하는가 하면 ‘주께서 저에게 자식을 주지 않으셨’기 때문 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8장은 바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년에 아들을 줄 것이라는 약속을 하고 있는 17장의 약속이 있자 마자 일어난 일입니다. 물질적인 풍요로움, 그리고 여러 가지 삶의 사건 속에서 잊혀지지 않고 문제가 되어 다시 살아나는 것은 상속자에대한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상수리 나무 곁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만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어떻게 만나냐 하면 세 천사를 보내서 아브라함과 만납니다. 아브라함은 왜 상수리나무 아래 있었을까요? 1절 말씀을 보면 한 창 더운 때라고 합니다. 2절에 고개를 들고 보니 어떤 3 사람이 자기 맞은 쪽에 서 있었다고 합니다. 더운 날 한 낮에 아브라함은 더위를 피하여 상수리나무 아래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깊은 기도, 아니면 깜빡 졸았는지, 하여간 아브라함 앞에 세 사람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이 세 사람을 맞이하는 것을 보면 그저 무심코 손님을 접대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세 사람을 공손하게 그리고 극진히 환대합니다. 접대하는 내용을 보면 호객행위하는 것 겉은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제발 좀 우리집에 오셔서, 몸도 씻고, 그저 잠깐 머물러 요기나 하고 떠나시라고 하지만, 아브라함은 기름진 좋은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 대접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손닙을 극진히 대접하는 것은 유목민의 예의라고 합니다. 아마도 늘 이동해야 하는 유목민들에게 있어서 다른 지역으로 늘 이동하는 것은 항상 손님이 되고, 또 손님을 맞이하는 것이 일상인 그들에게 서로 상부상조하는 삶의 관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세 사람의 등장에 나름대로의 예민한 느낌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아브라함은 늘상 이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깊은 묵상, 그러다 졸기도 하고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일생에서 앞에 부분을 보면 하나님께서 음성으로, 환상으로 말씀을 들려주시는데 오늘 말씀을 보면 주님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늘그막에 비록 물질적 풍요는 누리지만,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이루어지지 않아 늘 기다리는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약속은 아직 이루어 지지 않았지만 하나님 사모하는 열정은 보다 깊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하여간 그런데 오늘 본문 이야기에서 전반부는 아브라함이 이 만남을 주관하지만 후반부로 가면 하나님의 천사들이 만남을 주도합니다. 천사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내년 이 맘 때에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라가 뒤에서 이 이야기를 엿듣고는 웃고 말았습니다. 이미 다 지나고 다 끝난 이야기였는데 자기 집에 방문한 사람들이 새삼스럽게 아들이야기를 꺼낸 것입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였고, 이제는 여자로서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되었는데 아기는 무슨 아기냐면서 ‘픽’ 하고 웃음이 나온 것입니다.

그러자 천사가 아브라함에게 네 아내 사라가 웃으면서 ‘이 늙은 나이에 내가 어찌 아들을 낳으랴!’고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다 같이 말해보겠습니다. “나 주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느냐?”. “내가 이 맘 때 다시 찿아 올텐데, 그 때에 아들을 볼 것이다”라고 합니다. 그러자 사라가 거짓말을 합니다. “웃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니다. 너는 웃었다”고 합니다. 이 웃음은 주님의 질문에대해 미 해결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끝이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과 아브라함 그리고 사라의 거부, 그에 따르는 긴장감을 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불신입니다. 하나님의 주권, 그리고 능력을 아브라함과 사라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이를 낳는다고 했을 때, 모두들 웃었습니다. 아들에 대한 희망을 이미 포기한 상태입니다. 희망이 없는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허탈함과 허무함입니다. 참 열심히 살았고, 하나님께 나름대로 순종하며 살았는데 정말 있어야 할 것, 정말 소망하는 것, 정말 누려야 할 것이 없습니다. 기다렸지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신의 방법대로 엘리에셀과 이스마엘을 상속자로, 약속의 아들로 세우려 했지만, 하나님은 ‘아니오!’라고 합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중에 희망없이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 있는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하나님께서 찿아 오신 것입니다. 마므레의 상수리 나무 곁에 찿아오셨습니다. 어찌보면 오지 않아도 될 때 쯤에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복음의 모습인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가 다 합리적으로 해결보고, 이미 사전에 다 계획되어 있고, 그래서 어떻게 될지에대해 결정되어 있는 자리에 오셔서 다시 시작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사라는 웃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 주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느냐?” 교우여러분 이것이 복음이요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내가 다 알고 있고, 조금만 돌아보고 힘 좀 쓰면, 아니 내가 최선을 다 하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서도 될 수 없고, 알 수도 없는 그러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우리의 삶 전체를 뒤 흔드는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질문인 것입니다. 이 질문에 걸려 넘어지든지 아니면 그 질문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의 자리로 들어가든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인데 복음이 아닌 것입니다. 들을 귀 있는 자가 듣는 복음인 것입니다. 이 질문을 들으며 얼핏 떠오르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빌4:13입니다.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이 ‘하면된다’라는 군대식의 천박한 이기적인 개인의 욕망의 배설로 바뀌어 버리고 말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다시 들으시기 바랍니다. 이“나 주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느냐?”라는 질문은 지금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뿐만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던지는 하나님의 긍휼한 은혜에로 우리를 부르시는 질문인 것입니다. 이 질문은 나의 온 삶을, 온 가치관을 삶의 틀을 흔드는 질문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 질문처럼 능치 못함이 없으신 전지전능의 하나님에대한 고백이 선명하게 언급되는 곳이 몇 군데 있는데, 우선은 마리아입니다. 아기 예수를 잉태하리라는 소식을 천사들이 전할 때 놀라워 하는 마리아에게 천사가 들려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고 합니다. 이에 마리아가 무어라 대답을 하나요? “보십시오, 나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분명하게 대답을 합니다. 친척 아줌마인 엘리사벳이 찿아온 마리아에게 무어라 하나요? 눅1:45에 보면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질 줄 믿은 여자는 행복합니다”라고 합니다. 복음입니다. 마리아를 통해 온 인류가 복된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또 어느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와 주님이 대화할 때입니다. 그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살려달라고 간절히 구합니다. 그 때 그 아버지가 ‘할 수만 있다면’이라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할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아이의 아버지는큰 소리로 "내가 믿습니다. 믿음 없는 나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말하였습니다. 결국 이 아이는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은혜입니다. 구원입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아이를 낳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사라가 아이를 낳지 못합니다. 그래서 딜레마(선택해야 할 길은 두 가지 중 하나로 정해져 있는데, 그 어느 쪽을 선택해도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게 되는 곤란한 상황)입니다. 상속자 아들이 태오나지 않아 인간적인 방법으로 상속자를 세우려 했으나 그것은 되지 않고, 그렇다고 하나님으로부터는 실제적인 아무런 소식도 없습니다. 그리고 스캔들(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 또는 불명예스러운 평판이나 소문)입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사라의 몸종으로부터 후계자, 즉 이스마엘을 정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아니라고 합니다. 결국 이스마엘 때문에 집안이 풍지박산이 났습니다. 스캔들입니다.

그런데 본래 사라는 창11장에서 보면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기 전부터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였습니다. 그 문제가 아직 해결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항상 성경의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는 아이를 낳는 문제입니다. 생명을 잉태하는 것이 성경의 중요 주제인 것입니다. 지난 요한계시록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여인이 폭풍우 속에서 아이를 잉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폭풍과 용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이를 낳았습니다. “나 주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느냐?”는 질문은 수퍼마켓에 진열된 이런 저런 모양의 기적을 진열장에서 꺼내는 그러한 기적 바라기가 아닙니다. 이 질문은 당연히 복음이요, 마땅한 희망이요 받아들여야 할 말씀이요, 생명으로 초대하는 언약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 18:12은 “사라는 ‘나는 기력이 다 쇠진하였고, 나의 남편도 늙었는데, 어찌 나에게 그런 즐거운 일이 있으랴!’ 하고, 속으로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고 합니다. 자기에게 그런 즐거움은 없다는 것입니다. 25년의 기다림이 무색한 말입니다. 이미 숨 넘어간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 즐거움을 포기했습니다. 속으로 자기 생각을 확인하며 중얼거렸습니다. 그런 즐거움 이제 자기는 포기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러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찿아 와서 묻습니다. “나 주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느냐?”

교우여러분! 혹 포기하고 덮어둔 문제는 없는지요? 그래서 생명없는 삶을 살아가지는 않는지요? 여러분의 삶 속에 꼭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입니까? 덮어도 다시 살아나서 나의 마음을 씁쓸하게 하는 가슴 아픔 문제가 무엇인가요? 그 문제로 즐거워야 할 삶을 접지는 않았는지요? 주님께서 “나 주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느냐?”고 하십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이 은혜에 참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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