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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아느냐?(2009년 3월 8일, 사순절두번째주일)

하늘기차 | 2009.03.08 13:35 | 조회 2086


이 일을 아느냐?(은혜를 입은 만큼 안다)
2009년 3월 8일(사순절두번째주일) 요13:1-18

지난 주일 저녁 수원 왕성교회의 연용하 권사님을 통해 모처럼 연용하 권사님께서 딸 정은양을 간병하며 받았던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참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보더라도 권사님의 딸 정은양의 건강할 때의 사진을 보면 참 아름다운 딸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키가 170Cm였다고 하니 참 늘씬한 처녀였겠구나, 그 처녀가 아동부 교사로 아이들 앞에서 율동을 열심히 가르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딸 아이가 그만 전신 마비의 환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아!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어찌 이렇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의인의 고난, 죄 없는 자의 고난에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데, 성경은 그 고통, 시험을 해결해 주실 것을 기도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 보다는 하나님께서는 그 어려움을 통해 고난당하는 사람의 삶을 질적으로 더 높은 가치의 삶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 저녁 연용하 권사님의 첫 모습에서도 그런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부딪친 한 엄마의 안타까움을 보았습니다. 뇌혈관 기형 뇌출혈로 쓰러져 무의식의 상태로, 쓰러진 그 날 이미 동공이 열리고, 뇌 수술을 해야하고, 만약 뇌를 절개한다면 이제 정은이는 완전 식물인간이 될 것이지만 그래도 부모의 마음이 살려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 병원에서 보통 자식이 부모를 간병할 때, 의식을 잃으면 모든 환자에게 사용되는 의술을 거두려고 하는 것이 자식들의 모습이라고 하는데, 실제 스스로 간호원으로서도 그런 사실을 여러번 보았고, 정은이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에도 자녀들이 부모의 호흡기를 떼어 달라고 하는 상황을 2 번이나 목격했지만, 자기는 딸에게서 그렇게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식물 인간이 된다 하더라도 모든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해서 정은이를 살려야 한다는 오직 그것 한 가지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통해 권사님은 하나님의 인류를 향한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우리를 향한 사랑은 우리를 기필코 살리시는 사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뇌를 잘라내는 수술을 해야하는데, 그러면 완전 식물인간이 되는데도, 그래야 살 수 있으니 승인을 할 수 밖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그래서 수술실에 들어갔는데, 뇌의 압이 높아 점점 부어 오르고, 피를 하도 흘려, 피를 40인분의 양을 맞었는데도, 뇌에서는 피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 의사 선생님이 수술을 포기하고 그래서 죽음 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한 정은이를 기적적으로 살려주신 하나님, 98개의 피를 맞았는데, 한 개라도 오염된 피가 들어가면, 또 다른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상황에서 정은이를 지켜주신 하나님, 거의 뇌사 상태여서 호흡기로 생명을 연장하는 데 의사가 와서 이제 호흡기를 뗄테니 준비하라 할 때에 기도 밖에 할 수 밖에 없던 상황. 그러면서 이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니 마음이 편해져 그저 되어지는 상황을 기다리던 평화. 그런데 놀랍게도 심장의 박동이 다시 뛰기 시작하였고, 그래서 호흡도 조금씩 돌아오는 기적이 또 일어났다. 나중 이야기가 정상인의 뇌압이 20이면, 정은이는 140이어서 남자 의사가 정은이의 뇌를 아무리 눌러도 들어가지 않아 뇌를 봉합하지 못하고 그대로 거즈로 덮어 두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정은이를 만났을 때에도 완전 무의식 상태였고, 그리고 뇌의 뼈를 제거한 상태여서 이마 쪽이 함몰되어 있던 상태였는데 그 때 제가 권사님을 보았을 때의 모습은 정말 세상 근심 하나 없는 맑은 모습이어서, 어찌 이럴 수 있을까? 아이가 무의식이되어 2년여를 간병한 사람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보통 의식을 잃고 누워있는 환자들의 대부분은 곧 바로 욕창이 생기는데, 우리가 이전에 연병권님을 통해서도 알수있는데, 정은양은 전혀 욕창이 생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권사님의 그 날 이야기로는 하나님 이 아이가 똥, 오줌을 싸면 누구라도 보내 주셔서 그것을 개끗이 치울 수 있도록 해달라는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는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의식이었던 정은이의 의식이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첫 웃음, 그리고 의식이 완전히 깨어나서 일주일이상 계속되는 통한의 서너시간에 걸친 울음, 그리고 단순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손가락으로 나름대로의 움직임을 보이는 상황까지 오게 하신 하나님에대한 감사 말입니다.

특히 이 아픔을 통해 하나님께서 연혜경님 부부를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게한 그 은혜는 어찌 큰지. 교회에 다니지 않던 이섭님 부부에게 새벽 기도 요청의 감동이 오자 연 권사님은 어쩔줄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기가막혔는데, 연권사님은 마음의 감동대로 이섭씨 부부에게 새벽 기도를 요청했는데, 찿아가서 부탁을 한 것이 아니라 문자를 보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동생인 연혜경님은 그렇다 치고, 그렇게 잠이 깊은 이 섭님이 어떻게 교회도 다니지 않던 사람이 교회에 그것도, 새벽기도를, 그것도 정월 초하루부터,,,

그런데 그 때 정월 초하루에 새벽에 두 분이 나온 것을 보고 사실 좀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말겠거니 했는데, 정말 40일 꼬박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새벽에 교회에 나와서 기도를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요즈음도 두 분이 시간이 되면, 몸이 허락하면 그렇게 나오는 것이 보기에 좋습니다. 그리고 둘 째 경이도 이렇게 예배당에 나와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가 다시 연 권사님의 은혜 입은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들려드리는 것은 바로 은혜를 입은 자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입니다. 아니 은혜를 입은 만큼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3 번 예루살렘에 올라 가는데, 3 번 째 올라 갔을 때에 예수님은 만찬을 나누기 직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겨줍니다. 보통 세상에서는 제자가 스승의 발을 씻겨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종종 예수님은 세상과 다른 모습을 종종 보여주십니다. 포도원에서 일한 사람들에게 임금을 나누어줄 때, 천국잔치에 초청자들이 초대에 응하지 않자, 거리의 걸인들, 병자들, 죄인들을 초청 할 때, 또한 예수님 어려서 처음 예루살렘에 갔을 때에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를 잃어버리고, 간신히 성전에서 예수님을 찿자, 예수님은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라고 반문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모습을 보면 하나의 일관된 방향성을가지고 있는데, 예수님은 항상 아버지 나라, 아버지의 뜻, 아버지의이름을 항상 염두에 두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에대해 부정적인 의사 표현을 했을 때에도 예수님은 ‘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하면서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일 만을 향해있는 예수님께서 유월절 만찬 때에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것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 전에
“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는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야 할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고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어 주는 모습을 통해 사랑에대해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런데 교우 여러분! 사랑을 할 때 끝까지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우여러분 목사가 교인을 사랑할 때 끝까지입니다. 교회의 성도가, 직분자가 교회를 사랑할 때에도 끝까지입니다. 구역장이 구역원을, 교사가 학생을, 남편이 아내를 사랑할 때에도 끝까지입니다. 죽기까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끝까지 사랑은 십자가 사랑이 된 것입니다. 이 십자가 사랑이 부활이 된 것입니다. 사랑이 부활로 이어진 것은 그가 죽기까지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중간에 끝나는 사랑은 사랑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끝없는 이 사랑을 그 마지막 만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모습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이 한 사람, 두 사람 발을 씨기어 나갑니다. 제자들의 느낌이 어떠했을까요? 당혹감, 부끄러움...그렇게 해서 예수님이 베드로 앞에 무릎을 꿇자 베드로가 도저히 부끄러워 ‘주님, 주님께서 저의 발을 씻으시렵니까?’ 하고 반문합니다. 더 나아가서, ‘절대로 씻기지 못하십니다’하고 완강히 거부합니다. 그러자 ‘네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합니다.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이것은 주님의 끝없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발을 씻지 않겠다는 것은 주님의 사랑을 받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교우여러분!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도 물론이지만, 더 근원적인 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섬기는 것입니다. 요일4:10은
“사랑은 여기에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 주시고, 우리의 죄를 속하여 주시려고, 속죄제물이 되게 해주신 것입니다. ”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주님의 사랑을 받는 것인줄 알아야 합니다. 이 사랑은 십자가의 사랑이요, 끝까지 사랑인데, 그래서 부활의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그렇게 하셨는데 그것은 바로 순종인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의 사랑을 안 받으려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예수님께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바깥에 나갔다가 들어오면 완전히 흙탕입니다. 그래서 씻기려는데 도망을 갑니다. 붙잡아서 씻기려하는데 자꾸 안 씻으려 합니다. 끝내 안 씻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을 거부한다면, 그 뜻이 아무리 좋을지라도,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교만입니다. 자기 주장입니다. 자기 생각입니다. 예수님 사랑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무엇인가 예수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다는 것은 교만입니다. 사랑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흠뻑 받듯이 우리도 주님의 사랑을 흠뻑받아 그 사랑 가운데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은 예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발을 안 씻으면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하자, 베드로는 놀라며 ‘손과 머리도 씻겨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미 목욕한 사람은 온 몸이 깨끗하니, 발 밖에는 씻을 필요가 없다. 너희는 깨끗하다’합니다. 요15장에도 보면 깨끗이 씻는 것에대해 나오는데, 그러니까 열매를 맺으려면 성경해 져야 하는데, 무엇으로 깨끗해 지는가 하면 말씀으로 깨끗해집니다. 그런데 그 포도나무의 비유가 아래 9,10절로 넘어가면 무어라 하는가 하면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너희가 나의 계명을 지키면, 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나의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고 했는데, 받지 않으면 상관이 없다고 했는데, 그래서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바로 베드로가 발을 내밀지 않다가 말씀을 따라 주님 앞에 발을 내미는 순종인데, 그래서 사랑 안에 머물러야 하는데, 요15장 포도나무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사랑은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으면 깨끗해집니다. 성결해진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성결함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냥 남녀의 사랑 에로스, 친구의 우정 필로스 ,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아가페의 사랑이 아니라 성결의 사랑, 깨끗함의 사랑, 이 은혜, 이 사랑을 받기 싫다고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발을 씻기는 사랑을 통해 끝까지 사랑을 보여주셨는데, 그 사랑이 계속되어 십자가에 달리시어 죄 사함의 은혜의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신 것입니다.

이 사랑 안에 머물 때 우리는 단 번에 어두움에서 빛으로, 세상의 나라의 가치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로, 혼돈에서 질서로, 공허함에서 충만함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완전히 바뀐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바로 주님의 사랑을 받기 때문인 것입니다. 순종을 통해서, 계명을 온전히 지킴으로 세상이 줄 수 없는 성결의 사랑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없이는 우리는 항상 자기 일 하는 것입니다.

인류가 끊임없는 전쟁의 폭력, 성적 타락, 인륜이 무너지는 윤리적 무감각, 개인적으로도 그저 이기적인 가치관, 전 지구적인 환경의 위기 등... 결국 이 모든 공허, 무질서, 어둠움은 바로 성결한 사랑, 즉 주님이 끝까지 사랑하시며 보여주신 십자가의 깨끗한 사랑을 모르는 것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발을 씻기시면서 ‘내가 하는 일을 지금은 네가 알지 못하나,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후 베드로는 예수님을 3 번 부인하고, 또 사도 바울에게 면박을 당하기도 하였는데, 아마 그 때 마다 예수님이 자기의 발을 씻기신 그 은혜를 평생 잊지 못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 발을 씻기어 주시지 않으면 우리가 어찌 이 세상을 자유하게 살 수가 있겠습니까? 그 죄짐. 그 인생의 짐을 어찌 온전히 짊어지고 갈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의 발을 씻겨주십니다. 교우여러분 주님에게 발을 내밀고 겸손히 그 사랑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 앞에 겸손히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생명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끝까지의 사랑, 십자가의 사랑을 보이실 때 7절, 12절, 17절에 보면 '이 일을 너희가 아느냐'고 거듭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는 일을 지금은 네가 알지 못하나,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알겠느냐?” 또 마지막으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그대로 하면, 복이 있다. ”고 하십니다.

주님은 지금도 이 시간에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이 일을 아느냐?” 누가 알까요?

눅11:28에서 예수님이 한창 말씀을 전하시던 중이었습니다. 어느 여자가 예수님에게
“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가슴은 참으로 복이 있습니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이 복이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사랑이 우리 안에 있어야합니다. 요12:50 말씀에서 예수님은
“나는 그 명령이 영생을 준다는 것을 안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베푸시는 사랑을 흠뻑 받으셔서 이 일이 무엇인지를 아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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