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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실한 청지기는 은혜의 사람이다(2009년 2월22일, 주현절후일곱째주일)

하늘기차 | 2009.02.22 14:25 | 조회 2336


신실한 청지기는 은혜의 사람이다
2009년 2월22일(주현절후일곱째주일) 창24:1-9;눅12:41-48

눅12:19에 보면 예수님께서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마음을 놓고, 먹고 마시고 즐겨라’고 하는 어느 부자의 이야기에대해 말씀하고 있는데, 이 모습은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부자가 곡식을 쌓아둘 곳이 없을 정도로 풍성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곡간을 헐고 도 크게 짓자고 미래의 계획도 세웁니다. 그리고 이제 영혼에게 먹고, 놀며, 인생을 즐기자고 합니다.

작년 연말 T.V에서 한창 방송의 각 연예 분과에대한 시상식을 할 때 였습니다. 아마도 코메디, 오락 부분의 시상 때 였던 거 같은데, 어느 한 게그맨이 시상 소감을 발표할 때, ‘영혼을 팔아서라도 웃겨드리겠습니다.’라고 한 기억이 납니다. 이 전에는 생각지도 못 할 발상이었던 것 같은데, 오늘 이 시대가 바로 그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혼을 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하고 비슷하지 않나요? 이 부자도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내 영혼아, 즐거워 하자!’고 하는데, 그 영혼의 즐거움이 물질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에게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동시대의 하나의 상징인 것 같습니다. 영혼을 팔아서는 사람을 웃길 수 없는 것입니다. 웃기는 일과 영혼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물질의 풍요와 영의 즐거움이 상관이 없듯이 말입니다. 오늘 이 시대가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고는 싶어도 그 삶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헤메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혼돈과 공허, 그리고 어두움의 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택함을 받은 백성에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 눅12:36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같이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마치 주인이 혼인 잔치에서 돌아와서 문을 두드릴 때에, 곧 열어 주려고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과 같이 되어라. ”고 합니다. 이 말씀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청지기의 삶을 살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면서 누리는 모든 것이 나의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단지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며 우리가 누릴 것을 잠시 누리다 부르시면 다시 돌아 가는 것입니다.

재산, 건강, 가정, 자녀,,,,생명, 직장,,, 그 모든 것이 나의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의 것, 하나님이 주인이시니 언젠가 주인이 결산하자 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늘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준비할까요? 창24장은 우리에게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 창24장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의 선물인 이삭이 잘 자라서 결혼할 때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모든 어려움과 시험을 다 감당하고, 선한 싸움 싸워 다 이기었는데, 이제 하나 남은 것은 그 믿음의 축복을 어떻게 계속 이을 것인가 하는 결혼 문제가 앞에 닥쳐왔습니다. 이미 아브라함은 나이 많아 늙어 이 일을 직접 감당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누가 감당할까요? 바로 아브라함의 늙은 종 엘리에셀이 결혼 중매를 맡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나이 100세가 다 되도록 자녀가 없자 그의 모든 것을 이 종 에게 맡기려 한적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의 신임을 얻었고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 아브라함의 재산을 모두 물려받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청지기이며 아브라함이 주인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봅니다. 그래서 이삭의 신부를 구해오라는 일을 감당할 때 보면 늘 주인이 중심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조금만 힘들고 어렵고, 손해를 볼 것 같으면 쉽게 약속을 파기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아브라함이 그의 종 엘리에셀과 어떤 약속을 하는지 자세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의 신부감을 구하는데 몇 가지 원칙을 세웁니다. 우선은 가나안 족속의 딸은 안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내 고향, 내 족속에게 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절대로 이삭을 그리로 데리고 가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의 유력한 토호와 정략적인 결혼을 주선해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인 그리고 여러 가지 삶의 풍요로움과 즐거움을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나안 여자는 아니라고 분명히 선언합니다. 왜냐하면 문제는 하나님 신앙을 잃어버릴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고향 본토로 갈 때에도 이삭을 결코 데리고 가면 안됩니다. 고향 본토 여자를 택하는 것은 우선 혈통을 잇고자 하는 것인데 그러나 이삭을 데리고 갈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고향 본토는 가나안과 같이 자신을 몰라주거나 기득권 이 인정되지 않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고향은 모든 곳이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만일 신부감을 구한다고 그의 아들 이삭이 그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그래서 신부측에서 이 곳에서 같이 살자고 한다면 마음 약한 이삭이 그냥 눌러 앉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역시 하나님 신앙입니다. 우상 숭배 때문에 그 곳을 떠났는데, 아들 이삭을 그곳으로 다시 보낼 수는 정녕 없는 것입니다. 만일 한 여자를 고향에서 택하였는데 그 여자가 고향을 떠나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선택이요, 맹세와 무관한 여자이지, 이삭이 그리로 가서 여자를 만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 아브라함은 엄격하게, 그리고 신중하게 원칙을 세워 지키려 할까요? 그것은 바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택함받은 백성으로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이을자요, 인류 구원의 비밀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나라의 기업을 이을 상속자가 가나안 여자와 혼인하여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더럽힐 수는 없었습니다. 또한 떠나온 고향 본토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에게 속하지 않은 민족과 적당히 섞여 살 수는 없었습니다.

고기교회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신앙의 규례를 갖고 계십니까? 주일을 지키며, 말씀에 순종하며, 기도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교제하며, 봉사하며, 세상 속에서 증인된 삶을 살 때 어떠한 자신의 규례와 원칙이 있습니까? 나름대로 있다고 한다면 혹 그 원칙과 규례가 무너지지는 않는지요? 성도들은 단지 행복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서의 삶의 방향이나, 삶의 뜻, 비죤이 있어야 합니다. 그 뜻을 이루며 맛 보는 기쁨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광야로 나아간 이스라엘이 무너진 것도 결국 가나안을 향한 하나님의 뜻, 비죤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뜻과 비죤이 없다면 쉽게 세상 풍조에 휩쓸리어 하나님 백성 아닌 모습으로 살아가기 십상인 것입니다. 우리는 계약 백성이요, 하나님 나라의 기업 백성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나름대로의 신앙의 규례와 원칙을 가지고 살아갈 때, 그 말씀이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아니면 이것은 해서 안되고, 저것은 해야되 하는 식으로 된다면 그것은 말씀을 은혜로 보지 않고 법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은혜 안에 있지 않으면 받은 말씀이 내 은혜요, 나의 감사가 아니라 남의 일, 남이 나를 참견하고, 귀찮게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이 이삭의 신부를 선택할 때 정한 원칙을 은혜로 받아들입니다.

그는 아브라함이 맡긴 일을 감당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2절“그가 이르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14절“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

그 주인에 그 종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자요, 엘리에셀은 그 아브라함의 은혜를 봅니다. 엘리에셀이 그의 책임을 감당할 때, 그는 아브라함에게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바라봅니다. 아브라함의 늙은 종 엘리에셀이 주인이 맡겨준 일을 감당하는 모습을 보면 은혜가 아니면 감당치 못할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그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요? 소돔이 하도 타락하여 하나님의 유황불로 심판을 받은 시대입니다. 인류 역사에 멸망과 저주에대해 이야기 할라치면 소돔과 고모라를 내 세울 정도로 타락한 시대의 사람입니다. 그 시대에 이러한 신실함이 있다는 것은 은혜인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나, 능력으로 이렇게 신실할 수 가없습니다. 이것은 은혜입니다.

12절에서 엘리에셀은 이 중책을 감당키 위해 먼저 기도합니다.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또 저녁 때 여인들이 우물가로 물길러 나올 때에, 14절에 보면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말미암아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 기도가 바로 응답되었습니다. 15절에 보면 말을 마치지 못해서 바로 리브가가 어깨에 물동이를 이고 나타났다고 합니다. 기도한대로 리브가는 자신과 약대에게 물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철저히 기도로 준비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고향 천지 어디에서 누구를 만날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고향으로 향한 것입니다. 하나님에대한 철저한 신뢰가 없이는 이렇게 움직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의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할 것이라고 확실하게 믿었습니다.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조심스럽게 기다리는 모습을 우리는 21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한 처녀가 다가 오자 그는 물을 좀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이 처녀는 그에게 물한 그릇을 그에게 건네주는데, 그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이 처녀는 닥시 우물로 내려갑니다. 느낌에 아! 약대에게 물을 주려고 하는 구나 하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 때 호들갑을 떨지 않고 “그를 묵묵히 주목하며 여호와께서 과연 평탄한 길을 주신 여부를 알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기다릴 줄을 압니다. 은혜를 맛 본 사람은 기다릴 줄을 압니다. 요즈음 달인이라는 게그가 인기를 끄는데, 기다릴 줄 모르는 사람은 은혜에대해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다림은 하나님에대한 철저한 신뢰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또 처녀가 자신이 누구의 자녀이고, 또한 자기 집에 묵을 것을 요청하자 엘리에셀은 자신이 누구 누구의 종인 것을 분명히 밝힙니다. 보통 사람들은 무언가 성취하면 자신을 스스로 높이기도 하는데 엘리에셀은 26,27에서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라고 합니다. 자기 낮춤입니다. 은혜입은 자의 모습입니다.

엘리에셀은 기도한대로 이삭의 여인을 만나 그 집으로 가서 그 부친과 혼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그 때에 모든 결정이 났으니 스스로 자유로울 법도 한데 혼사가 결정된 다음날 바로 출발하려고 합니다. 그러자 신부의 아버지 라반이 한 열 흘 정도 쉬었다 가라 하는데 바로 돌아갑니다. 궁굼해 할 주인을 생각해서입니다. 맡긴 것 외에 다른 것에 눈을 돌리지 않는 모습을 봅니다. 앞서 자신에게 물을 준 처녀를 따라 라반의 집에 첫 발을 들였을 때에도 음식을 베풀자 자신이 이 곳에 찿아오게 된 일을 말하기 전에는 먹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라반이 이야기를 하라고 하자 제일 먼저 하는 이야기가 ‘나는 아브라함의 종’임을 밝힙니다.

그 뒤에 라반과 혼사에 대해 이야기 할 때에도 그는 그 첫 어두가 ‘내가’, 또는 ‘자기’가 아니라 ‘나의 주인’ 또는 ‘하나님’입니다. 주어가 ‘나’가 아니라 ‘나의 주인’입니다. 오늘 이 시대를 보면 청지기는 없고 주인이 많습니다. 서로 주인이라 합니다. 주인은 한 분이십니다. 헨리 나우엔은 영성에대한 주제를 이야기 하면서 넓은 범위에서 이야기 될 수 있는 것이 영성이라 하면서 흰두교도, 불교도, 그리고 종교가 없는 사람도,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인디언의 영성이 탁월하다고 보는데, 무속인도 누구든 영적인 삶에대해 이야기 할 수 있지만 헨리 나우엔은 나에게 있어서 영성이란, 즉 영적인 삶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는 것이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삶의 중심에 있을 때 나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나는 빛나며, 질서 있으며, 충만하다고 분명히 이야기 합니다.

엘리에셀은 주인인 아브라함의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2절 말씀에 보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이 지구 상의 모든 것을 맡기었습니다. 협의로 보면 우리 각자에게도 자기 자신, 가정, 교회, 사회 나라 그 모두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 모든 상황에서 아버지로서, 자녀로서, 선배로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기 역할을 하는데 이 역할들이 만약에 하나의 의무로, 그리고 등 떠 맡겨 하는 일이라 한다면 아마 지겨워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에셀은 종으로서 그 주인을 볼 때 27에 보면 ‘나의 주인에게 주의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하셨사오며’라고 하면서 주인이 은혜입은자임을 고백하며 자기도 그 은혜를 따른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것은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생명은 은혜로부터 왔으며, 은혜로 살아내야 합니다.

시대 마다 각 분야에는 많은 사람이 나름대로의 활동을 하지만, 그 중 가장 큰 영향력을 버이는 사람은 역시 그 나라의 대통령이 아닌가 십습니다. 나라의 지도자가 평화, 나눔, 화해에대해 이야기 하면 금방 저 멀리 시골 읍 내의 평범한 한 가정의 밥 상에는 평화와 사랑, 나눔과 화해의 밥상이 차려집니다. 그러나 한 나라의 지도자가 국가 번영, 성장, 개발, 건설이라 하며 법에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하면 그 나라의 백성들의 밥상에는 눈물, 고통, 두려움, 아픔의 밥상이 차려집니다. 그래서 한 나라의 지도자가 어떤 마인드와 인격을 갖추고 있는가는 그 나라 백성의 삶의 질을 좌우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 마음 속에 어떤 분이 주인으로 계십니까? 그동안 엉뚱한 분께서 가짜로 여러분의 주인 행사하여 그동안 불안과 조급합, 짜증과 분노, 싸움과 지기, 질투와 억울함의 밥상을 나누지는 않았는지요?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여러분 마음 속에 참 주인인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대신 십자가에 달리신 참 자유와 평화의 주인이십니다. 이제부터라도 그 사랑의 주인이 차리는 밥상에 둘러 앉기 바랍니다. 그래서 기다림, 여유, 쉼, 평화, 사랑스러움, 감사, 기쁨, 소망의 밥상 앞에 둘러앉는 여러분들 되시기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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