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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 빌립( 2009년 1 월11일, 주현절후첫째주일)

하늘기차 | 2009.01.11 13:59 | 조회 2584


집사 빌립

2009년 1 월11일(주현절후첫째주일) 행6:1-7

지난 주에 고기교회는 일곱 집사를 새롭게 임명했습니다. 아무쪼록 맡은 직분을 잘 감당하여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아름답게 전파되기를 바랍니다. 딤전 3:13에 보면 집사의 직분을 잘 감당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이 있습니다. “집사의 직무를 잘 수행한 사람들은 좋은 지위를 얻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큰 확신을 얻게”된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나름대로 풀어본다면 기쁨으로 맡은 역할을 잘 감당하는 직분자에게 믿음의 큰 확신을 준다고 하는데, 이 믿음의 확신이란 ‘믿음의 용기’라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대한 기다림이며 바라는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에대한 확신을 갖는 것인데, 여기에는 바로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용기가 없이는 아무런 믿음의 열매도 맺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서에 보면 이스라엘이 45년 만에 가나안 땅을 거의 다 정복하게 되는데, 아직 유다 지파에게 할당된 땅인 헤브란 산악지대를 점령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때 그 헤브론 공격의 선봉에 선 사람이 바로 갈렙입니다. 정탐을 갔던 12 정탐꾼 중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나님의 언약을 확신했던 갈렙입니다. 갈렙은 45년 동안 그 연약에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간직하였으며, 이제 그 언약의 성취가 눈 앞에 다가 왔을 때 용기를 내어 스스로 헤브론 공격의 선봉에 서겠다고 합니다. 그 때의 갈렙의 나이가 85세인데 성경 말씀에 보니 선봉에 설 만큼 청장년과 같이 아직 건강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약속에대한 믿음에 용기를 더 하여 잃어버리지 않고 꿈을 실현 시켜 주시는 모습입니다. 이 은혜가 바로 집사의 직분을 잘 감당하는 사람에게 주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어려운 일이 생겼습니다. 아마도 헬라파 유대인들과 히브리파 유대인들 사이에 갈등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의 과부들이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어, 그 원성이 높았고, 그래서 열 두 사도들은 이 문제가 교회에 일 이 많아져서 각 교인의 사정을 감찰하지 못했기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열 두 사도들은 말씀전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을 위해서 구제하는 일을 사람을 뽑아 그들에게 맡기기로 하자고 제의를 합니다. 처음으로 7집사가 뽑히게 됩니다. 그 일곱 집사 중에는 최초의 순교를 당한 스테반 집사도 있습니다. 또 요한계시록에 보면 에베소 교회와 버가모 교회에 이단 시비를 일으켰던 니골라당의 니골라 집사도 뽑혔습니다. 어쨌든 예루살렘 교회는 교회 봉사를 위해 일곱 집사를 택하였습니다. 그 때 집사의 선택 기준을 어디에 두었는가 하면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듣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바로 빌립 집사였습니다. 오늘 이 빌립 집사의 신앙이 어떠했는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첫 째 오늘 말씀처럼 빌립 집사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활동 중에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는 제자들을 택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기도하시고 택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제자들과 3년의 공생애 동안 늘 같이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제자들의 공통점이 하나있는데, 그것은 예수님과 늘 함께했던 제자들이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빈 들에서 오천명을 먹일 때, 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던 중에 누가 가장 높은지 시비가 붙기도 하고, 예수님에게 다가오는 아이들을 막기도 하고, 씨뿌리는 자의 비유 같은 말씀을 이해 못하고, 십자가의 고난을 방해 하고, 감람산에서 기도할 때에도 졸고, 귀신을 쫓아내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하고, 가롯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도마는 고집을 부리며 못자국을 보여 주어야 믿겠다 하고, 그것은 빌립도 역시 하나님 보여달라고 어긋장을 부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는데, 어쨌든 공통적인 것은 예수님에대한 제자들의 몰이해 였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됨됨이는 어떠했나요? 그 구성원을 볼 것 같으면 시골 벽촌 갈릴리 어부가 4 명, 그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싫어했던 세리 마태, 하스몬가의 전통에따라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해방시키기위해 투쟁하며, 혁명의 기치를 높이 들던 열심당원 시몬, 참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기도 한 인테리의 냄새가 물신 풍기는 바돌로매, 예수님을 배반한 가리옷이라는 남쪽 지방 출신의 유다, 하나님 보여달라고 하는 빌립, 예수님의 손과 발, 그리고 허리의 창 자국을 보고서야 믿은 도마...도대체 이들 12명을 볼 때에 누가 그들이 한 마음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세리 마태와 혁명가 시몬, 베드로와 가롯 유다, 안드레와 같은 어부와 경건하고 지식 많은 바돌로메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들을 뽑을 때 예수님이 신중하게 밤새도록 기도하셨다는 것입니다. 밤이 맞도록 기도하고 뽑은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이라니? 흥분잘하고, 서로 높아지려고 하는 이기심으로 가득차 있고, 신앙적이지 못하고,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이고, 명예나 권력이나 학문이나, 부로 따져 보아도 하나같이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것은 없고, 근데 예수님은 왜 이런 사람들을 제자로 뽑으셨을까요? 그렇습니다. 성령을 기다리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후반에 예수님이 반복해서 이야기 하는 것 중에 그 하나는 십자가의 고난을 받는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성령을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을 받기 전 까지만 해도 예수님을 이기적으로 쫓아 다녔습니다. 내심 자기 생각대로 예수님을 쫓았습니다. 그 제자들의 이기심은 하나같이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임금님이 되기만 하면 그 부스러기를 얻어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의 그러한 기대를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제자들이 인간적으로 바라보던 그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끝을 맺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제자들은 흩어졌고, 자기 본래의 직업으로 다시 돌아간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순간부터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아무 능력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십자가, 제자들이 보고서 등을 돌린 십자가를 하나님이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가 되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자 십자가의 도야말로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임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상황은 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십자가를 보고 모두 도망쳐 버린 겁많고, 이기적이며, 무식하고, 힘없고, 약해 보이던 제자들이 완전히 변화되어 복음 전파의 증인이 되었으며 제자들의 신앙고백을 통해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교회의 공동체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그 한심한 제자들이 생명을 걸고 이러한 놀라운 일을 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자이신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제자들의 모습을 미리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제자들을 끝까지 붙드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비밀이요, 지혜요, 경륜이요, 섭리인 것입니다.세상 지혜, 세상의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며, 세상에 약하고 천한고, 멸시받고 없는 것을 들어 쓰시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집사 빌립은 열 두 사도들과 예루살렘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열두 사도들이 어떻게 변화되었고, 그들의 능력이 어디에서부터 오는 가를 깨달았습니다. 집사 빌립의 마음 속에서 나도 저렇게 되어야지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사모하는 사람에게, 갈급해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바로 집사 빌립도 사도들이 체험한 성령, 그리고 그에따르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맛 보게 되었습니다. 열두 사도들 처럼 집사 빌립에게도 그리스도의 영과 하나님의 지혜가 하나되는 깊은 체험을 했습니다. 교우여러분의 신앙 고백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영과 하나님의 지혜, 즉 십자가의 도가 일치되는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둘 째 집사 빌립은 복음을 열심히 증거했습니다. 스테반 집사가 돌에 맞아 순교를 당하자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들 외에는 모두 흩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빌립 집사는 스테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으며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진리를 전하는 모습을 그대로 지켜보았습니다. 그 담대함과 용기 그리고 그 천사와 같은 얼굴을 그대로 지켜 보았습니다. 스데반 집사와 함께 했던 많은 일들이 주마등 처럼 지나갔습니다. 빌립집사는 스데반집사와의 신앙생활을 마음에 간직한체 사마리아로 내려갔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온 몸을 다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쫓겨 가고, 중풍병자와 앉은뱅이도 일어났습니다.

행8:8에 보면 사마리아에 큰 기쁨이 있었다고 합니다. 교우여러분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는 반드시 기쁨이 있습니다. 잃었던 양, 잃었던 아들, 은전을 찿는 기쁨이 있습니다.복음이 사마리아에 전해진 바, 사마리아성은 기쁨이 넘쳤습니다. 또 놀랬다고 합니다. 도대체 이런 권위가 어디에서 오는가 하고 모두 놀랬습니다. 이러한 표적과 기사 그리고 말씀 증거를 통해서 무엇이 들어났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드러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예수 그리스도 앞에 우리가 죄를 고백하며 주님의 은혜 안에 속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빌립의 전도로 사마리아 성이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빌립의 전도로 사마리아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소식이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되었습니다. 사도들은 모두 놀랐습니다. 그럴수가 있나! 어떻게 사마리아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달 될 수가 있을까? 이것은 예루살렘 교회가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유다와 사마리아는 계속 적대 관계 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벽이 집사 빌립의 전도에의해 무너졌습니다. 그 때만해도 여전히 열두 사도의 의식 속에는 이방에대한 배타적인 생각이 여전하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복음의 화해의 능력이 빌립 집사의 전도로 일어난 것입니다. 빌립이 화해의 물꼬를 에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으로 튼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그 자초지종을 알기 위해 베드로와 요한을 급히 사마리아로 파송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롤 고백하고 죄의 용서를 받았지만 아직 성령의 세례를 받지 않은 것을 알게되었습니다.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은 그들에게 안수하여 성령을 받게 하였습니다.

빌립 시대뿐아니라 지금도 그렇습니다. 교회의 목회자가 할 수 없는 일을 성도들이 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하난되는 일, 각 직장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겨내는 일, 부서지는 자연 생태계를 회복하는 일, 각 지역에 나눔과 하나됨의 삶의 잔치를 만들어 내는 일, 사회의 정의와 평화, 민주화를 위하는 일, 남과 북의 통일을 위해 이바지하는 일, 무너진 공교육의 현장 속에서 참 교육의 아름다움을 꽃피워내는 일, 어려운 가정을 구제하는 일,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기쁨으로 전하는 일, 등 지금도 얼마든지 복음의 기쁨과 놀라움, 그리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가 있습니다. 오직 물질 가치 하나뿐인 이 세상의 풍조 속에 참 생명의 가치를 살아내는 일 등 귀하고도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오늘 이 시대 성도들의 삶의 모습이어야 할 것입니다.

셋 째 빌립 집사는 성서를 보는 눈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집사 빌립에게 주의 천사가 나타나 “여기를 떠나 예루살렘에서 가자로 내려가는 남쪽 길로 가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그 곳에 가서 빌립 집사는 마침 이디어피아의 재무장관 내시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일찍이 하나님을 섬겼는데, 유월절 절기를 예루살렘에서 지키고 다시 자기의 나라로 돌아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사야서를 읽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빌립은 성령의 지시를 따라 내시의 마차로 다가 갔습니다.

그리고는 물었습니다.
“당신이 읽는 것을 이해하고 있습니까?”그러자 그 내시는
“나를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알 수가 있습니까?” 라고 반문합니다. 그리고는 빌립을 청해서 자신의 마차에 타게 합니다. 이디오피아 내시가 읽은 성경 구절은 사53:7,8의 말씀이었습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에대한 말씀이었습니다. 내시는 빌립에게
“도대체 이 예언자가 이야기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자기 자신입니까? 다른 사람입니까?” 이 내시는 무척이나 답답해 했습니다.

그 때에 빌립은 사지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가서 털 깍는 자 앞에 있는 어린양이 바로 우릴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이며 주님이라고 이디오피아의 내시에게 증거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디오피아 내시는 죄를 회개하고 물로 세례를 받고 유대교에서 복된 말씀의 기독교로 개종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어떻게 빌립 집사가 사53:7,8의 이야기가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 수 있었을까 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다리던 메시야의 모습은 말을 타고 칼을 차고 와서 이스라엘을 과거 다윗 왕조의 모습으로 회복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빌립은 메시야를 지금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 시키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깨우침이고, 믿음이었습니다.

이러한 깨우침이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요? 아마도 빌립은 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그 말씀의 의미를 깨우치고, 그리고 실천하려고 노력했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통상 유대교인들이 생각하는 메시야 상에서 벗어나와 예수 그리스도가 어린 양의 모습으로 오셨다고 하는 것을 성령이 충만하여 깨우쳤던 것입니다. 이것은 처음에 제자들도 몰랐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에 왜 나귀를 타고 입성하였는지 제자들도 성령을 받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그러나 집사 빌립은 이 놀라운 사실을 깨우쳤습니다. 복음서 속에는 이렇게 그리스도의 비밀, 하나님의 지혜를 일치감치 깨달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바로 셰례자 요한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본 최초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뿐만아니라 세례 요한은 사40:3-5의 말씀을 자기의 신앙고백으로 만들었습니다. 즉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 , “주의 길을 예비하느 자”라고 하는 이사야의 말씀이 세례 요한의 삶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신앙인은 적어도 말씀을 자기화 해야 합니다. 말씀이 성육신 해야 합니다. 빌립은 이렇게 그 시대 속에서 말씀을 깨우친 평신도였습니다. 그리고 그 깨우친 말씀을 이방인에게 전하였습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일으켰을 때에 성서가 라틴어로 기록되어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서를 읽지 못했을 때 루터는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여 모든 독일 사람들이 성서를 자유로 읽을 수 있게 게 하여 성경말씀을 평신도들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이제 성서를 해석하는 것도 평신도들에게 돌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지금 이 시대 속에 하나님 말씀이 살아날 수 있도록 이 시대의 생각과 정신으로, 시대적 흐름으로 성경을 해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평신도 신학이 정립되어야 합니다. 아무쪼록 시1편 처럼 말씀을 즐거워하여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 의미를 이 시대 속에 끄집어 내어 살아내는 복된 교우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네 번째로 빌립 집사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도의 교제를 나눈 사람입니다. 빌립은 그 이후 가이사랴에 정착하여 살게됩니다. 행21:8-14를 보면 아직 결혼하지 않은 4명의 딸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예언자였습니다. 그런데 빌립 집사에게 기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것은 제3차 전도 여행을 마친 바울 일행이 예루살렘으로 가기 전에 가이사랴에 들른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빌립집사는 두 말 할 것 없이 바울 일행을 자신의 집에 묵게 했습니다. 아마도 수 많은 복음과 관련된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오고 갔을 것입니다. 어떻게 사람들이 변화를 받는지, 이방인들이 복음을 어떻게 받아 들이는지, 그리고 감옥에 갖히고, 매를 맞고, 성에서 도망처 나오고, 귀신을 쫓아내고,,, 등등 감격, 기쁨, 고통, 외로움, 또한 3차 전도 여행을 끝마치고 돌아오면서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들여 부등켜 안고 예루살렘으로 가기 전에 눈물을 흘리며 작별 인사를 나누었을 때에 에베소 교회 장로들이 가지말라고 간곡히 권유했던 일들에대해서도 이야기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동안 빌립의 집에 머물고 있는 동안 유다에서 아가보라는 예언자가 찿아와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면 이방인들에게 넘겨질 것이라는 말을 하자 빌립과 교우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을 것입니다. 빌립과 교우들은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고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를 위해서는 감옥에 갖힐 뿐만아니라, 죽기 까지 하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순간 집사 빌립은 예루살렘으로 십자가를 지기 위해 향하시는 예수를 막았던 사도 베드로가 생각났을 것입니다. 순교를 당한 동료 스테반 집사도 떠 올랐을 것입니다. 빌립의 심정은 착잡했습니다. 그러나 빌립은 “주님의 뜻대로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하고 기도했습니다. 더 이상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었습니다. 빌립집사는 그 길이 어떤 길이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길은 인간적인 생각으로, 정에 이끌리어 움직이는 길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인도해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것은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인도하는 길이었습니다. 이러한 빌립 집사의 신앙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교회는 점점 부흥했던 것입니다.

새로이 직분을 맡은 여러분, 그리고 교우 여러분 아무쪼록 맡은 직분을 잘 감당하여 믿음의 확신 즉 갈렙과 같은 용기, 그리고 그리스도의 좋은 지위, 즉 그리스도의 향기로운 모습이 여러분의 신앙의 삶 속에 넘쳐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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