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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왕(2005년3월20일,종려주일)

aht21 | 2005.04.01 09:19 | 조회 2111

유대인의 왕?
2005년 3월20일(종려주일) 마23:1-5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기전 일찌감치 제자들에게 이제 곧 어려운 시험이 닥칠 것이라는 귀뜀을 거듭하셨습니다.다시 말해 고난에대해 제자들을 준비시킨 것입니다.참 자애로운 스승이십니다.들이닥칠 고난에대해 준비할 수록 도움을 주셨습니다.공식적으로는 3번 언급됩니다.베드로의 고백 후에,귀신들린 아이를 고친 후에,그리고 부자 젊은이와의 영생에대한 이야기를 나눈 후에 그리고 그 외에도 마지막 만찬이 끝나고 감람산으로 오르기 직전에‘내가 목자를 칠 것이니,양 떼가 흩어질 것이다’고 합니다.26:2에 보면 하나님 나라에대한 비유의 말씀을 하는데 그 마지막에 ‘너희가 아는 대로,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인데,인자가 넘겨져서 십자가에 달릴 것이다’고 합니다.

또한 그 즈음에 예수님이 시몬의 집에 묵고 있을 때에 한 여자가 예수님 앞으로 나아와 값진 향유 한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붓는 사건이 일어납니다.그야말로 쌩뚱맞은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그 때에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행동에 대해 ‘이 여자가 내 몸에 향유를 부은 것은,내 장례를 치르려고 한 것이라고 합니다.’더우기 최후의 만찬 중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 중 하나가 자신을 배반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얼마 전부터 제자들은 주변의 분위기가 이전 같지 않았음을 느꼈을 것입니다.그러나 왜 제자들은 이 고난을 알지 못했을까요?알지 못 한 것이 아니라,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거듭 고난에대해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십자가에 대해 조금도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서로 눈치보며 애써 생각 조차 하지 않으려 했을 것입니다.그들은 다가올 십자가에 마음을 꼭꼭 걸어 잠가 버렸던 것입니다.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가오는 십자가의 고난을 맞이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뇌하였습니다.그래서 감람산에 오른 직전에 예수님께서는“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되었”다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였지만 제자들은 그 아픔,고통을 함께 나누려 하지 않고 외면해 버렸습니다.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했지만 외형만 함께 했지 실제로는 주님과는 한없이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예수님께서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그 고난을 향하여 나아갔지만 제자들은‘아니오’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깊이 상심하신 체로 겟세마네 동산에 오르셨습니다.예수님께서는 말씀드렸지만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되었다고 할 정도로 두려움과 공포에 휩쌓였습니다.‘겟세마네’라는 말의 뜻은 ‘기름을 짜느 압착기’입니다.이 산에서 예수님께서는 기름을 짜듯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였습니다.그러나 아버지하나님께서는 아들 예수에게 아무런 말씀도 하시지 않았습니다.결국에 주님 홀로 남으셨습니다.그러나 아버지와 제자들에게 철저히 버림받은 그 때에 예수님의 내면에서부터 예수님의 예수님 됨이 흘러나오셨습니다.이런 상황은 이미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이해를 뛰어넘는 상황입니다.예수님께서는 왜 아버지 하나님께서 자기를 버리시는지를 이해할 수 없어 항거도 해 볼만하건만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자신을 맡김으로써 사랑하는 자녀의 신실함을 보이셨고,실망을 안겨준 제자들에 대해서도 끝까지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종종‘남편도,자식도 모두 소용없어’할 때가 있습니다.그런데 주님께서 홀로 십자가를 지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 혼자야!’하는 바로 그 때가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신실한 때요,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나의 존재를 가장 깊이 알 수 있는 기회요,회복의 때가 아닌가,지금이 바로 나의 내면 깊숙이 감추어진 자기 사랑,하나님 사랑,이웃 사랑을 꽃 피워내는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이에 비하여 우리는 얼마나 빨리 사랑하기를 포기하는지,부끄러울 따름입니다.그러나 이 겟세마네의 고난을 통과하신 주님께서 작은 시험 하나를 가지고도 힘들어하는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 중에 참으로 끔찍한 인류의 첫 번 타락으로부터 세상 마지막 때 까지의 모든 혐오스러운 죄악과 그 형벌을 보았습니다.거짓,살인,성적 타락,마약,알콜 중독,전쟁,폭력,미움,원망,교만,고집,자기학대,인신매매,이루말할 수 없는 온 인류의 죄,미쳐 우리가 인식조차 할 수 없는 죄들의 목록을---이 죄로 인해 참혹한 나락에 떨어지는 인생을 보고 몸서리를 쳤을 것입니다.

또한 그 죄의 결과들이 어떻게 결론지어지는 지도 보았을 것입니다.예수님께서는 죄가 얼마나 영육간에 무서운 영향을 미치는지 어떻게 이 세상,인류를 황폐시켜버리는 지를 보았을 것입니다.또한 사단은 이렇게 시험했을 것입니다.나의 희생이 어떤 도움과 이익이 될 것인가?하는 의문이 들게 했을 것입니다.장차 있을 사도들의 고난과 초대교회의 타락을 보았을 것입니다.교회 속의 이단들.또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외식,교만과 불순종,허영과 자기 의,거짓과 기만의 교사들,생명을 내어놓기까지 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죽음을 받아들였지만 그 열매가 이런 황폐함으로 다가올 때 예수님께서는 정말 이 잔을 받기 원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사탄은 정말 이렇게 은혜를 은혜로 받지 않는 사람들을 위하여 고난을 받을 이유가 어디있는가?라고 유혹했을 것입니다.그러나 사탄의 유혹도 강했지만 주님을 돕는 천사들이 주님의 기도를 도왔을 것입니다.그러한 참담함 속에서도 주님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총을 사모하며,감사하고,말씀을 따라 왕같은 제사장으로,빛과같은 아름다움으로 예수님의 모습을 드러내보이는 무리들,마치 어린양의 신부와 같은 무리들의 모습을 보고 큰 위로를 받았을 것입니다.

드디어 기도를 마치신 예수님께 유다를 앞세운 사형집행인들과 성전수비대,로마병정,전쟁노예들,바리새인들이 무기를 들고 예수님을 잡으러 왔습니다.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너희가 누구를 찿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그리고는“나다,다른 이들은 가게 하라!”하셨습니다.그 말씀의 권세에 예수님을 잡으러 온 자들은 땅에 엎드러져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예수님께서는 왕 같은 위엄과 당당함으로 자신을 내어주신 것입니다.능력과 권세를 가지신 분께서,능히 물리치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수들에게 아버지의뜻에 따라 그들에게 체포당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수차례에 걸쳐 주님으로부터 고난에대해 준비하라고 암시와 직접적인 말씀을 받았지만 전혀 준비하지 못하였고,그래서 마땅히 예수님과 함께 체포되어 주님의 길을 함께 가야 했을 제자들은 십자가에대한 두려움으로 인하여,이기적인 자아에 붙잡혀 결국 예수님에게서부터 떠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준비되지 않고,마음문 걸어잠근,이기적인 자아에는 예수님의그 말씀이 자리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두렵기는 제자나 예수님이나 마찬가지 였습니다.오죽하면 예수님께서‘죽게되었다’라고 까지 말씀하셨겠습니까?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두려움 속에서 아버지의 뜻을 구했습니다.기름을 짜는 듯한 내몰림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내면 깊숙한 곳으로부터 말씀에대한 순결한 헌신과 사랑이 솟아 나왔고 결국 자기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일 수가 있었습니다.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제자들은 이 시험에 걸려 넘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기껏 할 수 있었던 것은 감람산에 도착 직후 예수님께서“오늘밤 너희가 나를 버릴 것이다”라고 했을 때,제자 중 베드로가“나는 절대로 주님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자기 확신에 찬 고백을 하지만 주님의 준비하라는 말씀에 문걸어 잠근 베드로에게 있어서 이 말은 그저 체면치레의 말 정도 밖에는 될 수가 없었습니다.그래서 결국 베드로는 대제사장 관저의 앞 뜰에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그나마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여기까지 왔는데,그러나 그 이상은 더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우리는 늘 여기까지 밖에 오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왜 그럴까요?준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예수님께서는 두려웠지만 아버지의 뜻을 붙잡고 계속 묻고,또 묻고,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내 뜻이 아니라,아버지의 뜻을 구했지만,베드로는 전혀 마음을 닫아버렸습니다.그저‘절대로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는 얄팍한 자기 확신 밖에는 없었습니다.결국 예수님께서는 홀로 십자가의 폭력 앞에 자신을 내어주게 되었습니다.특히 빌라도 법정에서 채찍에 맞으며 심한 폭력에 고통받으셨습니다.이러한 폭력을 당하시는 모습을 묵상하면서,인류가 얼마나 많은 폭력으로 고통스러워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22:6에보면 다윗은“나는 사람도 아닌 벌레요,사람들의 비방거리,백성의 모욕거리일 뿐입니다.”라고 고백을 합니다.마치 예수님께서는 채찍에 맞을 때 마다 몸을 뒤틀며 한 마리 벌레와 같이 되셨습니다.아담의 범죄 이후 끊임없이 우리 속에 숨어있는 남을 괴롭히고 때리고,모욕하고 싶어하는 충동이 이 채찍질 속에 그대로 드러나옵니다.우리는 우리의 분노와 화를 이기지 못하여 말과 행동으로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그것을 통해 즐거워하며,좋아합니다.유대인들이 예수님이 채찍질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듯이 오늘 우리는 나보다 약한 사람에게 가정에서,이웃에서,거리에서 입술과행동으로 무리지어 남을 혹평하며,정죄하며 즐거워합니다.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죄없이 폭력에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그 매를 감당합니다.예수님께서는 우리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겸손과 사랑으로 어린양처럼 이 폭력을 감당하고 계십니다.내가 얼마나 많이 분노하며,화를 참지 못하여 다른 사람을 아프게 했나를 예수님의 채찍 맞으심 앞에서 묵상하며 더 이상 조급함과 분노 고집과 성냄,비방과 미움,증오에서 벗어나기를 이 번 기도회 동안에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에대해 한결같은 관심을 보였습니다“.네가 왕이냐?”라는 것입니다.물론 예수님은 이 땅에 왕으로 오셨습니다.그래서 헤롯은 자기 왕위를 빼앗길까봐 베들레햄 주변에 태어난 2살 이하의 사내 아이를 모두 살해하였습니다.5병2어의 기적을 베풀었을 때에도 사람들은 그 표징 보다는 배부름에 관심을 보입니다.그래서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려고 까지 합니다.예루살렘의 길목에서도 제자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면 어떻게 정권을 이양 받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예루살렘에서의 기간 동안에도 사람들의 관심은 예수가 왕이라는 것입니다.“네가 유대인의 왕이냐?”합니다.

그러나 그 왕이신 예수님을 사람들은 십자가에 매 달았으며,그렇게 십자가에 매 달기위해 예수님을 예루살렘 거리와 광장으로 끌고다녔습니다.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세상 나라의 왕으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예수님께서는 평화와 정의의 왕으로,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오신 것입니다.섬김과 나눔 불쌍히여김,사랑으로 만들어지는 나라의 왕입니다.이러한 인간의 힘에대한 욕구는 예수를 결국 쇄사슬에 묶어 예루살렘의 거리를 깊은 밤 미쳐 새벽이 움트기 전부터 끌고다니게 됩니다.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입니다.마땅히 평화의 왕으로서 그 평화를 주관해야할 분께서 두손 꽁꽁 묶이어 끌려다니셨습니다.

아마 지금 이 시대에 전쟁과 싸움,거짓과,폭력,욕망과두려움 속에 사로잡혀 사는 것도 바로 평화의 왕을 꽁꽁 묶어서 끌고다니기 때문이 아닌가?지금도 평화의 왕 우리 주님께서는 전쟁중인 이락,내전과 에이즈로 황폐해가는 아프리카,남과북 그리고 일본과 우리나라,그리고 이웃들 속에,우리 가정 속에 여전히 꽁꽁 묶이어 끌려다니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평화의 왕께서 원하는 곳에 원하는 시간에 마음껏 뜻을 펼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 말입니다. 아 이제 우리는 이 사순절을 통해 내가 원하는 것을 내 안에 왕으로 모시지 말고,죽기 까지 겸손과 헌신 사랑으로 참 왕의 모습을 보여주신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우리 가정과 교회, 이웃과 세상의 왕으로 모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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