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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도(2005년2월27일,사순절세번째주일)

aht21 | 2005.04.01 06:08 | 조회 2493
십자가의 도

2005년2월27일 요3:16/롬1:16,17

올 해는 3.1절이 60주년이 되는 해인데,독도문제가 다시 불쑥 제기되기도 하고,일본 정부에서는 여전히 정신대피해자에대한 공식적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그런데 어제 그것이 알고싶다라는 T,V프로에서 “야스쿠니 신사의 신이 된 소년 특공대원”이라는 특집을 냈는데,거기에서 조선 소년이 가미카제 특공대원이 되어 출격하기 직전 녹음된 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충격일 수 밖에 없고,또한 이 소년의 이름이 박동훈이며,17세의 소년이었다는 것입니다.현재 야스쿠니 신사에는 약 240만의 신이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가끔 일본의 정치인들이 야스쿠니에 참배할 때 마다,왜 여론이 들끓는지 이해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야스쿠니에 신으로 모셔진 죽음과 관련해서 예수의 죽음에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왜냐하면 지금이 사순절기간이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어 죽으신 그 죽음을 바라보는 기간이기도 하기에,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어떤 죽음인가 하는 것을 조심스럽게 살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이 가미카제식 죽음을 영웅시 하고 우러러 봅니다.그런데 이 죽음은 어떤 죽음입니까?세계를 지배하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전범자들이 일으킨 전쟁에 무모하게 생명을 내어 다른 생명을 죽임으로 목적을 달성하려는 폭력적인 죽음이 아니겠습니까?이러한 죽음을 신격화하여 섬기는 나라,사회의 문화는 어떤 문화일까요?죽음의 문화,어두움의 문화입니다.죽음이 미화되는 사회입니다.최근 이라크에서 이루어지는 전쟁에서도 이와 비슷한 자폭테러가 이루어지는데,이러한 테러는 이슬람에서는 거룩한 전쟁이요,순교입니다.9.11테러도 역시 그러한 바탕에서 일으킨 테러입니다.물론 공식적으로 기독교국가라고 자처하는 미국의 전세계적인 전쟁폭력은 용납할 수 없는 범죄입니다.하여간 이런 죽음이 신격화되고 영웅시됩니다.그러나 아무리 그 시대적 상황이 그런 투쟁을 할 수 밖에 없다 하더라도 그 테러는 폭력일 수 밖에 없읍니다.한 때 성자와 같은 분위기의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해 우호적인 분위기가 펼쳐졌던 생각이 납니다.

그러나 예수의 죽음은 어떠했습니까?그런 영웅적이거나,더 더우기 신격화한 죽음은 아니었습니다.고통을 감당하지 못하여 가능하면 이 죽음을 벗어나게 해 달라는 연약한 죽음이었습니다.

얼마전 지율 스님이 천성산 꼬리치레 도롱뇽을 살리자며 100일 단식에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이 단식에대해 ‘감성적 환경운동’이다.‘환경 극단주의’다 많은 이야기들을 했습니다.그러나 지율스님은 이 단식을 통해 “저를 보지 말고 제 뒤의 천성산 생명붙이를 봐달라”고 원했지만 사람들은 지율스님만을 쳐다보았습니다.하여간 천성산 홈페이지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지율스님을 안타까워하며,도롱뇽 종이접기도하며 지율스님의 운동에 동참을 하였습니다.그런데 만약,만의 하나라도 지율스님이 생명을 얻기위해 생명을 잃었더라면 어떠했을까요?많은 사람이 애도했을 것이고,혹자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의 죽음은 어떠했습니까?사랑받는 안타까운,연민의 정을 일으키는 죽음이 아니었습니다.아무도 돌보지 않는 철저히 외면당한,쉬쉬하며 시신하나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그런 죽음이었습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모세가 자기 동포인 히브리 백성들이 노동하는 곳에 갔다가,거기서 자기 백성 히브리인을 때리는 이집트인을 쳐서 죽이게 됩니다.몰래 모래 속에 파묻어 버리는데,다음날에도 그 노동하는 곳에 가보니 이번에는 같은 히브리인 동포끼리 싸우길래 말리려 하니까,잘못한 사람이 모세에게“누가당신을 우리의 지도자와 재판관으로 세웠단 말이오?당신이 이집트 사람을 죽이더니 이제는 나도 죽일 작정이오?”합니다.그래서 모세는 결국 이집트를 떠나 40년 광야생활을 하게 되는데,그 때 그 잘못한 사람이 모세에게“누가 너로 우리의 지도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는가?”합니다.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세를인정하지 않습니다.이렇게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광야 40년 동안 줄 곳 계속됩니다.이것은 모세가 싫어서가 아니라 그 이스라엘의 마음이 약속의 땅으로 향하기 보다는 이집트의 고기 맛이 더 그리웠고,마음이 그 쪽에 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세를 바라보는 눈이나,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이 예수를 바라보는 눈은 같습니다.요3:19에보면“빛이 세상에 들어왔지만,사람들이 자기들의 행위가 악하므로,빛보다 어두움을 더 좋아하였다”고 합니다.예수님은 이 땅에 태어날 때부터 배척과 버림을 받으셨습니다.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그 어두움,그 행위의 악함의 절정에서 일어난 것입니다.정치인은 정치인데로,상인은 상인데로,종교인들은 종교인데로,지식인은 지식인데로 일반인은 일반인데로 모두들 예수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나마 예수에게 관심을 보인 사람은 오히려 치외법권자들이었습니다.양을치는 목자들,외국인들이었습니다.막달라 마리아 같은 여인들,어린 아이들 이었습니다.태어날 때부터 거부당한 그 배척은 예수를 마굿간에서 태어나게 하셨고,회당에서 쫓겨나게 하였습니다.사람들은 빵과 기적을 보기위해 예수님을 쫓았고,하나님 나라의 종으로서 보다는 세상 나라의 기득권을 바라보며 예수님을 쫓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를 당시의 왕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바로 그런 욕망이 예수님을 십자가로 내 몬 것이었습니다.예수님은 예언대로 나귀를 타고 평화의 왕으로,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였지만,사람들은 예수님을 세상 왕으로 맞이하였습니다.예수님을 가장 가까이 따랐던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루살렘으로 향한 길에서 서로 자기가 더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이라고 논쟁을 벌일 정도 였다면 일반 사람들이 예수님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는 것입니다.그러니 기득권을 가진 예루살렘의 정치,경제,종교의 모든 사람들이 이제 예수가 갈릴리에서의 생활을 접고,본격적으로 민심을 등에 업고 예루살렘에서 왕으로서의 입지를 굳힐 것이고,그렇게되면 그나마 로마에 붙어서 풍요를 누리던 기득권자들은 그 좋은 것들을 다 잃을 것이라 생각하여 급기야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기로 한 것이고,로마의 총독 빌라도 역시 유월절 이 해방의 열기를 잠재우고,자기 정치적 생명을 유지 시키기 위해 예루살렘의 기득권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예수를 살릴 수도 있었지만 예수의 죽음을 방관한 것입니다.그래서 예수는 신성모독죄로,그리고 정치적으로는 민심을 소요시킨 죄로,그리고 본질적으로는 자기의 기득권을 잃을까 노심초사하는 종교인들의 시기,질투,그리고 로마의 폭력,또 일반인들의 빵을 원하는 욕망,진리에대한 무관심,방관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한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보여준 인간의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 십자가를 통해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봅니다.십자가 앞에서 어느 누구도 스스로를 의롭다 할 수 없습니다.탐욕,이기심,자기 중심적인 나,욕망을 이 십자가를 통해 보는 것입니다.결국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외면하여 간신히 다른 사람의 무덤에 안치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흉악범들과 함께 조롱과,핍박,그리고 무시 속에서 모두들 회피하는 죽음을 죽으신 것입니다.장례행열 하나 없는 그런 죽음이었습니다.이러한 죽음을 죽는 사람들이 있습니다.행려병자들,연고 없는 사람들입니다.이들의 죽음을 지키는 사람은 관공서의 책임자 뿐입니다.예수님은 이 보다 더한 빝바닥의 죽음을 당하셨습니다.모두 외면하는 죽음입니다.예수님의 죽음을 지켜본 사람은 그나마 예수님을 낳으신 어머니 마리아,그리고 일곱귀신 들렸다가 예수님에의해 회복된 막달라 마리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영웅적이지도,연민의 정을 일으키지도 않는 이 죽음을 안타까워하며,기쁨으로 받으신 분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바로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하나님은 이죽음을 인류 구원을 위해 받으셨습니다.이 죽음은 귀한 죽음입니다.여러번 있는 죽음이 아니라,단 한 번 의 죽으심입니다.죄없으신,참 하나님이시며,참 사람이신 분의 죽으심입니다.성경은 바로 이 십자가의 죽음을 믿는 사람이 구원을 얻고 영생을 얻는 다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죽음을 오늘 말씀 롬1:17에서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합니다.교우여러분 이 십자가의 죽음이 왜 구원의 능력일까요?

지난 주에 우리는 영생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영생은 양적인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천년 만년 사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요3:16절 말씀,그리고 롬1:16,17 말씀처럼 영원히 산다는 것은 바로 믿음의 삶이요,믿음으로 사는 삶이 영생인 것입니다.그러면 믿음의 삶이란 무엇일까요?믿음의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요3:16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사랑하셨다고 합니다.교회를 아니면 의로운 사람을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이처럼 사랑하셨다는 것은 바로 외 아들을 십자가에 달리어 죽게하신 그 사랑으로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그러니까 복음을,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다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그것이 바로 영원한 삶,죽지 않는 삶인 것입니다.하나님이 인정하는 삶 말입니다.예수의 죽음을 아무도 인정하지 않았지만 하나님만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인정하셨습니다.그래서 주님은 영원한,생명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세상을 바라볼 때 아무리 세상이 악하다 할지라도,아니 세상이 악한 것이 아니라,행위가 악한 것인데,그러한 악한 세상을“옘병할”,또는“빌어먹을”,또는“개 같은”하는 것이 아니라,들 꽃을 보며 감탄하고,아침에 맺힌 풀 잎 이슬의 영롱함에 미소짓고,밤하늘 별자리를 바라보며 신비로움에 눈을 뜨는,그런 마음으로 세상 속에 감추어 있는 기쁨,감사,평화를 맛 보는 삶이 바로 영한한 삶입니다.그렇게 세상을 살아갈 때 이 세상은 구원받을 것입니다.예수님의 기적이 구원의 능력이 아니라,십자가에 드러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구원의 능력인 것입니다.사도 바울은 이 아버지의 사랑이 바로 예수를 통해 나타났다고 고백합니다.그래서 비록 십자가의 형틀에 달리셨지만 자기는 이 십자가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저도 이 십자가의 죽으심을 부끄러워 하지 않습니다,왜냐하면 이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면 인류가,아니 내가 구원 받을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만일 내가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이름없이 빛도없이 지고 간다면 나 또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이 세상에 드러내는 복음의 작은 예수일 것입니다.교우 여러분!우리 모두 이 십자가에 드러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이 세상 속에서 살아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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